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40] 들꽃 아침에 일어나니 들꽃이 무척 보고 싶었다. 달 끝물이라 짬이 될까, 서둔다. 여러 군데 돈을 보내고 손질도 빨리 끝냈다. 배가 살짝 고픈데 밥을 먹다 보면 마음이 바뀔 듯했다. 마침 곁님이 삶은 옥수수를 둘 준다. 커피하고 주스를 샀다. 며칠 앞서 걸이를 샀다. 물을 꽂으면 커피를 둘 곳이 없었다. 밑칸에는 물을 넣었다. 위에 종이와 붓을 담은 컵을 내리고 그 자리에 커피를 놓고 옆칸에 주스를 두고 전화기도 꽂는다. 라디오를 듣다가 성경을 듣는다. 걸이가 막혀 소리가 울리고 세다. 뒷칸에 옮기니 듣기가 가볍다. 곁님이 준 옥수수를 먹으면서 달린다. 몇 차례나 들머리를 지나가던 곳인데 한 바퀴 돌고 빠져나가는 길에서 엉뚱한 길로 나왔다. 내 생각에 바로가야 하는데 파동 쪽으로 알린다. 잘못 들어선 줄 뒤늦게 알지만 어쩌지 못하고 그대로 간다. 마을 끝에서 길이 만난다. 그래도 신바람이 난다. 돌아가는 일이 내겐 안 낯설다. 혼자 가니 수다 떨 일도 없으니 저 멀리 마을도 잘 보인다. 우륵마을에 가 보지 않아도 누가 나무라는 사람도 없어 홀가분하게 달린다. 해를 안고 달린다. 햇살이 따갑다. 차 문짝에 둔 토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39] 짜증이 사라지다 어제는 온통 먹구름으로 무겁고 까만 마음이더니 조금 갠다. 어제 큰딸한테 “영어를 모르네, 냄새가 나네.”’ 같은 온갖소리를 들었다. 그저 지나가며 한 말이라지만, 좀 아니라고 느꼈다. 곁님이 “할머니한테 냄새가 나도 모두 냄새난다는 말은 안 하잖아.” “그렇게 말하면 그때 바로잡아 주어야죠. 언니, 그러면 안 된다 하고, 당신도 따끔하게 말해야지.” 때를 놓쳤지만 마침 뛰러 간 사이 우리끼리 흉을 보았다. “나도 돈이 있어야 한다, 우리 사위한테 점수도 따야지.” 하고 말한 탓인지, “자 용돈이다.”하면서 곁님이 돈을 준다. 얼씨구 좋다 싶어 싹 닦아 넣는다. 모아서 딴 통장에 넣으려고 아무도 모르는 자리에 치워 두었다. 작은딸이 이제 안동으로 간다. 이 돈 십만 원을 꺼내서 주니 “엄마 돈 없잖아, 엄마 써.” “그래도 받아.” 끝내 안 받는다. 갸륵하고 고맙고 사랑스럽다. 이제 큰딸과 둘이 남는다. 작은딸을 역에 태워 주고 머리를 손질하고 오니 큰딸이 집에 왔다. 문을 여니 파스 냄새가 훅 난다. “웬 파스 냄새지.” “아, 오늘 많이 뛰어서 다리에 뿌렸어. 냄새가 그렇게 많이 나?” “문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38] 아직 모르는구나 목요일이 가장 조용한데 바쁘다. 이틀치가 한꺼번에 들어왔다. 점심때가 지나도 끝내지 못했다. 도서관 강의를 듣기로 한 날인데, 지난주는 첫날인데도 깜빡했다. 오늘은 벼르지만, 마음이 바뀐다. 밥을 안 먹고 간다면 늦지 않게 닿는데 한 통 받은 전화로 찜찜했다. 어느 곳에 내 글이 두 꼭지 실릴 차례다. 마감날이 지난달 끝인 줄 알았는데 이틀 지났다. 내 셈은 끝날이니깐 닷새 당겨서 일요일쯤 보내려고 달력에 별을 셋이나 그려 놨는데 처음부터 마감을 잘못 알았다. 누리글(메일)로 청탁서가 왔다. 