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76] 뱀알 마을 밖 느티나무를 지나 배움터로 갔다. 느티나무에서 오십 미터쯤 되는 자리에 오른쪽은 논이고 왼쪽은 금성산에서 뻗은 등성이가 끝난다. 나지막해서 산으로 해서 모퉁이에 자리잡은 무덤으로 미끄럼틀 타며 내려오고, 돌아올 적에는 무덤 뒤로 낑낑거리며 올라와서 느티나무 자리로 빠져나온다. 오르고 내려가는 자리부터 살짝 내리막길이고 멧자락은 검붉은 돌이 겹겹을 이루고 손으로 건들면 멧길 돌이 떨어진다. 흙이 없는 돌틈은 늘 물을 머금는다. 떨어지는 물이 골로 흐르고 좁은 물길 따라 풀이 자란다. 나는 그 자리를 지날 적마다 뛰었다. 하루는 배움터에서 돌아오던 길에 뱀을 만났다. 동무들 여럿이 돌을 주워 뱀을 때려잡았다. 사내들이 돌로 뱀을 찍었다. 죽은 뱀은 풀빛이 아니면 나무빛을 띠었는데 터진 배에 뱀알이 있었다. 메추리알만한 크기로 하얗다. 뱃속에 알을 품은 뱀을 잡아 뱀이 우리 집 쌀독에 들어가 알을 놓는다는 말이 나돌았다. 파랗고 커다란 쌀통을 보면 나 때문에 뱀이 나오는 줄 알고 무서웠다. 뱀이 벗어 놓은 허물도 길에서 자주 보았다. 뱀은 무늬가 얼룩이 지고 살결이 보드라우면서도 무섭다.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사진출처:네이버] [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75] 조 강아지풀 닮은 서숙(조)은 잎이 옥수수 닮았다. 우리 집은 논이 얼마 없어 논둑마다 귀퉁이에 조금씩 심었다. 열다섯 살까지는 노란 좁쌀밥을 먹었다. 보리밥만 먹은 적도 있고 좁쌀에 쌀을 한 줌 섞는다. 찰진 좁쌀은 맛이 있던데 그때는 찰기가 없는 노란 좁쌀이라 내 입에는 거칠어 맛도 없고 먹기 싫었다. 거친 보리밥과 좁쌀을 오래 먹어 쌀밥 먹는 일이 꿈이었다. 내가 태어나기 앞서 우리 어머니는 한 해 동안 좁쌀만 먹고 살았단다. 부자들은 쌀밥을 먹고 어머니는 서숙 두 가마니를 찧어 좁쌀로 죽을 끓인다. 아버지는 어머니와 함께 지내면서도 남 집에 여덟 해나 옮겨가며 일해 주며 살았기에 쌀밥 구경이라도 했지만, 어머니는 좁쌀로 버텼다. 이제는 밥에 섞어 몸에 좋다고 먹지만 우리는 먹을 쌀이 없어 누렇게 익으면 잘라서 털고 까불어서 밥을 짓는다. 그래도 좁쌀이 있어 우리 어머니가 한 해를 버티게 해 준 고마운 밥이다. 그래서일까, 고개 숙인 조를 보면 슬프다. 배불리 먹지는 못해도 배곯지 않게 하고도 무엇이 섭섭할까. 가는 줄기에 그 많은 알곡을 맺어 어머니와 우리 몸을 돌봐주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74] 산수유 우리 마을에는 산수유나무가 많다. 요즘은 사월이면 아랫마을에서 잔치한다. 우리 마을에서 아랫마을까지 내를 따라 논둑마다 산수유가 자란다. 중학교 가기 앞서는 우리 산수유나무가 없었다. 구천할매네와 순이네는 산수유가 많았다. 우리 어머니는 두 집 산수를 따면서 흘린 열매를 비스듬한 논둑에서 줍고 냇가에 내려가서 주웠다. 재 너머 효선마을에서 냇물을 막은 보가 있었다. 그 물로 큰물을 막아서 밑으로 흐르는 물이 적은 중보뜰에 들어가서 많이 주웠다. 불래마을 내도 둑을 막아 흐르는 물이 없어서 산수를 쉽게 주워냈다. 하루에 두 되 줍거나 날마다 조금씩 줍고 까고 나무를 찾아다니면서 남은 열매를 땄다. 그렇게 모아 온 산수유를 온 집안이 모여 깠다. 