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80] 울릉도 가고 싶어 아스파라거스 덩굴이 며칠째 눈에 거슬린다. 창문을 열 적마다 마른잎이 먼지처럼 떨어진다. 매달아 놓은 바구니에 푸짐하게 매달린 잎줄기가 문틈에 끼지 않게 잡는다. 한 뿌리가 늘어나고 올라간 높이 만큼 흙을 다 차지한 뿌리로 얕은 흙이 굳었다. 아직 살았으니 뽑지 않고 마른잎을 가위로 자른다. 창문을 여는데 허리를 구부리지 않아도 되게끔 설 자리를 남기고 꽃그릇을 옆으로 밀었다. 천장에 매달아 둔 덩굴도 막대기로 옮겼다. 가운데쯤에 끈으로 묶고 창문을 열어도 부딪치지 않게 하고 자리를 옮겼다. 잘라 놓은 잎을 훑어 가위로 잘라서 흙에 덮었다. 이제 나무에 잔가지가 뻗어 잘랐다. 자른 자리에 하얀 물이 나온다. 파릇한 잎을 잘게 부수자니 잎이 파르르 떠는 듯했다. 얇고 넓적한 큰 그릇에 물을 담아 작은 포도송이 같은 가지를 물에 꽂았다. 마른잎 치기를 마치고서 숨을 돌린다. 미루고 미룬 다음 일을 하자. 나는 울릉도에 가 보고 싶다. 바다 한복판에 있는 그 섬에 가 보고 싶다. 대구에서 뱃나루까지 차를 몰고 가서 실을 수도 있다는데, 가깝지 않은 길이라 여행사에서 묶음으로 다녀오는 길로 알아볼까…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79] 책값 받기 옆집에 고기를 사러 갔다. 고기를 썰던 아저씨가 “서점에 가면 책 파니껴?” 하고 묻는다. 며칠 앞서 이웃 어르신이 시내 서점에 갔더니 내 책이 없더란다. 헌책을 파는 집이라 새책이 없다고 했다. 여든일곱 살 어르신이 일부러 내 책을 사려고 집에서 꽤 먼 걸음을 했다. 인터넷으로 사라는 일꾼 말을 듣고 내게 묻는다. “제가 사 드릴게요.” 했다. 2022년 12월 겨울에 낸 《풀꽃나무하고 놀던 나날》이 서점에 깔린 뒤에 처음으로 내 책을 한 권 산 일이 있다. 뜯지도 않은 책을 그대로 갖다 드렸다. 내가 사주겠다고 한 말이 있어서 그런지 책값이 얼마인지 묻지 않았다. 곁님도 들었기에 뒤늦게 책값을 받았는지 묻는다. 돈을 받기 뭣해서 그냥 두시라고 한 일이 있었다. 이 일이 꼬투리가 될 줄 몰랐다. 고기집으로 주소를 적었는데 무엇이 잘못 되었는지 우리 집으로 책이 왔다. 이튿날 갖고 가니 고기집에 아무도 없다. 뜨락에 올려놓고 나오는데 길에서 아저씨를 만났다. 책값을 받아 가라고 손짓을 하는데 손사래를 쳤다. 내가 뒷마당에 간 사이에 아저씨가 뒤따라 와서 나를 찾다 없어 곁님한테 책값을 맡겼다. 밖에서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78] 나도 달리고 싶다 큰애가 설 때 집에 다녀간 뒤로 조용하다. 어거지로 한바탕 부린 일이 자꾸 마음에 걸렸는데 “나 20k 뗘져.” 하고 앙증맞게 쪽글을 보내었다. “많이 뛰었네. 넘 무리하지 말어.” 하고 맞글을 보냈더니 “최장거리얌 헤헤.” 하면서 한강을 따라 뛰던 길그림을 보내 온다. 이젠 적은 나이가 아닌데, 오래 달리네. 큰딸이 달리기를 한다니깐 좋다. 서울살이를 하며 잔뜩 머리를 짜며 일에서 벗어나려고 혼자서 달리는 일이다. 큰딸은 어릴 적에는 잘 달리지 못했다. 몸이 토실해서 그런지 달리면 끝자리를 맡아 두곤 했는데 요새는 하루에 20킬로미터를 달린단다. 