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곁말’은 곁에 두면서 마음과 생각을 살찌우도록 징검다리가 되는 말입니다. 낱말책에는 아직 없습니다. 글을 쓰는 숲노래가 지은 낱말입니다. 곁에 어떤 낱말을 놓으면서 마음이며 생각을 빛낼 적에 즐거울까 하고 생각하면서 ‘곁말’ 이야기를 단출히 적어 봅니다. 숲노래 곁노래 곁말 6 걷는이 저는 부릉이(자동차)를 거느리지 않아요. 부릉종이(운전면허)부터 안 땄습니다. 으레 걷고, 곧잘 자전거를 타고, 버스나 전철이 있으면 길삯을 들여서 즐겁게 탑니다. 걸어서 다니는 사람은 ‘걷는이’입니다. 걸으니 ‘걷는사람’입니다. 걸으며 삶을 누리고 마을을 돌아보는 사람은 ‘보행자’이지 않아요. 걷다가 건너니 ‘건널목’일 뿐, ‘횡단보도’이지 않습니다. 아이랑 걷든 혼자 걷든 서두를 마음이 없습니다. 시골에서든 서울에서든 거님길 귀퉁이나 틈새에서 돋는 풀꽃을 바라봅니다. 어디에서나 매캐한 부릉바람(배기가스) 탓에 고단할 테지만 푸르게 잎을 내놓는 나무를 살며시 쓰다듬습니다. 걷기 때문에 풀꽃나무하고 동무합니다. 걸으니까 구름빛을 읽습니다. 걸으면서 별빛을 어림하고, 걷는 사이에 아이들한테 노래를 들려주거나 함께 뛰거나 달리며 놀기도 합니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109] 개복사나무 열네 살에 멧산을 둘 넘고 학교에 다녔다. 집으로 돌아오는 등성이 무덤가 잔디밭을 따라 걷다가 살짝 쉬면서 숨을 고른다. 멧골과 멧골 사이쯤에 복숭아나무가 있었다. 비렁길에 자주 쉬면 복숭아가 바로 보였다. 복숭아를 볼 적마다 군침이 돌았다. 똘기 때부터 눈길이 갔다. 자두보다 조금 굵은 푸른 복숭아에 하얗게 털이 붙었다. 옷에 쓱쓱 닦고 한입 깨물어 맛보지만 쓰다. 먹지 못하는 개복숭아이다. 맨손으로 만지고 옷에 털이 묻어 몸이 가려웠다. 우리 마을에서는 본 적이 없는 열매이다. 어머니가 가끔 사 오는 복숭아 통조림만 먹었다. 절인 복숭아는 부드럽고 걸쭉한 물은 달았다. 우리는 복숭아 열매보다 통조림으로 봉숭아를 맛본 셈이다. 이제 나무로 땔감을 쓰지 않으니 마을 앞산 뒷산 깊은 골짜기에 복사꽃이 활짝 피었다. 사람 손길 없이도 자라 저절로 열매를 맺는다. 어린 날부터 그 자리에 있던 나무이지 싶은데, 땔감을 하느라 복숭아는 구경하지 못했다. 큰오빠가 군대 간 뒤로 복숭아 통조림을 맛보다 어머니는 이웃 탑리 사람한테 흉이 난 복숭아를 얻어 설탕을 넣고 푹 삶는다. 시원하게 두고 여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108] 모과나무 들은 말인데, 할아버지는 살림을 많이 물려받았다. 그렇지만 논과 밭을 잘 건사하지 못해 우리 아버지가 태어났을 적에는 알거지가 되었다. 집을 자주 옮기고 옛어른이 쓰던 옆집에 아주 자리를 잡았다. 나는 옆집을 가끔 훔쳐보았다. 흙담 너머로 기와집과 매끈한 마루가 있고 마당에 텃밭을 가꾸었다. 대문은 나무로 짰고 아주 높았다. 대문 위쪽으로는 흙담을 지어 멍석이며 연장을 두었다. 모과를 주우러 가고 숨바꼭질할 적에 옛어른이 살던 옆집에 들어갔다. 내가 뒤안에 간 까닭은 모과 때문이다. 