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달겨레소리 바람 바람 글님 ] [토박이말 살리기]-들겨울달(11월)에 알고 쓰면 좋을 토박이말 올해는 여느 해보다 일찍 겨울 맛을 보았기 때문에 서릿가을이란 말이 좀 늦다 싶은 생각도 듭니다. 아침 일찍 마실을 다니시는 분이나 밖에 수레를 세워 두시는 분은 벌써 무서리를 보셨을 것입니다. 제가 사는 곳엔 고까잎이 예쁘게 달려 있는 나무가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조금 높은 곳에 사시는 분들 가운데에는 푸르던 감잎에 서리가 내려 고까잎이 되지도 못하고 잿빛으로 바뀌는 것을 보고 아쉬움을 느끼신 분도 계셨을 것입니다. 그래도 가을 나들이를 떠나시는 분들은 코숭이 곳곳에 남아 있는 가을빛들을 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머지않아 바람에 날려 떨어지는 노란 은행잎이며 이미 떨어져 가루가 된 가랑잎들이 달리는 수레를 따라 날리겠지요. 일찍 잎을 떨군 나무는 졸가리만 남아 차가운 바람을 가르고 서 있기도 할 겁니다. 된서리가 내리고 나면 감나무에는 거둘 만큼 거두고 남겨 둔 까치밥이 외롭게 매달려 까치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싸늘한 바람이 부는 찬바람머리가 되면 가으내 재채기와 콧물 때문에 괴로워하던 분들도 조금 수월해지는 때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입
[ 배달겨레소리 바람 바람 글님 ] [토박이말 살리기]1-83 마닐마닐하다 오늘 알려 드릴 토박이말은 '마닐마닐하다'입니다. 이 말을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음식이 씹어 먹기에 알맞도록 부드럽고 말랑말랑하다'라고 풀이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보기월로 홍명희의 임꺽정에 나오는 "음식상을 들여다보았다. 입에 마닐마닐한 것은 밤에 다 먹고 남은 것으로 요기될 말한 것이 겉밤 여남은 개와 흰무리 부스러기뿐이었다."를 들었습니다. 고려대한국어대사전에서는 '(음식이) 씹어 먹기에 알맞게 무르고 부드럽다.'라고 풀이를 해 놓고 "마닐마닐한 군고구마는 겨울에 누릴 수 있는 하나의 즐거움이다."는 보기월을 들었습니다. 두 가지 풀이가 비슷한데 둘을 더해 다음과 같이 다듬어 보았습니다. 마닐마닐하다: 먹거리가 씹어 먹기에 알맞게 무르고 부드러우며 말랑말랑하다. 이 말은 저처럼 이가 튼튼하지 못한 사람들이 자주 쓸 수 있는 말입니다. 이가 좋지 않다고 마닐마닐한 것만 찾으면 이가 더 안 좋아진다는 것도 잘 아실 것입니다. 너무 단단한 것을 많이 드시면 이를 다칠 수도 있으니 알맞게 단단한 것들을 꼭꼭 씹어서 부드럽게 만들어 먹는 버릇을 들이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마닐마닐하다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숲노래 우리말 : 얄궂은 말씨 손질하기 3 가운데 것 있다 우리말 ‘가운데’는 “먹는 가운데”나 “일하는 가운데”처럼 안 씁니다. 이런 자리에는 ‘동안’이나 ‘사이’를 넣어요. “그런 가운데”는 ‘그동안·그사이’로 고칠 노릇이요, ‘그런데·그러나’로 고쳐도 어울립니다. 