[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딸한테 4 ― 햇빛따라 누리책집에 내 책이 들어갔다 “풀꽃나무하고 놀던 나날” 궁금해서 들어가서 보고 잘 있나 싶어 또 가서 보고 좀 팔리나 싶어 다시 가서 보고 자꾸자꾸 들여다본다. 누가 사주는지 몰라도 35, 29, 30, 20, 14 널을 뛰는 듯하지만 무슨무슨 자리에 올랐다는 말에 덩실덩실 궁둥춤이다가 끙 이맛살을 찡그린다. 내가 내 책을 사면 저 자리가 더 올라갈까? 두근두근 내 책을 내가 사 본다. 이튿날 어떤 자리일까? 아니 이렇게 내 자리를 높이면 거짓말 아닌가? 아이 셋을 낳아 돌보며 아이들더러 거짓말 말고 참말 하면서 착하게 살라 가르치지 않았나? 이미 누리책집에서 산 책은 되돌릴 수 없는 짓. 부끄럽구나 어미 된 사람으로서. 2022. 12. 26. 숲하루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딸한테 2 ― 글삯 일을 해서 아이를 돌보았고 일을 해서 집을 마련했고 일을 해서 자가용을 들였고 일을 해서 옷을 산다. 일만 하고 살아온 날을 돌아보다가 우리 세 아이한테 어떤 어머니로 남을까 문득 궁금했고 어쩌면 세 아이는 모두 어머니한테도 삶이 있고 생각이 있고 마음이 있는 줄 모르고 살아갈 수 있겠구나 싶었다. 글을 배우기로 했다. 학교는 다녔지만 학교를 다녔을 뿐, 내 하루를 내 손으로 쓰는 글살림을 배운 적은 없다. 강의나 문학이나 수필이나 에세이 …… 어려웠다. 그러나 뭔가 멋있어 보였다. 그런데 문학이나 수필이나 에세이 여기에 시를 쓰려고 하니 처음 글을 배워서 쓰려던 뜻하고 멀어졌다. 아니, 난 우리 세 아이한테 어머니 삶을 들려주려고 글을 배우려고 하지 않았나? 이름을 내거나 이름을 얻으려고 시인이나 수필가 같은 이름을 바라려고 글을 배우지는 않았는데? 글을 써서 돈을 쥘 수 있을까? 누가 내 글을 내 책을 사줄는지 모른다. 아무도 안 읽고 안 사줄는지 모른다. 첫뜻으로 돌아가련다. 세 아이한테 들려주고 곁님한테 들려주고 우리 아버지 어머니한테 “엄마, 아빠, 내가 이렇게 글을 썼네. 함 보이소.” 하고 띄울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하루 우리말 노래 우리말 새롭게 가꾸기 5. 뒷종이 앞에 다른 글이나 그림이 깃들지만, 뒤는 하얀 종이가 있다. 뒤가 말끔하기에 살려쓰자는 뜻으로 “이면지 활용”을 말하는데, 앞쪽 아닌 뒤쪽을 아직 안 써서 하얗기에 살려쓰는 종이라 하면 ‘뒷종이’라 할 만하다. 뒷종이 : 종이를 앞뒤로 놓고 볼 적에, 쓴 한쪽이 아닌, 쓰지 않은 한쪽. 한쪽을 썼으나 다른 한쪽은 아직 쓰지 않은 종이. (← 이면지) 6. 뒷북치다 한창 할 적에는 조용하다가, 모두 끝나고서 불쑥 나서서 떠드는 사람이 있다. 함께 땀흘리며 모인 자리에서는 뒷짐을 지더니, 다 끝낸 자리에 뜬금없이 나서서 티내려는 사람이 있다. 뒷북인 셈인데, 혼자 돋보이려는 마음도 있겠지만, 한창이던 무렵에는 막상 알아차리지 못 한 터라 뒤늦게 알아차리고서 나서는 마음도 있다. 얄궂으면 ‘뒷북꾼’이요, 귀여우면 ‘뒷북아이’에 ‘뒷북노래’이다. 