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발걸음 29] 칼 가마솥 옆에는 언제나 숫돌이 있었다. 굽이 높은 구두처럼 비스듬한 걸이에 푸름하고 네모난 돌을 얹어 놓았다. 길가에 굴러다니는 돌하고 다르게 매끈하고 보드랍다. 아침에 일어나면 아버지가 앉아서 낫을 간다. 쇠바가지에 물을 담아 칼날에 묻히고 손잡이를 잡고 한 손은 낫 앞머리를 잡고 갈다가 들고 보고 또 간다. 어머니가 쓰는 부엌칼은 무겁고 두껍다. 부엌칼도 숫돌에 간다. 어떤 날은 할아버지가 아버지 낫을 갈고 도끼도 간다. 자다가 일어나 아버지가 칼을 가는 모습을 보면 무서웠다. 칼 가는 소리가 귀에 거슬리지 않는데도 무섭기만 했다. 아버지는 밭에 가기 앞서 숫돌에 칼을 갈았다. 연필이 있어야 글씨를 쓰듯이 아버지한테는 낫이 있어야 밭둑을 손질하고 소가 먹을 풀을 벤다. 낫이 있어야 깨도 찌고 나무도 해서 불을 지핀다. 낫은 일을 많이 해서 칼날이 무디다. 고운 숫돌이 어떻게 칼날을 세울까. 아버지가 숫돌 앞에 느긋이 앉아 오래도록 낫을 갈던 얼굴은 늘 웃음이 머문다. 낫을 이리저리 기울여 보고 갈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 날카로워서 낫 끝에 닿으면 사뿐히 자르는 칼날은 풀꽃나무를 자르는 끔찍한 일인데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발걸음 28] 포스터 열세 살 적인데, 나는 도면을 잘 그렸다. 큰오빠가 고등학교를 다녔는데, 집에 올 적에 하늘빛이 살짝 도는 큰 종이뭉치를 들고 왔다. 나는 오빠가 그리는 설계가 무척 재미있었다. 어떻게 촘촘하게 그릴까. 어떻게 이름 글씨를 살아숨쉬도록 쓸까. 큰오빠가 집에 온 날 졸라서 글씨를 배웠다. 오빠가 종이에 자를 대고 연필로 가볍게 긋는다. 다섯 글씨라면 글씨 크기를 가로세로 5cm나 7cm 눈금을 긋고 칸 사이와 사이는 띄울 만큼 좁게 그린다. 닿소리 홑소리 하나마다 두께 cm를 잡아서 똑같이 그리고 닿소리 ㄱ을 꺾어서 도드람 글씨가 되었다. 오빠가 딱 한 판 알려주었는데 나는 잘 따라했다. 나는 오빠한테서 배워 포스터 글씨를 아주 잘 썼다. 상자 밑그림도 쉽게 그리는 길을 배웠다. 큰오빠와 같이 살면 뭐라도 배우고 싶었다. 작은오빠하고는 두 살 터울이 나서 자주 싸웠는데, 큰오빠하고 여섯 살 터울이라서 안 싸우고 함께 놀았는지 고개를 갸우뚱한다. 큰오빠가 알려준 글씨로 포스터 숙제는 거뜬히 했고 배움터에서 교실을 꾸밀 적에는 이 글씨도 곧잘 썼다. 오빠처럼 누가 곁에서 조금만 이끌어 주면 즐겁게 배우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발걸음 27] 밤에 학교 가다 제사인지 할아버지 생신인지 두 고모네가 우리 집에 왔다. 이날은 몹시 아파 몸이 후끈거렸다. 어른들이 안방에 둘러앉아 화투를 치고 놀 적에 나는 방 안쪽 귀퉁이 책상에 앉아 숙제를 했다. 그러고는 스르르 잠이 들었다. 얼마나 잤을까. 고모가 밥 먹자고 깨웠다. 시계를 보니 여덟 시쯤 되었다. 발을 동동 구르며 학교 늦는다고 가방을 챙겨 방문을 열었다. 밖이 캄캄했다. 방에 있던 어른들이 크게 웃는다. 아침인 줄 알고 학교에 늦는다는 생각만 했다. 