누가 ‘제때 안 보내면 다음에는 청탁 안 한다’는 말을 얼핏 들었다. 끝날까지 틈을 준다지만 저녁에 보낸다고 말했다. 도서관엘 갔다가 네 시에 마치고 보내도 넉넉하다. 그렇지만 말을 안 지키는 사람이 되어 마음이 무거웠다. 이런 일이 있을까 봐 미리 보내려 했다. 시집에 실린 글을 보냈더니, 새로 쓴 시를 보내야 한단다. 게다가 나처럼 바로 보내지 않는다고 했다. 마감 며칠 앞서 낸다는 말을 듣고 영글게 한다고 한 일이 이 노릇이 되었다. 보낸 뒤 아는 분한테 날짜를 넘겨서 죄송하다고 했다. 그러다가 시집에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37] 은행나무가 들려주다 은행나무가 사람을 만났기에 씨앗을 잇는다. 알알이 품은 냄새를 짙게 뿜자 달아나는 숨결로 뿌리를 내려가기 힘들다. 하늘로 뻗어야 할 나뭇가지가 누웠다. 한 사람이 품은 억센 넋에 은행나무는 고분고분 가지를 한껏 낮춘다. 사백 살 넘도록 도동서원 앞뜰 한 자리에서 풀꽃을 바라보고 파릇이 돋아나는 풀잎이 햇빛에 바지런히 일하고 열매를 맺고 다시 고요에 들어가는 모습을 헤아릴 수 없이 지켜보았을 테지. 바람결에 속삭이는 은행잎 말을 듣는다. 몇 사람이 손에 손을 잡아야 나무가 잡힐 듯 굵고 우람하다. 하늘로 올라가는 몸통은 찢어져서 기워놓았다. 이 은행나무를 보고 글집 나이를 가늠한다. 공자를 섬기는 옛집은 나무를 한 그루 심는단다. 느티나무나 소나무 향나무가 있을 테지만 글집이나 배움집에는 은행나무만 심는단다. 김굉필 기림돌을 먼저 둘러본다. 살아서 무엇을 했는지 새긴 글이 있다. 나무판으로 가려놓은 틈으로 들여다본다. 바닥 받침돌에 거북이 머리 둘이 마주본다. 사백 해가 넘도록 거북 부부는 무슨 말을 나누었을까. 등에 짊어진 돌에 한자를 빼곡하게 새겼다. 읽어내지는 못하지만 군데군데 칸이 빈다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36] 나흘만에 손질 한가위로 며칠 쉰다. 시골에서 어머니하고 시동생이 온다. 나물을 볶고 저녁을 했다. 한가위날 제사를 지내고 일터로 가서 나물을 손질하려고 했는데 가지 않았다. 일요일이라도 꼭 가서 손질해야지 생각했는데 작은딸이 아버지하고 동생 옷을 산다고 돌아다니다가 못 갔다. 밤에 잠을 자다 가도 가게 나물만 떠오른다. 쉬다가 나흘째 되는 아침, 도매시장도 논다. 일찍 나가서 나물을 손질한다. 과일을 앞으로 당기고 나물을 본다. 깻잎은 다 나가서 자리가 휑하다. 실파 하나는 누렇게 떠서 뿌리 쪽을 조금 남기고 잘라 버렸다. 쑥갓은 누렇게 말라서 모두 버린다. 부추는 몇이 물렀다. 뭉개진 것을 고르는데 장갑에 달라붙는다. 걸레로 장갑을 닦고 다시 담았다. 양상추는 껍데기를 벗기니 알이 아주 작다. 비싸게 들어왔는데 크게 잃는다. 표고버섯은 물기를 먹어 곰팡이가 피었다. 골라 버리고 하나에 모아 담았다. 깐양파가 다 나갔다. 열 알을 까서 담았다. 대파는 세 단 까고, 묶인 대파를 비닐에 담아 세워둔다. 묵은 꽈리고추 하나는 무른 걸 골라내고 뒤에 둔다. 양배추는 어제 곁님이 잘라놓아서 넘어간다. 당근 자리도 휑하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35] 심장 차를 세우고 걸어오면서 시어머니를 바라본다. 