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71] 우산 우리 집 문앞에 우산이 한 보따리 있다. 이렇게 많이 있었나. 아이들이 예전에 쓰던 우산을 다 들고 왔나. 그저 웃으며 집으로 들어와서 묵은 짐을 치운다. 이제 버리기만 하면 끝난다. 버릴 살림으로는 옷이 가장 많고, 그다음으로 우산 같다. 신발장 손잡이에 우산 또 둘 걸렸다. 이 가운데 말끔한 우산은 따로 꾸려 놓는다. 그런데 우산이 또 셋이 더 나온다. 신발장에 또 하나 나온다. 잔뜩 나온 우산을 들고 나와서 버리자니 경비 아저씨들도 놀란다. “아저씨, 우산이 좀 많죠? 못 쓰는 건 버리지만, 쓸 수 있는 우산은 저기 앞에 두셔서 비 오는 날에 우산 없어서 비 맞는 사람이 있으면 나눠 주세요.” 우산을 버리려고 비닐을 벗기고 살만 모은다. 큰 뭉치로 나오는 우산살을 보니 어쩐지 낯이 뜨겁다. 집에서 한 사람이 제금을 나는데 버리는 것이 너무 많다. 우리 딸은 우산을 왜 이리 많이 모았을까. 문득 밖에서 비를 만나 우산을 사기도 하고,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또 비를 만나 또 새로 우산을 사고 했을 테지. 이미 사 놓은 우산을 자꾸 잊으면서 또 사고 새로 산 탓이지. 나는 그동안 어떠했을까. 곁님은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72] 안아 보자 작은딸네가 나를 바래다준다. 둘이서 창살문을 뒷자리에 싣는다. 함지박도 뒷자리에 싣고 닫는다. “엄마, 잘 가.” “장모님 조심히 들어가세요” ‘그래’ 하고 말하기에는 어딘지 모르게 싱겁다. “함 안아 보자.” 두 팔을 벌렸다. 둘을 품에 안았다. 왼팔은 새사람을 안고, 오른팔은 작은딸을 안는다. 딸이 아까부터 삐진 사람처럼 뾰로퉁하게 있더니 속으로 울었구나. 등을 토닥거리면서 우리 딸 눈을 보니 반짝인다. 눈물이 맺혔네. 콧소리를 내네. 쑥스러워 이런 모습 잘 드러내지 않던 아이인데, 울었네. 바라보는 나도 눈물이 차올랐다. 나무 사이로 불빛이 비친다. 딸 얼굴이 어릿거린다. 살짝 안았는데 꽤 길었다. 딸아이 잘 부탁한다고 말하고 또 말하려는데 저쪽에서 다른 차 한 대가 올라온다. 부르릉 하며 다른 차가 저쪽으로 들어가는 걸 보고 창문을 내린다. 이젠 헤어지네. 작은딸이 숨기려고 해도 눈물이 찬 얼굴은 티가 났다. 엄마는 알지. 손을 흔들었다. 엄마와 딸을 좁혀 주는 눈물 같다. 꾹 참는 마음은 훅훅 흐를 테지. 딸을 보니 가녀린 몸으로 일을 다니고 집안일을 하고 앞으로 스스로 삶에 풍덩 뛰어들어야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70] 말 말을 보다가 ‘아, 칼 안 쓰는 날을 여쭈려고 했는데 깜빡했네.’ 하고 생각한다. 두 손을 모아 깍지를 끼며 손가락으로 손등을 힘껏 누르며 혼잣말을 한다. 의성 엄마가 파릇파릇한 말을 깨끗이 씻어서 썬다. 무를 먼저 썰어 살짝 바알갛게 물들 만큼만 고춧가루를 넣고 버무리다가 말하고 섞는다. 엄마가 손으로 섞는데 침을 꼴딱 삼켰다. 손으로 한 입 집어 먹었다. 어린 날 먹던 맛이 난다. 말은 된장으로 무쳐야 제맛이지. 바로 먹고 싶은데 꾹 참는다. 그릇에 담아 달라고 했다. 단술도 조금 얻어 하회에 갔다. 시아버지도 잘 드시고 시어머니도 잘 드신다. 아버님은 “참 오랜만에 먹어 보네.”’ 한다. 이가 안 좋아서 몇 가닥씩 집어서 드신다. 나는 밥에 듬뿍 올렸다. 무치고 남은 된장을 얻어왔는데, 함께 비빈다. 된장이 많이 짜네. 그래도 말에 더 섞는다. 들고 오는 사이 무가 숨죽으니 물이 고였다. 말잎이 푹 죽어도 맛있다. 한 그릇을 비우고 한 숟가락 더 비벼 먹었다. 가음못을 지날 적에 보니 그 큰못이 얼었더라. 말은 깨끗한 물에만 산다던데, 얼음을 깨고 말을 쳤겠지. 어떤 사람인지 몰라도 말을 건져서 파니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69] 잘 걷지 “엄마, 금요일 언제쯤 오나?” “10시쯤 나설게. 