우리 집은 방이 둘이라서, 손님이 오면 안방에 모이고 우리는 안쪽 벽장 앞에서 숙제를 했다. 고모는 숙제한다고 책상에 앉아 있는 나를 보고 칭찬했다. 고모가 칭찬하니 기뻐서 책을 보는 척했다. 들일 밭일이 바쁠 때에도 시험공부 한다고 하면 우리 집에서는 봐줬다. 어머니는 내가 꾀부리는 줄도 모르고 몸이 여려서 봐주었지 싶다. 나는 어찌 손님이 오면 ‘하는 척’을 할까. 딱히 우리가 놀이가 없는 방에서 그저 책상에 앉아 책을 넘겼지 싶은데, 고모는 볼 적마다 내가 공부하는 줄 알고 이뻐한다. 이뻐하니 더 하는가. 고모는 무엇이든 내가 잘 한다고 부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발걸음 26] 수학선생님 국어 시간이면 늘 졸렸다. 국어 선생님은 철테 안경을 끼고 손에는 막대기를 들고 다닌다. 이때만 되면 지겨웠다. 이때 국어 선생님 때문에 국어가 재미없었다. 이분이 가르칠 적에는 잠만 잤으니깐. 하루는 졸음을 겨우 참는데, 옆 반에서 우당탕 소리가 크게 났다. 그리고 아이들이 소리를 질렸다. 꾸벅 맛있게 누리던 잠이 번쩍 깼다. 자리에서 일어나 옆 반으로 달려갔다. 뒷문에서 보니, 수학 선생님이 바닥에 쓰러졌다. 입에 거품을 물고 몸을 바르르 떨었다. 한참 지나 수학 선생님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우리가 도울 수 있는 일은 가만히 지켜보기뿐이었다. 쓰러진 수학 선생님이 무척 창피했지 싶다. 이 일이 몇 판 일어났는지 아이들이 수군거렸다. 우리 마을에도 비슷하게 앓는 사람이 있었다. 아이들이 뛰어노는데 우두커니 서서 구경하다 흙바닥에 퍽 쓰러졌다가 한참 있다가 일어나 옷을 털곤했다. 아저씨는 아이들과 같이 놀고 싶어 하는 눈치던데 우리는 무서워 내빼기만 했다. 선생님도 그랬을지 모른다. 지랄병이라고 사람들이 말했다. 기절일까. 거품은 왜 날까. 몸은 왜 바르르 떨까. 죽음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숲노래 우리말 : 얄궂은 말씨 손질하기 6 ㄱ. -의 호기심과 기대심리로 시작 친구(親舊) : 1. 가깝게 오래 사귄 사람 ≒ 친고(親故)·동무·벗·친우(親友) 2. 나이가 비슷하거나 아래인 사람을 낮추거나 친근하게 이르는 말 호기심(好奇心) : 새롭고 신기한 것을 좋아하거나 모르는 것을 알고 싶어 하는 마음 기대(期待) : 어떤 일이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기다림 심리(心理) : 1. [심리] 마음의 작용과 의식의 상태 2. [심리] 생물체의 의식 현상과 행동을 연구하는 학문 시작(始作) : 어떤 일이나 행동의 처음 단계를 이루거나 그렇게 하게 함. 또는 그 단계 “눈빛이 반짝거리기”라 하면 겹말입니다. “눈이 반짝거리기”로 손보거나, 앞말하고 묶어서 “동무들은 장난스러운 눈빛이었고”로 손봅니다. 동무가 어떤 눈빛인가 하고 살피니 “동무 눈빛”이요 “동무들은 눈빛이었고”처럼 쓸 노릇이에요. 알고 싶다는 마음이면서 기다리거나 바란다는 마음은 다르되 때로는 맞물려요. “호기심과 기대심리로”는 “궁금하고 설레어”나 “궁금하고 두근거려”나 “두근두근 기다리며”나 “두근두근 바라며”로 고쳐씁니다. “-기 시작했고”는 군더더기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곁말’은 곁에 두면서 마음과 생각을 살찌우도록 징검다리가 되는 말입니다. 