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딸한테 11 ― 냇둑 햇살이 비스듬히 뿌옇다 햇볕이 제법 포근하지만 아직 쌀쌀하다 냇둑에 할머니 한 분 앉아 책을 읽는다 무엇을 읽는지 궁금해 할머니한테 살금살금 다가가 본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물소리에 섞인 노랫소리가 들린다 할머니가 냇둑에 앉아서 노래를 부르셨구나 다시 발소리를 살살 죽여 가면서 뒤돌아선다 2023. 01. 26. 숲하루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84] 맨발걷기 일터 앞을 지나는데 꽃잔디가 피었다. 곱다. 일터 뒷마당으로 간다. 꽃밭이다. 김밥집 뒤쪽에는 앵두꽃이 피었다. 잔디밭에 들어가지 말라는 알림판이 있다. 이 오솔길은 마치 고양이 길 같다. 하양 분홍 진분홍 꽃잔디가 나무 밑을 덮어 물결친다. 꽃내음이 이렇게 짙던가. 냄새를 훅 들이마시고서 일터에 간다. 일을 끝내면 숲에 가자. 그제 못 본 수수꽃다리꽃이 피었다. 배꽃은 목련빛처럼 뽀얗게 피었다. 개나리꽃 반 새싹 반 틈에 온갖 꽃이 있다. 산벚나무꽃도 피었다. 비렁길을 오르니 그제보다 잎싹이 더 파릇파릇하다. 신을 벗는다. 양발도 벗어 신에 넣는다. 두 손에 신을 한 짝씩 들고 맨발로 걷는다. 숲길 어귀에는 귀롱나무가 있다. 푸릇한 잎과 꽃을 만지고 냄새를 맡는다. 멧길을 천천히 오르기로 한다. 신은 긴걸상 밑에 둔다. 마른 흙은 보드랍다. 촉촉한 흙은 시원하고 쫀득하여 발바닥에 착착 감긴다. 소나무 숲길에는 마른 솔잎이 쌓였다. 맨발로 걸으며 밟으니 부드럽다. 솔잎이 이렇게 부드러웠나. 짚신을 신으면 이럴까. 맨땅을 밟다가 솔잎을 밟으니 폭신폭신하다. 잔돌이 있어 살금살금 걷는다. 천천히 걸으며 풀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빈곳 허리 굽힌다 빈손이다 촤르륵 연다 아침햇살 지피던 그곳인가 수건 석 장 쌓였다 책상 곁에 둔 빨래바구니 째려본다 옷장 열린 틈으로 이 옷 안 입는다고 옷걸이 흔드는 소리 다시 닫는다 귓전에 들리는 아들 목소리 멋내기에 쑥스러워 슬그머니 닫던 모두 그대로 멈춘 빈곳 아이 그림자만 찾는다 열 몇 해 같이 살았나 너와 나 옛하루 살던 그곳 닫는다 2023.03.28. 숲하루 #열린시학2023봄호 #김정화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하루 구름이 기웃거린다 하늘빛이 내려온다 길바닥은 신나게 굴러가고 나는 땅을 소리로 등바닥으로 들으며 빈곳만 지킨다 나무보다 높은 겹겹 집더미인 잿빛 너머로 날아가는 새는 무엇을 찾고 먹고 사는가 네거리에서 올려다보다가 오늘도 앉지 못한 채 어두운 바닥에 들어서서 뒹군다 어느새 가을잎은 지고 별빛 없는 밤하늘에 하루가 누워서 간다 2023.03.28. 숲하루 #열린시학2023봄호 #김정화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83] 내가 본 울릉도 나루터에 출렁이는 바닷물이 맑다. 바위에 붙은 물미역도 맑게 출렁인다. 나루터에 감도는 바다냄새는 비릿하지 않다. 바닷물도 샘물도 맑고 부드럽다. 울릉섬은 온통 바위가 높고 뾰족하다. 어두운 곳에서 밝게 빛나는 바위가 얼룩덜룩 구멍이 난 작은 돌하고 뒤섞여 보인다. 멀리서 보면 흙처럼 보여 바위가 굴러 떨어질 듯하다. 가까이 다가가서 손으로 만져 보니 단단하다. 바람이 바위를 후벼도 튼튼히 버티어 왔구나 싶다. 그러나 바람이 세게 부는 날에 바닷가를 걷다가는 바다에 빠질는지 모른다. 