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곁말’은 곁에 두면서 마음과 생각을 살찌우도록 징검다리가 되는 말입니다. 낱말책에는 아직 없습니다. 글을 쓰는 숲노래가 지은 낱말입니다. 곁에 어떤 낱말을 놓으면서 마음이며 생각을 빛낼 적에 즐거울까 하고 생각하면서 ‘곁말’ 이야기를 단출히 적어 봅니다. 숲노래 우리말 곁말 4 삶맛 지난 2004년에 〈The Taste Of Tea〉라는 영화가 나왔고, 우리말로는 “녹차의 맛”으로 옮겼습니다. 아이들을 맞이하기 앞서 만났고, 아이들을 맞이하고서 이따금 이 영화를 함께 보았어요. 줄거리를 간추리자면 딱히 없다 싶으나, 다 다른 한집안이 다 다르면서 스스로 즐겁게 삶이라는 꽃을 피우는 길을 수수하면서 새롭게 숲빛으로 나아간다고 풀어낼 만합니다. 일본사람은 말을 할 적에 ‘の’가 없으면 막힙니다. 이와 달리 우리는 ‘-의’가 없대서 말이 안 막혀요. 저는 ‘-의’ 없이 서른 해 즈음 말을 하고 글을 씁니다만, 여태 막힌 일이 아예 없습니다. 글살림이 널리 안 퍼지던 지난날, 그러니까 누구나 손수 살림을 짓고 아이를 사랑으로 돌보며 숲살림으로 보금자리를 가꾸던 무렵에도 우리말에 ‘-의’는 아예 없다고 여겨도 될 만한 말씨였어요
[ 배달겨레소리 바람 바람 글님 ] [토박이말 살리기]1-97 머드러기 오늘 알려 드릴 토박이말은 '머드러기'입니다. 이 말을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두 가지 뜻이 있는 것으로 풀이를 하고 있습니다. 먼저 '과일이나 채소, 생선 따위의 많은 것 가운데서 다른 것들에 비해 굵거나 큰 것'이라는 뜻이 있다고 풀이하고 다음 보기를 들었습니다. 수북한 사과 더미 속에서 머드러기만 골라 샀다. 둘째 '여럿 가운데서 가장 좋은 물건이나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는 뜻이 있다고 하고 다음과 같은 보기를 들었습니다. 기철이란.... 모두 잘난 체하는 기씨네 중에도 그중 잘난 체하는 머드러기 인물이다.(박종화, 다정불심) 고려대한국어대사전에는 '많이 있는 과실이나 생선 가운데 아주 굵거나 큰 것'이라는 뜻이 있다고 풀이를 하고 다음 보기를 들었습니다. 아주머니, 그렇게 머드러기만 골라 가시면 어떡합니까? 두 가지 풀이를 보니 두 가지 뜻이 있다고 풀이를 하기 보다는 다음과 같이 풀이를 하는 것이 좋겠다 싶었습니다. 머드러기: 여럿 가운데서 가장 좋은 몬(물건)이나 사람을 나타내는 말 뜻을 풀이한 것을 봐도 그렇고 보기월을 봐도 우리가 흔히 쓰는 '최고(最高)', '최상(
[ 배달겨레소리 바람 바람 글님 ] [토박이말 살리기]1-96 맵자하다 오늘 알려 드릴 토박이말은 '맵자하다'입니다. 이 말을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모양이 제격에 어울려서 맞다'라고 풀이를 하고 다음과 같은 보기를 들었습니다. 옷차림이 맵자하다. 구름 같은 머리 쪽엔 백옥 죽절이 맵자하게 가로 꽂혔다.(박종화, 다정불심) 고려대한국어대서전에는 '(차림새나 모양새가) 꼭 맞게 어울려 맵시가 있다'라고 풀이를 하고 다음 보기를 들었습니다. 네가 그 옷을 입으니 맵자하게 잘 맞는구나. 