모과나무는 언덕집 나무인데 두 집 사이에 자랐다. 뒷집은 친척이자 오빠뻘과 동생뻘 집이라서 자주 갔다. 뒷집을 가려면 마을을 반 바퀴 돌아야 해서 잔꾀를 부렸다. 우리 담을 밟고 돌 틈에 자란 나무를 잡고 뒷집에 갔다. 뒷집은 마을이 훤히 보이고 담은 어린 내 허리 높이로 조촐했다. 담 곁에 모과나무가 있다. 머스마들은 모과나무에 올라가 놀기도 했다. 나는 노랗게 익은 모과가 너무 갖고 싶었다. 모과가 떨어지면 옛어른이 살던 집으로 들어가야만 했다. 그렇게 내 손에 들어온 모과를 만지면 미끈미끈하고 냄새가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발걸음 17] 눈 어린 날 새벽에 눈을 뜨면 문밖이 환한 적이 있다. 달빛에 밝아서 환하기도 하지만 밤새 눈이 내렸다. 잠결이지만 문을 열어 달빛인지 눈이 내렸는지 눈으로 보고 다시 잠든다. 내가 먼저 마당에 눈을 밟고 싶었다. 하얀 마당에 발자국을 내고 신발 자국을 동그랗게 찍는 재미가 있었다. 어떤 날은 아버지가 우리가 자는 사이에 눈을 치워버렸다. 나는 아버지한테 눈을 다 치웠다고 칭얼거렸다. 어떤 날은 발목이 잠기도록 내려서 온 집안이 눈을 친다. 아버지는 눈치는 나무판으로 밀고 삽으로 떴다. 나는 동생하고 작은오빠하고 눈싸움하다가 머리를 맞고 등을 맞고 울기도 했다. 눈싸움이 끝나면 맨손으로 눈을 단단하게 뭉친 다음 눈 밭을 굴렸다. 마당 이리저리 돌면 눈이 뭉치고 차츰 커졌다. 골목으로 다니면서 눈을 크게 굴렸다. 더 크게 굴리다가 부서지기도 하면 다시 굴렸다. 굴린 눈덩이를 포개니 눈사람이 되었다. 나무를 꺾어 코와 눈썹과 입술을 달아주었다. 아버지가 수레에 담은 눈을 골목 끝 도랑에 쏟아부었다. 아버지가 몇 수레 부어 놓은 수북한 눈을 삽으로 탕탕 치면서 고르고 미끄럼타기를 했다. 어린 날에는 눈이 자주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106] 옥수수 여름이면 대김이(마을밭이름) 밭둑에 옥수수가 올라온다. 옥수수가 굵고 알이 여물면 꺾는다. 마당에 놓고 겹겹이 쌓인 잎을 하나씩 깠다. 알갱이는 촉촉하고 털이 보드랍다. 수북하게 쌓인 껍데기는 소먹이로 던져준다. 어머니는 마당에 걸어 놓은 솥에 불을 때서 옥수수를 삶는다. 달디단 가루를 뿌리고 굵은소금을 뿌린다. 둥근 그릇에 담아 마루에 앉아 입김으로 식혀서 먹는다. 대에 스며든 단물 짠물까지 쪽쪽 빨아 먹는다. 물기가 다 빠지면 꽁지에 꼬챙이를 꽂았다. 우리가 까먹은 대가 바싹 마르면 등을 긁었다. 저녁만 되면 어머니 아버지는 나한테 등을 긁어 달라고 했다. 고사리손으로 등을 긁기에는 어머니 아버지 등이 넓었다. 어머니는 간지럽다고 더 세게 긁으라고 한다. 손톱자국이 벌겋게 나도 시원하다면서 코를 골며 잠이 든다. 어머니 등은 미끌미끌하고 촉촉했다. 나는 등이 가려우면 문설주에 기대 비비다가 어머니한테 등을 내민다. 어머니 손끝이 너무 매워서 등이 아프다. 까끌까끌한 옥수수대는 참한 노릇을 한몫 거든다. 옥수수는 여름 한철 맛만 보는데 꺾지 않아서 먹을 때를 놓치면 알이 딱딱하고 뻣뻣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107] 돌나물 장골 길가 바닥에 돌나물이 잔뜩 자랐다. 