보기글은 “어떤 것이 성숙으로 가는 길인지”처럼 쓰며 ‘것’이 군더더기입니다. “어떤 길이 어른스러운지”나 “무르익는 길이 어디인지”쯤으로 손봅니다. ‘있다’는 “-하고 있다”처럼 쓰면 겹말입니다. “의심하고 있었다”는 “의심하였다”로 먼저 고쳐쓰고, ‘묻다·되묻다’나 ‘헤맸다’로 더 고쳐씁니다. 그런 가운데 나는 어떤 것이 성숙으로 가는 길인지 스스로 의심하고 있었다 → 그동안 나는 무르익는 길이 어디인지 스스로 헤매었다 → 그사이 나는 어른스런 길이 어떠한지 스스로 되물었다 《평론가 매혈기》(김영진, 마음산책, 2007) 37쪽 차제 고식적 운영 전문경영인 뭔가 있어 보이려고 애쓸수록 군말이 붙습니다. 더 드러내려고 할 적에는 겹말이 불거집니다. 틀을 세우거나 내세우려는 마음이기에 딱딱하거나 센 말씨를 고른다고 하지만, 스스로 할 말이 없거나 생각이 아
[ 배달겨레소리 바람 바람 글님 ] [노래에서 길을 찾다]20-꿈 오늘 들려 드릴 노래는 '꿈'입니다. 이 노래는 4316해(1983년)에 나왔는데 조창훈 님이 노랫말과 가락을 지었으며 '정유경' 님이 부른 노래입니다. 이 노래는 노랫말과 가락을 지은 '조창훈' 님이 높배곳배움이(고등학생) 때라고 하는데 꿈을 꾸는 듯한 풋풋한 사랑을 아름답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노랫말 가운데 '은은하다', '향한', '시계'를 빼고 모두 토박이말로 되어 있어 더 반가웠습니다. 하얀 별빛이 쏟아지는 곳에서 내 마음을 털어 놓았다는 말과 뿌연 안개가 떠다니는 꿈속같은 곳에서 내 눈빛을 입김에 띄워 보냈다는 말이 남다르고 참 예쁩니다. 꽃잎에 물들인 빠알간 사랑이 어두운 하늘을 눈물로 적신다는 말에 절로 안타까움과 슬픔이 느껴집니다. 바람에 부딧혀 사라졌다는 말이 노래 이름이 꿈인 까닭을 알려 주는 것 같습니다. 빗소리에 눈을 떴을 때 귀에 익은 시계소리가 들렸다고 하니 더욱 뚜렷해집니다.^^ 여러분도 노랫말을 되새겨 보시고 나름대로 풀이를 해 보시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아래에 노랫말과 함께 노래까지 이어 놓을 테니 들으시면서 저마다의 울림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오늘도…
[ 배달겨레소리 한실 글님 ] 우리말살이는 겨레와 나라를 바로 세우는 바탕이다 4-2. 우리말을 살려 쓸 자리는 어디 어디일까? 셋째 우리말을 살려 쓸 자리는 배움책(교과서)입니다. 참말은 이것이 첫째 자리입니다. 아이들에게 우리말을 가르쳐 배우도록 해야 하는데 첫배곳(초등학교)에서 배우는 말이 우리말은 아주 드물고, 거의 다 니혼 한자말입니다. 쉬운 우리말을 배워 쓸 자리에 어려운 한자말을 먼저 가르쳐 우리말 쓸 때를 처음부터 빼앗습니다. 참으로 슬프고 가슴 아프고 서럽고 눈물 나는 일입니다. 종살이 벗어난 지 일흔다섯 해가 지났는데도, 왜말인 ‘학교’라는 말을 그대로 쓰면서 아직도 그곳에서 니혼 한자말을 으뜸으로 가르치면서도 책 지은이도, 펴낸이도, 배곳 가르침이(교사)도, 나라일꾼(교육청, 교육부 사람)도 왜말 가르친다는 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그래서 내내 우리말은 가르치지 않고 어려운 한자말을 가르쳐요. 