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삶 70] 말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70] 말 말을 보다가 ‘아, 칼 안 쓰는 날을 여쭈려고 했는데 깜빡했네.’ 하고 생각한다. 두 손을 모아 깍지를 끼며 손가락으로 손등을 힘껏 누르며 혼잣말을 한다. 의성 엄마가 파릇파릇한 말을 깨끗이 씻어서 썬다. 무를 먼저 썰어 살짝 바알갛게 물들 만큼만 고춧가루를 넣고 버무리다가 말하고 섞는다. 엄마가 손으로 섞는데 침을 꼴딱 삼켰다. 손으로 한 입 집어 먹었다. 어린 날 먹던 맛이 난다. 말은 된…
- 숲하루 글쓴이
- 2023-02-15 17:22
[작은삶 69] 잘 걷지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69] 잘 걷지 “엄마, 금요일 언제쯤 오나?” “10시쯤 나설게. 일찍으면 너 집 치울게.” “여수 가면 좀 걷는데 잘 걷제?” “그래 내 잘 걷는다. 그런데 일요일이 보름인데 마을잔치를 열면 못 가지 싶다.” “아, 보름이가?” “둘이가 밥 당번인데 나도 나이가 들어가, 오십만 원 받아 밥 당번 맡는데, 내가 가면 혼자 한다고 말 나잖아. 일요일에는 교회 나가는 사람들이 있어 어쩔지, 알아보고 말할게…
- 숲하루 글쓴이
- 2023-02-15 17:22
[작은삶 68] 견디기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68] 견디기 시골밭에서 흙을 담아 왔다. 동백에 조금 뿌리고 조그마한 텃밭에 살살 뿌렸다. 꽃이나 잎이 떨어지면 잘게 뜯어서 흙에 묻었다. 잎이 작고 여려서 이내 흙으로 돌아갔다. 작은 동백나무가 우리 집에 올 적에는 흙에도 나무에도 잎에도 이끼가 끼었다. 비닐집에서 살 적에는 촉촉해 보였는데, 우리 집에 오니 흙이 빨리 마른다. 물을 주어도 하룻밤 자고 나면 흙이 마른다. 손가락으로 살살 파 보고 긁…
- 숲하루 글쓴이
- 2023-02-15 17:22
[작은삶 65] 동백 들이다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65] 동백 들이다 먼저 일 나가는 곁님이 문을 열고 들어온다. “하회에 언제 갈려노. 의성도 들르고 오자.” “아, 난 주말에는 바람 쐬고 싶은데.” “참, 동백을 찾아보니 네 군데 있더라. 니 말대로 부산에 동백섬도 있대. 주말에 통영 장사도에 갈래?” 며칠 흐름이 깨지니 몸이 쑤신다. 머리도 한몫 거든다. 깡통이 머리에 든 듯하다. 설날에 읽으려고 꺼낸 책을 펼치니 안 읽힌다. 설날이면 보던 우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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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2-09 07:43
[작은삶 64] 헌책으로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64] 헌책으로 누리책집에서 내 시집을 뒤져 보았다. 새책 곁에 헌책이 나란히 뜬다. “이건 뭐지? 아, 벌써 헌책으로 나왔네! 이 일을 어째! 아직 시집을 낸 지 한 해조차 안 지났는데?” 갑자기 낯이 뜨겁다. 물을 한 모금 마신다. 숨을 돌리고서 생각한다. 아니, 나도 헌책을 곧잘 사는데, 왜 내가 내 시집이 헌책으로 나왔다고 해서 낯이 뜨거워야 할까? 내가 쓴 시집이 헌책으로 나왔다면, 누가 틀림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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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2-09 07:40
[작은삶 67] 액시야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67] 액시야 아침에 늦잠을 잤다. 시계를 보다가 쪽글을 본다. 눈도 떨어지지 않는다. “액시야 힘내라.” “그래. 고마워. 오늘 늦잠 잤네. 그제 제사 지내고 어제 몸살 했더니, 눈 뜨니 8시다. 아, 늦었뿟다.” “약 먹어라, 그냥 있지 말고. 우리 어제 영덕에 바다낚시 하러 왔다. 1박2일 하고 식당에 밥먹으러 왔다.” “우와 좋으네. 재밌게 놀고 맛난 거 먹고 겨울바다 잔뜩 보고 와.” “그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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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2-09 07:39
[작은삶 66] 서울 가는 길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66] 서울 가는 길 2022년 12월 첫머리에 《풀꽃나무하고 놀던 나날》을 내고서 처음으로 서울에 간다. 책수다를 열기로 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며칠 끙끙했다. 몸은 나보다 더 떨었는지 밥숟가락도 잘 들지 못했다. 더군다나 몸살이 나서 나들이에 마음을 쓰지 못했다. 머리가 다 풀어진 줄도 모르고 이틀 앞두고 머리손질을 했다. 딸한테 어떤 옷을 입고 갈까 묻느라 지쳤다. 얌전한 차림새를 하려고 하…
- 숲하루 글쓴이
- 2023-02-09 07:39
[작은삶 63] 따스하다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63] 따스하다 문 앞에서 작은딸을 보내고 들어오는데 신발 벗던 아들이 ‘따뜻하네’ 하고 폴짝 뛰면서 방으로 간다. 작은딸이 짝을 맺고 첫 설을 우리 집에서 쇠고 갔다. 하룻밤 자고 갔지만 남겨놓은 따뜻함은 크다. 우리는 둘이 있다가 애들이 오면 잠자리가 뒤죽박죽이다. 나야 책마루(서재)가 있어서 누가 오든 안 오든 아무렇지 않다만, 곁님이 늘 비켜준다. 작은딸이 짝을 맺은 한 달이 조금 넘는데 새사람을…
- 숲하루 글쓴이
- 2023-01-30 19:46
[작은삶 62] 칼 안 쓰는 날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62] 칼 안 쓰는 날 “야야, 칼 쓸 일 있으면 오늘 다 장만하거라.” “왜요, 아버님?” “칼 안 쓰는 날이다.” “사과하고 배는 어떻게 해요?” “그건 작은 칼로 도려내고, 큰 칼은 쓰지 마래이.” 달걀을 노른자 흰자를 따로 부쳐서 채썰었다. 무와 고기도 미리 손질해서 그릇에 담았으니 두부만 숟가락으로 으깬다. 다진고기에 참기름을 부어 볶다가 두부를 넣고 으깬다. 김 두 장을 비벼서 가루로 뿌렸다.…
- 숲하루 글쓴이
- 2023-01-30 19:46
[작은삶 61] 말랑감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61] 말랑감 상주 푸른누리를 지난달에 다녀왔다. 상주 시내에서 한참 먼 멧골에 깊이 깃든 그곳은 숲집 같았다. 그날 그곳에서 얻어온 말랑감이 남았다. 빛깔이 곱고 말랑한 감을 먼저 골라 먹다 보니 까맣고 흉이 난 감만 남았다. 어찌할까 하다가 까치밥으로 삼기로 한다. 물을 큰 그릇에 옮긴 날 말랑감을 하나 놓았다. 아침에 문을 열어 빼꼼히 보니 쪼아먹은 구멍이 났다. 물을 더 붓고 감을 둘 또 놓았다.…
- 숲하루 글쓴이
- 2023-01-21 06: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