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딸한테 7 ― 서울 가는 길 서울에 간다. 책수다를 하러 간다. 작은딸 꽃잔치를 마치고서 새로 책이 나왔고, 이 책을 좋아해 주는 분들이 서울 방배동에 있는 작은 마을책집에서 모인다고 한다. 며칠 몸살을 앓느라 어수선하고, 집안일도 있고 가게일도 있는데, 무슨 옷을 입을지도 망설인다. “딸아, 뭘 입어야 하겠노? 뭘 입어야 나아 보일까? 시골스럽지 않을까? 아니, 시골스럽게 입어야 할까?” 내 책을 읽어 줄 사람을 만나러 간다. 내가 쓴 책에 내 이름을 또박또박 쓰고서 얼굴을 마주할 자리에 간다. 대구에서 서울 가는 기차표를 끊으면서, 서울서 대구 돌아가는 기차표도 끊는다. 그래, 난 멧길을 오르내리며 즐거운 하루이니 멧신으로 하자. 기차를 내리고서 지하철을 갈아탄다. 대구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로 붐비는데, 그래도 지나가는 사람들한테 물어물어 방배동 한켠까지 간다. 세 시간 일찍 왔다. 가까운 찻집에 들어간다.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긴다. 코를 힝 푼다. 풀고 풀고 또 푸는데 코가 자꾸 나오더니 검은피도 나온다. “니가 쓴 풀꽃나무 책 잘 봤대이. 책이름처럼 풀꽃나무가 흐르는 이야기가 좋대이. 애썼다.”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딸한테 8 ― 빛 “책 나왔네요? 우리 고장 으뜸가는 신문에 알림글이 나왔어요. 기쁩니다. 올해 여러모로 큰일 하셨지요? 새해에도 힘차게 나아가 보세요!” “책 나왔네? 우예 냈노? 궁금하다. 내도 요새 뭔가 써 보려고 끄적이는데 잘 안 되더라. 용하다. 올해에 시집도 내고 수필책도 냈네? 무슨 좋은 재주가 있어 이리 책을 내노?” 다른 사람들이 쓴 글하고 책만 읽다가 쉰 줄이란 나이에 이르러 시집도 수필책도 한 해에 하나씩 냈다. 한 해가 저무는 날, 두 가지 책을 가슴에 안고서 살살 쓰다듬는다. 내세울 이름이 없을 텐데 책을 둘씩이나 냈네. 내 글이름을 또렷이 새긴 책을 둘을 품었네. 시집은 내가 나한테 주는 빛이라 여겼다. 쉰 해를 잘 살아왔다고 주고 싶은 빛이었다. 수필책은 막내한테 주는 빛으로 여겼다. 큰딸 작은딸은 시골집을 조금은 맛보았어도 막내는 시골집을 모를 수 있겠다 싶어, 막내한테 남겨주는 빛이 되도록 천천히 글길을 여미었다. 새해에는 어떤 빛을 글에 담을 수 있을까. 먼저 두 딸한테 빛을 심어 줄 글을 써 볼까. 이러고서 짝꿍한테도 빛을 건넬 글을 써 볼까. 깊고깊은 밤이 가득한 겨울을 지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어제/숲하루 굴다리로 몰았다 내가 모는 차를 비키려던 아저씨가 오르막 눈길에 넘어졌다 우편배달부는 눈길에 잘 올라갔기에 뒤에서 천천히 가자 여겼는데 잘못했어요 차도 미끄러워 느린데 걷는 길은 더 미끄럽지요 부끄러워요 꽁꽁 얼며 집으로 가는 마음을 걷는 마음을 잃었어요 2022. 12. 25. 숲하루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딸한테 /숲하루 햇빛이 써놓은 봄날 꽃잎을 꿈에서 보았다 뱃속에서 넉 달 만에 꼼지락 다섯 손가락을 본 이날 너는 첫 끈을 꽉 잡았단다 여섯 달째는 길에서 옷을 고르다가 갑자기 쓰려져서 구급차를 탔고 아기는 걱정없으나 엄마는 피가 모자라고 하더구나 너는 둘쨋끈을 척 잡았네 아홉 달째는 계단에서 굴렀단다 둥실한 배를 움켜잡고 3층부터 열 칸이나 데굴데굴 엎드린 채 미끄러졌지 손등 발등 까지고 부축 받아 실려갔어 가슴이 철렁했지 너는 셋쨋끈을 움켜잡았어 드디어 빛을 보고서 세이레에 젖을 떼고 시골집에 너를 맡겼다 어느 하루는 아기가 숨을 쉬지 않아 할아버지 할머니가 숨이 막혔다지 캄캄밤에 할머니가 업고 찾은 곳에서 손을 따고서야 숨통이 뚫렸단다 넌 다시 끈을 잡았어 언니동생 틈에서 늘 한 걸음 물러나도 지켜보고 참고 곱게 자라 오늘이로구나 이제 또 하늘이 맺은 끈을 잡는가 두 마음 봄꽃나무처럼 피우겠지 늘 나란나란 풀잎이 노래하겠지 꽃마다 하루를 적고 잎마다 오늘을 담고 열매마다 꿈을 얹어 네 다섯 가지 끈을 네 아이한테 살며시 이어주겠지 사랑으로 2022. 