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달겨레소리 글쓴이 . 그림 보리 ]
( 우리굿 : 흩어져 가는 우리말. 잠든 얼 깨워 가락나게 살아가길. 두손모아. 보리, @bori_ink)
나날 32.
대추도 붉게 익고 제 마음도 발갛게 익어 이제 시월도 끝자락에 걸터있네요. 어느덧 배달겨레소리도 첫 걷이를 합니다.
저도 우리말 ‘비롯하다’와 함께 첫 글을 싹 틔워 봅니다. ‘시작(始作)하다’는 처음‘시’와 지을‘작’을 붙인 한글한자말인데, 우리말로 하면 ‘비롯하다’ ‘싹 틔우다’, ‘움트다’가 됩니다. 싹 틔우고 움트는 말 속에 우리 겨레가 두리(자연)와 한마음으로 산 뜻이 배어 있습니다. ‘내용(內容)’이란 한자말은 우리말로 ‘알맹이’를 뜻합니다. ‘일주(一周)하다’는 ‘한바퀴돌다’라고 말합니다. 입으로 말하거나 눈으로 보아도 우리 겨레가 둥글게 살았고 돌아가는 두리의 흐름을 따라 살았음을 배웁니다.
아주 옛날, 사람들은 마음을 드러내려 그리기 비롯했고 그 그림이 굳어져 글자나 무늬가 생겨나고 가락이 만들어지고 말이 나왔습니다. 말은 눈짓, 몸짓, 마음짓에서 생겨나, 그 땅에 살던 겨레의 삶과 얼이 녹아있습니다. 홑되지만(단순하나) 뜻이 있는 것은 울림을 가집니다. 그 울림은 나를 돌아보고, 두리를 알아가는 바탕이 됩니다. 우리말은 먼저 살다 가신님이 우리에게 남겨준 슬기(지혜)가 담겨 있는 글월(편지)이 아닐까요.
동그라미(원). 누리(우주). 두리(환경). 우리. 바탕. 한바퀴(일주). 싹수(가능성). 숨(호흡). 신명(흥). 굿(극). 기리다(찬양하다). 숨받이(생명). 싹트다, 움트다, 비롯하다 (개시하다, 시작하다). 깨닫다, 알아차리다, 알다(의식하다,이해하다,인식하다) 한 해 한 해 바퀴를 돌며 나이테가 되는 것처럼 말 속에 일찍이 우리겨레들이 두리를 섬기고 살며 삶에서 깨달아 피운 꽃이 말에 깊이 배어 있습니다.
온해가림(개기일식). 온달가림(개기월식). 집함박꽃(가작약). 수수꽃다리(라일락). 엄살풀(미모사). 빛(색). 밤빛(갈색). 흰모래밭(백사장). 무늬(문양). 꼴(형상). 움직씨(동사). 숲미역(산림욕) 우리말로 하니 마음에 힘껏 다가오고 또 그 꼴(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져 웃음이 나옵니다. 사랑스럽고 앙증맞은 말들이 마음을 밝게 합니다.
잘지냈어요?(안녕하세요). 밥드세요(식사하세요). 돌볼아이(문제아). 살짝 들여오다(밀수하다). 가락나네요(능률올랐네요). 흘러 나오다(누설하다). 사는 곳, 깃든 곳(서식처, 거주지). 제빛(개성) 우리말로 하면 이렇게 마음에 부드럽게 와 닿고 뜻이 그대로 다가옵니다.
인도의 거룩한 분이자 말갈이(언어학자)였던 빠딴잘리는 “말(언어)은 만들어질 때 제 바탕 떨림(파동)을 가지는데 뜻을 알고 말하든 모르고 말하든 그 말이 가진 떨림(파동)은 다르지 않다. 더구나(특히) 옛날(고대)에 만들어진 말에는 맑은 누리 떨림 (파동)이 담겨진 말이 많다. 그 말들은 소리내는 것만으로도 힘이 있다“고 했답니다.
말이 씨가 된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제 뱉은 말은 아제(내일) 우리 삶으로 돌아옵니다. 우리 겨레도 우리말로 참 뜻을 짓고 살아가는 거룩한 삶을 그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