두 곳의 풀이를 보니 '맵자하다'의 '맵'과 풀이에 나온 '맵시'의 뜻인 '아름답고 보기 좋은 모양새'가 이어져 고려대한국어대사전 풀이가 더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철이 바뀌면 그에 따라 옷도 바꿔 입게 됩니다. 요즘에는 날씨가 추워져서 다들 두꺼운 옷을 입고 다니지요. 두터워 따뜻해 보이긴 하지만 어쩐지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이 드는 사람도 있고, 따뜻해 보이면서 맵시 있게 잘 맞춰 입었다는 느낌이 드는 사람도 있습니다. 저마다 몸에 맞으면서 위 아래 옷이 잘 어울리게 입은 사람을 보면 '맵자하다'를 떠올려 써 보시기 바랍니다. 둘레 사람들의 옷차림을 보시고…
[ 배달겨레소리 바람 바람 글님 ] [노래에서 길을 찾다]23-나의 사랑 그대 곁으로 오늘 들려 드릴 노래는 '나의 사랑 그대 곁으로'입니다. 이 노래는 4316해(1983년)에 나왔으며 김승현 님의 노랫말에 김승덕 님이 가락을 붙여 남궁옥분 님이 노래를 불렀습니다. 떠나간 사랑을 그리워 하는 마음이 잘 나타나 있으며 남궁옥분 님의 고운 목소리와 어우러져 오래된 노래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 노래입니다. 노랫말이 '한없는', '환상', '시절'을 빼고는 모두 토박이말로 되어 있는데 무엇보다 '벗', '그리움', '땅거미', '노을'과 같은 토박이말이 있어서 더 좋았습니다. '한없는'은 '끝없는'으로, '환상'은 '생각'으로, '시절'은 '때로' 바꿔도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흘러 가는 하얀 구름을 벗 삼아 끝없는 그리움을 지우겠다는 말과 마음 깊은 곳에 꺼지지 않는 불꽃을 피우겠다는 말이 남다르게 느껴졌습니다. 땅거미 짙어가는 저녁 노을에 떠오르는 님 생각을 잊고 님이 떠난 외롭고도 서러운 길에 내 몸을 밝히겠다는 말도 좋았습니다. 무지개가 피어난다는 말이 참 예뻤고 어디선가 들리는 님의 목소리가 나를 부른다는 것을 보니 님의 꿈을 꾸고 있다는 것을 알
[ 배달겨레소리 바람 바람 글님 ] [토박이말 살리기]-살얼음 살얼음길 지난 이렛날(7일)이 눈이 많이 내린다는 한눈(대설)이었습니다만 제가 있는 곳에서는 눈은커녕 한낮에는 봄 날씨라고 해도 될 만큼 포근했습니다. 하지만 다른 높은 고장에는 올해에도 몇 차례 눈이 내렸다고 하지요. 날씨가 추운 겨울이 되면 어김없이 듣는 기별이 있습니다. 지난 이레에도 다른 고장에서 이것 때문에 수레가 부서지고 사람도 다쳤다는 기별을 봤습니다. 그 기별 속에 나온 말은 다름 아닌 ‘블랙 아이스’였습니다. 우리가 신문이나 방송에서 자주 보고 듣기 때문에 수레를 몰고 다니는 사람들은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만큼 낯익은 말일 것입니다. 그리고 ‘블랙 아이스’라는 말이 우리말이 아니라는 것도 잘 아실 것입니다. 이 말은 ‘검다’는 뜻의 영어 ‘black’에 ‘얼음’이라는 뜻의 ‘ice’를 더한 말입니다. 이 말을 우리말로 곧바로 뒤쳐 직역하면 ‘검은 얼음’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블랙 아이스’를 ‘검은 얼음’으로 뒤쳐 쓰자는 사람도 없고 그렇게 말하면 좋다고 할 사람은 더더욱 없을 것입니다. 다만 이 말과 비슷한 토박이말이 있으니 그것을 바탕으로 생각을 좀 해 보자는 것입니다.…