작은 몸집이 더 작다. 기둥에 서서 나를 기다린다. 멀리서 보니 착한 아이가 두리번거리면서 엄마가 오기를 기다리는 듯했다. 어머니 팔을 잡는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휠체어가 있다. 종이에 이름을 적고 하나 빌렸다. 어머니를 태우고 가방을 뒤에 걸고 민다. 한 층 내려가서 심장내과에 갔다. 주민증이 없다고 하니 원무과 가서 접수증 떼오란다. 밀고 가기에는 번거롭다. 이름으로 봐 달라고 여쭈었다. 종이를 뽑아서 준다. 돈을 먼저 내고 옆방에서 심전도 검사를 한다. 바로 누워야 하는데 등이 굽어서 다리를 세우고 베개를 등까지 괴었다. 옷을 걷어 올린다. 어머니 배가 등에 붙은 듯 쑥 들어갔다. 젖꼭지는 콩알보다 더 작다. 앙상한 몸집이 안쓰럽다고 여기니 눈물이 몰려오더라. 누우니 시할머니가 숨이 멎을 때를 보는 듯했다. 고개를 저으며 떠오른 생각을 지운다. 이제 한 층 더 내려가서 가슴 사진을 찍는다. 하늘빛 겉옷을 벗고 팔이 긴 티를 벗고 속옷바람으로 찍는다. 휠체어를 가슴 사진판 바로 밑에 세운다. 힘이 떨어지면 그대로 앉을 수 있게 했다. 두 팔 벌러 판을 껴안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34] 짜증 손톱 뿌리가 있는 한 마디가 거무데데하게 부풀고 살갗이 뜨겁고 따갑다. 아들이 꺼내준 얼음을 비닐에 담아 둘둘 감는다. 밥이 모자라서 얼린 밥을 데웠다. 살짝 묶은 비닐 틈으로 쏟아지는 뜨거운 김에 살갗이 익었다. 얼음이 다 녹자 얕은 컵에 얼음을 담고 물을 담았다. 손가락을 물에 담그는데 곁님이 전화했다. 아버님은 벌을 지킨다고 못 오신다. 말벌이 벌을 물고 날 적에 무거워 느리게 날 때 파리채로 잡아야 한다고 시어머니가 오신다고 했다. 삼촌만 온다고 했는데 나도 모르게 짜증이 났다. 이젠 가게 일이 내겐 힘들다. 목이 아프고 손마디 뼈가 튀어나와서 아프다. 아무래도 손마디가 바로 펼쳐지지 않는다. 내 나이쯤 되면 일을 가볍게 해야 하는데 일이 힘들어 스스로 울컥거리는 날이 잦다. 손도 데어 나물을 씻고 주걱으로 볶는 판에 달아오르니 덴 살갗이 아프다. 쌓아 놓은 설거지를 해서 포개 놓았는데 컵이 떨어져 조각났다. 방금 딸이 잔이 예쁘다고 하면서 커피를 마신 그 잔이다. 손을 많이 써야 하는데 어쩌다가 데고 컵이 떨어져 깨졌을까. 한꺼번에 이런 날이 잘 없는데 또 뭔 일이 일어나려나, 짜증은 왜 자꾸만…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33] 양복 작은딸이 십이월에 시집간다. 식구들이 다 모이는 한가위에 아빠와 동생 양복을 사주겠다고 했다. 한 푼이라도 아쉬울 텐데,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선물이라면서 지갑을 연다. 나는 두 사람한테 비싼옷 사지 말자고 했다. ㅇ에 모인 옷가게에서 싸게 파는 옷을 사자고 했다. ㄱ에 들렀다. 큰딸이 나서서 옷을 고른다. 옷가게 지기도 고르고 몇 벌을 입었다 벗었다 드디어 맞는 옷을 찾는다. 파란빛이 도는 옷은 등판이 커 보인다. 이제는 나이가 들어서 다음해에 입기에는 덜 어울릴 듯하다. 