그러다 보니 첫배곳을 나와 갑배곳(중학교)에 가면 더 많은 한자말을 배워 익히고 높배곳(고등학교)을 마칠 때쯤 되면 우리말을 거의 모를 뿐만 아니라 못 쓰는 사람이 됩니다. 거기다 한배곳(대학) 까지 나오면 우리말은 토씨로나 쓰고, 한자말로 못 바꾸는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이레말’은 이레에 맞추어 일곱 가지로 들려주는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생각을 말에 슬기롭고 즐거우면서 곱게 담아내는 길을 밝히려고 합니다. 이레에 맞추어 다음처럼 이야기를 폅니다. 달날 - 의 . 불날 - 적 . 물날 - 한자말 . 나무날 - 영어 . 쇠날 - 사자성어 . 흙날 - 외마디 한자말 . 해날 - 겹말 물날 이레말 - 한자말 알량한 말 바로잡기 12 대중 大衆 대중을 위한 문화 시설 → 널리 누리는 살림 대중 앞에 서다 → 사람들 앞에 서다 대중을 모아 놓고 연설하다 → 모두 모아 놓고 얘기하다 ‘대중(大衆)’은 “1. 수많은 사람의 무리 2. [사회 일반] 대량 생산·대량 소비를 특징으로 하는 현대 사회를 구성하는 대다수의 사람. 엘리트와 상대되는 개념으로, 수동적·감정적·비합리적인 특성을 가진다 3. [불교] 많이 모인 승려. 또는 비구, 비구니, 우바새, 우바니를 통틀어 이르는 말”을 가리킨다고 합니다만 ‘가볍다·손쉽다·수월하다·쉽다’나 ‘고루·고루고루·고루두루·골고루·두루·두루두루’나 ‘곳곳·여기저기·여러모로·이곳저곳·이래저래·이쪽저쪽’으로 손질합니다. ‘귀·눈·눈귀·눈길’이나 ‘꽃·물결·수수하다·투박하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79] 재 우리 집 아궁이는 네 군데가 있어 돌아가며 재를 퍼냈다. 아궁이에 불을 때면 보드라운 재가 쌓인다. 나는 재를 퍼내는 심부름이 싫었다. 가루가 날고 무거운 망태를 들고 높은 부엌문을 넘기가 힘들었다. 그렇지만 재가 가득 차면 삽으로 퍼내야 아궁이에 넣은 나무가 솥바닥에 닿지 않는다. 새끼를 꼬아 만든 무거운 삼태기에 재를 퍼담아 거름에 쏟아붓는다. 내가 아주 어릴 적에 어머니는 재로 그릇을 씻은 적이 있다. 짚에 재를 담아 물을 부으면 노르스름한 물이 나왔다. 그 물로 빨래를 했다. 할아버지는 몸이 안 좋아서 마당을 기어다니는데, 옷에 흙먼지가 붙고 더러웠다. 비누는 없고 잿물로 빨아도 한복 깃을 달 풀이 없어 이웃한테서 얻어 손질했다. 어머니가 갓 시집 왔을 때는 쌀도 없어 밥풀도 없었다. 아버지는 큰집살이 하면서 밥 먹을 적에 쌀밥을 골라내서 상 밑에 두었다가 들이나 밭에 갈 적에 어머니를 주면 어머니는 그 밥알로 할아버지 저고리 깃을 붙이고 바느질을 해서 입었다. 아버지는 임자 몰래 먹느라 눈치를 보았다. 어린 날에는 보리 짚단에 불을 지펴 밥을 했다. 산에 나무가 자라는 대로 땔감으로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풀꽃나무이야기 78] 까마중 어머니 말로 나는 어릴 적에 입이 짧았다고 했다. 잘 안 먹었다는 말인데 잘 안 먹었는지 아니면 먹지 못했는지 모르나 아마 먹을거리가 없고 있는 거라곤 어린 내 입맛이 없어서 그런지 모른다. 밭둑이나 풀밭에는 곡식과 다르게 지심(풀)이 있었다. 고추잎처럼 보드랍고 얼핏보면 머루처럼 보이는 말랑한 열매가 까맣게 익었다. 우리는 ‘개멀구’라 하고 어머니는 ‘강태’라 했다. 