[ 배달겨레소리 바람 바람 글님 ] [토박이말 살리기]1-95 매시근하다 오늘 알려 드릴 토박이말은 '매시근하다'입니다. 이 말을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기운이 없고 나른하다'라고 풀이를 하고 다음과 같은 보기를 들었습니다. 몸살이 나서 온몸이 매시근했다. 의사는 달가닥달가닥 소리를 내며 이것저것 여러 가지 쇠 꼬치를 그의 입에 넣었다 꺼냈다 하였다. 철호는 매시근하게 잠이 왔다.(이범선, 오발탄) 고려대한국어대사전에는 '몸에 기운이 없고 나른하다'라고 풀이를 하고 있지만 보기월은 없었습니다. 두 가지 풀이를 보니 밑에 것이 좀 더 뜻을 알기 쉽다는 생각이 들었고 '기운'이라는 말이 '힘'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보고 다음과 같이 다듬어 보았습니다. 매시근하다: 몸에 힘이 없고 나른하다 우리가 살다보면 이렇게 몸에 힘이 없고 나른할 때가 더러 있습니다. 낮밥을 먹고 바로 앉아서 일을 할 때도 그럴 수가 있지요. 또 일을 많이 하고 난 뒤에도 이러기 쉽습니다. 위에 있는 보기월에도 나온 것처럼 몸살이 나거나 고뿔에 걸렸을 때도 이런 느낌이 들곤합니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빛무리 한아홉(코로나 19)를 미리 막으려고 주사를 맞고 나서 이렇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많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90] 배롱나무 자주 가던 뒷골에 배롱꽃이 발갛게 피었다. 봄이면 개나리가 피고 여름이면 배롱꽃이 피고 겨울이면 눈꽃이 피는데 나무가 우거져 가지와 가지가 맞닿았다. 꽃도 나무도 참 곱다. 어린 날에는 배롱나무를 본 적이 없다. 나무가 매끄럽고 꽃잎이 꼬불꼬불 종이를 구겨 놓은 듯하다. 배롱꽃을 보면 어릴 적에 접던 종이꽃이 떠오른다. 봄과 가을에 학교 잔치가 열리면 언제나 마을잔치였다. 마을 언니들과 꽃을 만들었다. 얇은 종이를 몇 겹을 모아 부채꼴로 접어서 반으로 꺾어 실로 묶었다. 그런 다음 이 종이를 한 장씩 펼치면 꽃이 되었다. 배롱꽃빛이었다. 손가락에 묶고 고깔 모자에 실로 꿰매어 쓰고 춤을 췄다. 우리가 만든 종이꽃은 작약꽃만큼 컸지만, 종이가 하늘거려 배롱꽃을 닮았다. 여름에 배롱나무 굴을 지나면 붉게 배롱꽃이 피듯이 핏대를 높여 춤추던 종이꽃을 보는 듯하다. 꽃과 나무가 고와서 뜰을 건사하면 한 그루 가꾸고 싶은 나무이고, 배롱나무에 핀 꽃을 볼 적마다 운동장이 떠나갈 듯 부르던 우리 목소리가 피어난 듯했다. 2021.12. 06. 숲하루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89] 떡갈나무 멧골을 오르는데 비가 내린다. 빗줄기가 나뭇잎에 떨어지는 소리가 여리다. 바람이 불지 않는데 돌개바람이 쓸고 간 듯 바닥에 떡갈나무 가지가 떨어졌다. 오른쪽에는 밤송이가 잘린 채 이리저리 잔뜩 흩어졌다. 우듬지를 쳐다보고 옆을 봐도 밤나무는 없다. 어디서 떨어졌을까. 나는 떡갈나무를 한가지 집었다. 도토리가 아직 작고 푸르다. 하나같이 도토리 둘이나 셋 나뭇잎 네다섯이다. 도토리가 익으면 깍지에서 떨어진다. 어릴 적에 어머니는 마늘 심는 앞치마를 하고 꿀밤을 줍는다. 마을을 벗어나 골이 진 멧자락에서 꿀밤을 주웠다. 