드러난 흙이 드물다. 둘레로 너른바다에 솟은 섬이니 흙을 알뜰히 여길 만하겠다. 마을은 여러 집이 옹기종기 붙었다. 길가에는 나무가 적고 나무 밑둥을 덮음직한 흙도 보기가 쉽지 않다. 마을을 한 바퀴 돌아본다. 상추를 키우는 큰 꽃그릇을 본다. 파릇파릇 돋아난 상추잎이 반갑다. 바위틈에서 자라는 나물도 파릇파릇하다. 풀 한 포기가 바위에 붙어서 섬을 살리고, 바위는 다시 풀이 자라는 터전으로 서로 돕는 듯하다. 오르막 골골이 집이 있다. 판판한 땅을 보기는 쉽지 않다. 이 섬에 논은 어디 있을까. 마을에서 밭을 보기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숲노래 우리말꽃 / 숲노래 말넋 말꽃삶 8 나란꽃 함꽃 여러꽃 모든 말을 새로 짓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말짓기가 어려울 수 없습니다. 다 다른 삶을 다 다른 말에 담을 뿐입니다. 말짓기는 안 어려운데, 나라(정부)라든지 배움터(학교)라든지 말글지기(언어학자·국어학자)는 아무나 함부로 새말을 엮거나 지으면 안 된다는 듯 밝히거나 따지거나 얽어매거나 짓누르곤 합니다. 새말짓기란, ‘새마음으로 가는 길’입니다. 새말엮기란, ‘새넋으로 스스로 피어나는 꽃’입니다. 새말 한 마디를 지을 적에는, 낡거나 늙은 마음을 내려놓고서 반짝반짝 새롭게 빛나는 마음으로 나아갑니다. 새말 한 자락을 엮을 적에는, 고리타분하거나 갑갑하거나 추레하거나 허름한 모든 허물을 내려놓고서 스스로 싱그러이 피어나는 꽃다운 넋으로 거듭납니다. 나라(정부)에서는 사람들이 깨어나지 않기를 바라요. 사람들이 깨어나면 사람들은 나라에서 시키는 대로 안 하거든요. 사람들이 스스로 삶을 가꾸고 살림을 짓고 사랑을 나눌 적에는, 온누리 어디에서나 총칼(전쟁무기)이 사라지고 어깨동무를 널리 펼 뿐 아니라, 아이어른이 사랑으로 보금자리를 짓고, 순이돌이(남녀)가 더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이레말’은 이레에 맞추어 일곱 가지로 들려주는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생각을 말에 슬기롭고 즐거우면서 곱게 담아내는 길을 밝히려고 합니다. 이레에 맞추어 다음처럼 이야기를 폅니다. 달날 - 의 . 불날 - 적 . 물날 - 한자말 . 나무날 - 영어 . 쇠날 - 사자성어 . 흙날 - 외마디 한자말 . 해날 - 겹말 숲노래 우리말 '-적' 없애야 말 된다 : 이례적 이례적 행동 → 남다른 몸짓 / 튀는 몸짓 / 다른 몸짓 이례적인 언급이다 → 뜻밖에 밝히다 / 남다르게 말하다 이례적 예우이다 → 남달리 모시다 / 뜻밖으로 모시다 오늘 이례적으로 일을 한다 → 오늘 뜻밖에 일을 한다 ‘이례적(異例的)’은 “상례에서 벗어나 특이한”을 가리킨다고 해요. 이는 ‘다르다·남다르다’로 손보거나 “튀다·톡톡 튀다”로 손볼 만합니다. 때로는 ‘뜻밖에·뜻밖인’이나 ‘드물다·돋보이다·도드라지다’나 ‘재미있다·재미나다·새롭다’로 손보고, ‘유난하다·딴판’으로 손보아도 어울립니다. ㅅㄴㄹ “홀로 하나님과 함께―기도하지 않는 사람들의 기도”라는 제목으로 소개하려는 이 이례적인 기도문 선집은 → “홀로 하나님과 함께―비손하지 않는 사람들이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이레말’은 이레에 맞추어 일곱 가지로 들려주는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생각을 말에 슬기롭고 즐거우면서 곱게 담아내는 길을 밝히려고 합니다. 이레에 맞추어 다음처럼 이야기를 폅니다. 