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58] 뱀딸기 금성산에는 멧딸기가 아주 많다. 금서 가는 날이면 등성이에 올라가 딸기를 쏙쏙 빼먹었다. 줄기에 가시가 돋고 나무로 자랐다. 그러나 뱀딸기는 논둑 밭둑 못둑에 작은 풀밭에 한뼘 풀로 올라왔다. 가시도 없고 빛깔만 멧딸기하고 뱀딸기가 닮아 보이지만 꼴이 다르다. 뱀딸기를 한 입 베물면 안이 하얗고 허벅허벅하고 싱겁다. 멧딸기는 새콤하고 알알이 붙어 하나로 영글었다. 뱀딸기는 뱀이 먹고 사람이 먹지 못하는 딸기인 줄 알고 먹지 않았다. 빛깔이 고운데 왜 사람들이 무서워하는 뱀딸기라 할까. 풀이 작아서 바닥을 기어 다니는 뱀이 먹는 줄 알까. 뱀한테 있는 독을 밍밍한 딸기로 씻을까. 나는 뱀을 보기만 해도 몸이 움찔하고 소름이 돋는다. 뱀이 나한테 뭘 하지 않는데도 무섭다. 뱀딸기는 내가 뱀 보고 놀란 몸에 돋은 소름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내 몸이 추울 때 돋는 살결 같다고 이거 먹지 말라고 보여주나. 우리가 먹는 딸기는 줄기에 가시가 있어 뱀은 살결이 보드라워 먹고 싶어도 얼씬 못 하니 제 딸기라고 뱀도 먹으라고 남기나. 흔한 딸기를 먹고 독을 풀면 풀밭에 아이들을 신나게 뛰어놀게 모으는 딸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56] 노루귀꽃 언덕 집에 살던 일곱여덟 살 적에 노루를 처음 보았다. 아버지가 장골에서 일할 적에 비틀거리며 올찮은 노루 머리를 때려서 잡았다. 한데 가게에 장대에 거꾸로 매달아 두고 다음날 거죽을 벗겨 고아먹었지 싶다. 노루를 먹은 이튿날, 간지밭에 일하던 어미 소를 따라온 송아지가 풀밭에서 잘 뛰어놀다가 갑자기 죽었다. 이때 노루를 잡으면 재수 없다고 마을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노루를 잡던 언덕집에서 아픈 사람이 많았다. 어머니는 밥을 먹지 못하는데 어디 아픈지 알지 못해 미역국을 겨우 삼켰다. 아버지는 속이 아프고 병원 가던 길에 똥이 마려워 누니 똥에 거품이 나오고 거품이 몸에서 빠져나오자 병원 가다가 병이 다 나았다. 큰오빠는 사타리에 돌을 끼워 돌치기 놀이하다가 돌에 맞아 도랑에 떨어져서 다쳤다. 집하고 우리하고 안 맞아 자꾸 탈이 났지 싶은데 노루를 잡아 송아지까지 죽었으니 재수 없다는 말이 나돌았다. 어쩌면 짝을 잃은 노루가 우리 송아지를 해코지했을까. 우리가 먹은 노루 귀를 닮았아서 노루귀꽃일까. 수줍은 듯한 꽃을 보니 노루도 참으로 얌전했을지 모른다. 재수 없다는 이름을 벗으려고 노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글님 ] [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55] 느릅나무 숙이네 가는 길 가운데쯤에 언덕이 있고 나무가 한 그루 있었다. 그곳을 지나갈 적이면 냅다 뛰었다. 나보다는 숙이가 많이 뛴다. 나는 언덕을 지나 우물가에 사는 언니 집에 놀러 갔다가 집에 올 적에 뛰고 숙이는 장골 끝 집이라 언덕을 지나는 일이 더 많다. 어린 날 마을에 티브이가 한 대 있었다. 나무 상자에 채널을 돌리는 흑백티브이다. 