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106] 옥수수 여름이면 대김이(마을밭이름) 밭둑에 옥수수가 올라온다. 옥수수가 굵고 알이 여물면 꺾는다. 마당에 놓고 겹겹이 쌓인 잎을 하나씩 깠다. 알갱이는 촉촉하고 털이 보드랍다. 수북하게 쌓인 껍데기는 소먹이로 던져준다. 어머니는 마당에 걸어 놓은 솥에 불을 때서 옥수수를 삶는다. 달디단 가루를 뿌리고 굵은소금을 뿌린다. 둥근 그릇에 담아 마루에 앉아 입김으로 식혀서 먹는다. 대에 스며든 단물 짠물까지 쪽쪽 빨아 먹는다. 물기가 다 빠지면 꽁지에 꼬챙이를 꽂았다. 우리가 까먹은 대가 바싹 마르면 등을 긁었다. 저녁만 되면 어머니 아버지는 나한테 등을 긁어 달라고 했다. 고사리손으로 등을 긁기에는 어머니 아버지 등이 넓었다. 어머니는 간지럽다고 더 세게 긁으라고 한다. 손톱자국이 벌겋게 나도 시원하다면서 코를 골며 잠이 든다. 어머니 등은 미끌미끌하고 촉촉했다. 나는 등이 가려우면 문설주에 기대 비비다가 어머니한테 등을 내민다. 어머니 손끝이 너무 매워서 등이 아프다. 까끌까끌한 옥수수대는 참한 노릇을 한몫 거든다. 옥수수는 여름 한철 맛만 보는데 꺾지 않아서 먹을 때를 놓치면 알이 딱딱하고 뻣뻣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107] 돌나물 장골 길가 바닥에 돌나물이 잔뜩 자랐다. 어린 날에는 길바닥에 수북하게 돋지 않았다. 나는 돌나물을 뜯으러 마을 어귀에 있는 느티나무를 지나 점낫골 길목 오르막에만 갔다. 동무와 둘이서 돌나물을 뜯는다. 돌길이지만 바위가 얼마 없는데 그곳에는 바위가 있었다. 바위와 바위 밑에도 나물이 자랐다. 채송화보다 잎이 넓지만 닮았다. 바위에 붙은 돌나물을 연필 깎는 칼로 하나하나 잘랐다. 바위 둘레를 돌며 더 푸르고 큰 나물만 골라 땄다. 노란 듯 푸른 어린 돌나물은 작다. 뜯어도 부피가 늘지 않고 딸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내가 뜯지 않아서 어린 돌나물은 한숨을 돌렸을지 모른다. 어머니도 밭일 마치고 오는 길에 돌나물을 뿌리째 걷어서 집에서 다듬는다. 어머니는 돌나물에 양념을 섞어서 참기름을 붓고 큰 그릇에 비볐다. 나는 풀내음이 나서 나물을 걷어내고 먹지만 아버지는 국물이 하얀 물김치도 잘 드셨다. 돌나물은 돌을 시원하게 하고 우리도 시원하게 하는 숨결이네. 피를 잘 돌도록 도와주어서 돌나물이라 했을까. 막 돋았을 때 먹으라고 했을까. 멧산에 돌이 많아도 통통하게 물을 머금은 나물이 돌을 붙잡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105] 고구마꽃 한가위가 다가올 무렵이면 앞산밭에서 고구마를 캤다. 아버지가 낫으로 줄기를 걷어 한쪽으로 모으면 우리는 뽑힌 고구마는 줍고 흙에 남은 고구마는 호미로 살살 캔다. 고구마가 깊이 박혔는데 흙을 깊이 안 파고 힘으로 당기다가 똑 부러지거나, 호미에 찍혀 흉을 냈다. 고구마를 다 캐고 어머니는 반찬 한다며 고구마 줄기를 땄다. 고구마를 캐서 앞산을 내려오는 길은 신난다. 내리막길이 이어져 다다다 이리저리 떠밀리다가 멈추면서 내려왔다. 캔 고구마는 자루째로 할아버지가 주무시는 윗목에 둔다. 