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홀로보기] 제주도에서 1 나들이 비행기 타는 일이 버스 타는 일처럼 흔한 요즘이라지만, 날마다 일하는 몸으로는 시외버스를 타고 나들이를 하기조차 어려웠다. 제주도를 옆마을 가듯 나들이하는 사람이 많다는 말만 듣다가, 나도 제주도 가는 비행기를 탔다. 비행기는 내가 여태껏 길에서 멀리 올려다보던 모습과 사뭇 다르다. 이렇게 높이 올라가는구나. 땅도 집도 마을도 저렇게 깨알처럼 작게 보이다가 사라지는구나. 목이 돌아갈 만큼 창밖을 내다본다. 나는 창밖을 본다지만, 어쩌면 여태 잘 모르던 우주를 보는가 싶기도 하다. 아니, 비행기를 타고 내려다보고 둘러보니까, 내가 살아가는 집과 내가 일하는 곳은 더없이 작고, 지구라는 별이 새삼스럽구나 싶다. 하늘에서 본 멧줄기는 풀빛 종이를 구겼다 펼쳐놓은 모습 같다. 바다를 날아온 끝없는 물 그림자. 구름이 바다처럼 물결을 치니, 바다가 하늘에서 숨을 쉬는 입김 같다. 바다에서 올라와 언제까지나 하얗게 사라지지 않는 겨울얼음으로 새긴 들판 같다. 이 끝없이 보이는 우주를 비행기를 타고서 보지 않았던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나로서는 멧길을 오르며 훨씬 기쁘고 반가웠다. 작은 멧골이라도 한 발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115] 씀바귀 멀리서 찾아온 글동무하고 두류공원에 갔다. 대구에 살지만 막상 혼자 느긋이 쉬려고 두류공원에 간 적이 없다. 글동무하고 찻집에라도 갈까 했으나, 봄날씨가 좋으니 공원이 낫지 않겠느냐 해서 가 보았는데, 하늘을 보며 나무 곁에 앉거나 걸으니 오히려 좋았다. 두류공원을 걷다 보니 곳곳에 씀바귀가 노랗게 꽃을 피웠다. 아무도 안 쳐다볼 만한 자리에 피었다. 공원에 오는 사람 가운데 누가 씀바귀를 쳐다볼까. 오월에 흰꽃이 눈부신 이팝나무하고 아까시나무를 바라보겠지? 느티나무 곁에 참 작은 틈새에 피어난 씀바귀는 어떤 생각으로 홀로 꽃을 피울까. 무얼 믿고 혼자 삶을 지을까. 보이지 않는 사랑을 믿으려나. 햇볕이 날마다 깃들고 바람이 말동무가 되어 주고 느티나무 뿌리한테서 얘기도 듣고 나뭇잎한테서도 줄기한테서 수다를 들으며 혼자서도 심심한 줄도 잊고 지낼지도 몰라. 가까이에 글동무가 없는 나도 저 씀바귀처럼 느낄 때가 있다. 혼자라서 자꾸만 여기저기 기웃거렸는지 모른다. 씀바귀는 늘 홀로 꽃을 피웠다. 돌틈이든 구석진 곳이든 자리를 마다하지 않고 활짝 피운다. 이 곁에는 알록달록하거나 새빨간 빛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114] 가지치기 올해는 아까시꽃을 따먹어 보고 싶었다. 마침 두류공원을 걷다가 아까시꽃을 본다. 이팝나무도 꽃을 활짝 피웠다. 이팝나무에 핀 꽃이 더 뽀얗고 아까시나무는 송사리를 이제 터트린다. 그렇지만 아까시나무가 무척 커서 가지에 손이 닿기에는 내 키로는 매우 높아 보인다. 한 송이를 살짝 따서 맛을 보고 싶었는데 이 도시에서는 나무마다 가지치기를 너무 많이 하느라 손이 안 닿는다. 왜 가지치기를 할까. 나뭇잎을 다 떨군 추운 겨울을 지나 새봄을 맞이하여 새싹이 돋아나기 앞서 자꾸 가지치기를 한다. 