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곁말’은 곁에 두면서 마음과 생각을 살찌우도록 징검다리가 되는 말입니다. 낱말책에는 아직 없습니다. 글을 쓰는 숲노래가 지은 낱말입니다. 곁에 어떤 낱말을 놓으면서 마음이며 생각을 빛낼 적에 즐거울까 하고 생각하면서 ‘곁말’ 이야기를 단출히 적어 봅니다. 숲노래 곁노래 곁말 5 빛 쟤가 주어야 하는 ‘빛’일 수 있지만, 쟤가 주기를 바라기만 하면 어느새 ‘빚’으로 바뀝니다. 내가 주어야 하는 ‘빛’이라고 하지만, 내가 주기만 하면 너는 어느덧 ‘빚’을 쌓습니다. 하염없이 내어주기에 빛인데, 마냥 받기만 할 적에는 어쩐지 ‘빚’이 돼요. 아이는 어버이한테서 가없이 사랑빛을 받습니다. 아이가 받는 사랑은 빚이 아닌 빛입니다. 아이도 어버이한테 끝없이 사랑빛을 보내요. 어버이가 받는 사랑도 빚이 아닌 빛입니다. 오롯이 사랑이 흐르는 사이라면 빚이란 터럭만큼도 없습니다. 옹글게 사랑이 흐르기에 언제나 빛입니다. 사랑이 아닌 돈이 흐르기에 빚입니다. 사랑이란 티끌만큼도 없다 보니 그냥그냥 빚일 테지요. 사랑하는 마음으로 건네는 돈은 ‘살림’이란 이름으로 스밉니다. “가엾게 여겨 내가 다 베푼다”고 하는 몸짓일 적에는 “받는 사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오늘말’은 오늘 하루 생각해 보는 우리말 이야기입니다. 이 낱말 하나를 혀에 얹고 눈으로 보고 손으로 적으면서 생각을 새롭게 가꾸어 보면 좋겠습니다. 숲노래 말빛 오늘말. 추레하다 아름답게 살아가기가 어렵다고 말씀하는 분을 곧잘 만납니다. 온누리에 사납거나 거친 놈이 수두룩한데, 착하거나 곱게 굴다가는 그악스러운 발톱에 긁혀서 다친다더군요. 가만 보면 무쇠탈을 쓴 듯한 이들이 엉터리로 굴면서 지저분한 짓을 일삼는 모습을 어렵잖이 보곤 합니다. 추레하다 못해 볼썽사나운데, 저이는 어쩜 저렇게 볼꼴없이 구는가 하고 들여다보면, 저이 스스로 얼마나 엉망인가를 모르더군요. 거울로 겉모습은 보되, 냇물로 속마음을 보지는 않아요. 이웃한테 괘씸짓을 일삼는 이들은 모든 몹쓸 씨앗이 이녁한테 돌아가는 줄 안 깨닫습니다. 무시무시한 엄니는 바로 스스로 돌려받을 씨앗인데, 나쁜짓을 못 멈춰요. 우리는 퍽 오래도록 콩나물시루라 할 배움칸(교실)에 갇혀서 길들었습니다. 배움터가 배우고 나누는 밑바탕 노릇을 못 한 지 오래입니다. 북새칸에서 아이들은 살아남느라 바쁩니다. 미어터지는 곳에서 아이들은 서로 밟고 치고 때리면서 따돌릴 뿐 아니라, 끼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97] 비새(빈대·소벌레) 우리 집에는 소가 있었다. 여름에도 겨울에도 똥파리가 마굿간에 앉은 소 등짝에 잔뜩 모인다. 소는 마구간에서 여물을 먹고 물을 마시고 잠도 자는데, 잠자리에 오줌을 싸고 똥을 눴다. 소똥 냄새를 맡고 거름을 모아 둔 자리에 찌꺼기가 섞고 해서 그런가. 어디서 쇠파리가 날아왔다. 가려운지 꼬리로 이리저리 흔들면서 쇠파리를 쫓아낸다. 그렇지만 소는 손이 없으니 딱 붙는 벌레를 꼬리로 떼지 못한다. 벌레를 얼핏 보면 보리쌀처럼 동글납작하고 살짝 푸른빛이 났다. 