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사진: 박종덕님] [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64] 가재 마을 앞뜰 어귀에 느티나무를 지나 오빳골 재 덜 가서 아랫마을로 내 따라 논 따라 길이 갈라졌다. 가는 길로 갈라지는 곳에 냇물이 흐른다. 재 너머 골짜기에서 내려오는 물을 만나 아랫마을로 뻗어가는 냇가는 가재가 있는 개울이다. 냇바닥에는 누렇고 검은 돌과 큰돌 작은돌이 있고 물이 떨어지는 곳에 시멘트를 발라 밑쪽에는 작은 뚝이 있다. 물이 넘쳐 흘러가고 뚝으로 논둑과 냇가에서 자라는 산수유가 늘어서니 언제나 그늘이 진다. 마을 언니 오빠 동생하고 씻으러 가거나 가재를 잡으러 뚝을 따라 물길을 거슬러 올라갔다. 아버지 헌 검정고무신을 들고 갔다. 큰돌을 뒤집고 작은 돌을 들춰 가재를 찾는다. 들춰 본 돌은 제자리에 두고 물이끼에 발이 미끄러지지 않게 비껴 걸었다. 돌 밑에 알갱이 돌에 숨는다. 딱딱한 껍데기에 두 집게발이 통통하게 올라오고 더듬이를 내밀며 느릿느릿 바위틈에서 나온다. 가재 허리에 작은 발이 몇씩 있고 꼬리 가까이에 가로무늬가 있고 뒤집으면 배를 구부리고 부채처럼 꼬리를 펼친다. 구부린 배를 보면 알갱이를 품은 가재도 있다. 나는 손가락보다 긴 굵고 큰 가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발걸음 12 맷돌 맷돌 살 돈이 없을 적에는 마을에서 돌려가며 쓰는 돌을 썼다. 맷돌에는 돌구멍이 있어 암놈 수놈을 끼우고 돌린다. 아주 어릴 적, 그러니까 어머니 뱃속에서 맷돌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어머니는 열아홉에 혼례를 했지만, 방이 하나뿐인 살림이었다. 방 한 칸을 가로 긋고 시아버지인 아픈 우리 할아버지와 함께 썼다. 세간살이라고는 구멍 난 솥하고 숟가락 하나뿐이다. 시집온 그해 아버지가 붉은감 줍자고 해서 재 너머 효선골에 떨어진, 먹기 아까울 만큼 잘 익은 감을 주워서 탑리역까지 이고 가서 팔았다. 돌아오는 길에 감 판 돈으로 새미 못둑 과수원에서 사과를 사서 집으로 오는 길에 불래마을 사람한테 팔고 효선마을 사람한테 팔았다. 그 뒤로 어머니는 두부를 쑤었다. 어머니가 살던 가음 장터에 가서 두부 쑤는 길을 배우고 찐빵도 배웠다. 마을에서는 새신부가 친정 간 줄도 모르고 달아났다고 헛소문이 났단다. 오는 길에는 가음 장터에서 생선을 떼서 오는 길에 팔고 다시 생선을 떼러 가면 또 달아났다고 헛말이 돌았다. 마을사람은 하나같이 새신부가 못사는 집에 와서 버티지 못하고 달아난다고 말했다. 그럴수록 어머니는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63] 가죽나무 가죽나무 잎은 봄인데도 빨갛다. 새싹이어도 붉다. 나는 붉은 가죽나무를 보면 만지기 무섭다. 옻나무와 닮아서 잘못 따면 옻을 옮는다. 아버지도 새싹을 딸 적에 그만 옻을 건드려 팔에 오돌토돌 오르기도 했다. 비 오는 어느 날 아버지가 가죽나무를 한 움큼 따왔다. 어머니는 물에 헹구고 총총 썰어서 고추장에 버무렸다. 