전깃줄이 훤히 드러난다고 하지만 추운 날에 가지를 숭덩숭덩 자르면 나무가 안 아플까. 이때만이 나무가 아픔을 느끼지 못하려나. 멋있게 보이려고 길가 나무를 다듬는다고도 한다. 사람이 걸어다니다가 머리를 부딪히지 않을 만한 높이로 잘라낸다고도 한다. 이런 탓에 가지가 저렇게 높이 자라니까 나뭇잎도 꽃도 가까이에서 보기 힘들다. 가지치기도 사람들 눈에 예쁘게 보인다고 한다는데, 참으로 보기 좋은 모습인지 모르겠다. 나무가 알아서 가지를 내고 잎을 내어 자랄 텐데 하나같이 똑같은 모습으로 싹둑싹둑 잘랐다.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113] 꾀꼴 소나무 그늘에 앉으니 바람이 차다. 햇살이 드리운 두류공원에서 조금 걸으니 흙길이 나오는 야트막한 멧자락으로 올라간다. 놀이터가 제법 넓고, 울타리가 있다. 사람은 숲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짐승은 내려오지 못하게 막은 듯하다. 울타리 너머를 보는데, 처음이다 싶은 새소리가 들려온다. 울타리 가까이 다가간다. 새소리가 들리는 쪽 나무를 올려다본다. 바닥이 비스듬하고 나무가 무척 높아 뒤로 넘어질 듯했다. 두 손을 목 뒤로 깍지를 끼우고 새를 찾아보지만, 소리만 들린다. 시원하고 맑다. 숲을 자주 다니지만 처음 듣는다. 저 새가 무슨 이름이지? 듣고 또 듣고 가만히 듣고 보니깐 꾀꼴거린다. 꾀꼴 꾀꾀꼴 꾀꼴 힘찬 노랫소리처럼 우렁차다. 꾀꼴거리며 우니, 설마 꾀꼬리인가. 코앞에 있는 듯해도 새가 어떤 모습인지 안 보이지만, 새소리를 가만히 듣다 보니깐 새한테 옛날 사람들이 붙인 이름이 저 소리 그대로, 참으로 듣기에 구성지다 여겨서, 노래소리를 그대로 새한테 이름을 붙였을까. 개굴개굴 노래한다고 여겨서 ‘개구리’라 하니, 꾀꼬리는 꾀꼴꾀꼴 노래한다고 여겨서 붙인 이름이 맞을 듯싶다. 옛날 사람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발걸음 29] 칼 가마솥 옆에는 언제나 숫돌이 있었다. 굽이 높은 구두처럼 비스듬한 걸이에 푸름하고 네모난 돌을 얹어 놓았다. 길가에 굴러다니는 돌하고 다르게 매끈하고 보드랍다. 아침에 일어나면 아버지가 앉아서 낫을 간다. 쇠바가지에 물을 담아 칼날에 묻히고 손잡이를 잡고 한 손은 낫 앞머리를 잡고 갈다가 들고 보고 또 간다. 어머니가 쓰는 부엌칼은 무겁고 두껍다. 부엌칼도 숫돌에 간다. 어떤 날은 할아버지가 아버지 낫을 갈고 도끼도 간다. 자다가 일어나 아버지가 칼을 가는 모습을 보면 무서웠다. 칼 가는 소리가 귀에 거슬리지 않는데도 무섭기만 했다. 아버지는 밭에 가기 앞서 숫돌에 칼을 갈았다. 연필이 있어야 글씨를 쓰듯이 아버지한테는 낫이 있어야 밭둑을 손질하고 소가 먹을 풀을 벤다. 낫이 있어야 깨도 찌고 나무도 해서 불을 지핀다. 낫은 일을 많이 해서 칼날이 무디다. 고운 숫돌이 어떻게 칼날을 세울까. 아버지가 숫돌 앞에 느긋이 앉아 오래도록 낫을 갈던 얼굴은 늘 웃음이 머문다. 낫을 이리저리 기울여 보고 갈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 날카로워서 낫 끝에 닿으면 사뿐히 자르는 칼날은 풀꽃나무를 자르는 끔찍한 일인데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발걸음 28] 포스터 열세 살 적인데, 나는 도면을 잘 그렸다. 