뒷북치다 : 하거나 누리거나 펴거나 있을 적에는, 안 하거나 안 누리거나 안 펴거나 없더니, 모두 끝이 난 뒤에 하거나 누리거나 펴거나 있으려고 움직이거나 나오거나 나서거나 떠들다. (= 뒷북·뒷북노래·뒷북이·뒷북아이·뒷북님·뒷북꾼·뒷북쟁이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이레말’은 이레에 맞추어 일곱 가지로 들려주는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생각을 말에 슬기롭고 즐거우면서 곱게 담아내는 길을 밝히려고 합니다. 이레에 맞추어 다음처럼 이야기를 폅니다. 달날 - 의 . 불날 - 적 . 물날 - 한자말 . 나무날 - 영어 . 쇠날 - 사자성어 . 흙날 - 외마디 한자말 . 해날 - 겹말 애드버토리얼advertorial 애드버토리얼 : x advertorial : (신문·잡지 속) 기사 형태의 광고 アドバトリアル(advertorial) : 1. 애드버토리얼 2. 기사 형식을 취한 광고. *advertisement(광고) + editorial(편집의) 새뜸(신문)에 글을 쓰는 이들은 일본에서 영어를 따서 쓰듯 ‘애드버토리얼’을 쓰는구나 싶습니다만, 이 영어도 한자말 ‘광고기사’나 ‘홍보문·홍보기사’도 ‘장삿글’이나 ‘파는글’로 풀어낼 만합니다. ㅅㄴㄹ 그는 자기가 쓴 기사를 ‘애드버토리얼’이라고 불렀습니다 → 그는 스스로 쓴 글을 ‘파는글’이라고 했습니다 → 그는 스스로 ‘장삿글’을 썼다고 했습니다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김성호, 포르체, 2023) 76쪽 바이라인by-line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숲노래 책숲마실 길손빛 ― 제주 〈바라나시 책골목〉 여름이 무르익는 새벽에 마을 앞에서 택시를 타고서 녹동나루로 갑니다. 오늘은 작은아이하고 제주로 이야기마실을 갑니다. 제주 〈노란우산〉에서 8월 동안 ‘노래그림잔치(시화전)’를 열면서 이틀(27∼28) 동안 우리말·노래꽃·시골빛 이야기를 들려주는 자리를 꾸립니다. 환한 아침나절에 배를 네 시간 달리는데, 손님칸(객실)에 불을 켜 놓는군요. 밝을 적에는 햇빛을 맞아들이면 즐거울 텐데요. 손님칸이 너무 밝고 시끄럽다는 작은아이하고 자주 바깥으로 나가서 바닷바람을 쐽니다. 이제 제주나루에 닿아 시내버스로 갈아탔고, 물결이 철썩이는 바닷가를 걸어서 〈바라나시 책골목〉에 들릅니다. 무더운 날씨라지만, 이 더위에는 뜨거운 짜이 한 모금이 몸을 북돋울 만합니다. 집에서건 바깥에서건, 아이라는 마음빛을 품고서 살아가는 어른으로 바라보려 합니다. 시골길이건 서울길(번화가)이건 언제나 즐겁게 맞이하면서 다독이고 삭이자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바라볼 곳은 아이하고 어깨동무할 살림터요, 우리가 쓸 글은 아이하고 노래하듯 여미고 나눌 생각이 흐르는 이야기라고 봅니다. 작은아이는 배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숲노래 책숲마실 ― 안양 〈뜻밖의 여행〉 찌뿌둥한 몸을 일으켜 버스길을 살핍니다. 