아버지 밥상에 올라온 가죽나물은 향긋 했지만, 나는 이 냄새가 싫어서 비볐다. 아버지는 맛있다고 느긋하게 잘 드셨다. 어머니하고 나는 양푼이에 비볐다. 새싹이라지만 가죽나무 냄새는 내 입에 맞지 않아 잎을 골라내고 양념 맛에 먹었다. 우리 입에는 맛이 없는데 아버지는 맛있다고 거짓말을 한다고 여겼다. 어른은 아이와 입맛이 다른가. 봄이면 가죽나물을 아버지가 거의 혼자 드셨다. 여느 새싹은 푸르게 돋는데 붉은 가죽나무는 어느 모로 보면 곱구나 싶다. 새봄에 다들 옅푸르게 올라오지만 유난히 붉게, 또는 바알갛게 올라와서 눈에 잘 뜨이는 가죽나무는 온통 푸르기만 한 봄 들판에 알록달록 옷을 입혔는지 모른다. 처음엔 붉어도 따서 두면 푸른 빛으로 돌아가다가 검푸르게 시드는데. 보들보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62] 도라지꽃 배움터에서 돌아오는 길이 멀어 달리기를 하고 길에 앉아 돌줍기를 하고 솔밭에 앉아 쉬고 또 달리면 어느 사이 오빠골 재 밑에 닿는다. 멧자락 따라 재 밑에 오면 느긋하게 놀았다. 아직 집이 멀어도 이 자리만 오면 집에 다 온 듯하다. 찔레가 있는 멧기슭 높은 밭둑에 도라지밭이 한 군데 있었다. 멧자락 밭둑이 높고 미끄럽다. 신발이 푹푹 빠져 흙이 들어가도 끙끙대며 풀을 잡고 밭에 오른다. 길가에서 본 보랏빛 도라지꽃이 가득했다. 우리는 밭에 오르면 한 골씩 맡아 꽃봉오리를 찾는다. 서로 터트리려고 이랑을 넘나드느라 도라지가 넘어지고 밭이 엉망이 된다. 도라지꽃은 풍선껌을 불어서 붙여놓은 듯 바람이 빵빵하게 찼다. 두 손으로 꼭 누르면 뽕뽕 소리를 내며 터진다. 어떤 봉오리는 픽 하고 바람이 실실 빠진다. 꽃봉오리를 터트리면 크기마다 바람이 빵빵한 세기에 따라 실로폰을 톡톡 두드리는 듯하다. 이쪽에 큰 봉오리 저쪽에 작은 봉오리 쪼끄마한 봉오리를 마구잡이로 터트렸다. 이랑을 옮기느라 춤추고 터트린다고 우리 몸짓은 춤춘다. 봉오리가 터진 도라지꽃은 하하 웃는 듯하고 아이들은 신이 났다. 도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61] 수박 여름이면 마을에 수박 장사가 왔다. 경운기에 가득 싣고 알리면 마을 사람이 몰려와서 고른다. 손으로 톡톡 두들겨 통통 맑은소리가 나면 잘 익은 수박이고 퉁퉁 끊어지면 껍질이 두껍다. 그래도 속은 갈라 봐야 허벅허벅하거나 여물고 짙은지 알기에 아저씨가 세모로 칼집을 내어 속을 보여주었다. 찬물에 수박을 담가 두었다가 시원하다 싶을 적에 쟁반에 놓고 썬다. 수박 한 덩어리 자르면 가운데부터 골라 먹고 숟가락으로 껍질까지 긁어먹었다. 우리는 여름이면 수박이 먹고 싶어 작은고모네와 큰고모네에 갔다. 큰고모네는 살림이 넉넉했는데 구두쇠 이름이 붙어 다녔다. 수박은 마루에도 냉장고에도 있었다. 밭에서 수박을 팔고 남은 수박이 있다고 곤이하고 희야하고 밭으로 갔다. 비탈진 멧기슭 밭에 덩굴을 헤치고 수박을 땄다. 손날을 세워서 힘껏 수박을 내리쳐서 수박을 쪼갰다. 이랑에 쪼그리고 앉아 실컷 먹었다. 코가 수박에 닿고 턱에 닿아 물을 뚝뚝 흘리면서 크다 만 수박 일 곱 통을 그 자리에서 먹었다. 집에 와서도 냉장고에 든 수박을 꺼내 먹었다. 