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책숲마실’은 나라 곳곳에서 알뜰살뜰 책살림을 가꾸는 마을책집(동네책방·독립서점)을 다녀온 이야기입니다. 여러 고장 여러 마을책집을 알리는(소개하는) 뜻도 있으나, 이보다는 우리가 저마다 틈을 내어 사뿐히 마을을 함께 돌아보면서 책도 나란히 손에 쥐면 한결 좋으리라 생각하면서 단출하게 꾸리려고 합니다. 마을책집 이름을 누리판(포털) 찾기칸에 넣으면 ‘찾아가는 길’을 알 수 있습니다. 숲노래 책숲마실 - 전주 〈잘 익은 언어들〉 : 아줌마 아저씨 어릴 적부터 둘레 어른을 볼 적에 으레 ‘아줌마·아저씨’란 말을 썼습니다. 이 이름을 스스럼없이 받아들이는 이웃이 많은 마을에서 살다 보니, 나중에 조금씩 나이가 들어 만나는 적잖은 어른들이 ‘아줌마·아저씨’란 이름을 못마땅하게 보거나 꺼리는 모습에 깜짝 놀랐어요. 제 또래 가운데 스스로 ‘아줌마·아저씨’란 이름을 받아들이는 이도 몇 안 되었습니다. “아저씨가 아니면 뭐니?” “아저씨라고 하면 너무 늙었잖아.” “‘아저씨’란 이름은 늙은 사람한테 안 써. 늙었으면 ‘늙은이’야.” “됐어. 너랑 말이 안 되네.” 저는 아저씨입니다. 스물 몇 살일 적에 어느 어린이가 저를 빤히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말 좀 생각합시다’는 우리를 둘러싼 숱한 말을 가만히 보면서 어떻게 마음을 더 쓰면 한결 즐거우면서 쉽고 아름답고 재미나고 사랑스레 말빛을 살리거나 가꿀 만한가 하는 이야기를 다루려고 합니다. 말 좀 생각합시다 19 엄마말 아빠말 오늘날은 엄마말하고 아빠말 사이가 차츰 무너집니다. 한결 나아진 길로 가는 모습이지 싶습니다. 한동안 엄마말은 집안에만 머물며 아이를 돌보고 집살림까지 도맡으면서 쓰는 말이었고, 아빠말은 집밖에서 나돌며 바깥살이(사회)에 길든 말이었습니다. 엄마말은 집이라고 하는 보금자리를 살뜰히 돌보는 말이기에 언제나 수수하고 쉬우며 포근한데다가 부드러운 말이라면, 아빠말은 서로 다투고 치고받는 말이거나 총칼나라(일제강점기·군사독재)에 억눌리거나 짓밟힌 말이거나 다툼판(정치권력)에서 내리누르는 말이었다고 할 만합니다. 발자국을 더 거슬러 보면, 제법 예전에는 엄마말하고 아빠말이 모두 집에서 일하며 쓰던 말입니다. 엄마말은 아기한테 젖을 물리면서 살내음이 물씬 풍기는 말이었고, 아빠말은 아이한테 집짓기를 보여주고 소몰이를 가르치며 쟁기질이나 나무질을 알려주는 숲내음이 잔뜩 묻어난 말이었지 싶어요. 제법 예전에는 거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곁말’은 곁에 두면서 마음과 생각을 살찌우도록 징검다리가 되는 말입니다. 낱말책에는 아직 없습니다. 글을 쓰는 숲노래가 지은 낱말입니다. 곁에 어떤 낱말을 놓으면서 마음이며 생각을 빛낼 적에 즐거울까 하고 생각하면서 ‘곁말’ 이야기를 단출히 적어 봅니다. 숲노래 곁노래 곁말 2 늘꽃 구경하면 재미없습니다. 엉성하더라도 스스로 할 적에 재미있습니다. 높일 까닭도 낮출 까닭도 없습니다. 수수하게 있는 오늘이 그대로 아름답기에 서로 동무요 이웃으로 지내고, 이웃이나 동무이니 굳이 거룩하거나 이쁘장해야 하지 않아요. 아이는 아이대로 놀고, 어른은 어른대로 일합니다. 바깥일을 하느라 아침에 열한 살 작은아이하고 헤어지고서 저녁에 다시 만나는데, 아이가 “아버지 보고 싶었어요.” 하면서 저를 폭 안습니다. 아이 등을 토닥토닥하면서 “우리는 늘 언제 어디에서나 마음으로 함께 있어.” 하고 들려줍니다. 우리는 늘 서로 그립니다. 우리는 늘 서로 생각하며 마음에 담습니다. 우리는 늘 서로 꽃이며 나무이자 숲입니다. 늘꽃이자 늘나무요 늘숲으로 어우러지면서 저마다 즐겁게 놀거나 일합니다. 글은 어떻게 쓰고 그림은 어떻게 그리며 사진은 어떻