연속극을 보려고 장골 목골 이골 사람이 몰려왔다. 나는 우리 골목만 틀면 바로 앞집이라 가장 가까웠다. 마당에 멍석을 깔고 아이 어른이 함께 보았다. 집으로 올 무렵이면 어두워서 코앞이 집인 나도 무서운데 언덕을 지나는 숙이는 얼마나 무서울까. 그 언덕에서 개오지가 지나가는 사람한테 흙을 뿌린다는 말이 온마을에 돌았다. 나는 개오지가 맷돼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도 그 길만 지나가면 여우 눈을 떠올리고 늑대 눈이 떠오르고 티브이에서 보던 무서운 얼굴이 떠올랐다. 밤이면 무섭지만, 낮에는 그 나무 뒷산에서 소꿉을 하고 놀았다. 명자꽃이 울타리로 곱게 피었다. 명자꽃을 우리는 ‘앤지꽃’이라 했다. 아이들이 밤늦게 다니지 말라는 헛소문일 텐데 티브이에서 본 ‘전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발걸음 10] 막걸리 동생하고 나는 아버지가 드실 막걸리 심부름을 도맡았다. 찌그러진 노란 주전자를 들고 다녔다. 달빛이 밝은 날에는 길이 잘 보였다. 그런 날은 느긋하게 걷고 달이 안 뜨는 날에는 캄캄해서 개울에 떨어지지 않으려고 순이네 담벼락을 잡고 걷는다. 우리 집에서 전방(가게)까지 거리가 삼백 미터 남짓이다. 영이네 어머니는 국자로 단지에 담긴 술을 퍼서 내가 갖고 간 주전자에 담는다. 술을 휙 젓고 주전자에 붓는 소리가 시냇물 흐르는 소리처럼 들렸다. 막걸리는 반 되 받는 날도 있고 한 되나 두 되도 받는다. 그런데 주전자를 건네받고 나면 손이 부끄럽다. 영이네 어머니가 돈 달라고 기다리는 눈빛이 돈 없다고 깔보는 듯해서 풀이 죽는다. ‘또 외상이가?’ 하는 소리가 너무나 듣기 싫었다. 내가 막걸리 심부름 가기 싫은 까닭이다. 아버지가 들일을 마치고 집에 오면 언제나 여덟 시쯤 된다. 시골이라 해도 빨리 떨어지는데 캄캄하도록 일하고 오신 아버지는 막걸리를 밥그릇에 부어 아주 맛있게 드신다. 입을 털고 ‘카’ 하고 길게 소리 내며 마셨다. 가끔 놀다가 밖에서 마시고 온 날이거나 속상해서 거나하면 어머니한테 막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54] 익모초 산에서 익모초를 마흔 해 만에 보았다. 멧산 층층 쌓인 자리를 밟으니 돌이 부서진 풀밭에 피었다. 어머니는 육모초라 했다. 익모초는 생김이 쑥하고 닮았다. 잎은 쑥보다 좁고 길쭉하다. 풀이 내 허리께에 오고 꽃대가 빳빳하고 한 뼘쯤 꽃이 피었다. 보랏빛이 도는 작은 꽃이다. 아버지가 가을에 풀을 베어 엮어 두었다가 말린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말린 익모초를 겨울에 가마솥에 넣고 팔팔 끓여서 그 물로 감주를 삭히고 조청을 꼰다. 더 졸여서 동글동글 비벼 알로 먹는다. 어머니는 익모초로 비빈 구슬 맛이 향긋하다고 했다. 어머니한테 좋은 풀을 어머니는 어떻게 알았을까. 마을 어른한테서 배웠을 테지. 어머니도 많은 풀 가운데 꽃을 보고 찾아내는지 모른다. 묵혀둔 땅에 익모초가 많이 자랐다. 풀 같지만 곧고 꽃이 곱게 피어 눈에 잘 띈다. 목골 정이네 집 뒷간이 있는 높은 밭둑에 이 풀이 많았다. 그날 나는 우리 어머니 갖다 주려고 한 포기 뽑았다. 