파랗지도 까맣지도 않은 잿빛이 도는 까만빛이 몸에 착 붙는다. 옷을 입으니 잘 받는다. 처음 이 사람을 보았을 적에 입고 온 옷에 반했다. 잿빛인 짧은 웃옷에 파란 바지가 무척 어울렸다. 몸매가 날씬했다. 딸이 골라준 옷을 입고 거울 앞에 선 모습을 보니 그때 모습이 오락가락한다. 아직 옷발이 잘 받는다. 열 해 앞서까지는 양복이 일옷이었다. 오랜만에 새 양복을 입는다. 빨간 넥타이도 고르고 웃옷도 고른다. 작은딸이 돈을 내고 나는 바람막이와 가벼운 바지를 고른다. 이제 아들 양복을 산다. 자리를 옮겨 젊은이 옷집으로 갔다.…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32] 강가 걷기 큰딸이 집에 왔다. 해가 떨어지면 시냇가에서 뛰자고 한다. 한가위 지나면 달리기 대회에 나간다나. 요즘 뛰기에 푹 빠졌다. “엄마는 뛰지 못해” “그럼 나 뛰는 거 구경해” “그럴까” 창밖을 보니 구름이 발갛다. 옷을 주섬주섬 입었다. 건널목을 건너고 철길 건널목을 지나 골목으로 빠져나오니 냇가를 잇는 다리가 나왔다. 다리를 건너 강으로 내려갔다. 남쪽으로 가다가 돌아보니 구름이 노을을 입었다. 금빛이었다가 붉게 바뀐다. 더 붉어질까. 딸한테 말해서 길을 바꾸자고 했다. 북쪽으로 시내를 따라간다. 비둘기가 길바닥에 몇 마리 가만히 있다. 다리 밑으로 가까이 가니 포르르 날아오른다. 비둘기가 앉은 곳은 다리 바로 밑판이다. 가만가만 전봇대에 참새가 앉듯이 나란히 앉았다. 끝이 안 보였다. 아, 비둘기집이었구나. 비가 오면 어디서 쉴까. 잠은 어디서 잘까 무척 궁금했는데, 다리 밑판에서 쉬는구나. 더울 때는 시원하고 비바람을 그으면 따뜻하겠다. 내가 있어 물 먹기 좋고 햇살이 들면 풀밭에 나와 쬐기 좋고 차에 부딪힐 걱정 없어 마음이 놓인다. 따라나오길 잘했구나. 이렇게 많은 비둘기가 쉬기에는 다리 밑판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31] 목소리 돌개바람이 지나간 다음날 엄마한테 전화했다. “비 피해는 …….” “그래, 괴안타. 아랫마을에 일하러 왔다. 뭐라 카노… 왜 그러노?” “갑자기 말이 안 나와 …….” “잠 안 자고 너무 공부해서 그렇다” 말이 나오지 않아서 더듬거리는데 엄마는 너무 애쓴다고 하네. 옆에 누가 있는 듯하다. 어쩐 일인지 다른 사람 들으라는 딸 자랑하는 말이네. 삼십 초 넘기지도 못하고 끊는다. 목에 가는 털이 서로 부딪치듯 작게 떨리며 간질간질했다. 나오지 않았다. 기침으로 목을 가다듬고 살가죽을 당기지만 목에서 떨리며 소리를 막는다. 일어나 물을 마시지 않아서 더 그런가. 밤새 입을 꼭 다물고 자서 그런가. 일할 때는 말짱하다가 집에 와서 입을 다물어서 그런지 곁님이 전화하면 기침만 나고 말이 안 나온 적이 몇 차례 있었다. 이러다 목소리를 잃는가. 혼자서 ‘아아아아아’ 소리를 내지만 간질간질한 떨림이 사라질 때까지는 내지르지 못했다. 마침 집에 온 큰딸한테 말했더니, 큰딸이 유전자검사를 했단다. 직장에서 건강검진을 받는데 발병률이 높은 암검사를 다섯 가지 해준대서 갑상선암을 받았다. 발병율이 99%라나. 어쩐다나.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