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게 삶으로 043 들숲을 죽이다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 시애틀 추장 류시화 엮음 더숲 2017.9.22. 1991년 봄에 갓 짝을 맺어서 한칸집에 살 적에, 우리 짝은 이레쯤 집을 떠나 배움마실을 다녀와야 했고, 혼자 있기에 무서울까 싶어 시누이가 와주어 같이 지냈다. 그때 하루는 극장에 갔고, 〈늑대와 춤을〉을 보았다. 이 영화를 보러 온 사람이 얼마나 많던지 자리를 못 잡았고, 우리 둘은 극장 바닥에 앉아서 보았다. 북중미 텃사람(원주민)이 미국한테 삶터를 빼앗기면서 자꾸 구석으로 몰리던 무렵, 어느 백인 병사는 ‘백인 문명이 저지르는 짓’을 창피하다고 깨달으면서 ‘텃사람 죽임짓(원주민 토벌)’을 하는 병사를 그만두고, 텃사람처럼 말을 하고 텃사람처럼 옷을 입으면서 살아가기로 했다지.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를 읽어 보았다. 우리가 일본한테 나라를 빼앗기며 끌려다닌 나날을 놓고 책을 쓴다면, 멍울지고 아픈 이야기가 수북하리라. 그런데 이 책을 읽어 보면, 북중미 텃사람은 멍울이나 아픔을 다르게 바라보면서 다르게 풀어낸다. 왜 들숲을 품고 사랑하며 살아야 하는가 하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흙과 나무와 하늘을…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게 삶으로 042 내가 꼽는 책 《담론》 신영복 돌베개 2015.4.20. 2019년 2월 어느 날을 떠올린다. 일곱 사람이 책모임을 하자며 처음으로 찻집에서 만났다. 어느 분이 나한테 《담론》을 읽어 봤냐고 물었다. 안 읽었다고 얘기하는데 “그 책도 모르느냐”는 듯이 자꾸 말을 해서 참 부끄러웠다. 나는 여태까지 뭘 하며 살았나. 그런데 모인 일곱 사람 가운데 한 분이 전라도라면 아주 싫어했다. 우리 일곱 가운데 전라도사람이 있었다. 모처럼 다들 큰마음을 먹고 책모임을 하기로 했지만, 그만 첫모임이 끝모임이 되고 말았다. 그 뒤 그 책모임을 잊었는데, 어느 날 책집에 갔더니 《담론》이 보였다. 이 책을 어떻게 모르느냐고 타박하던 목소리가 떠올랐다. 책을 집어 보았다. 《담론》은 신영복 님이 들려준 말을 받아적어서 꾸렸다고 한다. 크게 두 갈래로 이야기를 묶는데, 앞쪽은 ‘시경’과 ‘주역’ 같은 중국 옛책에 나온 이야기를 풀어낸다. 뒤쪽은 사슬(감옥)에 갇히던 무렵에 겪은 일을 풀어낸다. 곰곰이 보면, 옛책(고전)으로 배운다고 할 적에는 다들 중국책을 손꼽는다. 중국에서 나온 책이어도 훌륭한 책은 훌륭하겠지만, 책으로 적히지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게 삶으로 041 나무한테서 배우는 《나무야 나무야》 신영복 돌베개 1996.9.12. 《나무야 나무야》를 쓴 신영복 님은 내가 태어난 해에 감옥에 들어갔다. 감옥에서 스무 해 넘게 있다가, 내가 고등학교를 마친 다음인 88올림픽이 열리던 해에 풀려났다. 신영복 님이 쓴 다른 책을 다섯 해 앞서 읽은 적 있다. 이 책 《나무야 나무야》가 나오던 해를 돌아보면, 그때 우리 집 둘째가 아홉 달이었다. 이 갓난아기를 시골집에 맡겼다. 