어머니는 꿀밤을 며칠 물에 불렸다. 떫고 아린 맛을 뺀 다음 껍질을 손질해서 도토리묵을 쑨다. 어머니가 쑨 도토리묵은 허옇거나 떫지 않았다. 무를 가늘게 썰어서 양념하고 간장을 맛있게 장만했다. 묵에 간장만 뿌려 숟가락으로 퍼먹었다. 참기름맛과 어울려 고소한 냄새로 살짝 떫은 맛도 모르고 먹었다. 도토리를 주울 적에 구멍이 나서 벌레 먹었다고 버리곤 했는데, 이제 곰곰 생각하니 도토리거위벌레 알집이었다. 나뭇잎이 달린 가지를 자른 것도 알을 낳으려고 한 일이었다. 떡갈나무는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88] 무궁화 창밖을 보는데 무궁화 꽃송이가 하나 떨어진다. 여느 꽃은 활짝 핀 채로 꽃잎을 떨구며 시들고 동백꽃도 핀 채로 떨어지던데, 무궁화는 부채처럼 펼쳤다가 이 잎을 접고 통째로 떨군다. 나무를 바라본다. 군데군데 하얗게 꽃이 피었다. 하나 피면 하나가 떨어지는 꽃인가. 어릴 적에 무궁화는 배움터에서 보았다. 우리나라 꽃은 무궁화이고, 학교 나무는 향나무인데, 시험문제로 나왔다. 마을에서는 아이들이 모이면 술래잡기를 했다. 한 아이가 엄지를 치켜들고 ‘숨바꼭질 할 사람 요기요기 붙어라.’ 하면 골마다 아이들이 뛰어나왔다. 엄지를 잡고 또 잡으며 손탑이 되었다. 열이 모이면 가위바위보를 해서 술래를 세우고 숨었다. 술래가 담벼락에 손을 짚고 눈을 감고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열을 헤아릴 동안 숨었다. 나는 순이네 집 뒷간에 숨었다. 동무와 둘이서 숨을 죽이며 냄새를 참았다. 술래 발자국이 담을 따라 반쯤 오는가 싶더니 돌아갔다. 이때다 싶어 우리는 달려나가 술래가 없을 적에 담을 찍었다. 술래가 읊은 말은 열을 헤아리고 백까지 헤아린 셈이다. 일본에서 들어온 놀이라지만, 우리는 그런 줄도 모
[ 배달겨레소리 바람 바람 글님 ] [요즘 배움책에서 살려 쓸 토박이말]8-홀소리 1학년 학기 국어 배움책(교과서) 셋째 마당 ‘다 함께 아야어여’에서는 “모음자를 알아봅시다.”라는 말을 앞세우고 모음자 모양 알기-모음자의 이름 알기-모음자 찾기-모음자 읽기-모음자 쓰기-모음자 놀이하기의 차례로 가르치고 배울 수 있도록 마련해 놓았습니다. 앞서 ‘자음자’ 이야기를 할 때도 말씀을 드린 것처럼 교과서에 ‘모음자’라고 되어 있기 때문에 가르치는 선생님도 배우는 아이도 ‘모음자’라는 말을 쓸 수밖에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왜 ‘ㅏ,ㅑ,ㅓ,ㅕ...’같은 것을 왜 모음이라고 하는지 궁금해 물어도 ‘어미 모’, ‘소리 음’이라는 한자 풀이를 넘어 더 쉽게 풀이해 줄 수 있는 선생님도 많지 않은 게 참일입니다. 제가 1학년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겪어 본 바에 따르면 ‘모음’보다 ‘홀소리’라는 말을 더 쉽게 알아차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이들에게 ‘ㅏ’부터 ‘ㅣ’까지 열 가지 소리를 다 내어 보라고 한 다음 앞서 ‘닿소리’가 우리 입술이나 입안 어디엔가 닿아서 나는 소리였다는 것과 견주어 보도록 하였습니다. 그러면 닿소리와 달리 아무데도 닿지 않고 소리가 난다는 것을 쉽게 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