말랑한 열매는 진주목걸이 알만한 게 살짝만 눌러도 터져서 옷에 튄다. 토마토를 잘랐을 적에 안 익은 물컹한 푸른 물이 툭 터진다. 나는 이 열매는 지심이라고 소나 먹는 줄 알고 잘 먹지는 않았다. 달콤하면 잘 먹었지 싶은데, 까마중은 가지 맛이 났다. 밍밍하고 미원 맛나는 이 열매를 먹고 나면 울렁거리고 입안에 남는 냄새가 싫었다. 머루포도 알과 크기도 비슷한데 맛이 달라 눈길을 주지 않았다. 어머니는 달고 새콤하다는데 소먹이러 가면 밭둑이나 논둑에서 자주 보지만 아주 배고프면 따먹었다. 그래도 심심풀이로 놀면서 따먹는다. 까마중처럼 새까만 약을 껌처럼 떼어 납작하게 눌러 다리에 붙인 적이 있다. 어린 날에 다리에 종기가 났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77] 머루 앞집 우물가에 포도나무가 몇 그루 있었다. 자주빛으로 익어 갈 무렵이면 포도가 먹고 싶어 군침이 돈다. 앞집에는 마을사람이 드나들지 않았지만 나는 앞집에 자주 드나들었다. 무자위에 물 한 바가지 붓고 길어서 물을 받은 뒤 보는 사람 없을 적에 머리맡에 닿는 포도를 몰래 몇 알 따먹는다. 포도나무가 머리맡에 없었다면 따먹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내 손이 닿는 수돗가에 있으니 물 뜨러 가면 먹고 싶다. 앞집 할아버지는 웃지도 않고 눈을 부라려 무섭지만 나는 할아버지 없을 적에 갔다. 큰집에도 우물가에 포도나무가 우거졌다. 나는 포도가 너무 먹고 싶어 샘 둘레를 돌다가 잘 익은 작은 송이를 몰래 따서 뒷산 뒷길로 먹으면서 집으로 넘어왔다. 하루는 어머니 따라 외가 친척 집에 갔다. 가음 장터에서 버스에 내려서 한참을 걸었다. 땡볕에 땀을 흘리며 닿은 집은 마루가 붙어 시원했다. 마루에 둘러앉아서 청포도를 실컷 먹었다. 새콤하지 않고 달콤한 청포도를 처음 맛보았다. 우리 집은 우물도 없고 포도나무도 없지만, 머루를 실컷 먹었다. 금서 칡덤불 사이로 머루가 주렁주렁 있었다. 포도보다 알이 작고 엉성하게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오늘말’은 오늘 하루 생각해 보는 우리말 이야기입니다. 이 낱말 하나를 혀에 얹고 눈으로 보고 손으로 적으면서 생각을 새롭게 가꾸어 보면 좋겠습니다. 숲노래 우리말 오늘말. 노란쪽 지난날에는 누구나 볏섬을 지고 쌀자루를 날랐으나, 어느 때부터인가 ‘섬·자루’ 같은 낱말이 ‘푸대·포대’나 ‘봉투’란 한자말에 밀립니다. ‘꾸러미’가 ‘세트’한테 쓰임새를 잃으며 ‘꾸리·꿰미’는 더더욱 설 자리를 잃으니, ‘천바구니’로 조금 살아난다 싶은 말씨도 ‘에코백’ 앞에서 힘을 못 쓰더군요. 우리말도 넉넉히 보따리요 넘실거리는 타래입니다. 일본 한자말에 노란쪽을 매기거나 영어에 빨간종이를 붙여야 하지 않아요. 노랑도 빨강도 검정도 풀빛도 파랑도 무지개처럼 어우러지는 빛종이로 삼아서 누리면 됩니다. 글월을 담아 글월자루에 글자루요, 실꾸리나 달걀꿰미뿐 아니라, 책바구니에 생각보따리에 이야기타래를 엮을 만합니다. 이웃나라에서 쳐들어와 우리말을 짓밟은 적이 있습니다만, 스스로 우리 살림을 사랑하지 않을 적에는 스스로 때려부수거나 짓찧는다고 느껴요. 모든 말에는 살림을 가꾸면서 사랑스레 펴는 삶이 흘러요. 고운 텃말을 살리는 길보다는 일바탕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