낱말책에는 아직 없습니다. 글을 쓰는 숲노래가 지은 낱말입니다. 곁에 어떤 낱말을 놓으면서 마음이며 생각을 빛낼 적에 즐거울까 하고 생각하면서 ‘곁말’ 이야기를 단출히 적어 봅니다. 숲노래 곁노래 곁말 11 이웃사람 ‘이웃’이라는 낱말만으로도 “가까이 있는 사람”을 가리킵니다만, 이제는 따로 ‘이웃사람’처럼 쓰기도 해야겠구나 싶습니다. ‘이웃짐승·이웃별·이웃목숨·이웃짐승·이웃나무·이웃숲’처럼 쓰임새를 자꾸 넓힐 만해요. ‘이웃-’을 앞가지로 삼아 새 낱말을 차곡차곡 지으면서 말결이 살아나고, 우리 스스로 둘레를 바라보는 눈길을 새록새록 가다듬을 만하지 싶습니다. 요사이는 ‘서로이웃’이란 낱말이 새로 태어났습니다. 그저 옆에 붙은 사람이 아닌 마음으로 만나면서 아낄 줄 아는 사이로 나아가자는 ‘서로이웃’일 테니, 따로 ‘이웃사람’이라 할 적에는 ‘참사랑’이라는 숨빛을 얹는 셈이라고 할 만합니다. 어깨동무를 하기에 서로이웃이요 이웃사람입니다. 손을 맞잡고 춤추며 노래하는 사이라서 서로이웃이자 이웃사람이에요. 이웃마을에 찾아갑니다. 이웃넋을 읽습니다.…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책숲마실’은 나라 곳곳에서 알뜰살뜰 책살림을 가꾸는 마을책집(동네책방·독립서점)을 다녀온 이야기입니다. 여러 고장 여러 마을책집을 알리는(소개하는) 뜻도 있으나, 이보다는 우리가 저마다 틈을 내어 사뿐히 마을을 함께 돌아보면서 책도 나란히 손에 쥐면 한결 좋으리라 생각하면서 단출하게 꾸리려고 합니다. 마을책집 이름을 누리판(포털) 찾기칸에 넣으면 ‘찾아가는 길’을 알 수 있습니다. 숲노래 책숲마실 ― 서울 〈카모메그림책방〉 어느 나라에나 말놀이가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말놀이가 오래이고 깊어요. 다만 우리 말놀이는 조선을 거치고 일본이 총칼로 억누른 나날에다가 한겨레끼리 피를 튀기는 싸움을 지나면서 거의 자취를 감춥니다. 모든 말놀이는 그 나라에서 수수하게 아이를 낳아 돌보는 어버이가 즐겁게 사랑하는 눈빛을 밝히는 마음으로 문득문득 짓고 엮어서 들려주는 노래입니다. 우리는 조선 무렵에 중국을 섬기는 바보짓을 아주 끔찍하게 했습니다. 일본이 앞세운 총칼에 무너지며 스스로 넋을 잃었고, 이윽고 한겨레끼리 사납게 미워하며 부라리더니, 남북녘 모두 사납빼기(독재자)가 우두머리 노릇을 오래오래 하는 동안 숱한 사람들이 꼭두각시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책숲마실’은 나라 곳곳에서 알뜰살뜰 책살림을 가꾸는 마을책집(동네책방·독립서점)을 다녀온 이야기입니다. 여러 고장 여러 마을책집을 알리는(소개하는) 뜻도 있으나, 이보다는 우리가 저마다 틈을 내어 사뿐히 마을을 함께 돌아보면서 책도 나란히 손에 쥐면 한결 좋으리라 생각하면서 단출하게 꾸리려고 합니다. 마을책집 이름을 누리판(포털) 찾기칸에 넣으면 ‘찾아가는 길’을 알 수 있습니다. 숲노래 책숲마실 ― 군포 〈터무니책방〉 요즘은 아이들이 마음껏 뛰놀 빈터가 시골에도 서울에도 자취를 감춥니다. 