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게 삶으로 72 숲사랑으로 《회색곰 왑의 삶》 어니스트 톰슨 시튼 장석봉 옮김 지호 2002.12.27. 《회색곰 왑의 삶》에는 세 가지 이야기가 흐르면서 맞물리는데 무엇보다도 왑이라는 이름인 곰 이야기가 도드라진다. 잿빛곰인 왑은 처음에는 어미 품에서 자란다. 개미와 땅벌레를 핥아먹고, 물고기를 잡고, 딸기를 훑으면서, 또래와 장난을 치며 잘 지낸다. 이러던 어느 날, 사람들이 키우는 소가 새끼 곰을 괴롭히려 한다. 어미 곰은 얼른 새끼 곰을 지키려고 소한테 덤빈다. 그러나 사람들은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따지거나 살피지 않는다. 무턱대고 커다란 곰부터 쏘아죽이려 한다. 새끼 곰이던 왑은 하루아침에 어미를 잃는다. 그만 외톨이까지 된다. 사랑받으며 자라야 할 때에 사랑은커녕 끔찍한 죽음만 보고 만 나머지, 그만 이때부터 모두 미워한다. 숲짐승도 사람도 다 밉다. 더구나 왑은 어느 날 덫에 걸려 발가락까지 잃는다. 왑은 더욱 미움이 자라고, 쇠붙이 냄새만 나도 으르렁거린다. 왑은 살아간다. 아무리 힘들고 외로워도 꿋꿋하게 살아간다. 봄에는 겨우내 얼어 죽은 짐승을 먹는다. 여름에는 나리와 튤립과 산딸기를 멧기슭에서 먹는다.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우리말 6 밤하늘 땅거미가 지면 밤은 하루를 토닥토닥 고요히 재웁니다. 자다가 깼어요. 별님이 똑똑 두드려요. 밖을 보니 달무리가 있어요. 차고 기울고, 기울다가 다시 차오르는 달빛을 봅니다. 별도 달도 하늬쪽으로 한 뼘 옮겨요. 새녘에 반짝이는 별을 봐요. 깜빡깜빡 불을 켠 날개가 밤하늘을 갈라요. 여름이면 시골집 마당에 누워 별을 헤아렸어요. 닻별을 살피고 국자별을 찾으면 붙박이별은 쉽게 보여요. 별똥별을 보면 아기가 태어나거나 누가 돌아간다고 믿었어요. 밤빛이 들어왔어요. 책상맡과 머리맡이 환해요. 밤바다에는 윤슬이, 들숲에는 풀꽃나무가 별빛이랑 속삭여요. 밤새도록 사랑이 흘러요. 달은 햇빛에 튕겨 빛나고, 별님은 스스로 빛나요. 갓밝이에 샛별이 빛나요. 밤하늘은 별빛과 별노래로 꽉 차요. 그런데 이 많은 별이 어디로 갔을까요. 쏟아지는 미리내를 보고 싶습니다. 스스로 빛나는 별을 닮고 싶습니다. 2023.12. 28. 숲하루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게 삶으로 71 새소리 붕붕소리 《작은 새가 좋아요》 나카가와 치히로 사과나무 옮김 크레용하우스 2002.8.1. 《작은 새가 좋아요》를 읽었다. 우리 발은 땅을 밟고 있어도 몸은 하늘에 있는 셈이다. 바닥을 버티는 발이 우리가 폴짝 뛸 때처럼 뜬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발을 잡아당기는 힘을 이기고 땅을 벗어나는 새처럼 날까. 새는 가벼운 몸에 마음은 얼마나 가벼워서 날까. 마음이 무거울 때 하늘을 바라보며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처럼 날고 싶은 생각을 으레 꿈꾸었다. 