꽃대를 잡고 걸어가는데 내 허리춤까지 오고 굵고 크다. 우리가 먹는 쑥도 쓰고 한약도 쓰던데 몸에 좋은 풀은 모두가 쓸까. 익모초 달인 물을 많이 얻어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53] 감자 마늘 캘 무렵이면 감자도 캔다. 우리 집은 노란감자하고 자주감자를 심었다. 땅미 재 너머 간지밭 금서 도빠골 진밧골에 논깃새에 돌아가며 심는다. 밭을 쪼개 고추 몇 줄 감자 몇 줄 심는데 감자는 다섯 고랑이나 세 고랑쯤 심었다. 어느 해는 진갓골에 감자를 많이 놓았다. 감자밭이 멀어서 캐는 일을 잘 거들지 못했다. 감자는 다섯 상자나 세 상자가 나왔다. 아버지가 지게 발에 감자를 담고 나른다. 마늘을 걸어 둔 가게 그늘에 감자를 말린다. 나는 큰오빠 다음으로 밭일을 하지 않고 감자를 삶아 들로 밭으로 갖다 주는 일을 맡았다. 마늘 가게 밑에 기어들어가 내가 까기 쉬운 감자만 골랐다. 껍질이 시들지 않은 까끌까끌한 감자가 껍질이 잘 벗겨진다. 떫은맛이 나는 자주감자도 깎는다. 햇볕이 뜨겁게 내리쬐는 샘에 걸터앉아 숟가락으로 쓱쓱 긁는다. 자주감자는 눈이 많아 눈을 후벼파도 잘 안 빠진다. 껍질도 잘 벗겨지지 않아 나중에는 자주감자만 남았다. 감자 깎는 칼이라곤 부엌칼과 숟가락이니 긁다가 내 손바닥을 긁기도 한다. 열두 살 어린 손으로 감자를 고르고 깎기는 벅찼지만 애어른 따지지 않고 일손을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52] 수수 수수는 잎이 넓적하고 줄기가 워낙 커서 얼핏 옥수수와 닮았다. 꼭대기에 작은 알곡이 무르익으면서 빳빳이 세운 고개를 숙인다. 우리는 수꾸나무라 하고 수수가 다 익으면 자루에 넣거나 모기그물에 넣고 비비거나 방망이로 두들겼다. 작은 알곡이 밖으로 튀어나가지 않도록 살살 다스린다. 이렇게 떨어낸 작은 수수를 우리 어머니는 디딜방아에서 껍질을 벗겨낸다. 디딜방아에 알맹이를 벗기는 공을 끼우고 물을 조금 부어서 뒤적거리며 찧어서 껍질을 벗긴다. 껍질하고 알곡이 섞였기에 어머니는 손으로 퍼담아 키로 까불어 부슬부슬 말려서 붉고 찰진 수꾸떡을 구웠다. 아버지는 알곡을 털어낸 수숫대는 모아서 수수빗자루를 엮었다. 끝을 고르게 맞추고 끈이나 쇠끈으로 묶고 자르면서 비로 엮는다. 손잡이로 모은 수수는 한 줌에 잡히는 굵기로 군데군데 벌어지지 않게 쇠끈으로 동여 묶는다. 대는 통통하고 잘록한 손목 같았다. 아버지는 다 묶은 끝을 작두에 넣어 반듯하게 잘랐다. 빗자루에 알곡을 떨어낸 수수에 알록달록한 알곡 껍질이 남았다. 아버지는 못 쓰는 국그릇으로 달라붙은 껍데기를 쭉쭉 훑었다. 그릇이 얇아서 손에 잡기 좋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51] 꿀 우리 마을 멧골에는 아까시가 꽃을 피울 틈 없이 땔감으로 썼다. 멧골에는 나무보다 잔디가 많았다. 나무가 없으니 꽃이 없고 꽃이 없으니 꿀이 없다. 그렇지만 겨울에는 꿀을 먹는다. 가을에 나락을 거둬서 쌀이 넉넉했다. 겨울이 되면 쌀로 조청을 꼰다. 가마솥에 불을 때고 하루가 걸리는 일이다. 하나는 약초를 달여서 졸이면 꿀보다는 걸쭉하고 숟가락으로 떠서 들면 흐르는 약조청이다. 또 하나는 걸죽하고 달다. 