부릉이(자동차)가 끔찍하게 늘어난 탓도 있으나, 아이들이 배움터(학교)에 너무 오래 자주 갇히는 탓이 훨씬 큽니다. 마을놀이나 골목놀이를 누리지 못한 채 배움수렁(입시지옥)으로 헤매다가 어른 몸뚱이가 된 분들이 벼슬자리(공무원)에 앉으면, 마을길이나 마을살림을 어떻게 돌보거나 가꾸어야 아이어른이 나란히 즐거우며 넉넉할까 하는 대목을 생각조차 못 하게 마련입니다. 그네가 없는 놀이터가 많습니다. “그네가 위험해서 치웠다”는 말을 자주 들었습니다. “아니, 그네가 아슬하면 부릉물결이야말로 아찔하지 않아요? 골목이며 마을에 아무도 부릉부릉 못…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오늘말’은 오늘 하루 생각해 보는 우리말 이야기입니다. 이 낱말 하나를 혀에 얹고 눈으로 보고 손으로 적으면서 생각을 새롭게 가꾸어 보면 좋겠습니다. 숲노래 말빛 오늘말. 노느다 어릴 적에 집집장수를 늘 보았습니다. 책도 방물도 마실장수가 제법 팔아요. 우리 집에도 하루에 몇 사람씩 찾는장수가 단추를 누르는데 “어머니 안 계셔요” 하고 말하든지, 단추를 그만 누르고 떠날 때까지 소리를 죽였습니다. 어릴 적에는 날마다 뛰놀면서 몸에 힘이 붙었다면, 푸른나이를 지날 즈음에는 새뜸나름이(신문배달부)를 하면서 여린몸을 다스렸어요. 골골거리니 조금만 달려도 지치지만, 골골몸으로 한바탕 땀을 쏟고서 곯아떨어지면 하루가 휙휙 가면서 조금씩 자란다고 느꼈습니다. 꿈에서 여린힘하고 센힘을 바꾸겠느냐는 말을 이따금 들어요. 맞바꾼다면, 판갈이를 한다면, 참말로 나은 삶으로 갈까요? 언제나 망설이고 머뭇거리다가 여린씨로 남기로 했어요. 어쩐지 센힘은 안 맞지 싶었습니다. 힘이 있기에 나누지 않아요. 돈이 있어서 노느지 않습니다. 사랑으로 마주하는 사이라서 도르리를 하고, 마음으로 반가운 이웃이 도리기를 합니다. 한물결이 이웃나라로 뻗곤 하는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이레말’은 이레에 맞추어 일곱 가지로 들려주는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생각을 말에 슬기롭고 즐거우면서 곱게 담아내는 길을 밝히려고 합니다. 이레에 맞추어 다음처럼 이야기를 폅니다. 달날 - 의 . 불날 - 적 . 물날 - 한자말 . 나무날 - 영어 . 쇠날 - 사자성어 . 흙날 - 외마디 한자말 . 해날 - 겹말 숲노래 우리말 겹말 손질 : 어린 소년 어린 소년에게는 → 어린이한테는 → 아이한테는 소년(少年) : 1. 아직 완전히 성숙하지 아니한 어린 사내아이 2. 젊은 나이. 또는 그런 나이의 사람 3. [법률] 소년법에서, 19세 미만인 사람을 이르는 말 나이가 어리다 싶은 사람을 한자말로 ‘소년’이라 하기에 “어린 소년”이라 하면 겹말입니다. 우리말 ‘아이’나 ‘어린이’를 쓰면 겹말에 휘둘릴 일이 없습니다. 어린 소년에게는 무척이나 매력적인 취미였다 → 어린이한테는 무척이나 끌리는 놀이였다 → 아이한테는 무척이나 신나는 놀잇감이었다 《천재 이야기꾼 로알드 달》(도널드 스터록/지혜연 옮김, 다산기획, 2012) 88쪽 겹말 손질 : 액면 그대로 액면 그대로 믿으려 → 그저 그대로 믿으려 → 그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