우리가 주운 산수유를 다 까면 어머니는 구천할매네 산수유를 한 말씩 갖고 와서 집에서 까고 우리는 순이네 집에 가서 산수유를 깠다. 큰방 작은방 마루마다 아이들이 밥상맡에 앉으면 순이 어머니는 반 되나 한 되씩 아이들이 달라는 만큼 우리 앞에 쏟아붓는다. 수북하게 작은 산이 된 산수유를 하나씩 집어서 씨앗을 뺐다. 앞니로 산수유 끝을 깨물어 터트리고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숲에서 짓는 글살림”은 숲을 사랑하는 눈빛으로 시골자락에서 아이들하고 살림을 짓는 길에 새롭게 맞아들여 누리는 우리말 이야기입니다. 숲에서 짓는 글살림 23. 모두 ‘모두’라고 하면 무엇이 떠오를까요? 곰곰이 생각해 보셔요. ‘모두’라는 소리를 들을 적에 시골 할머니 할아버지는 무엇을 헤아릴까요, 또 어린이나 푸름이는 무엇을 그릴까요? 벼슬자리(공무원)에 있거나 열린배움터(대학교)에서 가르치는 분은 ‘모두’라 하면 무엇을 생각할까요? 모두 : 1. 일정한 수효나 양을 기준으로 하여 빠짐이나 넘침이 없는 전체 2. 일정한 수효나 양을 빠짐없이 다 ≒ 공히 모두(毛頭) : → 털끝 모두(毛頭) : [불교] = 모도(毛道) 모두(冒頭) : 말이나 글의 첫머리 낱말책을 펴니 ‘모두’라는 소리로 적는 낱말을 넷 싣습니다. 이 가운데 “모두 있어”나 “모두 반가워”처럼 쓰면서 ‘무엇을 빠뜨리지 않고 아우르며 가리키는 낱말’이 첫째로 나옵니다. 둘째로 나오는 한자말 ‘모두(毛頭)’는 ‘털끝’으로 고쳐써야 한다고 화살표를 붙입니다. 셋째로 ‘모두(毛頭)’는 불교에서 쓰는 한자말이라 하고 ‘모도(毛道)’하고 같은 낱말이라는데, 이는 “[불교
[ 배달겨레소리 바람 바람 글님 ] [토박이말 살리기]1-80 뚝심 오늘 알려 드릴 토박이말은 '뚝심'입니다. 오늘 토박이말은 다들 잘 아시는 말이라서 반가워 하실 분들이 많지 싶습니다. 하지만 잘 아시는 것과 다른 뜻도 있으니 그것까지 알고 쓰시면 좋겠다 싶어 알려드립니다. 이 말을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뜻을 두 가지로 나누어 풀이하고 있습니다. 첫째 뜻은 '굳세게 버티거나 감당하여 내는 힘'이라고 하며 "둑심이 세다.", "뚝심으로 버티어 나가다.", 박경리의 토지에 나오는 "제가끔 제 수하들을 거느리는 만큼 힘들도 좋고 뚝심도 있었다."와 같은 보기를 들었습니다. 둘째 뜻은 '좀 미련하게 불쑥 내는 힘'이라고 풀이를 하고 "뚝심을 부리다."와 조정래의 태백산맥에 나오는 "양효석의 주먹도 정작 현오봉의 기운과 맞붙고 보면 어떻게 될지 모를 정도로 그의 뚝심은 대단했다."를 보기로 들었습니다. 고려대한국어대사전에서도 뜻을 두 가지로 나누어 풀이를 하고 있습니다. 첫째 뜻은 '굳세게 버티어 내는 힘'이라고 하며 "둑심이 세다.", "뚝심 있는 사람.", "그는 오직 뚝심 하나로 지금까지 버텨 왔다.", "신참은 뚝심 좋은 이미지로 여사원들의 인기를 독차지했다.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74] 산수유 우리 마을에는 산수유나무가 많다. 요즘은 사월이면 아랫마을에서 잔치한다. 우리 마을에서 아랫마을까지 내를 따라 논둑마다 산수가 자랐다. 중학교 가기 앞서는 우리 산수유나무가 없었다. 구천할매네와 순이네는 산수유가 많았다. 우리 어머니는 두 집 산수를 따면서 흘린 열매를 비스듬한 논둑에서 줍고 냇가에 내려가서 주웠다. 