소털이 짧고 매끈해서 사마귀 같아 보이는 벌레는 쉽게 눈에 띈다. 아버지는 그 비새라는 벌레가 소피를 빨아 먹는다고 했다. 피를 빨아 먹으면 안 되니깐 아버지도 벌레를 떼고 나도 벌레를 뗐다. 알을 만지면 촉촉했다. 쇠똥이 털에 묻었으면 작대기로 뗐다. 벌레가 징그러워 재빨리 뗐다. 땅바닥에 떨어진 벌레를 발로 밟아 터트렸다. 검붉은 피가 터졌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태어났는지 소털에 자잘한 벌레가 붙었는가 싶더니 피를 빨아 먹고 자라 굵었다. 소는 손이 없으니 제 몸에 난 작은 벌레 하나 어쩌지 못해 고개를 돌려 두 뿔로…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96] 환삼덩굴 환삼덩굴이 개나리 틈으로 올라와 가지를 친친 감았다. 개나리 울타리인지 풀밭인지 헷갈릴 만큼 덮었다. 잎은 손바닥을 펼쳐 놓은 듯하고 매끈한데 줄기는 솜털 가시가 송송 박혔다. 어린 날에 이 덩굴에 발목이 걸리고 맨다리가 긁혀 발갛게 자국났다. 가는 줄기가 질겨서 긁힌 자국이 손톱에 긁힌 듯 날카롭고 따가웠다. 마땅히 바를 약이 없어 그래도 버티었다. 찬물에 데이면 더 따갑고 며칠 지나면 검붉게 딱지가 앉는다. 딱지가 떨어지려고 일어나면 그 밑에 새살은 바알간 빛이 돌았다. 환삼덩굴은 밭둑 논둑 산에 풀밭처럼 퍼졌다. 덤불은 잔디나 고구마처럼 뿌리가 서로 이은 띠풀로 땅을 물고 퍼져나가 문어발처럼 딱 붙었다. 어머니는 대기미 밭둑에 덤불이 번져 길까지 확 퍼진 포기 갈래가 스물이 넘어도 뿌리 하나를 찾아 낫으로 똑 잘렸다. 그런 다음 풀을 둘둘 말아 힘주어 뒤로 젖히면 땅을 쥐던 환삼덩굴이 한덩어리로 뒤집힌다. 뒤집힌 자리는 풀이 홀라당 벗겨져 맨땅이 훤하게 드러났다. 환삼덩굴은 어머니 아버지한테는 골칫거리이다. 풀이 너무 잘 자라 걷고 나면 풀이 뒤덮고 또 덩굴 뿌리를 찾아 걷어야 했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95] 분꽃 분꽃이 떨어진 자리에 까만 씨앗이 앉았다. 움푹한 자리는 씨앗이 떨어지지 않게 감싼다. 한 알씩 집었다. 손에 잘 잡히지 않아 떨어진다. 우리 골목은 달리기 내기를 할 만큼 길다. 돌틈에 분꽃 하나가 아주 컸다. 마을 가꾸기를 한 뒤로 마을에 꽃이 많았다. 밖에서 딴 씨앗은 주머니에 넣고 우리 골목 꽃에서도 씨앗을 빼서 뜨락에 놓고 놀았다. 돌로 몇 알 깼다. 까만 씨앗 속에서 뽀얀 가루가 나왔다. 손등에 묻히니 밀가루가 묻은 듯했다. 볼에 발라 보았다. 버짐처럼 하얗다. 열두세 살에 어머니가 밭에 나가고 없을 적에 어머니 작은 소쿠리에서 화장품을 뒤졌다. 벽에 걸린 거울을 벗겨서 창살문 기둥에 세우고 어머니가 쓰는 분을 발랐다. 어머니 입술물(립스틱)은 얼마나 오래 썼는지 돌려도 올라오지 않는다. 어머니가 손가락에 찍어 바르길래 나도 새끼손가락에 찍어서 입술에 문질렸다. 밭에서 돌아온 어머니가 보더니 ‘가시나가 쥐잡아 먹었나’ 꾸지람을 한다. 그래도 나는 어머니가 나가고 없는 날에는 빨간 입술물을 발랐다. 분은 어머니가 장에 가는 날 바르고 운동회 갈 때 바른다. 