12. 25. 숲하루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58] 드디어 책이 왔다 책이 온다는 쪽글을 받고 책맞이를 한다. 책 낼 적에 살피고 모아둔 종이를 버리고 책상을 닦았다. 책상 밑도 물걸레도 닦고 책꽂이에 올려둘 자리에 쌓인 먼지도 닦는다. 두 시가 훌쩍 넘자 문을 열어 봤다. 네 시가 되자 또 열어 보았다. 아저씨한테 전화하니, 삼십 분이나 한 시간 더 걸린단다. 어제 새벽에는 ㅎ 신문에 새책 알림글이 뜬다고 잠 설치면서 보고, 보고 나니 누리책집(인터넷서점)에 책이 안 떴다. 뜨기까지 얼마나 더디게 가는지, 이제는 책이 오는데 하루가 길다. 상자를 뜯어 책을 꺼냈다. 막상 펼치려니 또 떨렸다. 가슴에 꼭 안았다. 오돌토돌한 겉표지를 손으로 쓰다듬었다. 냄새도 맡았다. 가운데 적힌 책이름을 만지니 도톰하다. 먹빛으로 살짝 솟은 글씨가 있으니 결이 살고 겉그림도 겉종이도 나무를 만지는 듯하다. 우리 집 수국이 새로 꽃을 피웠다. 자그마하지만 벌써 네 송이째. 책을 가까이 놓고 찍었다. 아스파라거스가 푸르게 수북하게 자란 잎을 당기고 봄부터 한 해 내내 꽃을 피우는 작은 보랏빛 꽃줄기를 당겨 책이랑 또 찍었다. 해가 넘어가느라 어둡다. 밝은 날 다시 꽃이랑 풀잎을 얹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57] 부조금 꽃잔치(결혼식)를 마쳤다. 딸은 괌으로 떠났다. 괌에서 보내는 하루를 사진으로 보내온다. 딸아이 눈과 손을 거쳐서 저 너머 모습을 본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바닷가가 그림 같다. 구름이 물결치는 듯하다. 사람들이 헤엄치는 바닷물이 맑다. 물속으로 모래가 훤히 보이는 곳에서 놀면 참 신나겠다. 두 사람이 여기에 오기까지 숱한 사람들이 기뻐해 주었다. 꼭 올 만한 사람한테 모심글(청첩장)을 먼저 뿌렸다. 그리고 한때 만나 차도 마시고 밥도 먹은 사람한테 보내 보았다. 글동무한테도 보냈다. 누리마당에도 띄웠다. 우리 아이 꽃잔치(결혼)를 누가 말하면 고마웠다. 막상 날이 다가오니 못 오는 사람들이 돈을 보낸다. 이 꽃돈을 받지만 마음이 무겁다. 도리어 가라앉고 슬프다. 차라리 벌써 보낸 모심글을 까먹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들어오는 돈이 그동안 내가 쌓은 살가운 값일까. 꼭 오리라 꼭 하리라 여긴 사람은 안 하고, 뜻밖이라 여길 사람이 성큼 내고 온다. 북적거리는 사람들 틈에서 나를 찾아 인사를 건네는 사람들이 고맙다. 눈물이 글썽했다. 물이 닿으면 곱게 꾸민 얼굴이 망가진다기에 눈물을 꾹 참는다. 친척이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56] 눈떨림 눈이 떨린다. 바른쪽보다 왼쪽이 좀 들어가고 눈꺼풀이 처져도 떨리지는 않았는데, 팔딱팔딱 떨리다가 멈추기를 사흘째 한다. 일이 한꺼번에 몰려서 그런가. 작은딸 잔치(결혼식)도 이제 이틀 남았고, 내 새로운 책이 곧 나온단다. 씻는데 숨 쉬는 길이 쏴하다. 이대로 멎을 듯 어질하다. 내가 많이 떠는구나. 날이 겹치거나 다른 일로 못 온다는 사람이 많다. 꽃돈(축의금)이 들어오니 몸둘 바를 모르겠다. 일을 치른 뒤 쪽글을 보낼 생각이지만, 그래도 바로 쪽글을 보낸다. 어쩐지 미안하고 고맙다. 이렇게 받아도 되나, 마음이 답답했다. 그제는 잔칫날 주례로 나눌 말 때문에 아빠와 딸 사이에 앙금이 생기느라, 두 마음을 풀어주느라 쩔쩔맸다. 그래, 내 큰일도 있는데 안이 시끄러울 적에는 밖으로 나가지 말자 싶어 하루는 모임에 나가지 않았다. 잘 나가던 내가 “바빠서 못 가요.” 한마디 했는데 “삐침인가?” 하고 묻는다. 