[ 배달겨레소리 바람 바람 글님 ] [아들, 딸에게 들려 주는 좋은 말씀]39-네가 생각할 수 있는... 사랑하는 아들, 딸에게 오늘 들려 줄 좋은 말씀은 "네가 생각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또렷하게 스스로를 나타내려고 하지 마라."야. 이 말씀은 덴마크의 뛰어난 물리깨침이(학자)로 널리 알려진 닐스 보어 님이 남기신 말씀인데 '나를 있는 그대로 보여 주라'는 말씀이라고 생각해. 다른 사람들과 만나 이야기를 할 때는 나를 있는 그대로 나타내어야 한다는 것을 힘주어 하신 말씀이야. 조금이라고 부풀려 말하거나 더 똑똑해 보이려고 꾸며서 말하지 말라는 말씀이지 싶어. 우리가 사람을 만나 마주 이야기를 하다보면 말을 참 잘하는 사람이 더러 있어. 쉬지 않고 물이 흐르듯이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이야기를 잘하는 사람이라고 여기지만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이야기를 잘하는 사람을 넘어 엄청 똑똑한 사람으로 여기곤 하지. 그런데 말을 잘하는 사람 가운데에는 잘 알지 못한 것도 마치 잘 아는 것처럼 부풀려 말하는 사람도 있어. 게다가 말을 많이 하는 사람 가운데에는 엉터리를 마치 참일(사실)인 것처럼 꾸며서 말하는 사람도 있지. 이야기를 하면서 그런 사람인지 아닌지를…
[ 배달겨레소리 바람 바람 글님 ] [토박이말 살리기]서리와 아랑곳한 토박이말 지난 글에서 ‘서릿가을’, ‘무서리’, ‘ 된서리’와 같은 ‘서리’와 아랑곳한 토박이말을 알려 드렸더니 ‘서리’를 나타내는 말이 더 있을 것 같은데 알고 싶다는 분이 계셨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서리’와 아랑곳한 토박이말을 알려드리겠습니다. 먼저 ‘첫서리’입니다. ‘그해 가을에 처음 내리는 서리’를 가리키는 말이죠. 올해는 여름에서 바로 겨울로 건너뛰듯이 철이 바뀌는 바람에 첫서리가 일찍 온 곳이 많습니다. 서울에는 지난달 열여드레(10월 18일)에 내렸다는 기별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날씨가 갈수록 따뜻해지는 바람에 제주도에는 서리가 내린다는 서릿날(상강)인 10월 23일이 지났는데도 아직 내리지 않았다고 하더라구요. ‘첫서리’와 맞서는 말로 ‘끝서리’가 있습니다. ‘그해 겨울에 마지막으로 내린 서리’를 가리키는 말인데 처음과 끝이라는 짝이 딱 맞는 말입니다. 서리가 내리는 때는 해마다 거의 비슷합니다. 그걸 ‘제철’이라고 하는데 제철보다 일찍 내리는 서리는 ‘올서리’라고 합니다. 앞서 ‘올되다’는 말과 함께 ‘올-’이 들어간 말들로 올벼, 올배, 올사과, 올밤과 같은 말을 했었기