고모는 마루에 서서 많이 먹는다고 눈을 부라리며 성을 냈다. 우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61] 수박 여름이면 마을에 수박 장사가 왔다. 경운기에 가득 싣고 알리면 마을 사람이 몰려와서 고른다. 손으로 톡톡 두들겨 통통 맑은소리가 나면 잘 익은 수박이고 퉁퉁 끊어지면 껍질이 두껍다. 그래도 속은 갈라 봐야 허벅허벅하거나 여물고 짙은지 알기에 아저씨가 세모로 칼집을 내어 속을 보여주었다. 찬물에 수박을 담가 두었다가 시원하다 싶을 적에 쟁반에 놓고 썬다. 수박 한 덩어리 자르면 가운데부터 골라 먹고 숟가락으로 껍질까지 긁어먹었다. 우리는 여름이면 수박이 먹고 싶어 작은고모네와 큰고모네에 갔다. 큰고모네는 살림이 넉넉했는데 구두쇠 이름이 붙어 다녔다. 수박은 마루에도 냉장고에도 있었다. 밭에서 수박을 팔고 남은 수박이 있다고 곤이하고 희야하고 밭으로 갔다. 비탈진 멧기슭 밭에 덩굴을 헤치고 수박을 땄다. 손날을 세워서 힘껏 수박을 내리쳐서 수박을 쪼갰다. 이랑에 쪼그리고 앉아 실컷 먹었다. 코가 수박에 닿고 턱에 닿아 물을 뚝뚝 흘리면서 크다 만 수박 일 곱 통을 그 자리에서 먹었다. 집에 와서도 냉장고에 든 수박을 꺼내 먹었다. 고모는 마루에 서서 많이 먹는다고 눈을 부라리며 성을 냈다. 우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60] 타래붓꽃 어린 날에 본 타래붓꽃은 범부채 풀잎보다 좁고 길쭉하다. 빛깔이 푸르고 속대를 뽑으면 원추리 밑둥처럼 옅은 풀빛이다. 가느다란 풀잎 속대를 뽑고 속대 하나를 더 빼낸다. 속대를 빼면 풀잎 속이 비고 속대가 빠지면서 이파리 끝은 늘어진 옷처럼 구불구불하고 보드랍고 얇다. 아랫입술에 살짝 얹고 후 하고 바람을 불어 넣으면 붙은 풀 틈으로 바람이 들어가 곱게 풀피리 소리가 울린다. 풀피리 소리가 맑고 부는 일이 재밌어 강아지풀잎도 따다 불고 잎이 넓은 풀잎을 따다가 불었다. 그 가운데 가장 고운 소리를 내는 풀피리는 타래붓꽃이었다. 타래붓꽃은 오빳골 오르막 길가에 한군데 뭉쳐 자랐다. 지름길 길섶에 무덤이 있어 무섭지만, 둘레에는 먹는 풀이 많고 놀이할 질긴 풀도 많고 노래를 배울 가락틀(악기) 같은 풀이 자라는 곳이다. 흙이 파여도 그곳에 자라는 풀은 늘 우리 눈길을 끌려고 애썼다. 겹겹이 있는 잎을 뽑았다. 입을 살짝 벌리고 바람을 불어넣으면 고운 소리로 풀피리가 되어 주었다. 소리가 얼마나 고운지 풀잎이 하늘거리며 부딪치며 바람에 떨리듯 울린다. 바람이 긴 풀대에 뽑히면서 소리를 울린다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59] 삐비 오빳골 지름길 무덤 앞에서 삐비를 뽑아 먹었다. 우리는 ‘삐삐’라 했다. 겨울 바람이 봄바람으로 바뀔 무렵이면 잔디보다 조금 큰 풀에 자주빛 새싹이 가운데에 올라온다. 끝이 뾰족하게 돌돌 말린 새싹을 잡고 당기면 삐 소리가 나고 드르륵 덜컹 뿌드득 하며 촉촉한 풀이 스치는 소리를 내며 뽑힌다. 보드라운 새싹을 잡고 당기면 내 손이 작게 울린다. 삐삐를 막 뽑으면 촉촉하다. 돌돌 말린 새싹이 풀어지면 부피가 크다. 높이 들고 고개를 옆으로 돌려 입에 넣으면 보드라이 혀에 감기고 씹을 틈 없이 부드럽게 목구멍으로 넘어간다. 