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오늘말’은 오늘 하루 생각해 보는 우리말 이야기입니다. 이 낱말 하나를 혀에 얹고 눈으로 보고 손으로 적으면서 생각을 새롭게 가꾸어 보면 좋겠습니다. 숲노래 말빛 오늘말. 먼눈 가까이에 있으나 잘 보이지 않아서 키워서 보려 합니다. 멀리 있기에 잘 안 보이는구나 싶어 확 끌어당겨서 보려 하고요. 가까이에 있는 조그마한 숨결을 키워서 보는 ‘키움눈’입니다. 키우는 눈이기에 ‘키움거울’이기도 해요. 멀리 있어도 보도록 이바지하는 ‘먼눈’이에요. 멀리 있기에 잘 보도록 돕는 ‘멀리보기’이고요. 여러 살림을 만지면서 조임쇠를 맞춥니다. 큰조임쇠로 척척 움직이고서, 잔조임쇠로 살살 헤아려요. 보는판에 놓은 숨결을 키움눈으로 보면서 이모저모 알아보려고 해요. 우리 곁에 있으나 미처 못 느낀 숨빛을 차근차근 맞아들이고 싶습니다. 이 바다에는 어떤 물톡톡이가 있을까요. 저 냇물에는 어떤 물톡톡이가 물살림을 펼까요. 이웃을 스스럼없이 만나서 이야기합니다. 동무를 환하게 반기며 웃습니다. 서로 티없는 눈망울로 마주하면서 노래하고, 함께 해밝게 생각을 나누며 오늘을 누려요. 거짓없는 마음으로 하늘빛을 품습니다. 이슬같은 마음씨로 바다를 안지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38] 아직 모르는구나 목요일이 가장 조용한데 바쁘다. 이틀치가 한꺼번에 들어왔다. 점심때가 지나도 끝내지 못했다. 도서관 강의를 듣기로 한 날인데, 지난주는 첫날인데도 깜빡했다. 오늘은 벼르지만, 마음이 바뀐다. 밥을 안 먹고 간다면 늦지 않게 닿는데 한 통 받은 전화로 찜찜했다. 어느 곳에 내 글이 두 꼭지 실릴 차례다. 마감날이 지난달 끝인 줄 알았는데 이틀 지났다. 내 셈은 끝날이니깐 닷새 당겨서 일요일쯤 보내려고 달력에 별을 셋이나 그려 놨는데 처음부터 마감을 잘못 알았다. 누리글(메일)로 청탁서가 왔다. 누가 ‘제때 안 보내면 다음에는 청탁 안 한다’는 말을 얼핏 들었다. 끝날까지 틈을 준다지만 저녁에 보낸다고 말했다. 도서관엘 갔다가 네 시에 마치고 보내도 넉넉하다. 그렇지만 말을 안 지키는 사람이 되어 마음이 무거웠다. 이런 일이 있을까 봐 미리 보내려 했다. 시집에 실린 글을 보냈더니, 새로 쓴 시를 보내야 한단다. 게다가 나처럼 바로 보내지 않는다고 했다. 마감 며칠 앞서 낸다는 말을 듣고 영글게 한다고 한 일이 이 노릇이 되었다. 보낸 뒤 아는 분한테 날짜를 넘겨서 죄송하다고 했다. 그러다가 시집에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37] 은행나무가 들려주다 은행나무가 사람을 만났기에 씨앗을 잇는다. 알알이 품은 냄새를 짙게 뿜자 달아나는 숨결로 뿌리를 내려가기 힘들다. 하늘로 뻗어야 할 나뭇가지가 누웠다. 한 사람이 품은 억센 넋에 은행나무는 고분고분 가지를 한껏 낮춘다. 사백 살 넘도록 도동서원 앞뜰 한 자리에서 풀꽃을 바라보고 파릇이 돋아나는 풀잎이 햇빛에 바지런히 일하고 열매를 맺고 다시 고요에 들어가는 모습을 헤아릴 수 없이 지켜보았을 테지. 바람결에 속삭이는 은행잎 말을 듣는다. 몇 사람이 손에 손을 잡아야 나무가 잡힐 듯 굵고 우람하다. 하늘로 올라가는 몸통은 찢어져서 기워놓았다. 