[ 배달겨레소리 바람 바람 글님 ] [토박이말 살리기]1-88 말눈치 오늘 알려 드릴 토박이말은 '말눈치'입니다. 이 말을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말하는 가운데에 은근히 드러나는 어떤 태도'라고 풀이를 하고 다음과 같은 보기를 들었습니다. 말눈치를 짐작하다 그들이 주고받는 말눈치로 보아서는 아무래도 일이 쉽게 끝날 것 같지 않다. 인숙이는 주춤하고 모로 서며 아주 집을 나간다는 말눈치를 보였다.(염상섭, 인플루엔자) 고려대한국어대사전에는 '말하는 가운데 살며시 드러나는 눈치'라고 풀이를 하고 다음과 같은 보기를 들었습니다. 정기는 친구의 말눈치를 알아챘으나 짐짓 모른 척 하였다. 부친은 아들을 실업 학교로 보내고 싶은 말눈치였으나 아들은 완강하게 이를 거부했다. 두 가지 풀이를 견주어 보니 고려대한국어대사전 풀이가 더 쉬워서 누구나 바로 알아차릴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말눈치'가 '말+눈치'의 짜임이고 '눈치'라는 말이 '속으로 생각하는 바가 겉으로 드러나는 그 무엇'을 가리키는 말이니까 대놓고 그렇게 말하지는 않았지만 말에서 슬쩍 느껴지는 그 무엇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빠른 사람은 말눈치를 주면 바로 알아차리지만 느린 사람은 되풀이해
[ 배달겨레소리 바람 바람 글님 ] [토박이말 살리기]1-87 막서다 오늘 알려 드릴 토박이말은 '막서다'입니다. 이 말을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두 가지 뜻으로 풀이를 하고 있습니다. 첫째, '싸울 듯이 마구 대들다'라는 뜻이 있다고 하며 "애가 겁 없이 경찰에게 막서네."를 보기로 들었습니다. 둘째, '어른 아이를 가리지 아니하고 대들다'는 뜻이 있다고 하며 "이 녀석아, 버릇없이 어른에게 막서면 안 돼."를 보기로 들었습니다. 고려대 한국어대사전에에서는 '(사람이) 어려워하는 기색도 없이 가리지 않고 함부로 대들다'라고 풀이를 하고 있는데 보기월은 없었습니다. 두 곳의 풀이를 견주어 보니 굳이 두 가지 뜻으로 갈라 풀이를 하지 않아도 되지 싶었습니다. 왜냐하면 싸우려고 마구 대드는 사람을 보고 물, 불 안 가린다고 하는데 그런 사람은 아이, 어른도 가리지 않기 쉽습니다. 그러니까 나이 같은 것을 따져 어려워하지도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다듬어 보았습니다. 막서다: (사람이) 아이, 어른 가리지 않고 싸울 듯이 마구 대들다. 제대로 된 집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배곳(학교)에서도 이렇게 막서면 안 된다고 가르치고 배우곤 합니다. 그러니까 가끔…
[ 배달겨레소리 바람 바람 글님 ] [노래에서 길을 찾다]21-바람이 되어 오늘 들려 드릴 노래는 '바람이 되어'입니다. 이 노래는 4351해(2018년)에 나왔는데 '미스터 션샤인'이라는 극의 벼름소노래(주제곡) 가운데 하나입니다. 아테나, 이엔에이(eNa) 두 사람이 함께 노랫말을 쓰고 가락을 붙였으며 하현상 님이 노래를 불렀습니다. 사랑하는 사람 곁에 바람이 되어서라도 머물고 싶은 마음이 잘 나타나 있으며 하현상 님의 고운 목소리가 더해져서 더 큰 울림을 주는 노래입니다. 