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달겨레소리 숲하루글님 ] 작게 삶으로 061 너도 나도 가엾은 《슬픈 나막신》 권정생 우리교육 2002.8.10. 방천시장에 있는 책방에 갔다. 책방에서 아기가 잔다. 책방지기도 소곤소곤 우리도 소곤소곤. 책방 어귀에 있는 종소리가 더 크다. 책방지기는 혼자 아기를 키울까 궁금했지만 묻지 않았다. 아가 신발이 너무 작아 만지작거리다가 책을 훑는다. 다시 신발을 보니 궁금하던 일이 확 풀렸다. 가족사진이 있다. 카프카를 좋아해서 책 언저리에 비슷한 모습을 보고 찍은 사진이라고 했다. 책방에서 엉뚱한 구경을 하다가 《슬픈 나막신》을 본다. 큰딸이 어릴 적에 권정생 님이 쓴 ‘몽실 언니’하고 ‘강아지똥’하고 ‘검정고무신’을 곁에 두고 읽었다. 권정생 님은 내가 살던 안동에서 가까운 일직에 살았다. 언젠가는 권정생 님이 쓴 ‘엄마 까투리’를 애니메이션으로 담아서 프랑스로 판다는 말이 오갔다. 《슬픈 나막신》을 읽는다. 권정생 님이 태어난 일본에서 어울린 아이들 이야기가 흐른다. “어른들은 전쟁을 일으키고 집을 부숴 버리고 죽이려 대들고 그러나 어른들이 있어야만 아이들이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아이들을 바르게 착하게 자라라고 가르치면서 어른들은 마음대로 삐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게 삶으로 060 보리 한 톨과 글 한 줌 《작은 책방》 엘리너 파전 지음 에드워드 아디존 그림 햇살과나무꾼 옮김 길벗어린이 1997.1.30. 내가 어릴 적에 내 손은 책보다 흙을 더 만졌다. 공기놀이, 제기차기, 땅따먹기, 그림 그리기를 마당이나 흙길에서 했다. 경북 의성 멧골자락 시골집인데, 예전에 이런 시골에서 집안에 책을 쌓아놓고 볼 어버이가 있었을까. 우리 어버이조차 흙을 일구는 삶이었고, 우리는 책을 읽고 싶을 나이에 책은 우리한테 너무 멀리 있었다. 《작은 책방》을 쓴 엘리너 파전 님은 “책 없이 사는 것보다 옷 없이 사는 것이 더 자연스러웠다”고 이야기한다. “책을 읽지 않는 것은 밥을 먹지 않는 것만큼이나 이상하게 생각하던 시절”을 보냈다고도 한다. 이런 이야기를 읽으니 어쩐지 이 책을 쓴 분이 부럽다. 글님은 어린날 책을 읽는 재미가 얼마나 달콤했을까. 나는 시골에서 태어나 살았기에, 또 우리 어버이 살림이 넉넉하지 않아서, 어버이도 거의 배우지 못 한 삶을 보내셔서, 이래저래 책하고는 담을 쌓으며 자랐다. 여태 못 읽은 책에, 새로 나온 책에, 온통 못 본 책뿐이다. 우리 아들은 한때 책에 파묻혀 보낸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게 삶으로 059 돈과 바꾼 목숨줄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로맹 가리 지음 김남주 옮김 문학동네 2001.11.10. 집에 있는 어느 책을 찾다가 못 찾았다. 이것저것 집다가 몇 줄 읽고 덮다가 문득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를 펼친다. 짧게 쓴 글을 모으면서 첫 글로 책이름을 땄다. 몇 쪽 읽을 즈음 짝한테서 전화가 온다. 