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90] 명이나물 길바닥 틈으로 질경이가 뿌리를 내렸다. 사람이 드나드는 문 앞이라 뽑으려다 멈춘다. 한때는 틈마다 난 풀을 뽑았다. 이제는 비좁은 틈에 살아난 풀이 멋스럽다. 만날 적마다 내 눈을 빤히 쳐다보고 “나 뽑지 마요.” 하는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그래, 걱정 말아, 뽑지 않을게.” 마음으로 말한다. 풀이 설 땅이 사람길이 되니 함께 누리기로 한다. 내가 본 질경이잎하고 명이나물이 닮았다. 질경이풀은 이름처럼 힘줄이 돋아 질겨 보이고 명이나물잎은 좁고 길다. 지난달 울릉도 명이나물지를 한 통 사왔다. 한끼 먹다가 다음날시골집에 갈 적에 부지깽이지하고 갖고 갔다. 지를 담아도 나물이 질겨서 남을 줄 알았는데 맛있다면서 다 드신다. 마침 어제 짝이 모임에서 한 상자 받았다. 명이나물지는 먹어 보았으나 날나물을 처음 보았다. 처음으로 명이나물지를 담는다. 양파를 하나 썰고 무말랭이 한 줌에 파뿌리를 깨끗하게 씻고 제사 쓰고 둔 황태포를 잘라서 주머니에 담았다. 물 여덟 컵을 붓고 끓이고 불을 끄고 주머니를 꺼냈다. 끓인 물에 진간장 네 컵 국간장 한 컵 설탕 한 컵 매실청 두 컵을 넣고 팔팔 끓였다. 불을 끄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89] 멀리 온 시골 시골 들녘을 달린다. 벼를 키울 흙을 갈아 놨네. 골목에 들어서니 시어머니가 쪼그리고 원추리를 뜯는다. 어머니는 나를 쳐다보아도 바로 못 알아본다. 어깨를 감싸고 마당으로 간다. 어머니 키가 내 가슴까지 온다. 작은 몸이 더 작다. 바로 뒤뜰로 갔다. 벌통이 하나뿐이네. 한 사람이 다니던 발자국이 오솔길이 되었다. 풀이 제법 푸르게 올라왔다. 민들레 잔디 제비꽃으로 밭이다. 배롱나무 가지치기를 한다고 따라왔다. 나는 작은 칼을 들고 나물을 한다. 달래를 다섯 뿌리를 뽑았다. 밭뚝 따라 쑥이 있을까 돌아본다. 밭둑에 올라온 정구지는 다니기 힘든 시어머니 몫으로 둔다. 어깨를 넘는 마른 풀밭에 쑥이 있다. 쑥을 뜯다가 대파를 몇 뽑는다. 쑥을 욕심내지 않기로 하고 짝이 있는 나무밭으로 오른다. 무덤 흙이 파이고 바닥에 빨같통을 묻었다. 멧돼지가 냄새를 맡고 못 오게 하는 약이구나. 나무밭둑에 두릅나무가 있다. 마른 나무처럼 선 나무 끝 새싹을 꺾는다. 여느때 같으면 새싹이 잔뜩 나왔을 텐데 나무가 죽어 가는가. 옷이 가시에 자꾸 걸린다. 나무 사이로 다니며 두릅을 딴다. 두릅이 싹을 내면 우리가 따버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88] 다녀왔습니다. 여럿이 나들이 가면 들뜰 텐데 차분하다. 멀미약을 안 먹어야 머리가 맑은 줄 알면서 먹는다. 뭔가 모르겠지만 요사이 멍하고 굼뜬다. 웃음도 무디고 느낌도 무디다. 나루터를 보고 등대를 보아도 그저 그렇고 바람이 머리칼을 마구 날려도 무덤덤하다. 나보다 나이가 더 들어도 혀를 꼬며 귀엽게 말을 하고 까르르 웃고 나비처럼 팔랑팔랑 다니는 사람들이 많다. 사진을 찍는다면 팔을 착 뻗고 소리치고 몸짓이 저절로 나오기도 한다. 