큰오빠가 고등학교를 다녔는데, 집에 올 적에 하늘빛이 살짝 도는 큰 종이뭉치를 들고 왔다. 나는 오빠가 그리는 설계가 무척 재미있었다. 어떻게 촘촘하게 그릴까. 어떻게 이름 글씨를 살아숨쉬도록 쓸까. 큰오빠가 집에 온 날 졸라서 글씨를 배웠다. 오빠가 종이에 자를 대고 연필로 가볍게 긋는다. 다섯 글씨라면 글씨 크기를 가로세로 5cm나 7cm 눈금을 긋고 칸 사이와 사이는 띄울 만큼 좁게 그린다. 닿소리 홑소리 하나마다 두께 cm를 잡아서 똑같이 그리고 닿소리 ㄱ을 꺾어서 도드람 글씨가 되었다. 오빠가 딱 한 판 알려주었는데 나는 잘 따라했다. 나는 오빠한테서 배워 포스터 글씨를 아주 잘 썼다. 상자 밑그림도 쉽게 그리는 길을 배웠다. 큰오빠와 같이 살면 뭐라도 배우고 싶었다. 작은오빠하고는 두 살 터울이 나서 자주 싸웠는데, 큰오빠하고 여섯 살 터울이라서 안 싸우고 함께 놀았는지 고개를 갸우뚱한다. 큰오빠가 알려준 글씨로 포스터 숙제는 거뜬히 했고 배움터에서 교실을 꾸밀 적에는 이 글씨도 곧잘 썼다. 오빠처럼 누가 곁에서 조금만 이끌어 주면 즐겁게 배우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발걸음 27] 밤에 학교 가다 제사인지 할아버지 생신인지 두 고모네가 우리 집에 왔다. 이날은 몹시 아파 몸이 후끈거렸다. 어른들이 안방에 둘러앉아 화투를 치고 놀 적에 나는 방 안쪽 귀퉁이 책상에 앉아 숙제를 했다. 그러고는 스르르 잠이 들었다. 얼마나 잤을까. 고모가 밥 먹자고 깨웠다. 시계를 보니 여덟 시쯤 되었다. 발을 동동 구르며 학교 늦는다고 가방을 챙겨 방문을 열었다. 밖이 캄캄했다. 방에 있던 어른들이 크게 웃는다. 아침인 줄 알고 학교에 늦는다는 생각만 했다. 우리 집은 방이 둘이라서, 손님이 오면 안방에 모이고 우리는 안쪽 벽장 앞에서 숙제를 했다. 고모는 숙제한다고 책상에 앉아 있는 나를 보고 칭찬했다. 고모가 칭찬하니 기뻐서 책을 보는 척했다. 들일 밭일이 바쁠 때에도 시험공부 한다고 하면 우리 집에서는 봐줬다. 어머니는 내가 꾀부리는 줄도 모르고 몸이 여려서 봐주었지 싶다. 나는 어찌 손님이 오면 ‘하는 척’을 할까. 딱히 우리가 놀이가 없는 방에서 그저 책상에 앉아 책을 넘겼지 싶은데, 고모는 볼 적마다 내가 공부하는 줄 알고 이뻐한다. 이뻐하니 더 하는가. 고모는 무엇이든 내가 잘 한다고 부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발걸음 26] 수학선생님 국어 시간이면 늘 졸렸다. 국어 선생님은 철테 안경을 끼고 손에는 막대기를 들고 다닌다. 이때만 되면 지겨웠다. 이때 국어 선생님 때문에 국어가 재미없었다. 이분이 가르칠 적에는 잠만 잤으니깐. 하루는 졸음을 겨우 참는데, 옆 반에서 우당탕 소리가 크게 났다. 그리고 아이들이 소리를 질렸다. 꾸벅 맛있게 누리던 잠이 번쩍 깼다. 자리에서 일어나 옆 반으로 달려갔다. 뒷문에서 보니, 수학 선생님이 바닥에 쓰러졌다. 입에 거품을 물고 몸을 바르르 떨었다. 