운동을 한다며 나갔는데 갑자기 가슴 쪽이 아파서 꼼짝을 못 한단다. 책은 얼른 덮고서 바삐 태우러 간다. 언덕에서 짝을 태워 바로 대학병원 응급실로 갔다. 처음에는 거짓인 줄 알았다. 가슴이 아픈 사람이 말을 너무나 씩씩하게 하더라. 게다가 아침에 무를 깎다가 엄지손가락을 베어 피가 조금 났다. 다친 손이라고 그런지 모르지만, 아침에 나가다가 다시 들어와서 “내가 이따 와서 쓰레기 버릴게.” 하고 말하고 간 사람인데, 병원에서 하루를 묵을 줄 몰랐다. 병실이 없다기에 응급실에서 하룻밤을 보내는데 피를 묽게 하더라. 병원에 온 지 열두 시간이 지나고서야 들여다본다. 날핏줄(동맥)로 무얼 넣어서 핏줄을 뚫고 넓힌다더라. 짝은 미리 몸을 풀지 않고서 갑자기 운동을 거세게 하느라 핏줄이 막혔단다. 큰일이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오늘말’은 오늘 하루 생각해 보는 우리말 이야기입니다. 이 낱말 하나를 혀에 얹고 눈으로 보고 손으로 적으면서 생각을 새롭게 가꾸어 보면 좋겠습니다. 숲노래 말빛 오늘말. 트집 어떤 말썽이 불거질 적에 누구 때문이라고 여기며 탓할 수 있습니다. 사달이 날 적마다 골치를 앓으면서 잘잘못을 따질 만해요. 골머리를 앓는 온갖 근심걱정을 어떻게 푸나 하고 떠들기도 합니다. 말이 안 되는 일은 왜 일어날까요. 나쁜 일이나 못된 짓은 왜 그치지 않을까요. 부라퀴가 걷히지 않고, 각다귀가 사라지지 않으니, 아무래도 이 나라는 지저분하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얄궂은 일이 자꾸 터지고, 터무니없는 말이 으레 춤추니, 이 터전은 그야말로 멍청하거나 엉터리로 여길 만해요. 그러나 모든 부끄러운 짓은 어느 곳에서만 불거지지 않습니다. 모든 곳이 썩었기에, 우리 스스로 철없는 덩굴에 갇혔기에, 혀를 내두를 만한 궂은 일이 잇따른다고 느껴요. 남을 트집 잡을 수 없습니다. 바로 나부터 어느 대목이 어그러졌나 하고 되새길 노릇입니다. 시끄러운 일은 서울뿐 아니라 시골에도 수두룩합니다. 시골에서 벼슬꾼이 뒷돈을 주고받으면서 벌이는 고약한 짓이 안 알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오늘말’은 오늘 하루 생각해 보는 우리말 이야기입니다. 이 낱말 하나를 혀에 얹고 눈으로 보고 손으로 적으면서 생각을 새롭게 가꾸어 보면 좋겠습니다. 숲노래 말빛 오늘말. 팽팽하다 저는 따로 마실만 다니지 않습니다. 시골집에서 읍내로 저잣마실을 다녀온다든지, 자전거를 몰고 우체국으로 글월마실을 다녀온다든지, 이웃고장에 이야기마실을 다녀오며 책숲마실을 하기는 하지만, 이름을 붙이기로 ‘마실’일 뿐입니다. 먼길을 오가며 부릉이(버스)에 몸을 싣되, 이밖에는 두 다리로 걷거나 자전거를 탑니다. 따로 걸음마실을 하지 않습니다. 여느때에 걸을 일이 없는 숱한 서울사람이 뚜벅마실을 합니다. 예전에는 서울내기(도시인)도 그리 멀잖으면 가볍게 거닐며 하늘바라기에 들꽃바라기에 바람바라기였다면, 바쁘게 다투거나 팽팽하게 맞서야 하는 고단한 나날을 보내면서 그만 걷기를 잃고 말아요. 서둘러 가야 하니 부릉부릉 몰아요. 얼른 오가야 하니 부릉부릉 매캐한 내음을 일으킵니다. 누구나 으레 걷던 무렵에는 책꾸러미가 없더라도 느긋이 책 몇 자락씩 읽고 누리던 살림이라면, 거님길을 잊으면서 책읽기하고 등지는구나 싶어요. 