그때까지 시골에 둔 첫째 아이를 데리고 나와서 어린이집에 맡겼다. 갓난아기를 돌볼 적에는 첫째 아이랑 떨어졌고, 첫째 아이를 데려오면서 둘째 아이를 다시 시골집에 맡기면서 맞벌이를 했다. 이러면서 주말에 시골로 가서 아이를 데리고 나왔다. 두 아이를 낳아 돌보던 즈음에는 책하고 멀었다. 아니, 책을 읽겠다는 생각조차 못 했다. 그때에는 알아볼 수도 읽을 수도 없던 책인데, 이제 첫째 아이랑 둘째 아이는 어른으로 컸다. 다들 따로 살림을 차려서 나갔다. 《나무야 나무야》에 부여 이야기가 나온다. 문득 첫째 아이 돌잔치를 하던 때가 생각난다. 그때 우리 아버지가 우리 집, 그러니까 내가 따로 살림을 낸…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게 삶으로 040 낯설게 또는 나답게 《미학 오디세이 2》 진중권 휴머니스트 1994.1.15. 《미학 오디세이 2》을 내처 읽는다. 둘쨋책은 ‘마그리트’를 바탕으로 화가와 철학가와 음악가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철학가는 ‘모든 예술에서 꼭대기는 시’라고 여긴다는 이야기가 흐른다. 그러니까 ‘마그리트’는 철학가이자 화가였다는데, 이분 그림은 ‘시’와 같다고 한다. 시처럼 읽을 만하겠다. 내 어릴 적을 돌아본다. 의성 멧마을에서 나고자라던 그무렵에 우리 엄마아빠는 겨우겨우 먹고살았다. 겨우 먹고살아도 늘 빠듯했다. 열너덧 살 무렵을 떠올린다. 중학교에 다니던 그즈음, 다른 수업보다 미술이 싫었다. 참 싫었다. 학교에 연못이 있었고, 둑을 따라 풀밭인데, 밖에 앉아서 풍경화를 그릴 적에는 먼저 연필로 밑그림을 하고 물감으로 빛깔을 입히는데, 나는 물감질이 서툴었다. 빛깔을 어떻게 내야 하는지도 잘 알기 어려웠다. 붓질이 서툴어 그림을 가까이하지 않았을까. 스스로 그림을 못 그린다고 여겨 다른 사람 그림도 그리 들여다보지 않았을까. 그림을 못 그리고 모르니까 미학도 미술도 어려울는지 모른다. 《미학 오디세이》는 어렵다. 첫쨋책도 둘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게 삶으로 039 배우고 싶다 《미학 오디세이 1》 진중권 휴머니스트 1994.1.15. 남들이 쓰는 시를 나도 쓸 수 있을까 싶어, 그러니까 시를 좀 잘 써보려는 마음에 《미학 오디세이 1》를 샀다. 여태껏, 가까이 있는 미술에 눈을 돌리지 않았다. 미술을 몰라도 그냥 내 나름대로 느끼면 시나 글로 풀어내고 싶었다. 《미학 오디세이 1》를 펴니, ‘에셔’ 그림을 바탕으로 풀어낸다. 꿈과 삶 사이에서 꿈을 넘어 되살아나는 빛이 어떻게 아름다운지 풀어간다. 조각조각 모이는 사람이 조각보처럼 펼치는 이야기마냥 먼 옛날 그림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리스 하느님을 짚고, 그리스 철학이나 조각가나 화가나 건축가 이야기를 마치 천을 짜듯 날줄과 씨줄처럼 잇고 여미어 낸다. 여러 길을 넘나드는 이야기를 읽다가 샛길로 빠져 본다. 문득 지난 어느 일을 떠올린다. 우리 집 첫째 아이나 둘째 아이가 학교를 다니던 지난날, 해마다 학년이 바뀔 적에 ‘가정조사’ 같은 종이에 ‘엄마 학력’을 적어야 할 때면, 참 부끄러웠다. ‘엄마 학력’이라는 이름 앞에서 얼마나 조그마했는지, 얼마나 쪼그라들었는지 모른다. 