어머니가 화장하면 딱 붙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94] 닭벼슬꽃(맨드라미꽃) 순이네 담벼락과 앞집 담벼락이 끝나는 골목 안쪽에 우리 집이다. 골목이 길어 대문 밖에 앞집 담벼락이 우리 집 살피꽃밭이다. 마을 가꾸기를 한 뒤로 집집이 꽃을 심는데, 앞집 지붕으로 우리 골목 꽃밭은 그늘이 일찍 든다. 그나마 볕이 드는 자리에 맨드라미꽃이 피었다. 우리는 달구벼슬꽃이라 했다. 꽃이 우리에 키우던 닭볏하고 닮았다. 꼬불꼬불한 주름이며 붉은빛은 손으로 만지면 뽀송뽀송하고 매끄럽다. 짧은 털옷을 만지는 느낌이다. 꽃이 마르면 까만 씨앗이 촘촘하게 박히고 떨어진다. 우리 집에서 키우는 닭이 씨앗을 쪼아 먹었다. 우리 먹을 밥도 모자랄 적에는 닭한테 먹일 모이가 없어서 키우지 못하다가 살림이 조금 나아져서 닭을 다시 들였다. 아침마다 닭집 문을 열어 주려고 가면 닭장 높이 홰를 타고 있다. 누구든 아침에 눈을 뜨면 닭장 문부터 열어주었다. 닭을 내쫓으면 마당 구석구석 흩어지고 거름을 파서 먹고 마당에 떨어진 알곡을 쪼아 먹는다. 보리를 바심하고 나면 마당에 떨어진 알곡이 많다. 풀어 놓은 닭은 마당에 흩어진 보리를 다 주워 먹고 대문을 나와 풀도 뜯어 먹고 마을…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오늘말’은 오늘 하루 생각해 보는 우리말 이야기입니다. 이 낱말 하나를 혀에 얹고 눈으로 보고 손으로 적으면서 생각을 새롭게 가꾸어 보면 좋겠습니다. 숲노래 말빛 오늘말. 응석받이 일본사람이나 미국사람이 대단해서 새말을 짓지 않습니다. 눈길을 가만히 기울이기에 어느 날 문득 새롭게 쓸 말씨앗이 싹트고 자랍니다. 톡톡 튀는 말이어야 새말이지 않습니다. 삶자리에서 수수하게 흐르는 낱말을 즐겁게 엮기에 새말입니다. 살림터에서 조촐히 어우르는 낱말을 웃으며 묶기에 새말이에요. 아무튼 우리는 아직 새말을 짓는 힘이며 눈빛을 잘 밝히지는 않아요. 눈길앓이를 하는 이는 많더군요. 남이 쳐다보기를 바라는 마음일 뿐, 스스로 환하게 웃으며 이웃을 사귀는 길하고는 멀어요. 누가 왜 나를 좀 봐줘야 할까요? 스스로 참나(참된 나)를 보면 넉넉할 텐데요. 응석받이는 응석입니다. 아양쟁이는 아양이에요. 어리광이는 어리광입니다. 응석이나 아양이나 어리광은 사랑이 아닌 겉짓입니다. 참말로 사랑으로 살아간다면 도드라져 보여야 할 까닭이 없는 줄 깨달아요. 뭐 모르니까 알랑알랑하겠지요. 어찌저찌 눈치를 챈다면, 이러구러 속으로 느낀다면, 알랑방귀가 아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우리말 길잡이’는 우리 나름대로 생각을 밝혀서 낱말을 새롭게 짓는 길을 들려주는 이야기입니다. 이렇게 지어야 한다는 글이 아닌, 이렇게 지어 볼 수 있듯 우리 나름대로 새말을 차곡차곡 여미어 보자는 글입니다. 숲노래 우리말꽃 우리말 길잡이 3 노독 여독 노독을 풀 겸 → 길앓이도 풀고 노독을 해소하지 못하고 → 지쳤는데 풀지 못하고 여독도 풀지 않은 채 → 길앓이도 풀지 않은 채 추위와 여독으로 → 춥고 힘들어 / 춥고 고단해 산후 여독으로 고생하다 → 아기 낳고서 애먹다 과거에 고문을 당한 여독으로 → 예전에 두들겨맞은 탓에 노독(路毒) : 먼 길에 지치고 시달려서 생긴 피로나 병 ≒ 길독·노곤 여독(旅毒) : 여행으로 말미암아 생긴 피로나 병 여독(餘毒) : 1. 