일찍으면 너 집 치울게.” “여수 가면 좀 걷는데 잘 걷제?” “그래 내 잘 걷는다. 그런데 일요일이 보름인데 마을잔치를 열면 못 가지 싶다.” “아, 보름이가?” “둘이가 밥 당번인데 나도 나이가 들어가, 오십만 원 받아 밥 당번 맡는데, 내가 가면 혼자 한다고 말 나잖아. 일요일에는 교회 나가는 사람들이 있어 어쩔지, 알아보고 말할게.” “그러면 못 가겠네. 다음에 가면 되니 잔치 하면 오지 마요.” “세 해씩이나 놀러 못 댕겼는데, 나도 가고 싶지.” 엄마랑 같이 못 가도 나는 여수 오동도에 갈 생각이다. 여수 바닷가에서 저녁에 해넘이를 보고서, 아침에 해돋이도 보고 싶다. 붉게 물들인 하늘하고 바닷물이 무척 보고 싶다. 몇 군데 돌고서 순천으로 넘어가 선암사와 송광사에 갈 생각이다. 이렇게 지나는 길에 낙안읍성과 순천만도 볼까 싶다. 청산도까지 가고 싶지만, 청산도는 꽃이 활짝 피어날 무렵으로 미룬다. 길그림을 펼쳐 놓는다. 엄마랑 같이 간다면 더 좋을 텐데, 아무튼 가고 싶은 곳을 더 적어 넣는다. 주소도 옆에 적는다. 이렇게 길그림을 펼치고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68] 견디기 시골밭에서 흙을 담아 왔다. 동백에 조금 뿌리고 조그마한 텃밭에 살살 뿌렸다. 꽃이나 잎이 떨어지면 잘게 뜯어서 흙에 묻었다. 잎이 작고 여려서 이내 흙으로 돌아갔다. 작은 동백나무가 우리 집에 올 적에는 흙에도 나무에도 잎에도 이끼가 끼었다. 비닐집에서 살 적에는 촉촉해 보였는데, 우리 집에 오니 흙이 빨리 마른다. 물을 주어도 하룻밤 자고 나면 흙이 마른다. 손가락으로 살살 파 보고 긁어 보다가 물을 한 벌 준다. 물을 주다가 자꾸 마음이 쓰인다. 물을 주면 밖에 내놔야지 생각하다가 물을 주어서 얼면 또 어쩌나 걱정하고, 밑에 깔아 놓은 수건을 끌고 다니다가 한추위가 지나면 밖에 내어 튼튼하게 키우자 생각하다가, 아니지 밤새 추우면 어쩌나 싶다.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안으로 들였다. 벌써 다섯여섯 송이가 꽃잎을 연다. 아무래도 따뜻해. 동백은 추운 날 꽃을 피울 만큼 추위를 견디지. 시골서 갖고 온 흙을 꽃삽에 담아 여리고 작은 풀이 넘어지지 않게 살살 뿌렸다. 받침대에 깔아 놓은 수건을 당겨서 밖에 두었다. 이제는 안에 들이지 말아야지 생각한다. 바람을 알맞게 견뎌야 꽃이 차츰차츰 필 테고 오래 볼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65] 동백 들이다 먼저 일 나가는 곁님이 문을 열고 들어온다. “하회에 언제 갈려노. 의성도 들르고 오자.” “아, 난 주말에는 바람 쐬고 싶은데.” “참, 동백을 찾아보니 네 군데 있더라. 니 말대로 부산에 동백섬도 있대. 주말에 통영 장사도에 갈래?” 며칠 흐름이 깨지니 몸이 쑤신다. 머리도 한몫 거든다. 깡통이 머리에 든 듯하다. 설날에 읽으려고 꺼낸 책을 펼치니 안 읽힌다. 설날이면 보던 우리 소설이 생각났다. 꾸러미로 들인 책을 훑다가 다른 책을 펼친다. 어제는 제법 읽히더니, 책을 읽다가 동백이 언제쯤 꽃이 활짝 피려나 하는 생각이 가득하다. 이러다가 벌떡 일어난다. 동백을 안 보고는 못 견딜 듯하다. 요즘 몸이 자주 발끈하네. 해가 더 저물 텐데 꽃집으로 가자고 안달이다. 모자를 꾹 눌러쓰고 차를 몰았다. 밖은 추워도 차에서는 따뜻하다. 창으로 들어오는 햇볕이 좋다. 자리를 뜨끈뜨끈 데운다. 꽃집 앞에 선다. 꽃집은 날이 추우니 꼭꼭 닫아건다. 쉬는날 같지만 웅크릴 뿐이다. 한 집 한 집 문을 열고 들어간다. 동백이 한두 포기뿐이네. 어떤 집은 복숭아빛이 도는 서양동백이네. 이 아이는 삼색동백이네. 아,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64] 헌책으로 누리책집에서 내 시집을 뒤져 보았다. 새책 곁에 헌책이 나란히 뜬다. “이건 뭐지? 아, 벌써 헌책으로 나왔네! 이 일을 어째! 아직 시집을 낸 지 한 해조차 안 지났는데?” 갑자기 낯이 뜨겁다. 물을 한 모금 마신다. 숨을 돌리고서 생각한다. 