나는 뒤늦게 ‘졸업장’을 따려고 늦깎이로…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게 삶으로 038 나도 소설을 쓸까 《편의점 인간》 무라타 사야카 김석희 옮김 살림 2016.11.1. 《편의점 인간》을 세 해 앞서 장만했다. 그때에는 살짝 훑고, 이제 비로소 제대로 읽었다. 옮긴이 이름을 보고서 이 책을 샀다. 편의점에 드나드는 손님을 다루고, 편의점에서 들리는 여러 소리를 다룬다. 편의점 일꾼으로 지내다가 이곳을 그만두고서는 편의점이 들려주는 말을 듣는 이야기도 다룬다. 《편의점 인간》을 쓴 사람은 곁일(알바)을 했을까? 곁일을 했다면 얼마나 해보았을까? 나는 대구에서 마을가게(마트)를 꾸린다. 혼자서 꾸리기는 벅차기에 일꾼(알바생)을 두는데, 처음 마을가게를 이어받아서 꾸릴 적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하나도 몰라서 힘들었고 몸살이 잦았다. 일꾼한테 일삯을 얼마나 치러 주어야 하는지도 잘 모르는 채 덤터기도 많이 썼다. 마을가게를 꾸리면서 일꾼을 쓸 적에 곰곰이 보니, 적잖은 아가씨들은 담배를 피우더라. 남자뿐 아니라 여자도 담배를 피울 수 있을 테지만, 나는 마을가게 일을 하기 앞서까지, 담배 피우는 아가씨를 본 적이 없었다. 깜짝 놀랐다. 가게에서 일하다가 담배를 피워도 되나? 가게일꾼이 담배를 피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게 삶으로 037 자랑하지 않는 글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숲노래 기획 최종규 글 철수와 영희 2017.10.30. 어릴 적부터 하루글(일기)을 즐겁게 썼다. 아무리 바빠도 쓰자고 여겼지만, 대구로 삶터를 옮기고서 다섯 해 동안 쓰지 못 했다. 새로 맡아서 하는 일이 무척 힘들었다. 그러나 내 하루를 글로 쓰고 싶다는 꿈을 키우면서 다시 하루글을 써 보는데, 어쩐지 어긋나거나 엉성해 보인다. 그냥 하루를 쓰면 될 뿐인데, 어떻게 써야 할는지 까마득했다. 아이가 글을 배우듯이 처음부터 하기로 마음먹었다. 사전을 먼저 집었다. 아들이 쓰는 국어사전부터 펼쳤다. 《보리 국어사전》도 읽었다. 이러다가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을 만났다. 이밖에도 《문화상징사전》에 《새문화사전》에 《문학으로 읽는 문화상징사전》에 《베르나르 베르나르 상상력사전》에 《글쓰기 표현사전》에 《문장사전》에 《꿈꾸는 사물들》에 《지식 백과사전》에 《말모이, 다시 쓰는 우리말 사전》에 《우리말의 상상력》에 《동심언어사전》에 수수께끼나 고사성어나 형용사를 다룬 여러 사전을 챙겨 읽어 보았다. 《우리말의 상상력》은 재미있지만, 내가 글을 쓰는 길에는…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게 삶으로 036 나무심기 《나비 문명》 마사키 다카시 김경옥 옮김 책세상 2010.10.12. 두 해 앞서 대구 ‘김광석거리’ 가까이에 있는 〈직립보행〉이라는 마을책집에 간 적이 있다. 그날 마침 아는 분하고 함께 갔다. 나랑 함께 책집에 들른 분은, 나를 보면서 내가 엉뚱한 책 앞에서 헤맨다고 얘기하면서 《나비 문명》이라는 책을 뽑아서 건네었다. 다른 엉뚱한 책은 안 봐도 좋으니 이 책부터 읽어 보라고 하더라. 