겨울밤이면 뒷방에서 아버지 어머니는 가마니를 짜고 새끼줄을 꼰다. 나는 아버지한테 물어서 새끼줄을 꽈 보지만, 두 손으로 비벼도 짚이 잘 꼬이지 않자 싫증 내고 뒷방에 간다. 아버지가 짜는 가마니를 돕는다고 걸어 놓은 돌을 넘겨주고 고리에 짚을 걸어주었다. 밤이 깊어 갈 무렵이면 어머니는 배추뿌리를 씻어 주고 고구마도 깎는다. 날것으로 깨물면 천둥소리가 난다. 소죽 끓인 불씨에 고구마를 묻어 두다가 새까맣게 타기도 하지만 속은 노릿하다. 군고구마를 먹으면 우리 입술은 까맣다. 어린 날에는 타박한 밤고구마가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104] 마가목 멧높이가 천 미터를 넘는 염불봉 바위 옆에 마가목 열매가 익어간다. 나뭇잎이 푸르게 우거진 숲에 발갛게 익은 첫 열매가 눈에 확 띈다. 마가목 줄기로 채찍질하면 말이 죽는다는 옛말을 들었는데, 우리 할아버지는 지게 작대기에 맞아서 죽다 살았다. 할아버지가 아기일 적에 할아버지 어머니가 젖만 먹인다고 할아버지 아버지가 꾸지람했다. 일도 안 하고 밍(무명)만 만지고 물레로 실만 감는다고 못마땅하게 여겼단다. 할아버지 아버지가 지게 작대기를 들고 할아버지 어머니를 때리려 했다. 외동아들인 할아버지를 안았는데, 설마 때리기야 할까 씨름하다가 내리치는 작대기를 안 맞으려고 그만 아기인 할아버지를 내밀었다. 할아버지는 작대기에 그대로 맞아 다리가 부러졌다. 이 일로 할아버지는 어린 날부터 제대로 걷지 못했다. 제대로 걷지 못해서 말을 타고 다녔다. 할아버지는 할아버지네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세 해 동안 살림을 야금야금 바닥냈단다. 몸이 안 좋아서 농사를 짓지 못했다. 돈이 없으니 땅이라도 팔아서 그때그때 곁에서 비위 맞추는 사람들 꾐에 넘어갔다. 마음이 좋은 날이면 논 한 뙈기 주고, 절에도 떼주었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103] 버들강아지 열다섯 살인 나는 학교 가는 길이 멀었다. 집에서 아랫마을을 지나 멧골로 올랐다. 뒷메보다 높은 멧골이지만 몸이 작은 그때는 오르막이 높게만 느꼈다. 조금이라도 빨리 가려고 지름길로 가기도 했다. 덜 가파른 길로 돌아서 꼭대기에 닿으면 구불구불한 멧허리를 따라 긴 오솔길을 한참 걸으면 이제 가파른 내리막길로 미끄러지듯 쫓기듯 숨차도록 멧길을 다 내려오면 마을이 보이고 길이 좋았다. 윗음지 아래음지 마을 지나고 큰 내를 잇는 다리 하나를 건너 양지마을을 지나면 학교에 닿았다. 하루는 아랫마을을 지나 멧길을 올랐다. 오솔길은 혼자 지나갈 틈으로 누가 말하지 않아도 줄을 지어 걸었다. 나는 맨 앞에 걷고 싶었다. 그렇지만 나는 꼴찌로 가기로 했다. 걷다가 뒤를 힐끗 보고 또 돌아보았다. 아랫마을 숙이하고 희야가 뒤따라왔다. 나는 두 동무한테 길을 비켜주려고 섰다가 버들강아지를 만났다. 잿빛 털이 난 작은 버들강아지가 눈망울을 틔운다. 손을 가까이 대어 만진 털이 보드라웠다. 두 친구가 내 앞에 다 지나가고서야 멈춘 내 발걸음을 옮겼다. 키가 크고 늘씬한 숙이 뒤를 따라갔다. 나는 내 뒤에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102] 반딧불이 여름이 되면 반딧불이가 찾아온다. 