재 너머 효선마을에서 냇물을 막은 보가 있었다. 그 물로 큰물을 막아서 밑으로 흐르는 물이 적은 중보뜰에 들어가서 많이 주웠다. 불래마을 내도 둑을 막아 흐르는 물이 없어서 산수를 쉽게 주워냈다. 하루에 두 되 줍거나 날마다 조금씩 줍고 까고 나무를 찾아다니면서 남은 열매를 땄다. 그렇게 모아 온 산수유를 온 집안이 모여 깠다. 우리가 주운 산수유를 다 까면 어머니는 구천할매네 산수유를 한 말씩 갖고 와서 집에서 깠다. 우리는 순이네 집에 가서 산수유를 깠다. 큰방 작은방 마루마다 아이들이 밥상맡에 앉으면 순이 어머니는 반 되나 한 되씩 아이들이 달라는 만큼 우리 앞에 쏟아붓는다. 수북하게 작은 산이 된 산수유를 하나씩 집어서 씨앗을 뺐다. 앞니로 산수유 끝을 깨물어 터트리고
[ 배달겨레소리 바람 글님 ] [요즘 배움책에서 살려 쓸 토박이말]5- 붙이, 살붙이, 피붙이 1학년 국어 교과서 첫째 마당에 ‘아버지’, ‘어머니’ 다음에 나오는 말이 ‘가족’입니다. 이 말과 비슷한말을 떠올려 보라고 하면 ‘식구’라는 말도 생각이 나실 것입니다. 그런데 ‘가족’, ‘식구’ 말고 다른 말을 하나 더 말해 보라고 하면 하실 수 있는 분들이 많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우리가 나날살이에 쓰는 낱말이 많지 않은 것이지요. 가족’이나 ‘식구’를 뜻하는 토박이말은 없는 것일까요? 그런 것은 아닙니다. 말집 사전에 나온 풀이에 따르면 ‘가족’, ‘식구’와 비슷한말에는 ‘식솔’, 가솔, ‘권솔’, ‘육친’, ‘처자’, ‘처자식’과 같은 한자말이 있고 토박이말로는 ‘집’이라고 알려주고 있습니다. ‘가족’이라는 말이 ‘주로 부부로 중심으로 한 친족 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집단 또는 그 구성원’이라고 풀이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풀이에서 앞에 있는 ‘부부를 중심으로 한 친족 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집단’이라는 뜻으로 ‘집’을 쓴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초등학교 1학년 국어책에 나오는 ‘가족’은 뒤에 있는 뜻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말꽃(문학) 작품에서나…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이레말’은 이레에 맞추어 일곱 가지로 들려주는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생각을 말에 슬기롭고 즐거우면서 곱게 담아내는 길을 밝히려고 합니다. 이레에 맞추어 다음처럼 이야기를 폅니다. 달날 - 의 . 불날 - 적 . 물날 - 한자말 . 나무날 - 영어 . 쇠날 - 사자성어 . 흙날 - 외마디 한자말 . 해날 - 겹말 숲노래 우리말 우리 말을 죽이는 외마디 한자말 4 양 量 양이 많다 → 많다 / 부피가 많다 필요한 양만큼만 → 쓸 만큼만 / 있어야 하는 만큼만 구름양 → 구름 부피 / 구름결 양이 차다 → 배가 차다 / 다 차다 / 가득 차다 알맞은 양만큼 먹어라 → 알맞도록 먹어라 / 알맞게 먹어라 양이 매우 큰 사람 → 그릇이 매우 큰 사람 ‘양(量)’은 “1. 세거나 잴 수 있는 분량이나 수량 2. 분량이나 수량을 나타내는 말 3. 음식을 먹을수 있는 한도 4. = 국량(局量)”을 나타낸다고 해요. ‘부피’로 손보면 되고, ‘그릇’으로 손볼 수 있는데, 흐름을 살펴 털어낼 만합니다. ‘양껏’이라면 ‘한껏·실컷·잔뜩·가득·마음껏’으로 손보면 되고, “많은 양을”은 “많이”로 손봅니다. 많은 양을 딸 수 있었다 →…