조청을 하도 졸여서 숟가락을 넣으면 손잡이가 휘청거린다. 우리 집에는 벽장이 하나 있었다. 어머니는 나중에 먹을 밥살림을 두었다. 제사에 쓸 과일이나 떡을 두고 조청도 벽장에 두었다. 어린 나는 키가 작아 고개를 한참 쳐들어도 팔을 뻗어도 벽장 문에 손이 닿지 않았다. 베개를 놓고 밟고 이불을 밟고 올라서면 미끄러졌다. 동생을 엎드리게 하고 등을 밟고 올라섰다. 어머니가 숨겨 놓은 조청을 몰래 퍼먹는다. 한 숟가락 두 숟가락 티나지 않게 떠먹는다. 나는 약조청이 입에 써서 맛이 없었다. 빡빡한 조청만 먹었다. 어머니는 일이 바빠 조청을 얼마나 먹었는지 잘 알지는 못해도 다 아는 눈치였다. 조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50] 부처손 멧길을 오르다 바위에 붙은 부처손을 본다. 이곳저곳 숲을 다녀도 눈에 안 띄던데 오늘 본다. 어릴 적에 본 부처손을 금성산 뒤쪽에서 보았다. 우리 밭이 그 골에 있었다. 덩굴진 풀밭에 옹달샘이 있고 물이 뿌옇다. 샘에서 넘쳐흘러 도랑길을 폴작 건너 칡덩굴을 헤치고 바위 밑에 선다. 나는 큰 바위를 자주 올려다보았다. 풀이 날 자리가 아닌데 푸른 부처손이 빽빽하게 바위를 덮는다. 가을이면 잎이 말라죽은 듯 오그라들었다가 이맘때면 푸르다. 오늘 보니 바위에 보드라이 흙이 있다. 나무뿌리를 타고 흙이 흘러 고였다. 고운 흙에 이끼와 자리를 잡고 가랑잎이 덮었다. 어린 날 내가 본 바위에는 가파르게 자리잡아 흙도 없는 바위에 붙었다. 나는 곧잘 따고 싶었지만 어린 내 손이 닿지 않았다. 아버지한테 따 달라고 졸랐다. 아버지는 지게에서 부처손을 꺼내 주었다. 나는 어디서 돌을 들고 와서 부처손을 얹어 수돗가에 두었다. 물을 돌에 뿌려 주었다. 그러나 우리 집에서는 잎이 누렇게 말라 갔다. 나는 바위에 푸른 부처손이 붙어 자라는 일이 믿기지 않았다. 풀을 골라 반찬을 해먹는데 바위에 저렇게 많이 붙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49] 금은화 높은 바위틈에 금은화가 피었다. 덩굴이 돌담으로 뻗고 나무에도 엉키며 자랐는데 이제는 사람 손이 닿지 않는 높은 바위틈에 자라네. 유월 볕에 금은화가 피면 꽃물을 빼먹으려고 꿀벌도 바빠지겠지. 나도 꽃에서 꿀을 따먹었다. 시골에서는 인동이라 했다. 장골 윗집으로 올라가는 골목 따라 덩굴이 우거졌다. 어머니 심부름으로 꽃을 땄다. 노란꽃 하얀꽃이 같이 피고 빛깔이 곱고 맛이 달다. 꽃 하나를 따서 꽁지를 입에 넣고 쪽쪽 빨아먹고 또 따서 꿀물을 빼먹는다. 꿀은 내가 다 쪽쪽 빨고 집에 들고 왔다. 섬돌에 보자기를 펼치고 널어 햇볕에 말린다. 꽃이 마르면 담아서 벽에 걸어 둔다. 어머니는 닭을 고을 적에 넣고 단술(식혜)에도 넣는다. 꽃을 물에 끓여 우려낸 물에 단술을 삭히고 끓인다. 날꽃을 통에 담고 술을 부어 둔다. 아버지는 밥 먹을 적마다 한 모금씩 마신다. 어머니는 팔다리에 꽃이 좋다는 말을 어디서 들었을까. 약으로 쓰려면 꽃물을 먹으면 안 되는데 나는 꽃물을 쪽쪽 입에 물었다. 어머니는 좋은 줄 알고 했으니 단물이 있는 줄 알고 먹었으니 약이 되었지 싶다. 금은화는 금과 은처럼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