달날 - 의 . 불날 - 적 . 물날 - 한자말 . 나무날 - 영어 . 쇠날 - 사자성어 . 흙날 - 외마디 한자말 . 해날 - 겹말 숲노래 우리말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 별의별 별의별 고생을 다 하다 → 온갖 고생을 다 하다 별의별 생각이 다 들어 → 온갖 생각이 다 들어 별의별 이야기 → 온갖 이야기 / 갖가지 이야기 별의별 사람 → 온갖 사람 / 갖가지 사람 별의별 일 → 온갖 일 / 갖은 일 / 이런 일 저런 일 별의별 물건 → 온갖 물건 / 갖은 물건 ‘별의별(別-別)’은 “보통과 다른 갖가지의. ≒ 별별”을 뜻한다고 합니다. ‘별별(別別)’은 “= 별의별”이라고 해요. ‘갖가지·갖은’로 손질하면 되고, ‘여러’나 ‘온갖’으로 손질합니다. ‘숱한’이나 ‘이래저래·이모저모·이것저것·이런저런’으로 손질할 만하고, ‘다르다·남다르다·또다르다’로 손질하며, ‘유난하다·새롭다·새삼스럽다’나 ‘딴판·모나다’로 손질해도 됩니다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푸른책 읽기 36 《엄마 없는 아이와 아이 없는 엄마와》 츠보이 사카에 서혜영 옮김 우리교육 2003.3.25. 《엄마 없는 아이와 아이 없는 엄마와》(츠보이 사카에/서혜영 옮김, 우리교육, 2003)는 일본 우두머리가 저지른 싸움판에서 수수한 어른하고 아이가 어떤 멍울이며 생채기이며 눈물을 품고서 살아남는가 하는 줄거리를 들려줍니다. 우리는 스스로 생각해야 합니다. 싸움을 누가 일으키는지 생각해야 하고, 싸움이 터지면 누가 길미를 챙기고 누가 죽는지 생각해야 합니다. 모든 싸움은 아이가 안 일으킵니다. 마땅할 테지요? 모든 싸움은 ‘아이를 사랑으로 낳은 어버이’가 안 일으킵니다. 더없이 마땅하겠지요? 모든 싸움은 ‘어른스럽지 않은 꼰대와 늙은이’가 일으킵니다. 잘 짚어야 합니다. ‘슬기롭게 빛나는 철이 든 사람 = 어른’입니다. 나이가 들거나 몸뚱이가 크기에 어른이지 않습니다. 싸움을 일으키는 놈이나 무리는 ‘어른이 아닌 꼰대와 늙은이’입니다. 그래서 이쪽 나라 우두머리이든 저쪽 나라 우두머리이든, 나이가 들거나 몸뚱이는 컸어도 ‘어른스럽지 않은 마음이나 눈망울’이기에 총칼(전쟁무기)을 자꾸자꾸 만들어서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82] 싹 고구마에 싹이 났다. 손으로 눌러 보니 하나는 물렁물렁하다. 무렁한 고구마는 버리고 길쭉한 고구마를 씻는다. 유리병에 달린 끈을 풀고서 물을 듬뿍 담아 고구마를 꽂는다. 주둥이가 좁아도 고구마 끝이 물에 닿는다. 싹이 나니 뿌리도 나겠지. 수염도 고구마처럼 보랏빛일까. 물을 따라 뿌리가 살금살금 내려와 유리병을 꽉 채울 테지. 싹은 고구마가 썩어 갈 무렵 나려나, 싹이 나서 썩어 가려나. 시골에서 갖고 온 고구마는 곰보이다. 하나같이 굼벵이가 파먹었다. 이웃에 좀 팔아 보려고 갖고 왔지만, 꼴이 안 좋아서 곁님이 먹는다. 곁님은 오늘 즐거워 보인다. 일하는 자리에 와서 “니 고구마 먹고 갈래? 구울까?” 하고 묻는다. 곁님은 고구마를 구우러 간다. 나는 가게 일을 본다. 달끝이라 이래저래 셈값을 맞출 일이 많다. 일을 보며 자꾸 턱을 긁는다. 어쩐지 턱이 간질간질한데, 볼록하게 살이 돋고 턱 살결이 두꺼운 듯하다. 내 손이 거칠어서 그런가 했으나, 우리 고모처럼 얼굴이 두꺼워지는 듯했다. 나잇살이려나. “자, 이제 군고구마 먹을 수 있나?” “응. 먹으면서 해도 돼.” “뜨실 때 어서 먹어라. 뜨거우니 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