어릴 적에 말괄량이 삐삐 만화를 본 탓일까. 삐 하고 삐삐가 빠지는 소리로 붙여진 이름인지 모른다. 보드랍던 삐삐가 조금 더 자라면 하얗게 핀다. 우리는 하얗게 피어도 뽑아 먹었다. 핀 잎은 말라 털 같다. 마른 잎은 물이 많던 어린 삐삐하고 다르게 입에 달라붙어 목이 막혔다. 마른 삐삐도 한 입씩 따먹는다. 마른 삐삐는 침을 다 빨아들여 침을 모아 씹는다. 삐삐는 보랏빛 싹으로 올라올 적에 가장 달고 더 자라면 거칠고 씨앗을 맺어 먹지 않아 무덤가는 우리가 빠트린 삐삐로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발걸음 11] 담금주 열두 살 적에 아버지가 안방 앞 처마 밑에 땅을 파고 병을 묻었다. 어머니가 간지밭에 고추 따러 가다가 길에서 뱀 한 마리를 만났다. 어머니는 손에 든 괭이로 꽁지를 누르고 끈으로 묶어서 비료 자루에 담아 왔다. 어머니는 독이 없는 뱀을 알고 잡았다. 병에 넣어 술을 붓고 뚜껑을 막은 다음 밭에 묻거나 비 안 맞는 자리에 묻는다는 마을 사람들 말을 듣고 아버지는 가까운 처마 밑에 묻었다. 뱀을 묻은 자리가 뜨락 앞이라 신발을 벗는 자리이다. 뜨락에 올라 댓돌을 밟고 문턱을 넘고 들어간다. 마루를 놓아둘 적에는 마루 밑에 뱀술이 있는 셈이다. 늘 누가 밟는 자리에 묻었다. 한참 지나 땅을 파고 병을 꺼냈다. 물이 빠져서 뱀이 하얗다. 장골 오두막에 살 적에 아버지가 자꾸 아팠다. 볕이 잘 드는 넓은 집으로 옮겨서 몸에 좋은 술을 먹는다. 쥐코밥상 맡에 앉아 한 모금씩 마신다. 아버지는 집 뒤쪽에서 지네를 잡아 실에 묶어서 오줌장군 오줌에 하룻밤을 담근다. 지네는 말리고 구워서 가루를 내어 술에 타서 마셨다. 아버지는 뭐라도 술에 타서 술술 마셨다. 뱀은 술을 무서워하고 지네는 우리 오줌에 꼼짝 못했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57] 솜꽃 어릴 적에 우리 집은 한 이불을 덮고 잤다. 여름에는 마루와 멍석으로 흩어 자지만 겨울이면 군불을 넣고 한곳에서 바닥에 이불도 깔지 않고 두꺼운 이불 하나를 덮었다. 중학생인 작은오빠, 나, 동생, 어머니 아버지 이렇게 다섯이 덮었다. 이른 저녁에는 바닥이 따뜻하고 뜨겁지만, 새벽이 되면 구들이 식어서 몸을 움츠리며 서로 등 뒤에 딱 붙어서 갈치잠을 잔다. 누구 하나 몸을 들썩이면 찬바람이 들어왔다. 우리는 몸을 붙여 자서 이불하고 사람 기운으로 따뜻해서 바닥이 딱딱해도 잠을 잘 잤다. 그런데 우리 이불은 다섯 사람이 덮어서 아주 크고 무겁다. 이불 홑청을 베로 풀을 먹여서 다듬이질에 방망이질을 했다. 베도 무겁지만, 이불에 든 솜도 무겁다. 우리 집은 솜을 조금 심은 적이 있다. 탑리에서 솜씨를 받아서 심는 집도 있지만, 우리 어머니는 밍(명)타는 집에서 뺀 솜씨를 얻어서 밭에 심었다. 초롱처럼 생긴 꽃이 피었다가 꽃이 지면 솜 다래가 열린다. 솜 생길 적에 메아리 따서 먹었다. 바알간 다래는 풀내가 나도 먹을 만했다. 그렇지만 나는 잘 안 먹었다. 이 다래가 익어 다래꽃이 피었다. 찬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