두 해 앞서 장만한 《나비 문명》이지만, 두 해 동안 펼칠 겨를이 없었다. 집안일도 바빴고, 가게일도 바빴고, 이래저래 온통 바쁨투성이였다. 두 해 앞서 장만한 책이니까, 두 해 만에 읽는 셈이다. 어쩐지 미안한 일이지만, 책을 다 읽고 나니 오늘에서야 읽어야 한 뜻도 있겠구나 싶다. 바쁠 적에는 아무리 아름답거나 마음을 살찌우는 이야기라도 못 받아들일 수 있을 테니까. 《나비 문명》을 쓴 분은 일본사람이다. 이분은 우리나라 강화도에서 임진강까지 걸었단다. 놀랍다. 한국사람도 아닌 일본사람이 우리나라를 가로지르듯 걷다니. 이분은 천천히 이 땅을 걸어다니면서, 일제강점기를 비롯해서 일본 오키나와에서 강제징용으로 시달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게 삶으로 035 우리도 크면 《우리도 크면 농부가 되겠지》 이오덕 엮음 양철북 2018.2.2. 《우리도 크면 농부가 되겠지》를 읽었다. 이 책에는 내가 태어날 무렵에 삼학년에서 육학년 어린이가 쓴 글이 나온다. 나보다 열 살 또는 열세 살 위인 어린이였던 셈인데, 이제는 예순을 지나 일흔을 넘어가는 사람들인 셈이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된 분들이 남긴 글을 읽자니, 내가 어릴 때 한 일이 낱낱이 보인다. 이 책을 엮은 이오덕 님은 ‘훌륭한 글을 쓰는 공부에 참고 하라고 하고 훌륭한 글이란 정직하게 쓴 글, 사람답게 느끼고 생각하고 행한 것을 쓴 글’이라고 이야기한다. ‘잘 먹고 잘 입고 잘 노는 얘기보다 일하고 괴로워한 글이 재밌고 감동을 주게 된다’고도 이야기한다. 이 책에 나오는 아이들은 온통 풀꽃나무와 새와 벌레와 물고기와 올챙이와 콩싹과 함께한다. 어버이와 놀러 간 일은 소풍 때 살짝 나온다. 이 책이 처음 나오고서 서른 해가 지난 즈음에는 우리 아이들이 태어났고, 이때만 해도 아이들은 숲에서 제법 멀었다. 어느새 책이 처음 나온 지 예순 해가 훌쩍 지난 오늘날인데, 그야말로 오늘날 아이들은 삶이 아닌 책으로만 풀꽃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푸른책 읽기 46 《파우스트의 선택》 박병상 녹색평론사 2000.10.23. 《파우스트의 선택》(박병상, 녹색평론사, 2000)을 오랜만에 되읽습니다. 박병상 님은 마흔을 조금 넘은 무렵 이 책을 써냈고, 어느덧 예순을 훅 넘어가는 하루를 보냅니다. 서울 곁 인천에서 나고자라면서 ‘푸른숲이 짓밟힌 큰고장’이 어떻게 망가지는지를 지켜보기도 했고, ‘푸른숲이 짓밟힌 큰고장에서 나고자라는 어린이’가 어떻게 푸른넋이 없이 설치는가를 보기도 했을 테지만, ‘푸른숲이 짓밟힌 큰고장에서 나고자랐기에 오히려 푸른빛을 찾아내고픈 어린이’를 보기도 했을 테지요. 스무 해 남짓 가로지르는 푸른책(환경책)을 읽으면서 곰곰이 생각합니다. 우리 스스로 ‘푸른눈’을 되찾기도 해야 하고, 푸른물결(환경운동)에 몸바치는 사람도 ‘푸른몸’을 되찾을 노릇입니다. 요사이는 ‘푸른척(그린워싱)’을 나무라는 목소리를 이따금 들을 수 있습니다만, 적잖은 푸른물결(환경운동)도 안타깝게 ‘푸른척’이었습니다. 잘 봐야 합니다. 비닐을 안 쓰고 수저를 챙기던 사람은 2023년뿐 아니라 2000년에도 1990년에도 챙기고 살림을 했습니다. 쇳덩이(자동차)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