이 은행나무를 보고 글집 나이를 가늠한다. 공자를 섬기는 옛집은 나무를 한 그루 심는단다. 느티나무나 소나무 향나무가 있을 테지만 글집이나 배움집에는 은행나무만 심는단다. 김굉필 기림돌을 먼저 둘러본다. 살아서 무엇을 했는지 새긴 글이 있다. 나무판으로 가려놓은 틈으로 들여다본다. 바닥 받침돌에 거북이 머리 둘이 마주본다. 사백 해가 넘도록 거북 부부는 무슨 말을 나누었을까. 등에 짊어진 돌에 한자를 빼곡하게 새겼다. 읽어내지는 못하지만 군데군데 칸이 빈다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36] 나흘만에 손질 한가위로 며칠 쉰다. 시골에서 어머니하고 시동생이 온다. 나물을 볶고 저녁을 했다. 한가위날 제사를 지내고 일터로 가서 나물을 손질하려고 했는데 가지 않았다. 일요일이라도 꼭 가서 손질해야지 생각했는데 작은딸이 아버지하고 동생 옷을 산다고 돌아다니다가 못 갔다. 밤에 잠을 자다 가도 가게 나물만 떠오른다. 쉬다가 나흘째 되는 아침, 도매시장도 논다. 일찍 나가서 나물을 손질한다. 과일을 앞으로 당기고 나물을 본다. 깻잎은 다 나가서 자리가 휑하다. 실파 하나는 누렇게 떠서 뿌리 쪽을 조금 남기고 잘라 버렸다. 쑥갓은 누렇게 말라서 모두 버린다. 부추는 몇이 물렀다. 뭉개진 것을 고르는데 장갑에 달라붙는다. 걸레로 장갑을 닦고 다시 담았다. 양상추는 껍데기를 벗기니 알이 아주 작다. 비싸게 들어왔는데 크게 잃는다. 표고버섯은 물기를 먹어 곰팡이가 피었다. 골라 버리고 하나에 모아 담았다. 깐양파가 다 나갔다. 열 알을 까서 담았다. 대파는 세 단 까고, 묶인 대파를 비닐에 담아 세워둔다. 묵은 꽈리고추 하나는 무른 걸 골라내고 뒤에 둔다. 양배추는 어제 곁님이 잘라놓아서 넘어간다. 당근 자리도 휑하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35] 심장 차를 세우고 걸어오면서 시어머니를 바라본다. 작은 몸집이 더 작다. 기둥에 서서 나를 기다린다. 멀리서 보니 착한 아이가 두리번거리면서 엄마가 오기를 기다리는 듯했다. 어머니 팔을 잡는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휠체어가 있다. 종이에 이름을 적고 하나 빌렸다. 어머니를 태우고 가방을 뒤에 걸고 민다. 한 층 내려가서 심장내과에 갔다. 주민증이 없다고 하니 원무과 가서 접수증 떼오란다. 밀고 가기에는 번거롭다. 이름으로 봐 달라고 여쭈었다. 종이를 뽑아서 준다. 돈을 먼저 내고 옆방에서 심전도 검사를 한다. 바로 누워야 하는데 등이 굽어서 다리를 세우고 베개를 등까지 괴었다. 옷을 걷어 올린다. 어머니 배가 등에 붙은 듯 쑥 들어갔다. 젖꼭지는 콩알보다 더 작다. 앙상한 몸집이 안쓰럽다고 여기니 눈물이 몰려오더라. 누우니 시할머니가 숨이 멎을 때를 보는 듯했다. 고개를 저으며 떠오른 생각을 지운다. 이제 한 층 더 내려가서 가슴 사진을 찍는다. 하늘빛 겉옷을 벗고 팔이 긴 티를 벗고 속옷바람으로 찍는다. 휠체어를 가슴 사진판 바로 밑에 세운다. 힘이 떨어지면 그대로 앉을 수 있게 했다. 