뭔가 했더니, 그동안 잊고 지내던, 내가 어떤 상을 못 받았대서 그 모임에 안 오는 줄 알았는가 보다. 아니, 그런 흐름으로 몰아간다. 간밤에 집안에서 터진 일을 말해야겠구나 싶어 이 얘기 저 얘기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55] 흰김치 시골에서 배추를 잔뜩 갖고 왔다. 요즘은 예전하고 달라서 이웃한테 좀 팔까 싶어도 팔리지 않는다. 싱싱할 적에 김치를 담그면 좋겠지만, 올해 나는 김치 안 한다. 엄마가 한 통 담아 놨고 묵은김치도 아직 있다. 곁님은 어디서 봤는지 물김치를 담그는 길을 적어 왔다. 바구니에 물김치에 들어갈 마늘이며 양파, 쪽파, 양배추, 생강, 배, 사과, 무, 배추를 담아 왔다. 믹서기가 가게에 있어 김치물에 넣을 것을 다시 담는다. 나는 시키는 대로 마늘과 생강 홍고추를 넣어 갈고, 미나리와 실파를 총총 썰어 놓았다. 가게서 소금물에 배추를 절여 물을 빼서 갖고 왔다. 가게 문을 거의 밤 12시에 닫는데, 졸음을 참고 기다렸다가 둘이서 담근다. 큰 그릇에 내가 갈아 놓은 양념을 붓고, 채설어 놓은 무와 대추를 넣어 버무리고, 배추이파리에 집어넣고 김치통에 차곡차곡 담았다. 그리고 무를 통으로 썰어서 넣고 곁님이 마련해 온 양념물을 붓고 밖에 두었다. 아침에 한 포기 꺼내 주니 잘 먹는다. 국물이 좀 짜서 생무를 썰어 넣었다. 그리고 한 포기 담아 가게에 갖고 갔다. 우리 곁님은 짜면 먹지 않는 사람인데, 스스로 우려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54] 남동생 금값이 스무 해 앞서보다 여섯 곱이나 올랐다. 막내네 두 아이가 돌인데 반지 하나 못 받았다길래 한 돈 장만했다. 둘을 한꺼번에 치르자니 짐이 크지만 우리는 따로 이십만 원 더 넣는다. 하룻밤 묵을지도 몰라서 짐을 챙겼더니 가방이 무겁다. 그만 긴 끈이 뚝 떨어진다. 손잡이를 팔에 걸고 들기로 하고 서울로 가는 기차에 몸을 싣는다. 거꾸로 보는 자리에 앉는다. 앞으로 달리는데 뒤로 지나가는 모습을 본다. 도심을 빠져나가는 동안 천천히 달리지만 빠르다. 붉게 물든 담쟁이가 타고 올라간 높다란 담벼락을 본다. 캄캄한 굴을 지나는가 싶더니 호수가 나온다. 가까운 나무보다 멀리 있는 가을물이 든 나무가 잘 보인다. 칸칸이 물고 달리는 기차는 아늑한 쉼터 같다. 창밖을 보는 사람은 적다. 다들 고단한 몸을 쉬는 듯하다. 바퀴가 빠르게 굴러가는 쇠소리와 덜커덩 흔들리는 소리에 이따금 귀가 먹먹하다. 동생을 만나러 가는 길이다. 기차가 가운데 달리고 해와 달은 마주한다. 두 시간 달리는 기차에서 책을 읽으려 했는데, 길을 나서다가 가방 끈이 떨어지는 바람에 책을 빼놓고 나왔다. 쪽잠을 자다가 멍을 때린다. 서울길이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53] 기차 탔네 기차를 탔다. 1호차이다. 타고 내리기 쉬운 가운데쯤 맡으면 좋았을걸. 차표 끊는 일이 서툴어서, 알림창에 뜨는 대로 끊었더니, 처음과 끝이다. 서울길은 첫머리에 가까운 1호차이고, 대구길은 맨 끝이다. 쭉 뻗은 곧은 줄에 처음이고 끝이 따로 있을까, 뾰족한 기차 머리를 앞과 뒤에 마주 잇대어 이쪽저쪽 한 줄만 타는 기차이다. 같이 나온 곁님은 시골로 배추를 가지러 간다. 가는 길에 배웅을 받는다. 무척 바라던 일인데, 이런 날도 있네. 이른아침에 어디로 가는 사람들일까. 타는곳에 일찍 나왔더니 한 대가 지나간다. 한쪽은 앞을 보는 자리이고, 한쪽은 뒤로 보는 자리이다. 기차도 자리처럼 맞물고 휙 지나간다. 하늘빛이 온통 뿌옇다. 달리는 기차에서 바라보는 숲은 가을이 깊다. 바깥 그림은 가만히 있는데 달리는 기차를 타니 누가 누구를 보는지 모르겠다. 살림집에서 작은 창으로 보는 사람도 있을 텐데, 여기서는 창문을 보지 못해도 가만히 있는 곳에서는 달리는 기차를 더 잘 볼 테지. 가까운 그림은 스치고 멀리 있는 집은 천천히 스친다. 더 멀리 있는 숲은 오래도록 그 자리에 있다. 오래 산 숲은 다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