큰딸이 대구집에 왔을 적에 함께 달리기를 따라간 적이 있다. 나는 길동무로 따라가기만 했을 뿐 달리지 않았다. 아니 달리지 못했다. 나는 어릴 적에는 달리기를 잘했다. 이러다가 열여덟 살 무렵에 100미터 달리기를 하는데 그만 29초에 끊었다. 남들보다 9초쯤 더 걸렸다. 늦은 9초에 부끄럼이 속 깊이 일어났다. 앞을 보고 온힘으로 달려야 할 때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멈칫멈칫하면서 고약한 점수가 되었다. 한껏 달릴 수 있었는데 멈춘 셈이다. 일곱 해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77] 애꾸눈이 되었네 한티재에 가까울수록 눈이 쌓였다. 어제 비가 내렸는데 어느 골짜기에는 비가 눈으로 바뀌었다는 말을 들었다. 차가 다니는 길에는 눈이 녹고 한쪽으로 눈이 쌓였다. 차가 지나간 바퀴 자국이 오솔길 같았다. 나는 좁은 자국을 따라 비틀거리며 걸었다. 모퉁이를 꺾으니 내리막길이 나오고 길바닥이 온통 하얗다. 눈을 보니 마음이 하얗게 들뜬다. 눈을 뭉쳐서 던졌다. 어떤 눈은 그러모으려니 손이 잘 안 들어가고 또 어떤 눈은 펄펄 눈가루가 날려 안 뭉친다. 맨손에 이리저리 닿으니 뭉칠 만하다. 앞사람 등에 던져 본다. 눈뭉치가 빗나가자 앞사람이 눈을 발로 찬다. 저만치 앞서가는 사람들 뒤에 천천히 간다. 뒤에서 느긋하게 눈하고 노니 재미있다. 햇살이 드니 눈이 더 부신다. 차가 다니지 않는 길에 쌓인 눈을 먼저 간 사람이 동그랗게 만다. 나도 눈을 꼭꼭 말아서 밀었다. 가랑잎을 떼고 말고 말았다. 크게 굴린 눈은 가랑잎이랑 뒤섞였다. 머리를 얹을 적에 눈사람 눈을 삼을 것을 찾아보았다. 바닥에 올라온 나뭇가지를 당기니 살았다. 다른 가지를 또 당기니 이것도 살았다. 눈을 덮고도 살아 있는 나뭇가지를 차마 꺾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76] 잘가쏘? “우리 이제 갈게.” “짐 가득 실어 뒤가 막혔으니 쉼터마다 쉬었다 가렴.” “엄마는 안 힘드나?” “늦잠 잤지. 어제 집으로 큰 선물이 왔어. 어느 이웃님이 엄마 시집 한 권을 다 붓글씨로 써서 보내왔어. 좋아서 힘든 줄 몰랐네. 또 어디 넣을 글 걱정에 잠이 달아나 새벽 3시에 일어나 쓰고 잤어. 그래, 너희들도 애썼다. 김 서방도 잘 가고 우리 딸 잘 돌보렴.” 말하는 내 목소리가 떨린다. 작은 거품이 뽀글뽀글 끓듯 끊어질 듯 이어가는 목소리는 떨었다. 작은딸 목소리도 떨린다. 염소처럼 밝게 웃어도 목소리가 떨렸다. 울음을 꾹꾹 누르는 떨림이었다. 잔치(결혼식)를 할 적에도 떨리지 않았는데, 이제는 참말로 짝 곁으로 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몸이 따라가니 우리 곁에 머물던 마음도 가는 듯했다. 아니 어쩌면 더 짙게 마음 귀퉁이에 머무는지 모른다. 저 가녀린 아이가 사랑을 찾아가는 길인데 곱고 가냘픈 손으로 밥을 짓고 빨래하고 쓸고 닦는 일에 얽매인다는 생각이 들자 눈물이 목소리에 맺힌 듯했다. 