옥신각신 불꽃튀는 삶은 고달프니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게 삶으로 058 글을 쓰는 여자 《카이니스의 황금새 1》 하타 카즈키 지음 정혜영 옮김 YNK MEDIA 2020.10.10. 만화책 《카이니스의 황금새 1》를 읽었다. 예전 영국에서 소설을 쓰는 여자를 다룬다. 주인공 리아가 앨렌으로 꾸민다. 여자라는 몸을 남자처럼 바꾼다. ‘여자는 글을 쓰면 안 된다’고 여길 뿐 아니라, ‘여자 주제에 소설을 쓸 수 없다’고 얕보던 무렵이라, ‘여자인 리아로 쓴 소설’이지만 ‘남자처럼 꾸민 앨런이 쓴 글’이라고 숨겨서 내놓는다. 글을 쓰며 살아가는 꿈을 키우고 싶은 리아는 시골을 떠나서 런던으로 가려고 한다. 소설이든 글이든 누구나 쓸 수 있고, 그야말로 누구나 배우며 꿈을 펼 수 있는데, 성별로 가르고 따돌리는 굴레가 너무 단단하기에 남자처럼 꾸미기로 한다. 머리카락을 짧게 치고, 앞가슴을 가리고, 바지를 입는다. 나중에 소설이 널리 읽히면 그때에 비로소 ‘나는 여자이지만, 이렇게 여자도 남자와 똑같이 소설을 쓸 수 있습니다’ 하고 밝히자고 생각한다. 그제 짝하고 주고받은 말을 떠올린다. 밥을 먹던 짝은 “내가 먼저 죽으면 시골 물려받은 땅 팔지 말고 아들한테 그대로 물려줘라” 하고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오늘말’은 오늘 하루 생각해 보는 우리말 이야기입니다. 이 낱말 하나를 혀에 얹고 눈으로 보고 손으로 적으면서 생각을 새롭게 가꾸어 보면 좋겠습니다. 숲노래 우리말 오늘말. 휩쓸리다 아이들은 가볍게 걷습니다. 적잖은 어른은 아이들이 함부로 움직인다고 여기곤 하지만, 아이들 발걸음은 춤짓입니다. 마구 구는 아이들이 아닌, 한 발짝을 떼는 작은 몸짓조차 춤노래로 즐기는 웃음꽃입니다. 아이들은 오두방정을 떨지 않아요. 아이들은 마음을 쏟을 곳이 있으면 한나절이고 두나절이고 꼼짝을 않고서 지켜볼 수 있어요. 배고픈 줄 잊고서 뛰놀아요. 겉으로 훑을 적에는 어린이 마음도 못 읽지만, 풀꽃 속내도 못 읽고, 빗방울 이야기도 못 느끼게 마련입니다. 어린이가 훌륭히 자라기를 바라지 말아요. 어른부터 스스로 아름답게 살림을 가꾸면서 사랑스럽게 하루를 지으면 됩니다. 뛰어나거나 빼어나게 재주를 키워도 안 나쁘되, 이보다는 마음을 가다듬고 목소리를 추슬러서 언제나 곱게 얘기하고 생각을 드러내면 넉넉하다고 느껴요. 남한테 내보일 재주가 아닙니다. 하루를 일굴 자그마한 손길입니다. 춥네 덥네 호들갑을 떨지 말고, 날씨를 우리 마음으로 다스려 봐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숲노래 글손질 다듬읽기 14 《매일 휴일 1》 신조 케이고 장혜영 옮김 서울미디어코믹스 2022.5.30. 《매일 휴일 1》(신조 케이고/장혜영 옮김, 서울미디어코믹스, 2022)를 읽다가 예전에는 그냥그냥 지나쳤을 낱말을 새삼스레 돌아보았습니다. ‘연금’이라는 한자말은 세 가지가 있는데, 우리는 얼마나 알까요? 쉬우면서 또렷하게 우리말로 마음을 밝히는 길을 생각할 수 있을까요? ‘민간요법’이란 무엇을 가리킬까요? 