서울서 고흥 가는 버스는 빈자리가 없습니다. 놀이철인 듯싶습니다. 고흥·안산을 오가는 시외버스가 하루 하나 있는데, 빈자리가 많군요. 안양을 들러 〈뜻밖의 여행〉에 책마실을 갈 수 있겠습니다. 여름날 길바닥은 후끈하고 버스나 전철은 서늘합니다. 나무 곁에 서면 시원하지만, 집안에 바람이(에어컨)를 들이는 집이 늘어날 뿐, 마당을 놓고 나무를 심으려는 이웃을 보기는 만만하지 않습니다. 잿집(아파트)하고 부릉이(자가용)를 치우면 서울이나 큰고장에서도 ‘나무 심고 마당 거느리는 집’을 장만할 만해요. 고작 서른·마흔 해조차 버티기 힘든 잿집이 아닌, 두고두고 뿌리내릴 살림집을 헤아리는 마음이 하나둘 늘어야 비로소 이 나라를 뒤엎으리라 생각합니다. 범계나루에서 내려 걸으려는데, 나오는곳에 따라 나왔으나 아리송합니다. 이 나라 어디나 매한가지인데, 길알림판은 뚜벅이 아닌 부릉이한테 맞추더군요. 어린이는 어쩌라고 이 따위일까요? 이웃손님(외국여행자)도 이 나라 길알림판에 고개를 절레절레할 만합니다. 그러나 나라지기·벼슬꾼·글바치는 으레 안 걷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오늘말’은 오늘 하루 생각해 보는 우리말 이야기입니다. 이 낱말 하나를 혀에 얹고 눈으로 보고 손으로 적으면서 생각을 새롭게 가꾸어 보면 좋겠습니다. 숲노래 말빛 오늘말. 잿터 철없던 아이로 자라던 어린날, 왜 우리 고장에는 높은집이 없나 싶어 서운했습니다. 작은아버지가 사는 서울에 가노라면 으리으리하게 커다란 집이며 하늘을 찌를 듯한 높집이 줄지어요. 서울사람은 서울 아닌 곳을 보면 으레 “여기는 높다란 집도 없으니 발돋움이 더디군.” 하는 소리를 냈습니다. 철없는 아이는 천천히 자라며 우람한 잿터란 사람살이하고 동떨어진 잿빛인 뿐인 줄 하나하나 알아차립니다. 풀꽃이 돋고 나무가 자라면서 새가 내려앉고 개구리랑 뱀도 어우러지면서 바람에 날개를 나부끼듯 날며 곱게 춤추는 나비가 함께 있기에 비로소 ‘집’다운 줄 느껴요. 서울에 빼곡한 잿빛집은 오래갈 수 없습니다. 숲살림을 받아들여 가꾼 터전이 아니기에, 늘 다시짓기(재개발)에 얽매입니다. 잿빛터를 허물면 모두 쓰레기가 될 테지요. 한때 이름을 드날리는 높다란 꽃얼굴이라 하더라도, 머잖아 쓰레기터를 그득그득 채울 잿더미입니다. 우리 삶은 이름꽃일 수 있을까요. 서로 날개이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오늘말’은 오늘 하루 생각해 보는 우리말 이야기입니다. 이 낱말 하나를 혀에 얹고 눈으로 보고 손으로 적으면서 생각을 새롭게 가꾸어 보면 좋겠습니다. 숲노래 말빛 오늘말. 자리바꾸기 겨울이 저물 즈음 돋아나는 들꽃은 찬바람을 아랑곳하지 않으면서 꽃대를 냅니다. 봄이 무르익으면 2월꽃은 수그러들며 4월꽃이며 5월꽃하고 자리를 바꾸어요. 여름이 다가오면 어느새 봄꽃은 자취를 감추고 여름꽃이 새자리를 차지합니다. 여름이 깊으면 여러 여름꽃이 올망졸망 섞이며 짙푸른 빛깔로 반짝입니다. 봄에는 봄빛으로 잇는 하루라면, 여름에는 여름볕을 후끈후끈 누리면서 한결같이 반짝이는 하루예요. 