반딧불이가 꽁무니를 빼고 달아가면 쫓아다녔다. 부엌은 백열등을 썼다. 부엌과 수돗가를 비추는 불은 그을림이 앉아 불을 켜도 어둑하다. 밤이 깊으면 부엌에 불을 켜 놓았다. 마당에 펼쳐 놓은 자리에 누워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빛나는 작은 별과 그 가운데 더 반짝이는 별을 찾아보면서 하나둘 헤아렸다. 밤하늘 별을 보았더니 우리 집 마당에 별이 찾아온 듯했다. 모깃불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마당에 반딧불이가 날아다녔다. 휙휙 날아 옮기는 빛줄기가 하늘에서 별똥별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는 듯했다. 불이 어디서 반짝일까. 살금살금 자리에서 일어나 반딧불이를 따라 두 손으로 잡아 보겠다고 뱅글뱅글 돌고 골목으로 뒤쪽으로 날아가는 반딧불이를 따라다녔다. 캄캄한 곳에 한참 있으면 우리 눈이 어둠에도 길을 찾고 반딧불이가 밝아 나무에 붙기도 하고 풀에 있다가 불빛이 어디에 앉는지 다 보여준다. 우리 골목 끝에는 장골에서 내려오는 개울물이 흐른다. 골목이 길어서 개울인 줄 알까. 마당에서 우리와 같이 춤을 추고 싶었을까. 잡으려면 기다란 불꽁지로 그림을 그리며 내빼면서 한여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101] 콩고물 우리 집 정지(부엌)는 빗장을 열고 들어간다. 문짝이 두껍고 아궁이에서 불을 때느라 나온 매운 김에 그을려 문이며 천장이며 온통 까맣다. 바닥은 오돌토돌하지만 밟히고 밟혀 흙바닥이 반질반질했다. 가마솥 하나와 작은 양은 솥 하나로 밥과 국을 끓였다. 가마솥에서는 밥을 하고 범벅을 끓였다. 찰밥 팥죽도 했다. 말끔히 씻어내고 콩이나 깨도 볶았다. 제사에 쓰일 떡을 하려고 콩고물로 쓸 콩을 볶는데, 덜 볶으면 가루가 하얗다. 고소하게 먹으려고 콩을 달달 볶다가 껍질을 태우기도 했다. 볶은 콩을 디딜방아에 넣고 찧고 채로 치면 가루를 곱게 내어 떡고물을 썼다. 떡고물을 하고 남으면 어머니는 부뚜막에 쥐가 다닌다고 큰 통에 담아 둔다. 나는 밥 먹을 적에 콩고물을 한 숟가락씩 떠서 밥에 섞었다. 손으로 뭉치거나 숟가락으로 눌려서 먹다가 목이 막혀 마른기침을 하기도 했다. 콩고물이 달고 고소해서 다른 반찬이 없이도 먹었다. 여름이면 어머니는 들일 갈 적에 콩고물에 밥을 비며 먹는다. 식은밥을 맨손으로 통에 넣고 고물을 묻혀서 주먹밥을 쥐어 먹느라 손이며 입이며 옷이며 가루를 잔뜩 묻혔다. 어머니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100] 개나리 우리 마을에서는 개나리를 ‘이애’ 라고 했다. 개나리는 잎보다 꽃이 먼저 핀다. 옥이네 뒤산으로 밭으로 가는데, 산꼭대기에 여우가 파먹는 무덤이 있었다. 그곳을 지나 점낫골 못 가기 앞서 우리가 부치는 밭이 있고 도랑 따라 개나리꽃이 활짝 피면 멧골이 온통 노랗게 물든다. 개나리 나무가 넝쿨이 커서 어른보다 더 자랐다. 가을이면 씨앗이 주렁주렁 열렸다. 열매가 흙빛으로 익으면 주둥이가 쩍 벌어지고 씨가 나왔다. 