며칠 쉬었다 일을 나가면 좋을 텐데, 옮기자 바로 나가야 하는 딸아이 어깨를 누르는 짐이 그 나이를 지나던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75] 우리 딸이 가요 “엄마 언제 도착해?” “2시에 나설게.” “그 사람은 3시쯤 닿을 듯한데 못 보겠네. 아빠가 할아버지한테 인사하러 갔다 오래.” “아빠는 늘 할아버지뿐이네. 딸이 가는데 엄마인 나를 만나야지, 할아버지가 먼저가?” 파를 다듬으면 일을 마무리지으려고 했다. 손길이 바쁘다. 곁님이 쌀을 싣고 얼음가방을 찾는 동안 다 다듬고 반찬집으로 달려갔다. 며칠 앞서 우리 딸한테 줄 반찬 몇 가지를 맡겼다. 고디국이 한창 끓는다. 저걸 담아서 가려면 늦겠지. 잘 먹던데. 나지막한 내 목소리를 듣던 아주머니가 부추를 넣는다. 한 냄비 담더니 큰 선풍기를 틀고 식힌다. 돈으로 치자면 얼마 되지 않는데 반찬집 일꾼을 힘들게 하는가 안절부절못했다. 미리 말을 해서 그런지 기꺼이 해준다. 나물 반찬도 곁들이고 싶지만, 제때 꺼내 먹는 일도 아직은 서툰 우리 딸을 생각하다가 멈춘다. 비닐에 담아 온 반찬을 유리그릇에 담고 얼음가방에 꾹꾹 눌러 넣는다. 엄마 마음이 꾹꾹 이렇게 담기는 줄 예전에는 몰랐다. 마늘과 매운고추와 양파를 들었다가 이레는 해먹지 못할지 모른다는 딸 말에 다시 뺀다. 작은 고추장 식용유 진간장 국간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74] 도시락 차를 세우고 밥집에 갔다. 도시락집이네. 여기서 우리 딸이 밥을 사먹는구나. 딸은 라면을 먹으려 하네. 짐을 꾸리려면 힘을 내야 하니 고기반찬이 나오는 밥을 하나 더 시켰다. 짐은 다 쌌을까. 집에 올라오니, 저녁에 짐을 차에 실어야 한다는데, 아직 짐은 반도 꾸리지 못했네. “너는 갖고 갈 것만 챙겨, 버릴 거는 다 두면 나중에 우리가 치울게.” 가만 보니 버릴 걸 버려야 갖고 갈 짐이 보인다. “엄마가 부엌 좀 맡아 줘?” 한다. 짐이 적은 작은방부터 치운다. 컴퓨터와 밥솥 커피포트를 모으고는 방에 둔 버릴 이불보따리며 옷보따리를 꺼내 문밖으로 냈다. 이제 부엌을 뒤진다. 밥을 해먹은지가 얼마나 되었는지 자국이 없다. 온통 도시락뿐이네. 비닐을 세 군데 펼쳐놓았다. 찌꺼기를 담고 플라스틱을 담고 비닐을 담는다. 냉장고에 버릴 반찬을 꽁꽁 올려두었네. 아빠가 시켰구나. 음식이 썩으니깐 냉동실에 얼려 두었다가 버리라고 늘 말했는데 냉장고와 냉동실이 쓰레기를 얼리고 놓는 자리가 되었네. 다 꺼내서 물기를 빼고 비닐에 담았다. 콜라를 버리려고 뚜껑을 열다가 얼굴에 뿜는다. 콜라로 얼굴을 씻었다. 마시던 음료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73] 밑천 “작은딸 가는데 돈 좀 줘야 안 되겠어요?” 곁님은 내 말에 대꾸도 시원찮고 돈도 주지 않는다. 요즘 나는 돈을 만지지 않는다. 주면 쓰고, 없으면 안 쓴다. 카드로 쓰고 카드값 갚을 적에 돈을 옮긴다. 작은딸이 옮겨가는데 나는 엄마이고 엄마로서 주고 싶은 마음을 곁님은 모른다. 우리 엄마한테서 받아 보지는 못했지만, 마흔 살에 내가 새로 일자리를 얻었을 적에 처음 나가는 날 시어머니가 백만 원을 주면서 “옷 사입어라.” 하셨다. 얼마나 좋던지. 그렇게 돈을 쓸 줄 아는 시어머니를 닮고 싶었다. 곰곰이 생각했다. 