내 안에 있는 다른 내가 느긋하게 구는 듯하다. 오르막 숲길이다. 판판한 들녘이 펼쳐지고 나무가 우거졌는데 이 꼭대기에 가야 고래불바닷가를 본다니 오르면서도 잘못 오르는 길이 아닐까 갸우뚱하면서 계단을 오른다. 이제 신바람이 살짝 나는데 몸은 아직 무겁다. 종아리에 돌덩이를 하나 달아 놓은 듯 당긴다. 재잘거리는 사람보다 앞서 걷는다. 숨을 고르며 뒤돌아본다. 여든아홉 살 샘님이 무릎에 손을 짚고 한 걸음 두 걸음 힘겹게 오른다. 일흔다섯 살 샘님은 구두를 신었다. 돌 자국이 찍히면 굽이 흉할 텐데 발가락도 눌릴 텐데 걱정스럽다. 꼭대기에 세운 네모난 쉼터가 크다. 나무결이 꽤 묵었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87] 곁일 모처럼 아들 목소리를 듣는다. “엄마, 집이가?” “그래. 집에 오는가?” “아니, 어제는 바빴어. 손전화 알림도 못 봤어. 공연 했어.” “버스킹인가 뭔가 하는, 길거리노래 했나?” “어. 잘 쓸게. 근데 돈 더 보내줘서 많은데. 그럼 넘 쓰는 거 아니가?” “남으면 모아두고, 모자라면 보태 써. 근데 요즘 니 얼굴 안 비데? 엄마는 니 얼굴만 떠도 좋던데. 노래 올리면 가만 보기만 할게. 거기 올려라” “시간 빼앗겨서 잘 안 들어가” “그래, 잘 생각했다. 반찬 좀 보낼까?” “아니, 보내지 마라. 가까운 데에서 시킨다.” 열흘 앞서, 아들이 돈이 없대서 이십만 원을 보냈다. 달마다 방삯 삼 십만 원 내는 날 한 달 쓸 돈을 보낸다. 사십만 원을 보내니 머리비누 사고 얼굴에 바르는 것도 사고 반찬도 사고 배움삯 내면 모자랄 때가 많을 텐데, 돈을 더 달라는 소리는 좀처럼 하지 않았다. 곁일을 해서 쓰려 하는데 못하게 했다. 돈이 없으면 곁일을 할까 싶어 더 보냈다. 학교 다니는 동안은 스스로 갈 길을 찾는데 배워야 하는데, 곁일을 하느라 틈이 없을까 싶어서 더 보냈다. 우리 가게에 아들 또래쯤 되는 학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86] 봄나물 집에서 문을 꼭 닫아 놓으니 방이 답답하다는 한 마디를 한다. 짝꿍이 불쑥 하는 말을 듣고 난 뒤로 마음이 갑갑하다. 새달에는 쉬어야지. 내 뜻대로 밀고 나가야지. 모임 나들이가 잦아서 하나를 끊고 둘도 끊어야지. 알맹이가 없는 자리를 멀리하고 마음에 거슬리는 사람도 밀어낸다. 이렇게 마음을 세우기가 힘들다. 차라리 심심할 만큼 혼자가 되자고 다짐해도 헛헛하다. 문득 달리고 싶다. 짝 눈치도 살피지 말자. 도서관에 갈까 수목원으로 갈까. 한 시간 아니 두 시간 달리자. 그래, 며칠 글이 안 올라와서 푸른누리에 잘 지내시느냐 여쭈었지. 어디 아프신가, 봄이 오면 푸른누리에 꽃이 피고 새싹이 올라오면 보기 좋다는 말을 지난겨울에 들었지. 상주로 달린다. 그런데 가는 길만 두 시간이네. 창을 내리니 두엄 냄새가 난다. 짙고 옅은 푸른잎이 봉글봉글 피고 벚꽃이 군데군데 하얗게 피어 물감을 풀어놓은 듯하다. 가는 길이 꽃길이다. 대구는 벚꽃이 지고 잎이 나는데 여긴 벚꽃이 한창이다. 어린 벚꽃이 좀더 자라 가지가 서로 맞닿으면 꽃굴 같은 길이 더 멋질 듯하다. 골짜기 끝이다. 여긴 바람이 좀 차다. 