[ 배달겨레소리 바람 바람 글님 ] [토박이말 살리기]-열달(10월)에 알고 쓰면 좋을 토박이말 건들장마가 잦다는 말을 할 만큼 비가 자주 오긴 합니다. 하지만 그야말로 쪽빛 하늘을 자주 볼 수 있는 가을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가을 나들이를 나선 사람들로 길이 많이 막힌다는 기별도 들으셨을 겁니다. 온이 가을로 가득 찬다는 지난 온가을달에도 올된 벼, 감, 밤을 맛보신 분도 계셨을 것입니다. 이제 온갖 열매를 거두어들이는 열매달 ‘열달’입니다. 아람이 벌은 밤송이를 곳곳에서 볼 수 있고 떨어진 알밤을 줍기도 할 것입니다. 힘을 들여 보늬까지 벗긴 밤은 날로 먹어도 맛있고 삶아 먹어도 맛있고 구워 먹으면 짜장 고소합니다. 그래서 남이 까준 밤이 그렇게 더 맛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여러 가지 열매는 말할 것도 없고 봄부터 여름까지 잘 가꾼 벼, 수수, 콩 따위를 가을걷이를 해서 갈무리하느라 바빠서 일손이 많이 모자라는 철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가을에는 부지깽이도 덤벙인다(덤빈다/뛴다)”는 말도 있나 봅니다. 바심한 햅쌀로 지은 하얀 쌀밥을 안다미로 담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철이기도 합니다. 먹거리가 많아서 맛맛으로 먹으며 먹는 즐거움을 마음껏 누릴 수
[ 배달겨레소리 바람 바람 글님 ] [토박이말 살리기]1-79 떠세 오늘 알려 드릴 토박이말은 '떠세'입니다. 이 말을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재물이나 힘 따위를 내세워 젠체하고 억지를 씀. 또는 그런 짓'이라고 풀이를 하고 "떠세를 부리다."와 "명옥이만 하더라도 툭하면 떠세가, 제 남편 덕에 출세하게 된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라는 염상섭의 '돌아온 어머니'에 있는 월을 보기를 들었습니다. 고려대한국어대사전에는 '돈이나 권력 따위를 내세워 잘난 체하며 억지를 씀'이라고 풀이를 하고 "같잖은 양반 떠세로 생 사람을 잡아다가 수령 놀이를 하다니!"를 보기월로 들었습니다. 두 풀이를 알맞게 하면 쉬운 풀이가 되겠다는 생각에 다음과 같이 다듬어 보았습니다. 떠세: 돈이나 힘 따위를 내세워 잘난 체하며 억지를 씀. 또는 그런 짓 한마디로 돈이나 힘을 내세워 제 바라는 바를 이루는 것을 가리키는 말로 요즘 흔히 말하는 '갑질'과 비슷한 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보기에 따라 좀 다르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옛날이나 요즘이나 돈이 많거나 힘이 있는 사람들이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좋지 않게 함부로 마주하는 것을 가리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