볕을 반기는 볕나물한테는 ‘가락지나물’하고 ‘쇠스랑개비’란 이름이 더 있습니다. 나물 한 포기를 곁에 두는 사람들은 나물빛을 그대로 마주하면서 이름을 붙여요. 나물마다 다 다른 숨결을 고스란히 읽으면서 즐겁게 만납니다. 사람도 반가이 오가면서 어우러질 적에 서로서로 즐겁게 이름을 부르고 기쁜 오늘 이야기를 마음에 새록새록 품습니다. 우두머리 자리에 앉은 이들은 곧잘 총칼을 앞세워 제 나라 사람들을 억누르다가 이웃나라로 쳐들어갑니다. 이때에 이 바보짓을…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하루 우리말 노래 우리말 새롭게 가꾸기 1. ㄱㄴㄷ 한글을 닿소리에 따라 벌이면 ㄱㄴㄷ으로 흐른다. 이 ‘ㄱㄴㄷ’은 한글을 읽는 길뿐 아니라, 앞뒤나 높낮이를 가르는 자리에 쓸 만하다. 높고 낮음이나 좋고 나쁨을 가릴 적에도 쓸 수 있다. ㄱㄴㄷ : 1. 한글을 읽거나 열거나 매기는 길. 2. 무엇이나 누가, 먼저이고 나중인지 앞뒤를 따지는 길. 3. 높고 낮음·좋고 나쁨·앞과 뒤를 하나하나 가르거나, 어느 잣대나 틀에 따라서 놓는 길. (= 가나다·가나다라. ← 순위, 순번, 순서, 차례, 서열, 등等, 등급, 등수, 등위, 성적成績, 갑을병정) 2. 가난꽃 가난한 사람을 두고 ‘가난뱅이’라 하면서 낮잡곤 한다. 수수하게 ‘가난이’라고만 할 수 있을 텐데, 없거나 모자라거나 적으면 마치 나쁘다고 여기는 말씨이다. 한자말로 가리키는 ‘빈민·저소득층·무산자·영세민’도 다 낮춘다는 결이다. 돈이나 살림이 적더라도 나쁠까? 가난하면서 오붓하게 사는 사람도 많지 않은가? 그래서 ‘가난꽃’이나 ‘가난별’처럼 이름을 붙일 수 있다. 가난꽃 : 가난한 꽃. 가난한 사람을 빗대는 말. 돈이 적거나 살림이 모자란 사람. 돈이나 살림을 넉넉하게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61] 말랑감 상주 푸른누리를 지난달에 다녀왔다. 상주 시내에서 한참 먼 멧골에 깊이 깃든 그곳은 숲집 같았다. 그날 그곳에서 얻어온 말랑감이 남았다. 빛깔이 곱고 말랑한 감을 먼저 골라 먹다 보니 까맣고 흉이 난 감만 남았다. 어찌할까 하다가 까치밥으로 삼기로 한다. 물을 큰 그릇에 옮긴 날 말랑감을 하나 놓았다. 아침에 문을 열어 빼꼼히 보니 쪼아먹은 구멍이 났다. 물을 더 붓고 감을 둘 또 놓았다. 까치가 고개를 갸우뚱하고 두리번거린다. “이 물을 누가 놓았지? 감은 어디서 떨어졌지?” 하는 듯했다. 까치는 물을 먹을 적에도 모이를 먹을 적에도 소리를 낸다. 두리번거리는 모습을 보면 조용히 몰래 먹어야 할 듯한데, 오히려 소리를 낸다. 요즘 내 귀에 이 소리가 말로 들린다. 살피는 몸짓이 말 같다. “고마워요. 잘 먹을게요. 그런데 어디 있어요?” 같은 소리가 들리면 눈치채지 못하게 슬그머니 가리개 곁에 숨어서 본다. 큰 까치가 오니 어린 까치가 날아갔다. 큰 까치는 넓은 물독에 들어갔다. 꼬리가 잠기지 않는다. 어느새 날아가고 어린 까치가 왔다. 물을 먹고는 감껍질을 한 입 물고 날아간다. 누굴 줄까. 저 어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