두 팔 벌러 판을 껴안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이레말’은 이레에 맞추어 일곱 가지로 들려주는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생각을 말에 슬기롭고 즐거우면서 곱게 담아내는 길을 밝히려고 합니다. 이레에 맞추어 다음처럼 이야기를 폅니다. 달날 - 의 . 불날 - 적 . 물날 - 한자말 . 나무날 - 영어 . 쇠날 - 사자성어 . 흙날 - 외마디 한자말 . 해날 - 겹말 숲노래 우리말 알량한 말 바로잡기 공론 空論 탁상의 공론에 불과한 것은 물론이다 → 더구나 책상수다일 뿐이다 ‘공론(空論)’은 “실속이 없는 빈 논의를 함. 또는 그 이론이나 논의 ≒ 허론”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숙덕거리다·쑥덕거리다’나 ‘숙덕말·쑥덕말·숙덕질·쑥덕질’이나 ‘겉말·겉소리·겉얘기’로 손질합니다. ‘뜬구름·뜬말·뜬소리·뜬얘기·뜬하늘’이나 ‘말·말잔치·수다·얘기·이야기’로 손질할 만하고, ‘책상말·책상수다·책상얘기’나 ‘텅비다·빈말·빈소리·빈얘기·빈수레·빈수다’로 손질해도 어울려요. 학자들끼리 탁상공론으로 끝나고 마는 → 배운이끼리 쑥덕대다가 끝나고 마는 → 먹물끼리 떠들다가 끝나고 마는 → 먹물끼리 책상얘기로 끝나고 마는 → 먹물끼리 겉얘기로 끝나고 마는 《너, 행복하니?》(김종휘, 샨티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숲에서 짓는 글살림”은 숲을 사랑하는 눈빛으로 시골자락에서 아이들하고 살림을 짓는 길에 새롭게 맞아들여 누리는 우리말 이야기입니다. 숲에서 짓는 글살림 31. 꽃바르다 여러 고장에서 살아 보면서 곳곳에서 달리 쓰는 말씨를 느낍니다만, 이 가운데 매우 다른 말씨 한 가지가 있으니 ‘내려오다·올라가다’입니다. 제가 나고자란 고장은 인천입니다. 모든 사람이 이렇게 말하지는 않으나, 적잖은 분들은 인천에서 수원이나 안산으로 갈 적만 해도 ‘내려간다’고 했습니다. 충청도나 대전에 갈 적에도 ‘내려간다’고 하지요. 그렇다고 인천에서 강화나 문산이나 파주에 가기에 ‘올라간다’고 하지 않아요. 인천서 서울로 갈 적에 비로소 ‘올라간다’고 합니다. 재미나다고 해야 할는지, 부산에서 인천에 오는 분도 더러 ‘올라간다’고 합니다. 인천서 부산에 갈 적에 ‘내려간다’고 하는 분도 많고요. 인천을 떠나 충북 충주에 살 적에는 대전으로 ‘올라간다’고 하는 분을 꽤 보았습니다. 대전에서는 충청도 곳곳으로 가는 길이 ‘내려간다’가 될 테지요. 전라도에서는 어떨까요? 먼저 광주에서 이곳저곳으로 ‘내려간다’고 합니다. 다른 고을에서 광주로 ‘올라간다’고 합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숲노래 푸른책 28 흙 - 숲은 일하지 않는다 《흙 1》 혼죠 케이 성지영 옮김 또래문화 1997.10.25. 《흙 1》(혼죠 케이/성지영 옮김, 또래문화, 1997)를 읽으면 씨앗하고 흙이 어떻게 어우러지면서, 사람하고 숲은 서로 어떤 사이인가를 짚는 줄거리가 흐릅니다. 이 그림꽃은 일본에서 《SEED》로 나왔습니다. “씨앗”이란 이름이던 책을 왜 “흙”으로 바꾸었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처음 나온 이름대로 《씨앗》이라 해야 걸맞을 뿐 아니라, 이 그림꽃에 나오는 사람이 늘 하는 일은 ‘씨앗 한 톨을 새롭게 심고, 씨앗 두 톨을 이웃한테 나누고, 씨앗 석 톨을 들숲바다에서 누구나 누리는 사랑을 삶으로 펴는 하루’라고 할 만합니다. 