어린 날에는 길바닥에 수북하게 돋지 않았다. 나는 돌나물을 뜯으러 마을 어귀에 있는 느티나무를 지나 점낫골 길목 오르막에만 갔다. 동무와 둘이서 돌나물을 뜯는다. 돌길이지만 바위가 얼마 없는데 그곳에는 바위가 있었다. 바위와 바위 밑에도 나물이 자랐다. 채송화보다 잎이 넓지만 닮았다. 바위에 붙은 돌나물을 연필 깎는 칼로 하나하나 잘랐다. 바위 둘레를 돌며 더 푸르고 큰 나물만 골라 땄다. 노란 듯 푸른 어린 돌나물은 작다. 뜯어도 부피가 늘지 않고 딸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내가 뜯지 않아서 어린 돌나물은 한숨을 돌렸을지 모른다. 어머니도 밭일 마치고 오는 길에 돌나물을 뿌리째 걷어서 집에서 다듬는다. 어머니는 돌나물에 양념을 섞어서 참기름을 붓고 큰 그릇에 비볐다. 나는 풀내음이 나서 나물을 걷어내고 먹지만 아버지는 국물이 하얀 물김치도 잘 드셨다. 돌나물은 돌을 시원하게 하고 우리도 시원하게 하는 숨결이네. 피를 잘 돌도록 도와주어서 돌나물이라 했을까. 막 돋았을 때 먹으라고 했을까. 멧산에 돌이 많아도 통통하게 물을 머금은 나물이 돌을 붙잡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105] 고구마꽃 한가위가 다가올 무렵이면 앞산밭에서 고구마를 캤다. 아버지가 낫으로 줄기를 걷어 한쪽으로 모으면 우리는 뽑힌 고구마는 줍고 흙에 남은 고구마는 호미로 살살 캔다. 고구마가 깊이 박혔는데 흙을 깊이 안 파고 힘으로 당기다가 똑 부러지거나, 호미에 찍혀 흉을 냈다. 고구마를 다 캐고 어머니는 반찬 한다며 고구마 줄기를 땄다. 고구마를 캐서 앞산을 내려오는 길은 신난다. 내리막길이 이어져 다다다 이리저리 떠밀리다가 멈추면서 내려왔다. 캔 고구마는 자루째로 할아버지가 주무시는 윗목에 둔다. 겨울밤이면 뒷방에서 아버지 어머니는 가마니를 짜고 새끼줄을 꼰다. 나는 아버지한테 물어서 새끼줄을 꽈 보지만, 두 손으로 비벼도 짚이 잘 꼬이지 않자 싫증 내고 뒷방에 간다. 아버지가 짜는 가마니를 돕는다고 걸어 놓은 돌을 넘겨주고 고리에 짚을 걸어주었다. 밤이 깊어 갈 무렵이면 어머니는 배추뿌리를 씻어 주고 고구마도 깎는다. 날것으로 깨물면 천둥소리가 난다. 소죽 끓인 불씨에 고구마를 묻어 두다가 새까맣게 타기도 하지만 속은 노릿하다. 군고구마를 먹으면 우리 입술은 까맣다. 어린 날에는 타박한 밤고구마가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104] 마가목 멧높이가 천 미터를 넘는 염불봉 바위 옆에 마가목 열매가 익어간다. 나뭇잎이 푸르게 우거진 숲에 발갛게 익은 첫 열매가 눈에 확 띈다. 마가목 줄기로 채찍질하면 말이 죽는다는 옛말을 들었는데, 우리 할아버지는 지게 작대기에 맞아서 죽다 살았다. 할아버지가 아기일 적에 할아버지 어머니가 젖만 먹인다고 할아버지 아버지가 꾸지람했다. 일도 안 하고 밍(무명)만 만지고 물레로 실만 감는다고 못마땅하게 여겼단다. 할아버지 아버지가 지게 작대기를 들고 할아버지 어머니를 때리려 했다. 외동아들인 할아버지를 안았는데, 설마 때리기야 할까 씨름하다가 내리치는 작대기를 안 맞으려고 그만 아기인 할아버지를 내밀었다. 