그림책 《작은 새가 좋아요》를 돌아본다. 작은 아이는 작은 새처럼, 스스로 새가 되어 노래하는 꿈을 그린다. 그리고 작은 아이 곁을 온통 새밭으로 바꾸는 마음으로 살아간다. 우리 집 창가에 물을 떠놓고 모이도 놓는다. 이 그림책을 알기 앞서부터 새가 찾아오기를 기다리며 이렇게 지낸다. 어느 날은 까치가 짝을 지어 오고, 어느 날은 어린 까치가 오고, 어느 날은 까마귀가 오고, 어느 날은 비둘기가 온다. 요즘은 직박구리가 자주 찾아온다. 직박구리는 곁에 비둘기가 내려앉아서 물을 먹어도 꼭 노래를 부르더라. 직박구리는 한참 앉아서 두리번두리번한다. 물 한 모금…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게 삶으로 70 그림책 읽기어주기 《날아라, 꼬마 지빠귀야》 볼프 에를브루흐 김경연 옮김 웅진주니어 2006.11.15. 아침을 먹고 티브이를 보는 짝한테 “그림책 읽어 줄까?” 하고 묻는다. 고개를 끄떡한다. 짝한테 다가간다. 바닥에 그림책을 셋 내려놓는다. “자, 하나 골라 보소.” 짝은 《생쥐와 고래》하고 《작은 새가 좋아요》하고 《날아라, 꼬마 지빠귀야》를 보더니 《날아라, 꼬마 지빠귀야》를 손짓한다. 티브이를 끈다. 그림책은 그림을 함께 보아야 하니 나란히 앉아야 한다. 짝 곁에 앉아서 천천히 넘긴다. 첫 쪽을 펼쳤다. 자리 등받이에 검은 지빠귀가 앉았다. 다음 쪽을 보니, 아주머니는 다림질을 하고, 사다리에 올라가고, 차를 마신다. 이윽고 딸기코 아저씨가 나온다. 천천히 그림을 살피라고 첫 쪽보다 오래 펼친다. 그런데, 그림을 보던 짝이 하품을 한다. 아직 소리내어 읽지도 않고 그림만 보여주었는데 벌써 하품을 하다니. 아이쿠나, 빨리 읽어야겠구나. 짝은 그림을 보고, 나는 글을 소리내어 읽는다. 예전에 아이한테 읽어 줄 적처럼 재미있게 말씨를 섞어서 읽어 주고 싶은데, 쑥스럽기도 하고, 따분해서 안 듣는다고 할까…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숲노래 우리말 얄궂은 말씨 ㄱ. 글들 대부분 50명 정도 인원에 의해 올려진 대부분(大部分) : 1. 절반이 훨씬 넘어 전체량에 거의 가까운 정도의 수효나 분량 2. = 대개 오십(五十) : 1. 십의 다섯 배가 되는 수 2. 그 수량이 쉰임을 나타내는 말 3. 그 순서가 오십 번째임을 나타내는 말 명(名) : 사람을 세는 단위 정도(程度) : 1. 사물의 성질이나 가치를 양부(良否), 우열 따위에서 본 분량이나 수준 2. 알맞은 한도 3. 그만큼가량의 분량 인원(人員) : 단체를 이루고 있는 사람들. 또는 그 수효 의하다(依-) : 무엇에 의거하거나 기초하다. 또는 무엇으로 말미암다 종일(終日) : 아침부터 저녁까지의 동안 = 온종일 계속(繼續) : 1. 끊이지 않고 이어 나감 2. 끊어졌던 행위나 상태를 다시 이어 나감 3. 끊이지 않고 잇따라 하루 내내 이었다면, 줄곧 했다는 뜻입니다. “쉰 사람”이라고 밝히면 몇이 있는가를 이미 말했으니, “50명 정도 되는 인원”은 겹말입니다. ‘-에 의하다’나 ‘-지다’ 같은 입음꼴은 우리말씨가 아닙니다. 