채 풀리지 않고 남아 있는 독기 ≒ 후독 2. 뒤에까지 남아 있는 해로운 요소 ≒ 여열·후독 집을 떠나 바깥에서 오래 돌아다니거나 머물면 지치거나 힘들다고 합니다. 이럴 적에 한자말 ‘노독·여독’을 쓴다더군요. 그런데 낱말책을 보면 한자말 ‘여독’이 둘입니다. 두 가지를 헤아린다면, 우리 나름대로 새롭게 옮기거나 손질하거나 풀어낼 만합니다. 먼
[ 배달겨레소리 한실 글님 ] 울산고을 우리말 땅이름 살펴보기 1. 울주군 두서면 보안골을 가운데 두고(1) 울주군 두서면은 처음 경주군 외남면에 딸렸는데, 1906해에 울산군 두서면이 되고 1914해에 다시 떼고 붙이고 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보안골은 옛날부터 사람들이 불러오던 이름인데, 왜놈종살이 뒤로 복안(伏安)이라고 쓰면서, 요즘은 보안이라 소리내는 이가 드물다. 오늘날 복안리라고 부르는 보안골 안에는 네 마을이 있는데, 볕바른 한가운데 있는 볕달(양지)마을이 가장 크고, 그 마녘(남쪽)으로 천마메 기슭에 자리잡은 응달(음지)마을이 있고, 응달마을 앞에 솟은 절터메(또는 성불암메라고도함)를 사이에 두고 응달마을에셔 보면 새녘에 있고, 볕달마을에서 보면 새마녘(동남쪽)에 자리잡은 새터마을이 있고, 이 세 마을보다 큰겨랑 윗쪽에 있는 안에(내와), 바데(외와) 마을 쪽으로 한참 올라가서 천마메 달갯골을 마주 보고 자리잡은 당수마을, 이렇게 네 마을을 통틀어 보안(흔히 보안사일래)이라 불렀다. 새터마을에서 마녘으로 당만디고개를 넘어가면 마넉굴(미호) 마을이 아미메(또는 헤미메) 기슭에 펼쳐지는데, 길다랗게 절터메와 삼봉메를 등지고 웃마넉골(상동), 가운데마
[ 배달겨레소리 한실 글님 ] 울산고을 우리말 땅이름 살펴보기 1. 울주군 두서면 보안골을 가운데 두고(2) 성불암메(=절터메)는 새터마을을 옆에서 품고 있어 마을에서는 가장 종요로운 메다. 옛날엔 아랫녘은 밤나무밭과 잔솔밭, 웃녘은 참나무가 많았고 오늘날엔 밭으로 일군 넓이도 꽤 되고 밤나무 잣나무 참나무 제피나무가 많이 자란다. 제피나무는 죄피나무라고도 하는데 어린 싹은 간장과 고추장에 조려 밑반찬으로 쓰고, 익어가는 열매껍질은 말려 가루를 내어 미꾸라지국에 넣어 먹고, 뿌리나 줄기 껍질은 말렸다 가루를 내어 물고기 잡는데 쓰는 값진 나무다. 그 밖에도 더덕, 취나물, 참나물, 부지깽이, 비비취 같은 맛있는 나물도 많이 자란다. 마을쪽 아랫녘에 작은 딷밭골짜기가 있고 마을에서 봐서 그 오른쪽 옆에 버무굴(범이 살았다는 굴)이 있고 그 아랫녘이 못골이다. 아주 작은 못이 골짜기 끄트머리에 있어 붙은 이름이다. 갓재이, 또는 갓쟁이 골짜기는 새터마을에서 보면 가장자리에 있는 골짜기다. 끝에 있는 골짜기라는 뜻이다. 그런데 ‘옛날에 갓 만드는 이가 살았다’는 둥 없던 얘기를 만들어 내기도 하는데 갓재이라는 말뜻을 몰라서 생기는 일이다. 앞봇갓은 새터마을 바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