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2] 종량제봉투 가게 일손이 모자라 일꾼을 쓴다. 오늘 아침에 가게일을 돕는 일꾼을 보니, 종량제봉투 값을 찍어 놓지 않는다. 아침 일꾼한테 “손님들 물건을 담을 적에 무얼 먼저 찍어?” 물었더니 “봉투 먼저 찍고 담는다” 한다. “모두가 파는 물건이니 비닐 하나라도 잘 찍어서 담고, 손님 오면 매장 어느 쪽으로 다니는지 잘 보셔요” 했다. “왜요?” 하고 되묻기에, “종량제봉투 숫자가 안 맞는다”고 덧붙였다. “종량제봉투가 왜요?” 하고 또 묻기에 “빈다”고 말했다. 손님이 전자담배 한 갑을 다른 담배로 바꾼다. 가만히 보니 카드를 취소하고 다시 찍는다. 나는 “카드 취소는 어지간해서 하지 말고 반품키를 누르고 받아야 할 담배를 찍고 다시 반품키 눌러 판매창이 뜨면 바꿔 갈 담배를 찍으면 같은 금액도 0이 되어 현금에 지장 없고 재고를 찾아 간다”고 일려준다. 그런데 아침 일꾼은 이녘이 잘못하지 않았다고, 저처럼 해도 된다고 우긴다. 아침 일꾼이 물건을 찍었다가 취소하거나 그냥 갖고 가는 모습을 곧잘 보았다. 가게일을 돕는 사람은 일한 삯을 받는 사람이지, 우리 가게 살림을 몰래 가져가도 되거나 그냥 가져가도 되는…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1] 긴 길 사람을 만나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고 싶을 때가 있다. 막상 자리를 마련하면 낯선 내가 툭 튀어나온다. 가만히 있지를 못하고 말이 많다. 알맹이가 없는 말을 늘어놓는다. 그러고서는 말을 너무 했다고 여긴다. 잔뜩 핏대를 올리다 보면 말이 풀어지고 사투리가 술술 나온다. 이럴 적에 곁님은 “쓸데없이 말이 많다”고 넌지시 나무란다. 그런데 곁님이 나더러 말이 쓸데없이 많다고 하면 왜 그리도 듣기 싫은지 몰라, 그저 입을 굳게 다문다. 이러다가 혼자 차를 몰 때에는 따로 말할 사람이 없기도 하지만 차분하고 고요하다. 어떤 모습이 나일까. 그렇지만 차분하고 고요히 혼자 차를 몰기도 오래가지 않는다. 또 수다를 떨고 싶다. 대구 시내에서 사니, 머리 위로는 지상열차가 달리고 둘레는 차가 가득하다. 버스로 세 정거장을 지나는 동안이어도 참으로 길다. 어떤 날은 이 짧은 길을 가슴이 두근거리며 달리다가, 어느 하루는 길디길어 티끌 같은 마음인 채 달린다. 그리 길지 않은 이동안에라도말을 아껴야지 싶은데, 생각보다 어렵다. 내 이야기를 가만가만 들어 주던 언니가 전주에 갔다. 하루를 못 보는데 또 허전해서 수다를 받아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엄마아빠 3] 어머니 마을을 한 바퀴 돌고 집에 들어왔다. 먼저 온 곁님이 어머니한테 “어버이날 다 댕겨 갔니껴?” 묻는다. 나는 부엌으로 들어가 밥솥을 열면서 “막내네 쌍둥이 많이 컸겠네” 물었다. 어머니가 벽을 한참 보더니 코를 훌쩍인다. 눈이 빨갛다. 막내네는 쌍둥이를 낳았다. 마흔 넘어서 짝을 만나 인공수정으로 아들 둘을 얻었다. 어머니는 어린이날에 두 손주 몫으로 십만 원을 보낸 일이 있다. 그러고 이틀 뒤 통장을 정리하고서야 막내가 돈을 부친 일을 알았단다. 