영어를 옮기다가 얄궂게 불거지다가 퍼진 말씨예요. 쉰 사람쯤이 하루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숲노래 우리말 얄궂은 말씨 ㄱ. 빠른 성장 가능 지구(地球) : [천문] 태양에서 셋째로 가까운 행성 ≒ 대괴·혼원구 성장(成長) : 1. 사람이나 동식물 따위가 자라서 점점 커짐 가능(可能) : 할 수 있거나 될 수 있음 우리말을 마치 영어처럼 쓰려 하니 “빠른 성장”처럼 ㄴ을 받쳐서 뒷말을 받곤 합니다. 그러나 우리말씨는 “빠르게 성장”입니다. 보기글은 ‘성장 + 가능’처럼 한자말을 곧장 이으려고 하느라 토씨를 얄궂게 붙였어요. 한자말 ‘가능’은 “할 수 있다”나 “될 수 있다”를 뜻합니다만, 이 글자락에서는 “빠르게 자랐습니다”나 “빠르게 컸습니다”로 손질할 만합니다. ㅅㄴㄹ 지구는 빠른 성장이 가능했습니다 → 푸른별은 빠르게 자랐습니다 → 푸른별은 휙휙 컸습니다 《미래 세대를 위한 채식과 동물권 이야기》(이유미, 철수와영희, 2023) 21쪽 ㄴ. 음식의 선택 많은 문제 음식(飮食) : 1. 사람이 먹을 수 있도록 만든, 밥이나 국 따위의 물건 ≒ 식선(食膳)·찬선(饌膳) 2. = 음식물 선택(選擇) : 1. 여럿 가운데서 필요한 것을 골라 뽑음 ≒ 초택(抄擇)·취택·택취(擇取) 문제(問題) : 1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숲노래 우리말 얄궂은 말씨 ㄱ. 속물근성 것 나의 利己 속물근성(俗物根性) : 금전이나 명예를 제일로 치고 눈앞의 이익에만 관심을 가지는 생각이나 성질 이기(利己) : 자기 자신의 이익만을 꾀함 저 혼자 좋기를 바라기에 ‘이기·이기심·이기주의’라고도 하지만, 저 혼자만 쳐다보거나 살피기에 “저만 알다”처럼 수수하게 나타낼 만합니다. 보기글은 “나의 (利己)”를 끝에 넣지만, 이런 글짜임은 옮김말씨예요. ‘나의’를 ‘나는’으로 고쳐서 맨앞으로 돌린 다음, “나는 그들을 멋대로”나 “나는 그들을 함부로”쯤으로 고쳐쓸 만합니다. 돈만 아는 이라면 ‘돈벌레’라 일컬으면 되어요. 또는 ‘바보’나 ‘멍청이’라 하면 되어요. ㅅㄴㄹ 그들을 속물근성으로 몰아부친 것은 나의 이기(利己)이다 → 나는 그들을 멋대로 돈벌레로 몰아붙였다 → 나는 그들을 함부로 바보라고 몰아붙였다 《기형도 산문집》(기형도, 살림, 1990) 64쪽 ㄴ. 음성언어 통역 위해 수화 사용 음성언어(音聲言語) : [언어] 음성으로 나타내는 말 ≒ 구어·입말 통역(通譯) : 말이 통하지 아니하는 사람 사이에서 뜻이 통하도록 말을 옮겨 줌. 또는 그런 일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숲노래 글손질 다듬읽기 16 《당신의 성별은 무엇입니까?》 민나리·김주연·최훈진 오월의봄 2023.5.8. 《당신의 성별은 무엇입니까?》(민나리·김주연·최훈진, 오월의봄, 2023)를 읽으며 내내 답답했습니다. 우리는 씨(성별)를 굳이 갈라야 하지 않거든요. 태어난 몸이 암이건 수이건 대수롭지 않습니다. 키가 크건 작건, 둘레에서 이쁘다고 여기건 못생겼다고 여기건, 따질 일이 없습니다. 누구나 이 땅에서 무언가 스스로 겪고 배워서 새롭게 사랑을 지으려고 얻은 ‘몸’입니다. 