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달겨레소리 글쓴이 김정섭 ]
지난 일흔 해 넘게 우리말을 되살리려고 우리 나름대로 온갖 애를 다 써 왔다. ‘우리말 도로 찾기, 한글만 쓰기’, ‘국어 순화 운동’ 따위가 그것이다. 한글학회를 비롯한 여러 모임은 말할 것 없고 정부까지 나서서 이 일을 벌였지만 우리말은 제 자리를 찾지 못 한 채 오늘에 이르렀다. 말글살이에서 한문글자는 많이 줄었지만 한자말은 늘어났고 ‘우리말을 바로 쓰자’나 ‘우리말을 살리자’는 말은 다들 귓등을 넘겨 듣고 만다. 게다가 학교 교과서에는 다시 한문글자를 되살리려는 일이 한창 벌어지고 있다.
그 까닭을 간추려 보면 첫째, 우리말의 이름을 ‘국어’라 한다. 둘째, 우리말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모른다. 셋째, 한자말을 우리말이라 하고 한문글자도 우리 글자라고 한다. 넷째, 들온말이 무엇인지 모른다. 다섯째, 들온말을 가려내는 법을 만들지 않았고 들온말을 가려낼 생각도 하지 않았다. 여섯째, 먹물 든 사람들과 나랏일을 맡아하는 벼슬아치나 구실아치들이 옛날 중국 종살이 버릇에 찌들었을 뿐만 아니라 눈치나 보면서 비렁뱅이 노릇을 하던 못난 버릇에서 벗어나지 못 한 것이 그것이다.
‘국어’는 ‘나라말’을 일컫는 한자말이다. ‘중국 국어, 일본 국어, 한국 국어’처럼 ‘어느 나라말’이라 할 때 쓰는 말이다. 중국에서는 중국말을, 일본에서는 일본말을 ‘국어’라 한다. 이때는 ‘우리말’이나 ‘우리나라 말’이란 뜻이지 제 나라 말의 이름으로 쓰는 게 아니다. ‘국어’는 어느 나라 말의 이름으로 쓸 수 있는 말이 아니다. 우리는 일찍이 우리말을 ‘국어’라 부른 적이 없다. 왜놈들이 우리 겨레 얼을 없애려는 못된 짓거리(수작으)로 우리 겨레말을 ‘조선어’라 하고 왜말을 ‘국어’라 한데서 비롯한 이름이다. 나라를 되찾은 뒤 얼떨결에 우리말에 ‘국어’라는 이름을 비럭질하여 붙인 것이 두고두고 말썽이다.
그 뒤 여러 차례 바로잡을 수도 있었건만 왜놈 종살이버릇이 몸에 밴 ‘든 사람들’이 나랏일을 도맡아 하면서 잘못을 바로잡기는커녕 오히려 비뚤어진 길로 이끌어온 뒤끝이고, 크고 힘센 나라 것은 아무 거나 우러러보고 덮어놓고 받아들이는 비렁뱅이버릇으로 비럭질해 온 옰이라 하겠다. 자랑스러운 이름 ‘배달말’을 떳떳하게 내세우지 못 하고 우리 겨레 숨통을 옭아매던 ‘국어’를 우리말의 이름으로 삼았으니 우리말이 아직도 한자말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 했고 앞날마저 보이지 않게 된 것이다.
우리말은 ‘배달 겨레말과 한자말과 들온말(서양말) 세 가지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몇몇 국어 학자나 국어 교과서에서도 그렇게 가르친다. 국어사전을 보면 올림말에서 배달말은 한글로, 한자말과 서양말에는 도림(묶음표) 속에 한문글자나, 꼬부랑글자를 덧붙여 놓았다. 이러니 한자말도 우리말이라 하고, 일흔 해 넘게 글자싸움에서 벗어나지 못 한다. 배달 겨레말은 예부터 우리 배달겨레가 만들어 써 오는 말(토박이말)이고 들온말은 우리 말밭에 여러 다른 겨레말이 들어와 우리말로 자리를 잡은 말이다.
어느 겨레말이든 이웃끼리 오가며 섞사귀고 여러 가지 생각이나 연모를 주고받으면서 서로 다른 겨레말이 섞이게 마련이다. 우리말에도 예부터 오늘까지 다른 겨레말이 들어와 우리 겨레말과 섞여 있다. 배달겨레말 바탕에 알타이 말, 산스크리트 말, 인디아 말, 길랴크 말, 퉁구스 말을 비롯하여 중국 말, 몽골 말, 만주 말, 왜말과 여러 가지 서양말 또 한자말 따위 예순 가지가 넘는 서로 다른 나라말이 들어와 우리말로서 구실을 한다. 곧, 우리말은 배달 겨레말과 들온말 두 갈래를 아우른 말이다.