돈을 보내놓고는 어머니한테 전화 한 통 없더란다. 막내댁이야 그렇다 하더라도 아들인 막내도 똑같이 그런다고 섭섭하더란다. 어머니가 보낸 돈을 어버이날 도로 보낸 듯해서 언짢았단다. 어머니는 나이가 들수록 잘 우네. 어머니는 어버이날 돈을 받고 싶어서 보내지 않았다. 어버이날 ‘엄마 잘 있나?’ 전화 한 통 받고 싶은 마음뿐이란다. 다섯 가운데 가장 마음 쏟았던 막내는 장가가더니 어쩐지 어깨를 펴지 못하는지, 아이들 돌보느라 뒷전인지는 몰라도 목소리를 듣기도 힘들어 서운한가 보다. 그리고 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에 섭섭한 일이 뭔가 있다고 느낀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엄마아빠 2] 마을 한바퀴 멧숲에서 내려와 곁님은 엄마집으로 먼저 가고 나는 천천히 마을을 걷는다. 목골에서 개울을 따라 걷는다. 나즈막하던 시내가 길을 닦으면서 높고 좁다. 이 시냇물에서 고기를 잡고 징검돌을 건너고 비가 많이 내리는 날에는 물구경을 했다. 성조네 집을 지난다. 우리가 모여 놀던 아랫방이 사라지고 상추밭이 되었다. 낯선 사람이 자전거를 세운다. 깔끔하고 흙이 곱던 마당에 풀이 자라 빈집 같다. 대문은 없고 그물을 쳐놨다. 내가 태어났던 교회 앞 터를 올려다보고 모퉁이를 돌아 순이네 집 앞을 지난다. 대문은 활짝 열렸는데, 무슨 짐이 잔뜩 쌓이고 개 두 마리가 사납게 짖는다. 마당 가운데에 나무가 커다랗다. 마당을 가득 메워가는 나무에 발 디딜 틈 없어 보이는 짐으로 어떻게 드나들까. 개밥은 누가 줄까. 담쟁이가 담을 타고 빈 옆집까지 덮는다. 대문을 걸어 둔 흙담이 무너진 틈으로 빈집을 살짝 들여다보았다. 이제는 집인지 숲인지 모르도록 풀이 우거졌다. 나는 이 골목을 지나다니면서 물을 길었다. 예전에 날마다 드나들던 우물이 어떻게 있는지 궁금했다. 종종걸음으로 우물을 찾아서 갔는데, 어느새 우물은 사라지고…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엄마아빠 1 ] 아버지 탑리에서 소주 한 병을 샀다. 아버지와 어머니 가운데 누구를 먼저 뵈어야 하는지 둘은 생각이 다르다. 곁님은 '산 사람을 먼저 만나자' 하고 나는 '아버지 먼저 보자' 했다. 시삼촌이 집에 오면 ‘할머니 무덤에 먼저 들르는 일이 못마땅하더라’ 하는데, 나는 이 마음을 알 듯하다. 내가 아버지를 먼저 보고 오자고 한 까닭은 집에 들어가면 까딱하다가는 가지 못한다. 바람이 산뜻할 적에 가볍게 다녀오면 하루를 아껴쓴다. 목골 경이네 곁에 차를 멈추고 멧자락으로 오른다. 아침 참새가 밭에 심어 놓은 씨앗을 빼먹는다. 족제비싸리나무, 찔레덩굴, 아까시나무에서 짹짹 포르르 날아다닌다. 닭우리에 닭도 ‘꼬끼오 꼬꼬’ 노래를 부른다. 길바닥에는 돌나물이 빽빽하게 자라고 노란 애기똥풀이 바람에 한들거린다. 나즈막한 오르막길을 가는데 풀어진 다리가 당긴다. 잘 다듬은 길이 끊어지고 흙자갈길이다. 길 가운데는 족제비싸리꽃이 무릎 높이로 자라고 쑥이 허리춤에 온다. 싸리꽃이 막 피어오르는 숲길인데 이제 이 길로 다니지 않으면 풀꽃나무가 길을 차지할 듯하다. 천천히 걷는데 낯설다. 저 끝에서 꺾는다. 