우리는 누구나 숲사람입니다. 다만, 요새는 스스로 숲빛을 잊다가 서울사람(도시인)으로 바뀝니다. 오늘날 시골사람조차 겉만 시골몸일 뿐, 속은 서울내기로 바뀌었습니다. 숲을 숲으로 바라볼 줄 안다면, 숲에서는 아무도 일을 안 하는 줄 알 수 있습니다. 숲에서는 누구나 노래하고 춤추고 놀며 어우러져요. 서울에서는 모두 일만 합니다. 서울에서는 노래·춤·놀이가 없습니다. 돈을 버는…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34] 짜증 손톱 뿌리가 있는 한 마디가 거무데데하게 부풀고 살갗이 뜨겁고 따갑다. 아들이 꺼내준 얼음을 비닐에 담아 둘둘 감는다. 밥이 모자라서 얼린 밥을 데웠다. 살짝 묶은 비닐 틈으로 쏟아지는 뜨거운 김에 살갗이 익었다. 얼음이 다 녹자 얕은 컵에 얼음을 담고 물을 담았다. 손가락을 물에 담그는데 곁님이 전화했다. 아버님은 벌을 지킨다고 못 오신다. 말벌이 벌을 물고 날 적에 무거워 느리게 날 때 파리채로 잡아야 한다고 시어머니가 오신다고 했다. 삼촌만 온다고 했는데 나도 모르게 짜증이 났다. 이젠 가게 일이 내겐 힘들다. 목이 아프고 손마디 뼈가 튀어나와서 아프다. 아무래도 손마디가 바로 펼쳐지지 않는다. 내 나이쯤 되면 일을 가볍게 해야 하는데 일이 힘들어 스스로 울컥거리는 날이 잦다. 손도 데어 나물을 씻고 주걱으로 볶는 판에 달아오르니 덴 살갗이 아프다. 쌓아 놓은 설거지를 해서 포개 놓았는데 컵이 떨어져 조각났다. 방금 딸이 잔이 예쁘다고 하면서 커피를 마신 그 잔이다. 손을 많이 써야 하는데 어쩌다가 데고 컵이 떨어져 깨졌을까. 한꺼번에 이런 날이 잘 없는데 또 뭔 일이 일어나려나, 짜증은 왜 자꾸만…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33] 양복 작은딸이 십이월에 시집간다. 식구들이 다 모이는 한가위에 아빠와 동생 양복을 사주겠다고 했다. 한 푼이라도 아쉬울 텐데,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선물이라면서 지갑을 연다. 나는 두 사람한테 비싼옷 사지 말자고 했다. ㅇ에 모인 옷가게에서 싸게 파는 옷을 사자고 했다. ㄱ에 들렀다. 큰딸이 나서서 옷을 고른다. 옷가게 지기도 고르고 몇 벌을 입었다 벗었다 드디어 맞는 옷을 찾는다. 파란빛이 도는 옷은 등판이 커 보인다. 이제는 나이가 들어서 다음해에 입기에는 덜 어울릴 듯하다. 파랗지도 까맣지도 않은 잿빛이 도는 까만빛이 몸에 착 붙는다. 옷을 입으니 잘 받는다. 처음 이 사람을 보았을 적에 입고 온 옷에 반했다. 잿빛인 짧은 웃옷에 파란 바지가 무척 어울렸다. 몸매가 날씬했다. 딸이 골라준 옷을 입고 거울 앞에 선 모습을 보니 그때 모습이 오락가락한다. 아직 옷발이 잘 받는다. 열 해 앞서까지는 양복이 일옷이었다. 오랜만에 새 양복을 입는다. 빨간 넥타이도 고르고 웃옷도 고른다. 작은딸이 돈을 내고 나는 바람막이와 가벼운 바지를 고른다. 이제 아들 양복을 산다. 자리를 옮겨 젊은이 옷집으로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