아니, 나도 헌책을 곧잘 사는데, 왜 내가 내 시집이 헌책으로 나왔다고 해서 낯이 뜨거워야 할까? 내가 쓴 시집이 헌책으로 나왔다면, 누가 틀림없이 읽었다는 뜻이다. 그분이 샀든 누구한테서 받았든. 그렇지만, 지난해까지는 다른 사람들이 쓴 책을 샀다. 여태 다른 사람들 책을 새책으로도 헌책으로도 사면서 마음이 무겁지는 않았다. 새책은 새책대로 헌책은 헌책대로 그저 읽어 왔다. 그런데 나는 왜 새해 첫머리부터 헌책 하나를 놓고서 무슨 큰일이 났다고 여기는가. 헌책을 사서 읽어 보면 알 텐데, 기쁘게 사서 곱게 건사했다가 내놓는 헌책이 있고, 재미없거나 값없다고 여겨 버리는 헌책이 있다. 잘 읽어 준 분 손길을 탄 헌책은 이름대로 ‘헌’ 책이어도 깨끗하고, 손빛이 곱게 묻어난다. 사랑을 못 받고 버림받아 ‘낡은’ 책은 갓 나온 뒤에 헌책으로 나왔어도 어쩐지 꾸깃꾸깃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딸한테 10 ― 수밭고개 2 거미줄에 걸린 참새를 본다 거꾸로 매달렸다 벌써 숨을 거두었을까 조용히 한 발짝 다가선다 가늘게 눈을 깜빡인다 아, 살았구나 살살 거미줄을 끊는다 바닥에 내려놓는다 파닥파닥 곤두박을 치고 쉬잖고 날갯짓을 한다 푸득 하늘로 날아간다 어느새 멀리 사라진다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67] 액시야 아침에 늦잠을 잤다. 시계를 보다가 쪽글을 본다. 눈도 떨어지지 않는다. “액시야 힘내라.” “그래. 고마워. 오늘 늦잠 잤네. 그제 제사 지내고 어제 몸살 했더니, 눈 뜨니 8시다. 아, 늦었뿟다.” “약 먹어라, 그냥 있지 말고. 우리 어제 영덕에 바다낚시 하러 왔다. 1박2일 하고 식당에 밥먹으러 왔다.” “우와 좋으네. 재밌게 놀고 맛난 거 먹고 겨울바다 잔뜩 보고 와.” “그래. 재밌다. 고기도 많이 잡았다.” ‘액시야’를 모처럼 들어 본다. ‘액시’는 경북 의성에서 시누이를 부르는 말이다. 내겐 언니인데 나는 말을 놓는다. 액시라고 부르는 언니는 나와 초등학교를 같이 나왔다. 다 어려울 적이지만 다른 사람보다 더 어려웠다. 반 아이들이 도시락을 한 숟가락씩 담아 나누어 주었다. 이때는 내가 작기도 했지만, 언니는 또래보다 키도 크고 얼굴이 참 예뻤다. 내가 고등학교 때 우리 사촌 오빠와 사귀더니 오빠가 졸업하자 바로 살림을 차리고 애를 낳았다. 어떤 때는 언니라고 부르지만 그냥 말 놓는다. 그 곱던 얼굴이 참 많이 바뀌었다. 우리가 고등학교에 다닐 적에 이 언니는 학교에 다니지 못했다. 살림이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66] 서울 가는 길 2022년 12월 첫머리에 《풀꽃나무하고 놀던 나날》을 내고서 처음으로 서울에 간다. 책수다를 열기로 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며칠 끙끙했다. 몸은 나보다 더 떨었는지 밥숟가락도 잘 들지 못했다. 더군다나 몸살이 나서 나들이에 마음을 쓰지 못했다. 머리가 다 풀어진 줄도 모르고 이틀 앞두고 머리손질을 했다. 딸한테 어떤 옷을 입고 갈까 묻느라 지쳤다. 얌전한 차림새를 하려고 하다가, 하루를 버티려면 등산화를 신어야겠구나 싶고, 옷하고 신이 안 맞는 듯하고, 가방을 메고 낯선 서울을 다니기엔 거추장스러울 듯싶고, 두툼한 겉옷과 등산화를 신는다. 세 시간 미리 가서 마음 추스르면 한결 나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모 말에 서울이 춥다는데 너무 일찍 가서 떨면 어쩌나 한 시간만 늦추자고 차표를 보다가 가슴이 철렁했다. 대구서 서울 가는 표를 끊어야 하는데, 거꾸로 서울서 대구 오는 표를 살폈다. 마침 자리가 있어 표를 다시 끊었지만 까딱했으면 기차를 타고 들과 산에 쌓인 눈도 못 볼 뻔했다. 4호선을 타고 7호선을 갈아탄다. 갈아타는 곳을 헤매다가 지나가는 사람한테 여쭙고 다시 내려와 푸른띠를 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