곁님은 새로 난 길로 가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홀로보기 -제주도에서 5 가파도 배를 타고 가파도에 갔다. 마라도 다음으로 남쪽 끝에 있는 섬이 가파도이다. 나는 숲을 가면 고도계를 보는 버릇이 있다. 내가 있는 곳이 어딘지 틈틈이 보는데 가파도 모습이 가오리를 닮았다. 납작한 가오리처럼 낮은 언덕이 없는 반반한 섬 같다. 들녘과 바다와 섬이 거의 하나를 이룬다. 내가 좋아하는 뒤뜰 동산 같다. 얼마 만인가. 길을 못 찾을까 마음이 쓰여 길잡이를 따라다니려고 했는데 길잡이는 가파도 이름돌 앞에서 사진을 찍는다. 멀뚱히 있다가 혼자서 사람들이 올라가는 쪽으로 갔다. 섬이 통째로 어느 집 앞마당 같고 한 사람이 꾸며 놓은 듯 아기자기하다. 낮은 돌담에 길섶에 저절로 난 풀꽃나무가 싱그럽다. 한쪽 밭에서는 보리가 누렇게 익고 가을에나 봄직한 살살이꽃이 무릎 높이까지 자라 알록달록하게 피었다. 너도나도 예쁘다며 사진으로 담는다. 나도 찍어 보지만 사진에 비치는 내 모습은 낯설기만 하다. 돌림앓이를 앓고 온 뒤라 기운이 없고 산을 좋아하는 터라, 이 반반한 길이 오히려 벅차다. 사람들이 꽃밭에서 사진 찍고 얘기할 적에 나는 마을길을 따라서 바다가 보이는 쪽으로 갔다. 길가에 핀 풀꽃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홀로보기 -제주도에서 3 달무리 자다가 추워서 눈을 뜬다. 넓은 창에 하늘이 꽉 찬다. 다시 눈감았다가 뜨니 달빛이 들어온다. 반달이 기둥에서 나왔다. 반달이 ‘왜 깼냐?’고 묻는 듯했다. 그러고서 달님은 달무리에 가려 자꾸만 바다로 떨어진다. 일어나 앉아서 달님한테 ‘더 놀다 가’ 하고 말했다. “너 왜 그리 어두워? 여행 노래 부르더니. 안 즐거워?” “아니, 기운이 없어서. 빵만 먹는 거 봤잖아. 사진 찍으니깐 얼굴 함 봐. 2키로 빠졌으니 어질해. 많이 아팠다” “한 달 전과 다르잖아?” “여행 가는 사람 같지 않아. 얼굴이 굳었어.” “내가 여기서 뭘 바랄까 하고 생각해 봤어.” 창밖으로 하늘을 보는지 바다를 보는지 잘 모르겠다. 달님보고 더 있어 달라고 했는데 더 빨리 사라지는 듯하다. 납작납작 구름 사이로 쏙 들어가 버린다. 아까 붉은 노을이 머물던 구름이다. 달님은 바다로 안 빠진다. 이튿날 밤도 달님이 올 수 있겠다. 잠자리는 다르고 내가 있는 자리가 달라도 저 달님은 집에서 본 달처럼 같은 길로 지나간다. 내가 지내는 방도 노을이 건물과 건물 사이로 드리우고 달님은 지붕으로 지나간다. 그리운 것이 저 달님이던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홀로보기] 제주도에서 2 바닷가 걷기 이제 공항에 내린다. 내 이름을 적은 알림판을 찾아본다. 길잡이(가이드)라고 하는 사람은 이녁 손에 든 종이만 들여다볼 뿐 내가 알림판을 찾아야 하는 일은 모르는 척한다. 한동안 헤매다가 드디어 알림판이 보인다. 사람들이 많은 탓에 가려서 안 보인 듯하다. 큰 버스에 다섯 사람씩 세 무리를 태우고서 세 군데 숙소를 돈다. 나는 마지막으로 내린다. 그런데 내가 묵을 곳 가까이에는 식당이 안 보인다. 제주도로 나들이를 오기 앞서 며칠 앓느라, 비행기에서 내리고 한동안 실랑이를 벌인 끝에 숙소에 닿자니 벌써 기운이 없는데, 밥 먹을 곳을 찾을 길이 없다. 