마당이 온통…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85] 벌레 맨손으로 꽃나물을 뜯으려는데 벌레가 한 마리 웅크리고 나를 본다. 깜짝 놀란다. 솜털이 노란지 하얀지 노란 벌레인지 하얀 벌레인지 가만히 본다. 어린 날에 쏘인 풀새미(쐐기벌레) 같다. 쏘이면 살갗이 벙글벙글 일어나고 가렵다. 마른 풀가지로 옮겼다. 벌레가 먹은 나물을 둘까 하다가 뜯었다. 벌레 먹은 나물을 삶으니 끝이 조금 노랗다. 구멍도 나고 자국이 남는다. 벌레는 나뭇잎을 갉아 먹고 풀을 갉아 먹어서 좋지 않다고 여겼다. 우리가 밥을 먹듯이 벌레도 풀잎을 먹을 뿐인데 자꾸 나쁜벌레로 가른다. 나비가 되기까지 매미가 되기까지 모든 벌레가 제 몸을 거듭 벗고서 나왔을 텐데, 가랑잎이나 풀잎에 숨은 몸을 생각지 않고 눈앞에 보이는 예쁘게 나는 모습만 떠올리면서 꺼려 버릇한다. 벌레가 자라기에 우리한테 나쁠 수 있고 이바지할 수 있지만, 어쩐지 벌레라는 이름에 갇혀서 안 좋게 바라본다. 참 그렇다. 둘레에서 뭐라 하기 앞서, 나부터 벌레를 안 좋게 본다. 그래서인지 사람끼리 서로 깔보거나 얕볼 적에 벌레라고 하기도 한다. 그제 누리글집(인스타)에 아는 분이 글을 남겼다. 이웃삼기를 한 뒤 벌레들이 자꾸 온다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84] 맨발걷기 일터 앞을 지나는데 꽃잔디가 피었다. 곱다. 일터 뒷마당으로 간다. 꽃밭이다. 김밥집 뒤쪽에는 앵두꽃이 피었다. 잔디밭에 들어가지 말라는 알림판이 있다. 이 오솔길은 마치 고양이 길 같다. 하양 분홍 진분홍 꽃잔디가 나무 밑을 덮어 물결친다. 꽃내음이 이렇게 짙던가. 냄새를 훅 들이마시고서 일터에 간다. 일을 끝내면 숲에 가자. 그제 못 본 수수꽃다리꽃이 피었다. 배꽃은 목련빛처럼 뽀얗게 피었다. 개나리꽃 반 새싹 반 틈에 온갖 꽃이 있다. 산벚나무꽃도 피었다. 비렁길을 오르니 그제보다 잎싹이 더 파릇파릇하다. 신을 벗는다. 양발도 벗어 신에 넣는다. 두 손에 신을 한 짝씩 들고 맨발로 걷는다. 숲길 어귀에는 귀롱나무가 있다. 푸릇한 잎과 꽃을 만지고 냄새를 맡는다. 멧길을 천천히 오르기로 한다. 신은 긴걸상 밑에 둔다. 마른 흙은 보드랍다. 촉촉한 흙은 시원하고 쫀득하여 발바닥에 착착 감긴다. 소나무 숲길에는 마른 솔잎이 쌓였다. 맨발로 걸으며 밟으니 부드럽다. 솔잎이 이렇게 부드러웠나. 짚신을 신으면 이럴까. 맨땅을 밟다가 솔잎을 밟으니 폭신폭신하다. 잔돌이 있어 살금살금 걷는다. 천천히 걸으며 풀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83] 내가 본 울릉도 나루터에 출렁이는 바닷물이 맑다. 바위에 붙은 물미역도 맑게 출렁인다. 나루터에 감도는 바다냄새는 비릿하지 않다. 바닷물도 샘물도 맑고 부드럽다. 울릉섬은 온통 바위가 높고 뾰족하다. 어두운 곳에서 밝게 빛나는 바위가 얼룩덜룩 구멍이 난 작은 돌하고 뒤섞여 보인다. 멀리서 보면 흙처럼 보여 바위가 굴러 떨어질 듯하다. 가까이 다가가서 손으로 만져 보니 단단하다. 바람이 바위를 후벼도 튼튼히 버티어 왔구나 싶다. 그러나 바람이 세게 부는 날에 바닷가를 걷다가는 바다에 빠질는지 모른다. 