곁님은 돈을 안 주고, 내 주머니에 돈은 없고, 내가 따로 모은 돈을 찾아서 줄까 말까. 카드도 통장도 없는데 어떻게 돈을 찾을까. 생각 끝에 용상에 있는 손언니한테 전화를 걸었다. 간 김에 내가 아는 사람이 있으면 내가 쓴 책도 드리고 내 통장에서 언니 계좌나 아는 사람 계좌로 보내어 그 돈을 찾을 생각이다. 딸아이 짐을 치우면서도 ‘줄까 말까, 주면 얼마를 주지?’ 하는 생각이 바빴다. 차에 짐을 다 싣고 나니 마음이 조금 그랬다. 딸이 가져가는 짐이 보따리에 담아 싣고 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71] 우산 우리 집 문앞에 우산이 한 보따리 있다. 이렇게 많이 있었나. 아이들이 예전에 쓰던 우산을 다 들고 왔나. 그저 웃으며 집으로 들어와서 묵은 짐을 치운다. 이제 버리기만 하면 끝난다. 버릴 살림으로는 옷이 가장 많고, 그다음으로 우산 같다. 신발장 손잡이에 우산 또 둘 걸렸다. 이 가운데 말끔한 우산은 따로 꾸려 놓는다. 그런데 우산이 또 셋이 더 나온다. 신발장에 또 하나 나온다. 잔뜩 나온 우산을 들고 나와서 버리자니 경비 아저씨들도 놀란다. “아저씨, 우산이 좀 많죠? 못 쓰는 건 버리지만, 쓸 수 있는 우산은 저기 앞에 두셔서 비 오는 날에 우산 없어서 비 맞는 사람이 있으면 나눠 주세요.” 우산을 버리려고 비닐을 벗기고 살만 모은다. 큰 뭉치로 나오는 우산살을 보니 어쩐지 낯이 뜨겁다. 집에서 한 사람이 제금을 나는데 버리는 것이 너무 많다. 우리 딸은 우산을 왜 이리 많이 모았을까. 문득 밖에서 비를 만나 우산을 사기도 하고,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또 비를 만나 또 새로 우산을 사고 했을 테지. 이미 사 놓은 우산을 자꾸 잊으면서 또 사고 새로 산 탓이지. 나는 그동안 어떠했을까. 곁님은…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72] 안아 보자 작은딸네가 나를 바래다준다. 둘이서 창살문을 뒷자리에 싣는다. 함지박도 뒷자리에 싣고 닫는다. “엄마, 잘 가.” “장모님 조심히 들어가세요” ‘그래’ 하고 말하기에는 어딘지 모르게 싱겁다. “함 안아 보자.” 두 팔을 벌렸다. 둘을 품에 안았다. 왼팔은 새사람을 안고, 오른팔은 작은딸을 안는다. 딸이 아까부터 삐진 사람처럼 뾰로퉁하게 있더니 속으로 울었구나. 등을 토닥거리면서 우리 딸 눈을 보니 반짝인다. 눈물이 맺혔네. 콧소리를 내네. 쑥스러워 이런 모습 잘 드러내지 않던 아이인데, 울었네. 바라보는 나도 눈물이 차올랐다. 나무 사이로 불빛이 비친다. 딸 얼굴이 어릿거린다. 살짝 안았는데 꽤 길었다. 딸아이 잘 부탁한다고 말하고 또 말하려는데 저쪽에서 다른 차 한 대가 올라온다. 부르릉 하며 다른 차가 저쪽으로 들어가는 걸 보고 창문을 내린다. 이젠 헤어지네. 작은딸이 숨기려고 해도 눈물이 찬 얼굴은 티가 났다. 엄마는 알지. 손을 흔들었다. 엄마와 딸을 좁혀 주는 눈물 같다. 꾹 참는 마음은 훅훅 흐를 테지. 딸을 보니 가녀린 몸으로 일을 다니고 집안일을 하고 앞으로 스스로 삶에 풍덩 뛰어들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