할아버지는 작대기에 그대로 맞아 다리가 부러졌다. 이 일로 할아버지는 어린 날부터 제대로 걷지 못했다. 제대로 걷지 못해서 말을 타고 다녔다. 할아버지는 할아버지네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세 해 동안 살림을 야금야금 바닥냈단다. 몸이 안 좋아서 농사를 짓지 못했다. 돈이 없으니 땅이라도 팔아서 그때그때 곁에서 비위 맞추는 사람들 꾐에 넘어갔다. 마음이 좋은 날이면 논 한 뙈기 주고, 절에도 떼주었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오늘말’은 오늘 하루 생각해 보는 우리말 이야기입니다. 이 낱말 하나를 혀에 얹고 눈으로 보고 손으로 적으면서 생각을 새롭게 가꾸어 보면 좋겠습니다. 숲노래 말빛 오늘말. 뒤집다 아침에는 아침을 읽습니다. 낮에는 낮을 보고, 저녁에는 저녁을 마주하고, 밤에는 밤을 품습니다. 말과 삶이 다르다면 아침을 아침으로 안 읽거나 밤을 밤으로 못 읽는 탓이지 싶어요. 속임짓을 하려고 말과 삶이 어긋난 사람이 있으나, 삶을 모르기에 다른말삶인 사람이 수두룩해요. 글을 많이 배우면 똑똑하지 않아요. 글을 많이 익히기에 글꾼일 뿐입니다. 살림길을 등질 적에는 오락가락합니다. 삶얼을 짓지 않기에 왔다갔다하더군요. 살림꽃을 돌보는 슬기로운 길로 가지 않으니 갑자기 옮겨타거나 뒤집는 짓을 해요. 눈가림하고 입씻이는 나란히 흐릅니다. 앎꽃도 나쁘지 않으나 삶꽃이 먼저입니다. 생각이 밝은 사람은 숲이라는 터전을 따사로이 어루만지면서 아이랑 놀 줄 알아요. 숲을 등지거나 나몰라라 하는 이들은 겉보기로만 빠삭하고 빈털터리이기 일쑤입니다. 살림넋이 없으니 엇가락이에요. 배울거리를 글에서만 찾으니 어긋나요. 아는힘은 푸르게 들을 안고 파랗게 하늘을 맞이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오늘말’은 오늘 하루 생각해 보는 우리말 이야기입니다. 이 낱말 하나를 혀에 얹고 눈으로 보고 손으로 적으면서 생각을 새롭게 가꾸어 보면 좋겠습니다. 숲노래 말빛 오늘말. 빗발치다 아기는 모두 갖춘 숨결로 태어납니다. 아기를 품은 어버이는 여태까지 잊거나 놓던 온살림을 아기 곁에서 가볍게 다스리면서 하루하루 새롭게 나는 살림을 짓습니다. 어버이도 처음에는 아기였는데 왜 어른이란 몸뚱이로 오는 길에 오롯한 숨빛을 잊거나 잃을까요? 마음껏 뛰놀면서 신나게 익히는 나날이 아닌, 덮어놓고 배움책을 펴다가 들이붓듯 배움수렁(입시지옥)에 사로잡히기에 온것을 잊는구나 싶어요. 어깨동무가 아닌 할큄질에 내쏨질을 하려고 동무 사이에서 화살을 쏘는 수렁에 잠겼으니, 그만 이웃을 쳐부수거나 뒤흔들거나 물어뜯고서 혼자 올라서려는 마음으로 바뀌고 온빛을 잃겠지요. 빗발치는 채찍은 누가 일으킬까요? 남이 다그치나요? 스스로 갉나요? 남이 때리거나 찌르나요? 스스로 후리거나 후비지 않나요? 옹글게 사랑을 갖추어 태어난 아기로 살다가 아이라는 소꿉놀이를 지나 어른이란 자리로 온 우리 스스로를 바라보기로 해요. 천에 글씨를 적어 봐요. 다툼길 아닌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