노랫말도 모두 토박이말로 되어 있어서 더 반갑고 고마웠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닮은 꽃잎이 바람에 날려 흩어질까 걱정스런 마음으로 비롯해 꿈에라도 보면 좋겠으며 바람이 되어 사랑하는 사람의 눈물을 안을 것이며 바람이 되어 그 사람 곁에 머물겠다고 하는 마음이 잘 나타납니다. 안개처럼 두 눈에 어린 눈물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이 아른거린다는 노랫말이 참 슬프게 느껴집니다. 그리고 바람 끝에 맺힌 내 마음이 느껴지지 않는지, 사랑하는 사람에게 닿지 못해 길을 헤매고 있는 바보 같은 내가 보이지 않는지 묻는 것은 더 안타깝게 느껴졌습니다. 바람이 되어서라도 꼭 사랑하는 사람 곁에 머물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81] 매미 서울 매미는 똑같은 소리를 한꺼번에 터트리고 기운을 쓴다. 누구 소리가 높은가 내기하며 우는 듯하다. 노래라기보다 시끄러운 소리로 들린다. 깊은숲 매미는 서로 다르게 고운 소리로 끊어지고 이어지고 쉬었다가 한결 세게 힘을 싣는다. 어릴 적에 듣던 소리이다. 마을에 큰나무는 거의 없지만 멧골 감나무에서 매미 울음이 들려온다. 뒤 안에 심은 감나무에 붙은 매미를 잡으려고 손가락을 모았다. 그러나 잡으려고 하면 날아갔다. 마당에 떨어졌다가 휙 날아가는 매미를 보기도 하고 죽어서 뒤집힌 매미만 보기도 했다. 아버지는 들일 하고 샛밥을 잡수러 올 적에 매미를 한 마리씩 잡아서 나를 주었다. 아버지는 동생하고 갖고 놀게 날개를 뜯어서 주었다. 어떤 날은 날개가 있어도 날아가지 못하는 매미가 있고 울지 못하는 매미도 있다. 아버지가 준 매미는 아이처럼 짧게 울었다. 나무에서 태어나 어두운 흙에서 몇 벌 허물을 벗으며 살던 애벌레가 다시 나무로 올라와 등을 가르고 날아가는 줄은 몰랐다. 어린 날에는 매미가 벗은 껍데기를 본 적이 없었다. 여름 한철 살아도 모습을 세판 바꾸고 땅에서 나무로 하늘로 넓은 자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80] 밤 한가위에 마을 동무와 금성산에 올랐다. 풀을 헤치고 길도 아닌 비탈진 자갈을 밟고 오른다. 발이 미끄러지지 않게 돌을 밟다가 돌이 굴러떨어져도 올랐다. 더 올라갔다가 내려올 적에는 썰매를 탈지 모른다는 생각에 무서웠다. 길이 가팔라 중턱에서 멈추었다. 끝내 끝까지 오르지 못했지만 내려오는 길에 밤을 서리했다. 밤나무 곁에 떨어진 밤을 까니 굵었다. 나무를 흔들어 밤송이를 떨어트렸다. 쩍 벌어진 송이를 두 발로 밟아 작대기로 벌려서 알을 꺼냈다. 빈손으로 왔다가 주머니 가득 넣거나 품에 넣었다. 떨어진 밤만 주웠더라면 떨리지 않았을 텐데, 나무에 달린 밤을 흔들어서 따고 보니 덜컥 무서웠다. 작은오빠 동무들이 아랫마을 길가에 있는 능금밭에 들어가 재미라며 능금을 따서 먹다가 밭임자한테 잡히자 경주로 집을 나가버렸다. 어머니가 능금값을 물어준 일이 있었다. 남이 심어 놓은 밤을 몰래 따서 밭임자가 알면 얼마나 속쓰리까.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모두가 한마음으로 한 일이었다. 집까지 오는데 가슴이 콩닥거렸다. 밤은 가시를 감싸서 누구도 오지 못하게 하려고 했지만, 우리가 가로챘다. 밭임자는 멧짐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