들온말은 배달겨레말과 더불어 우리말로서 구실을 하는 다른 나라말을 가리킨다. ‘가마니, 가방, 건달, 길마, 고무, 껌, 나귀, 노새, 달구지, 담배, 메주, 무명, 보라매, 부처, 붓, 빵, 사둔, 상추, 선지, 설렁탕, 염소, 올가미, 지단, 호미’ 따위가 그 보기다. 이런 말은 뭇입이 주고받으면서 갈리고 닦여서 오롯이(온전히) 우리말로 탈바꿈한 것이다. 곧, 들온말이란 겨레말과 함께 우리말을 이루는 두 갈래 가운데 하나다. 들온말은 어느 나라말에서 들어왔건 반드시 한글로만 적어야 한다. 우리말이기 때문이다.
옛날에는 들온말이 되려면 오랜 동안(시간) 뭇입을 거치면서 우리말 말밭에 차근차근 뿌리를 내렸지만 요즘은 온갖 나라 사람들이 오가고 갈일굼(과학 문명)이 만들어낸 갖가지 것(물건)과 얼 삶꽃이(정신문화가) 빚어낸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갈말(학술어), 솜씨말(기술용어)과 나날말(생활용어) 따위가 한꺼번에 어지럽게 들어온다. 이렇게 들어온 다른 나라말은 우리말과 자리싸움을 하는데 이긴 쪽은 살고 진 쪽은 죽는다. 말은 겨레 얼이요, 목숨이요, 삶꽃(문화)이다. 우리말 하나가 죽으면 우리 얼, 우리 삶꽃 한 조각이 사라지는 것과 같다.
그래서 나라마다 제 나라말을 지키기에 온 힘을 기울인다. 그렇다고 다른 나라말을 덮어놓고 못 들어오게 막을 수도 없지만 막아서도 안 된다. 쓸모가 없는 말은 막아야 하지만, 쓸데가 있는 말은 들온말로 받아들여야 한다. 들온말은 많이 받아들일수록 좋다. 우리말을 살찌워서 생각을 더 넓고 깊게 할 뿐만 아니라 우리 학문과 예술, 기술 따위 문화를 높이고 우리 삶을 기름지게 하는 데 크게 이바지하기 때문이다. 다만, 쓸모없는 말과 쓸데 있는 말을 슬기롭게 가려내는 것이 어렵고 힘든 일이다.
말이란 보고 듣고 느낀 것과 어떤 뜻이나 생각을 누구든 귀로 듣고 알아 체릴 수 있도록 나타낸 목소리다. 그리고 이 목소리를 글자에 담은 것이 글이다. 그런데 나타내는 소리나 글을 쓰는 법이 사람마다 다르면 말과 글이 제 구실을 못 한다. 그래서 같은 나라 사람이 말소리를 듣거나 글을 읽고 그 속내를 두루 알 수 있도록 ‘어문 규정’을 만들어 여기에 기대어 말이나 글을 부려 쓰게 한다. 우리 ‘어문 규정’에는 ‘한글 맞춤법, 표준어 규정, 외래어 표기법,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 따위 네 가지가 있다.
들온말도 여느 말글과 마찬가지다. 아무나 마음대로 다른 나라 말을 들여와서는 안 된다. 우리말을 죽이고 우리 말투를 어지럽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표준말 규정. 1부, 1장, 2항’에 ‘들온말 가려잡기 (외래어 사정)’란 길목을 만들어 물밀 듯이 넘쳐 들어오는 다른 나라 말을, 막을 것은 막고 거를 것은 걸러서 꼭 쓸모가 있는 말만 고르고 다듬어 들온말로 받아들이도록 못을 박아두었다. 그런데 이 일을 하려면 반드시 ‘들온말 규정’이 있어야 하는데 우리 ‘어문 규정’에는 아직 이 법이 없다.