그냥그냥 쓰느라 정작 속뜻을 모르지 않을까요? “두 사람의 단독주택 라이프가 시작되다”는 아주 엉터리로 쓰는 일본말씨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쓰는 말씨를 멋스럽다고 여기지 않나요? 이런 말씨가 ‘서울스럽다(도시적)’고 여기면서 즐기지는 않나요? 어깨에 힘을 잔뜩 넣는 말씨로는 삶을 못 밝힙니다. 어깨에 힘을 빼고서 나긋나긋 나누려는 말씨에 비로소 사랑이 흐를 만합니다. 투박하고 작게 나아가려는 발걸음과 손짓에서 서로서로 헤아릴 줄 아는 즐거운 이야기가 흐를 수 있습니다. ㅅㄴㄹ 와다 하나에, 83세, 연금 생활 → 와다 하나에, 83살, 곁돈살림 → 와다 하나에, 83살, 꽃돈살림 16쪽 난 그런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숲노래 글손질 다듬읽기 13 《이상하고 소란스러운 우표의 세계》 서은경 현암사 2023.4.5. 《우표의 세계》(서은경, 현암사, 2023)를 읽다가 ‘나래터(우체국)’에서 쓰는 숱한 말이 일본말씨인 줄 새삼스레 느낍니다. ‘초일봉투’나 ‘전지’ 같은 일본말씨를 여태 안 고치는군요. 저는 어린이로 살던 1982년부터 나래꽃(우표)을 모았습니다만, 나래꽃책(우표첩)을 빌려주고서 못 돌려받은 뒤로는 더는 모을 마음이 사라졌으나, 다달이 읍내 나래터에 가서 《우표》란 달책은 꼬박꼬박 읽습니다. 글쓴이는 ‘나이든 아재’를 꽤 거북하게 여기는 듯싶은데, 글쓴이도 머잖아 ‘꼰대 아재’ 나이에 이릅니다. 그분들이 비록 ‘꼰대 아재’여도 ‘나래꽃’ 하나에 깃든 작은 살림을 이야기하며 눈망울을 반짝이는 어린날을 보낸 기나긴 길을 걸어온 줄 좀 헤아려 보았다면, 이 책은 새록새록 돋보였으리라 느낍니다. 글쓴이가 모으는 나래꽃만 빛나야 하지 않아요. 요새 나래터 앞에 서는 줄은 예전에 대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쪽종이가 왜 ‘나래(날개)’인지 살피기를 바라요. ㅅㄴㄹ 편지 한 통을 보낼 때 우편 요금을 얼마나 내야 하는지 → 글월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푸른책 읽기 48 《봉선화가 필 무렵》 윤정모 푸른나무 2008.9.1. 《봉선화가 필 무렵》(윤정모, 푸른나무, 2008)은 꽃이 필 무렵에 꺾여버린 꽃이 어떻게 흙으로 돌아가서 다시 싹을 틔우고 나무로 자라서 늦꽃으로 피어나는가 하는 줄거리를 들려줍니다. 꽃을 지켜보는 분은 다 알 텐데, 이른꽃은 맑고 늦꽃은 짙습니다. 일찍 피는 꽃은 밝고, 늦게 피는 꽃은 환합니다. 어린꽃도 할매꽃도 모두 꽃입니다. 아기꽃도 할배꽃도 나란히 꽃이에요. 꽃은 모두 꽃일 뿐, 꽃이 아닌 꽃이 없습니다. 먼먼 옛날부터, 그러니까 나라가 서서 임금님이 있고 나리가 있고 벼슬아치가 있고 글바치가 있던 무렵에, 수수하게 살림을 지으면서 글을 모르더라도 말로 모든 살림을 가르치고 물려주면서 아이를 사랑하던 사람들을 ‘들풀’이나 ‘들꽃’으로 가리키곤 했습니다. 들풀은 들풀이고, 들꽃은 들꽃입니다. 들풀하고 들꽃은 ‘민(民)’도 ‘백성’도 ‘민초·민중’도 ‘인민·시민·국민’도 아닙니다. ‘임금·나리·벼슬아치·글바치’는 예나 이제나 ‘들풀·들꽃’이라는 이름을 좀처럼 안 쓰려 하거나 꺼리거나 내칩니다. 왜 그러겠어요? 그들은 풀도 꽃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