그러나 웃사내(남성가부장권력)는 적잖은 나날에 걸쳐 ‘바보나라’로 굴리고 길들이면서 가시내뿐 아니라 사내 스스로도 괴롭히고 죽였어요. ‘사내라서 힘꾼(권력자)’이지 않습니다. ‘힘꾼이 힘꾼’일 뿐입니다. 종은 가시내이건 사내이건 똑같이 ‘종(노예)’이요, 힘꾼도 사내이건 가시내이건 힘꾼입니다. 예전에는 뒷간을 안 갈랐는데, 이제 갓벗(여남)을 갈라요. 이 책은 ‘호르몬제’가 ‘백신’ 못잖게 어린이·푸름이·어른 몸을 망가뜨리는 줄 하나도 안 다룹니다. ‘돈·이름·힘’을 거머쥔 무리가 사람들을 가르면서 우리 스스로 싸우도록 붙이고 북돋우는데, 이 속내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숲노래 글손질 다듬읽기 15 《빌뱅이 언덕》 권정생 창비 2012.5.25. 《빌뱅이 언덕》(권정생, 창비, 2012)에 실린 글은 이미 다른 책에서 읽었습니다. 저는 진작부터 권정생 님 모든 책을 샅샅이 챙겨서 읽었기에 굳이 이런 글모음이 없어도 되리라 여기지만, 판이 끊어진 책에 깃든 글을 추려서 모을 수도 있겠지요. 그런데 우리는 권정생 님 글을 왜 읽을까요? 우리 스스로 ‘허깨비 서울살림을 벗으려’고 읽나요? ‘좋은글 읽어치우기(소비)’일 뿐인가요? 사람들이 자꾸 잊는데, 이오덕 님이나 권정생 님은 ‘서울 아닌 시골’에서, 더구나 ‘두멧시골’에서 조용히 살림을 짓고, 해바람비랑 풀꽃나무를 벗삼아 하루를 노래했습니다. 두 분은 처음부터 ‘시골에서 살며 글을 쓸 뜻’은 아니었으나, 두 분 모두 여린몸인 터라 시골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었는데, 막상 시골에서 숨을 거두는 날까지 살아가면서 ‘글을 쓰든 안 쓰든, 사람이 사람으로서 살려면 숲을 품는 보금자리를 일굴 노릇’인 줄 몸소 느꼈고, 이 삶빛을 이웃하고 글로 나누려는 길이었습니다. ㅅㄴㄹ 어릴 때 우리 집은 어둡고 음산했다 → 어릴 때 우리 집은 어두웠다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우리말 5 발바닥 태어난 아기 발바닥을 착 찍어요. 통통한 발에 간지럼을 태우면 발가락이 꼼지락꼼지락 활짝 펴요. 어른은 발바닥을 한껏 오므려요. 까치발로 딛고 서다가 뒤꿈치를 써요. 맨바닥에서는 발바닥이 미끄러워요. 쭉쭉 발밀이를 해요. 발을 동동 굴러요. 어리광을 부리며 발부림을 쳐요. 지치도록 울며 발버둥도 쳐요. 발바닥은 발바심을 해요. 싫으면 발뺌하고요. 발삯을 받으려고 심부름도 잘해요. 발바닥은 우리 몸 기둥입니다. 뭉개거나 납작하게 하는 힘이 있어요. 발바닥 가운데는 무지개 꼴로 버팁니다. 몸이 앉거나 누우면 일어나 하늘을 봐요. 가끔 맨발로 걸으며 달랩니다. 땀을 흘리면 발가락 사이에서 고린내가 나요. 발바닥은 길라잡이입니다. 발이 지나가면 발자취를 남깁니다. 고마운 발을 따뜻하게 덮어줍니다. 발바닥을 믿고 스스로 삶을 다 걸어갑니다. 건너뛰지 않아요. 한 걸음 두 걸음 발밤발밤을 합니다. 2023.12.25. 숲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