한자말은 배달겨레말이 아니고 들온말도 아니다. 그런데도 한자말이 우리말이고 한문글자도 우리 글자라고 우기는 데는 ‘국어’라는 한자말 이름과 ‘표준국어대사전’이 큰 빌미가 된다. 우리말의 이름이 ‘국어’이니 모든 한자말도 우리말이라고 생각한다. 더욱이 정부(문화부, 국어원)에서 우리말 본보기로 만든 ‘표준국어대사전’의 올림말이 겨레말 25.9%, 한자말 58.1%, 겨레말이 덧붙은 한자말 10.6%, 서양말 5.4%이다. 한자말이 올림말의 68.7을 차지하니 우리말이고 한문글자도 우리 글자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한자말이든 서양말이든 우리말이 되려면 반드시 들온말로 받아들여야 하는데 우리는 이제까지 들온말을 가려잡은 적이 없다. 이 일을 했다는 분이 있지만 들온말이 무엇인지 몰라서 하는 말이거나 장님 지팡막대로 아무렇게나 가려잡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들온말 가려잡는 법 (외래어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들온말 잣대 (외래어 사정 원칙)가 없는데 어디에 기대어 가려잡았다는 말인가? ‘국어심의위원회’에서도 ‘들온말 규정’ 없이 마음대로 들온말을 받아들이지 못 한다.
한자말에는 중국 옛말과 요즘 중국말, 일본에서 만든 말, 우리나라에서 만든 말도 있다. 그런데 같은 한자말이라도 중국, 일본, 한국에서 읽는 소리가 제가끔 다르고 뜻도 다른 것이 많다. 한자말은 중국에서는 중국말이 되고 일본에서는 일본말이 되지만 우리나라에선 다르다. 한자말은 배달겨레말과 뿌리가 다르니 겨레말이 아니고 들온말로 받아들인 적이 없으니 우리말이 아니다. 그렇다고 모조리 버릴 수도 없다.
우리 겨레말은 날이 갈수록 한자말과 서양말에 밀려서 나라말 자리를 빼앗기고 사라져 간다. 말투마저 일본 말투, 서양 말투를 닮아서 비뚤어지고 있다. 그 뒤끝은 뻔하다. 겨레문화와 겨레다움(정체성)이 사라지고 겨레 생각마저 비뚤어진다. 같은 겨레끼리 말을 주고받기도 어렵게 된다. 얼빠진 겨레, 생각이 뒤틀린 겨레, 힘을 모를 수도 없는 겨레는 끝내 이 누리에서 사라질 것이다.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우리말을 살리고 우리 말투도 바로잡아서 우리말을 바로 알고 바로 쓰도록 해야 한다.
길은 하나다. ‘들온말 규정’을 만들고 이어서 ‘표준국어대사전’을 도마 위에 올려놓고 한자말과 서양말은 모조리 ‘들온말 가리기 (외래어 사정)’를 해야 한다. ‘들온말 잣대 (외래어 사정 원칙)’로 마름질하여 들온말과 버릴 말로 갈라낼 때 한자말 굴레에서 벗어나고 서양말에 홀리는 눈길도 바로잡혀 우리말이 살아난다. 이보다 더 바쁘고 종요로운 일은 없다. 이 일이야말로 우리말을 살리는 오직 하나뿐이고 바른 길이다. 겨레 얼굴, 겨레 삶, 겨레 얼, 겨레 문화는 우리말이 살아날 때 비로소 바로 선다.
우리 겨레 핏줄에는 예부터 아픈 내림이 이어온다. 한문글자를 눈앞에 들이밀면 바로 무릎을 꿇고, 힘센 나라 앞에만 서면 굽실거리는 종놈버릇이다. 젊어 한때는 이 버릇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도 치지만, 돈다발이 눈앞에 어른거리거나 나랏일을 맡는 자리에 앉거나 나이 들면 내림버릇이 도진다. 이런 사람들이 우리말을 살리고 가꾸는데 큰 걸림돌이 된다. 힘센 나라를 높이 보고 그런 나라 말과 글자를 우러러 보는 이 나쁜 버릇을 씻어내야 우리말이 마음껏 자라서 제 구실을 할 수 있는 바탕이 마련된다.
한자말을 비롯한 온갖 다른 나라 말은 들온말과 버릴 말로 갈라내고, 이어서 한문글자나 서양꼬부랑글자 따위 다른 나라 글자가 한 자도 섞이지 않은 진짜 ‘우리말 본보기 말집(사전)’을 새로 만들어야 한다. 그러면 우리 말밭에서 우리말이 싹트고 이 싹이 자라서 아름드리나무가 되고 수많은 나무는 우거진 숲을 이룰 것이다. 이렇게 되면 다시는 글자싸움에 휘둘리거나 다른 나라 말이 우리말 안방을 넘볼 수 없게 된다. 우리말이 되살아나서 겨레 삶을 드높이고 겨레 문화를 꽃피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