드러난 흙이 드물다. 둘레로 너른바다에 솟은 섬이니 흙을 알뜰히 여길 만하겠다. 마을은 여러 집이 옹기종기 붙었다. 길가에는 나무가 적고 나무 밑둥을 덮음직한 흙도 보기가 쉽지 않다. 마을을 한 바퀴 돌아본다. 상추를 키우는 큰 꽃그릇을 본다. 파릇파릇 돋아난 상추잎이 반갑다. 바위틈에서 자라는 나물도 파릇파릇하다. 풀 한 포기가 바위에 붙어서 섬을 살리고, 바위는 다시 풀이 자라는 터전으로 서로 돕는 듯하다. 오르막 골골이 집이 있다. 판판한 땅을 보기는 쉽지 않다. 이 섬에 논은 어디 있을까. 마을에서 밭을 보기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82] 싹 고구마에 싹이 났다. 손으로 눌러 보니 하나는 물렁물렁하다. 무렁한 고구마는 버리고 길쭉한 고구마를 씻는다. 유리병에 달린 끈을 풀고서 물을 듬뿍 담아 고구마를 꽂는다. 주둥이가 좁아도 고구마 끝이 물에 닿는다. 싹이 나니 뿌리도 나겠지. 수염도 고구마처럼 보랏빛일까. 물을 따라 뿌리가 살금살금 내려와 유리병을 꽉 채울 테지. 싹은 고구마가 썩어 갈 무렵 나려나, 싹이 나서 썩어 가려나. 시골에서 갖고 온 고구마는 곰보이다. 하나같이 굼벵이가 파먹었다. 이웃에 좀 팔아 보려고 갖고 왔지만, 꼴이 안 좋아서 곁님이 먹는다. 곁님은 오늘 즐거워 보인다. 일하는 자리에 와서 “니 고구마 먹고 갈래? 구울까?” 하고 묻는다. 곁님은 고구마를 구우러 간다. 나는 가게 일을 본다. 달끝이라 이래저래 셈값을 맞출 일이 많다. 일을 보며 자꾸 턱을 긁는다. 어쩐지 턱이 간질간질한데, 볼록하게 살이 돋고 턱 살결이 두꺼운 듯하다. 내 손이 거칠어서 그런가 했으나, 우리 고모처럼 얼굴이 두꺼워지는 듯했다. 나잇살이려나. “자, 이제 군고구마 먹을 수 있나?” “응. 먹으면서 해도 돼.” “뜨실 때 어서 먹어라. 뜨거우니 목장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81] 모든 날 인스타그램에 글을 올려 본 지 일곱 달이다. 여기에는 고요히 글을 올린다. 처음 인스타그램에 들어오니까 내가 아는 사람들이 알림으로 떴다. 뜨면 지웠다. 내 하루를 엿보는 듯해서 막았는데 아마 백쉰을 넘는 듯하다. 가까운 사람도 없지만 둘레 사람일수록 모르는 게 낫다고 여긴다. 마음이 쓰이면 감추고 마음이 안 가볍다. 우리 집 아이들을 동무로 삼고 싶지만 우리 아이들도 내가 쓴 글을 읽으면 시시콜콜 얘기한다는 둥 토를 달는지 몰라 얌전히 있는다. 그렇지만 인스타그램에 들어가면 딸 얼굴이 자꾸 뜬다. 문득 딸아이 인스타그램에 들어가서 둘러본다. 모두 새사람하고 찍은 사진이네. 어, 우리 아들이 좋아요 눌렸네. 덩달아 아들아이 인스타그램도 구경한다. 아들은 글을 여섯 올렸다. 다시 딸아이 칸으로 와서 사진을 크게 해서 보노라니 새사람 인스타가 이어진다. 새사람은 온통 딸하고 찍은 사진이다. 우리 새사람이 언제쯤 열었나 보다가 동영상을 본다. 어, 노래 부르네. 내가 새사람 노래를 무척 듣고 싶었는데 여기서 듣네. 가만히 들으며 노랫말 몇 마디를 옮겨적어서 찾아본다. ‘모든 날, 모든 순간’이라는 노래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