껍질이 저절로 벌어지기 앞서 씨앗을 땄다. 비닐을 바닥에 깔고 작대기로 때렸다. 잔가지를 주워내고 열매를 통째로 면자루에 한 말씩 담아 장날 작약 같은 한약재 파는 집에 팔았다. 개나리 씨앗을 사는 사람이 많지 않지만, 돈이 될 만한 열매는 무엇이든 저자에 내다 팔았다. 우리 마을은 경북 의성군 사곡면인데 풀이 자라지 않는 등성이 길이다. 밟으면 뭉개 으스러지는 비렁길과 도랑 둑에 개나리가 뭉쳐 자랐다. 우리 마을에 자라던 개나리와 도시에 사는 개나리는 씨앗이 다르지 싶다. 도시 개나리나 요즘 숲에서 보는 개나리나무에 열매가 거의 없다. 겨우 찾았다. 어린 날 개나리 열매를 맨손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99] 사과 사과가 먹고 싶어서 산수유씨를 빼러 다녔다. 순이네 집은 산수유를 까면 새참으로 인도인지 국광인지 푸릇한 사과를 준다. 국광은 껍질이 푸르고 단단한데 달았다. 노랗게 익은 사과는 허벅허벅하고 부드럽다. 나는 부사나 홍옥보다 새참으로 나온 사과가 맛있었다. 낮에는 순이네 사과창고 벽에 등을 기대 나란히 서서 햇볕을 쬤다. 사과창고 문을 닫아도 향긋한 냄새가 밖으로 새어나왔다. 문을 활짝 열 적에는 쇠그물에 달라붙어 안을 들여다보면서 군침을 흘렸다. 창고는 캄캄하고 바닥이 깊었다. 나무상자를 겹겹이 쌓아 두고 바닥에 물도 고였다. 나는 산수유 까기 싫은데도 사과 먹으려고 참고 깠다. 아버지는 내가 사과 먹고 싶어서 산수유를 까는 줄 알았다. 몇 해 뒤에 우리 집에도 사과나무를 심었다. 아버지는 사과만 보면 딸 생각이 난다고 했다. 아버지는 사과나무를 심어 처음 열린 사과를 따서 우리를 주었다. 구미 사돈네가 생기기 앞서까지는 내가 사과를 마수걸이했다. 여름에 나오는 아오리나 홍옥을 먹고 나면 가을에 부사가 나왔다. 흉이 난 부사를 먼저 먹으면서 골마루에 두고 겨울이 끝나고 봄 여름까지도 먹었으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98] 울콩과 양대콩 아버지가 콩을 뿌리째 뽑아서 마당에 두면 할아버지가 마당에 널었다. 메주콩이나 콩나물콩이 바싹 마르면 지팡이를 짚고 다니시는 할아버지는 엉덩이를 질질 끌면서 작대기로 두들긴다. 앉아서 도리깨질을 했다. 힘에 부치면 도리깨를 받아 나도 내리쳤다. 콩줄기를 걷어내고 모으는 일까지 할아버지가 했다. 그러나 울콩이나 양대콩은 손으로 꼬투리를 벌리면서 깠다. 모두 모아 봐야 부피가 얼마 되지 않았다. 봄에는 울콩을 감자밭 고랑에 심었다. 콩꼬투리가 여물면 알록달록 곱다. 껍질이 두껍고 콩알도 굵다. 콩꼬투리를 까면 빨간 콩도 있고 얼룩무늬 콩도 있다. 어머니는 울콩을 감자콩이라고 했다. 감자가 자라지 못해 마른자리에 울콩을 고랑 사이사이에 심고 감자하고 같이 캔다고 붙였는지도 모른다. 봄에 심은 또 다른 콩은 덤불로 자라 넝쿨 줄기가 잘 뻗도록 올려주면 가을에 여물어 땄다. 콩꼬투리가 얇고 콩도 울콩보다 자잘하다. 콩을 까서 들여다보면 어금니하고 닮았다고 어금니콩이라 했다. 콩을 광주리에 담아 놓고 어머니하고 깠다. 깍지를 벌려 콩알을 헤아리기도 하고 알이 영근 꼬투리를 골라 까면 여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