한참 지나 수학 선생님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우리가 도울 수 있는 일은 가만히 지켜보기뿐이었다. 쓰러진 수학 선생님이 무척 창피했지 싶다. 이 일이 몇 판 일어났는지 아이들이 수군거렸다. 우리 마을에도 비슷하게 앓는 사람이 있었다. 아이들이 뛰어노는데 우두커니 서서 구경하다 흙바닥에 퍽 쓰러졌다가 한참 있다가 일어나 옷을 털곤했다. 아저씨는 아이들과 같이 놀고 싶어 하는 눈치던데 우리는 무서워 내빼기만 했다. 선생님도 그랬을지 모른다. 지랄병이라고 사람들이 말했다. 기절일까. 거품은 왜 날까. 몸은 왜 바르르 떨까. 죽음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발걸음 25] 사미 약방 어지간해서는 약을 먹지 않는데, 몸살이 돌아 얼굴이 화끈거렸다. 아스피린을 처음 먹었다. 내가 약을 잘 안 먹는 까닭이 있다. 감기에 걸려도 그냥 버틴다. 아주 어려 걸음마를 할 무렵에 후끈 달아오르고 갑자기 아팠단다. 어머니는 재 너머 사미에 있는 약방에서 약을 지어 먹였다는데, 잘 걷던 내가 그 뒤로 걷지를 않으려고 했단다. 읍내 병원에까지 가야 했단다. 어린 날에는 내가 많이 여렸나 보다. 사미 약방 이야기를 들어서 그런지 모르지만, 약을 먹기를 꺼린다. 박카스를 먹으면 이내 머리가 빙빙 돈다. 약을 먹으면 더 그렇다. 어린 날 어떤 약인지 모르나 나는 이 약이 내 삶을 바꾸어 놓았다고 생각했다. 밝은 길보다 시커먼 어둠을 생각한 마음이 깊이 스미고, 사람들 앞에서 떳떳하게 걷거나 다니지 못했다. 큰길보다 사람이 뜸한 뒷골목으로 다녔다. 씩씩함을 몽땅 앗아간 뿌리일 텐데, 나를 오래도록 괴롭혔다. 꿈을 꾸지도 못한 채 꿈을 잃어버린 셈이랄까. 따로 약을 안 먹어도 하루이든 며칠이든 앓고 나면 말끔히 털고 일어났으니 내 몸이 아주 여리지는 않고, 제법 튼튼했다고 본다. 약힘을 빌리지 않더라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발걸음 24] 사탕 어른들은 배움터 가는 길이 십리 길이라고 했다. 배움터 개나리 울타리 밖에 구멍가게가 두 군데 있었다. 마침 종이 울리면 아이들은 우르르 몰린다. 나는 돈이 늘 없었다. 어쩌다 돈이 생기면 빳빳하고 알록달록한 쫀디기를 산다. 하루는 주머니에 5원이 있는데 이 돈으로 살 만한 과자가 없다. 라면이라도 먹으려니 돈이 턱없이 모자랐다. 눈깔사탕을 하나를 샀다. 막대사탕은 알록달록하고 굵은 설탕을 한 겹 둘렀다. 사탕을 물면 입안에 꽉 찼다. 혀를 쑥 빼서 핥아먹고 쉬고 또 핥아먹고 쉬고 집까지 빨고 왔다. 아끼고 아끼며 빨아먹는다. 나는 집으로 오는 길에 일부러 작은고모네 집에 놀러 가면 백 원씩 얻는다. 고모네는 이웃 마을에서 흙을 일구는데, 틈틈이 마을사람 머리카락을 깎아 주면서 돈을 만진다. 어린 날 고모네가 있어 돈을 구경했다. 십 원짜리 하나 만지지 못하던 어린 날, 고모부는 활짝 웃으며 기쁘게 돈을 준다. 눈깔사탕도 고모네가 준 돈으로 샀다. 어린 날에는 손님이 오면 가장 좋았다. 큰고모는 구두쇠 소리를 들었지만 두 고모가 가장 자주 찾아왔다. 고모도 좋지만 고모가 슬쩍 쥐어주는 돈 받는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