하는 수 없이 편의점에 들러 죽 하나와 베지밀을 산다. 입맛이 없다. 창밖을 본다. 바다가 훤히 보인다. 자리에 앉아서 멍하니 바다를 보다가, 그냥 저녁을 굶더라도 좋으니, 꿈같아 보이는 바닷빛에 마음이 들뜬다. 어둡기 앞서 나가자. 오히려 속이 비면 더 가볍겠지. 곧게 난 길을 따라 바다로 간다. 길가이지만 이쪽으로는 자동차가 오가지 않는 듯하다. 돌담을 쌓고 나무를 심은 밭이 있고, 보리가 익은 밭이 넓다. 이 바닷가에서 해넘이를 보고 싶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홀로보기] 제주도에서 1 나들이 비행기 타는 일이 버스 타는 일처럼 흔한 요즘이라지만, 날마다 일하는 몸으로는 시외버스를 타고 나들이를 하기조차 어려웠다. 제주도를 옆마을 가듯 나들이하는 사람이 많다는 말만 듣다가, 나도 제주도 가는 비행기를 탔다. 비행기는 내가 여태껏 길에서 멀리 올려다보던 모습과 사뭇 다르다. 이렇게 높이 올라가는구나. 땅도 집도 마을도 저렇게 깨알처럼 작게 보이다가 사라지는구나. 목이 돌아갈 만큼 창밖을 내다본다. 나는 창밖을 본다지만, 어쩌면 여태 잘 모르던 우주를 보는가 싶기도 하다. 아니, 비행기를 타고 내려다보고 둘러보니까, 내가 살아가는 집과 내가 일하는 곳은 더없이 작고, 지구라는 별이 새삼스럽구나 싶다. 하늘에서 본 멧줄기는 풀빛 종이를 구겼다 펼쳐놓은 모습 같다. 바다를 날아온 끝없는 물 그림자. 구름이 바다처럼 물결을 치니, 바다가 하늘에서 숨을 쉬는 입김 같다. 바다에서 올라와 언제까지나 하얗게 사라지지 않는 겨울얼음으로 새긴 들판 같다. 이 끝없이 보이는 우주를 비행기를 타고서 보지 않았던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나로서는 멧길을 오르며 훨씬 기쁘고 반가웠다. 작은 멧골이라도 한 발…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115] 씀바귀 멀리서 찾아온 글동무하고 두류공원에 갔다. 대구에 살지만 막상 혼자 느긋이 쉬려고 두류공원에 간 적이 없다. 글동무하고 찻집에라도 갈까 했으나, 봄날씨가 좋으니 공원이 낫지 않겠느냐 해서 가 보았는데, 하늘을 보며 나무 곁에 앉거나 걸으니 오히려 좋았다. 두류공원을 걷다 보니 곳곳에 씀바귀가 노랗게 꽃을 피웠다. 아무도 안 쳐다볼 만한 자리에 피었다. 공원에 오는 사람 가운데 누가 씀바귀를 쳐다볼까. 오월에 흰꽃이 눈부신 이팝나무하고 아까시나무를 바라보겠지? 느티나무 곁에 참 작은 틈새에 피어난 씀바귀는 어떤 생각으로 홀로 꽃을 피울까. 무얼 믿고 혼자 삶을 지을까. 보이지 않는 사랑을 믿으려나. 햇볕이 날마다 깃들고 바람이 말동무가 되어 주고 느티나무 뿌리한테서 얘기도 듣고 나뭇잎한테서도 줄기한테서 수다를 들으며 혼자서도 심심한 줄도 잊고 지낼지도 몰라. 가까이에 글동무가 없는 나도 저 씀바귀처럼 느낄 때가 있다. 혼자라서 자꾸만 여기저기 기웃거렸는지 모른다. 씀바귀는 늘 홀로 꽃을 피웠다. 돌틈이든 구석진 곳이든 자리를 마다하지 않고 활짝 피운다. 이 곁에는 알록달록하거나 새빨간 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