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52] 글손질 넉걸음 새로 낼 책을 놓고서 이제 마지막 글손질이라고 여기고 넘겼는데, 더 손질한 글월이 왔다. 어느새 넉벌이나 손질하는 글이다. 책 하나를 내는데 이렇게 또 손질하고 더 손질하고 자꾸 손질을 해야 하나? 넉벌째 손질한 글을 쭉 살피는데, 묶음표에 붙인 뜻이 틀렸다. 어머니 시골말인 ‘짜들다’는 ‘쪼들리다’가 아닌 ‘깨지다’이다. 어릴 적에 듣고 쓰던 사투리를 글에 그냥 썼는데, 다른 고장에서는 우리 어머니 사투리를 다르게 읽을 수 있구나. 미처 몰랐다. 이다음에는 먼저 묶음표에 서울말씨를 넣어야겠다. 더 손질해서 보내온 꾸러미를 새로 읽을 적마다 덜컹거리는 대목이 눈에 띈다. 막판에 더 붙이다가는 자칫 틀린글씨를 바로잡지 못한 채 나올 수 있다고 한다. 그래도 더 손볼 데라든지, 보태야 할 곳을 차근차근 적어 놓는다. 일을 다 마치고서 출판사로 보낸다. 이다음에 다른 책을 내놓을 적에는 글을 더 살펴서, 앞뒤로 이야기가 부드럽게 이어지는지 제대로 추스르고 써야겠다. 그나저나 이 책이 곧 나오면 내 삶이 발가벗을 듯해서 이만저만 마음이 무겁지 않다. 이렇게 나를 다 드러내도 될까 콩닥이는데, 곁님이 전화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51] 공해 어떤 모둠누리칸(단체 카톡방)에 몇 사람이 그림(이모티콘)을 올린다. 그런데 그곳에 올라온 글은 거의 안 본다. 나와 뚝 떨어진 이야기라 그런지 읽지는 않는데, 그렇다고 그곳에서 빠져나오지는 못하겠고, 빨간 숫자만 지우려고 열어본다. 모둠칸(단체방)은 어쩐지 새로운 ‘공해’라고 느낀다. 작은딸이 꽃잔치(결혼)를 열기에 모둠누리칸에 카톡을 보낸 일이 있다. 작은딸 꽃잔치를 기뻐해 주는 이야기를 처음 볼 적에는 반갑더니, 어느새 이것저것 파는 알림글을 나한테 아침저녁으로 몇씩 보내는 언니가 있다. 며칠 꾹 참았다. 읽어 보지 않고 알림숫자가 거슬려서 열어 보는데 밤에 또 온다. 언니는 예전에 화장품을 하다가 이제는 몸에 좋다며 다른 것도 판다. 너무 달라붙듯 사라고 하니깐 싫다. “언니, 내가 사야 할 적에 살 테니깐, 자꾸 보내지 마세요. 버거워요. 일하다가 알림소리가 나서 열어 보기도 벅차요. 좀 봐주세요.” 언니는 이 글월을 본 뒤로는 알림 카톡을 보내지 않는다. 마음이 좀 무겁지만, 말을 해야 하는 쪽이 나을 듯했다. 한쪽이 어떻게 버거운지 모를 수 있다. 어쩌다가 보내면 덜 할까 모르지만, 번거롭게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50] 금지령 병원에 갔다. 어제 아침에는 가볍게 몇 발짝 걸었는데 찜질을 하고 난 뒤에는 한 걸음도 걷기 힘들었다. 걸레를 짜는 듯 틀려서 딛지를 못했다. 이러다 못 걸으면 어떡하나 앞이 캄캄했다. 나을 낌새가 없다. 쪼그리고 앉은 지 꼬박 세이레, 버티다 못해 찾았다. 막상 병원에 오니 한결 나아 잘 걷는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다 서기 힘들어 계단으로 2층을 오른다. 아홉 시가 조금 넘는데 앉아 기다리는 사람을 어림잡으니 백이 넘는다. 문 앞에 있는 간호사가 이것저것 묻는다. 내 차례가 되었다. 의사는 내가 간호사한테 말한 글을 읽는다. “3년 만에 오셨네요.” “인대가 늘어났는지 아파 딛지를 못해요.” “인대가 문제가 아니라, 그때 젊어서 65세까지 쓰라고 했는데. 안 되면 인플란트를 해야해요.” “제가 산엘 좀 다녔어요.” “산에는 절대 가면 안 되고, 수영이나 자전거 타고 판판한 길 걷기하고 몸무게가 늘지 않도록 해요.” “수영을 하니 자꾸만 쥐가 나서 그만뒀어요.” “쥐가 나면 다른 동작을 하던가 해야지.” 다른 몸짓을 하더라도 발차기는 어디든 들어가는데, 발차기를 하다 보면 쥐가 나는데. 차마 말을 다 하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49] 매천시장 “거기 불났따고 TV에 난리 났는데 너 집은 괴안나?” “어디에 불 났대요?” “모르는구나. 시장이라는데 불길이 어마해. 함 봐라.” 손언니 전화를 받고 TV를 켰다. ‘매천시장’이라는 글씨가 지나갔다. 누리글을 찾으니 불이 엄청나다. 곁님은 바쁜지 아직 모른다. 밤새 날벼락으로 뜬눈으로 보냈을 텐데, 우리가 가는 가게는 괜찮을까, 시장이 멈추면 어쩌지, 발을 동동거릴 사람보다 이 생각이 먼저 지나갔다. 사흘 뒤에 ‘시사’를 지낸다. 문중 살림을 이 사람이 맡기에 해마다 장을 보는데 오늘 미리 본다. 어제 불난 자리가 어떤지 궁금해서 나도 따라갔다. 시장이 워낙 커서 아무 일 없는 듯했다. 차가 빼곡하다. 비좁은 틈을 빠져나가는 사람도 많다. 우리는 8번과 52번 가게 앞에 차를 세우고 들어갔다. 바닥이 반질반질하고 넓다. 여기서 경매를 하고 한쪽으로 가게가 가득하다. 넓은 경매장 기둥과 기둥 사이로 맞은켠을 보았다. 가게는 타다 만 살림이 뒤범벅이다. 가게마다 과일이 새까맣게 타다 말았다. ‘119’라는 간판을 걸어둔 바깥쪽 한 군데만 불에 그을리지 않았다. 불이 붙었던 지붕은 떨어지거나 너덜너덜하다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48] 나뭇잎 여름내 푸르던 나뭇잎이 울긋불긋 물들었다. 꽃처럼 나뭇잎도 며칠 확 물들고는 찬바람에 후드득 떨어진다. 떨켜는 잎을 놓아 버리고 나무에 가지가 앙상하다. 우러러보면 힘줄처럼 파란 하늘에 뻗었다. 떨어진 잎은 멀리 갈 생각이 없는지 바닥에 떨어져 차곡차곡 쌓인다. 갓 떨어진 잎이 빨갛고 노랗고 주황빛으로 물감을 바른 듯 곱다. 나는 몸을 구부리고 잎을 줍는다. 은행잎 다섯 왕버들잎 열쯤 주웠다. 너무 고와서 돌에 얹어 보았다. 햇빛에 두니 더 붉고 노랗다. 벌레가 갉아먹은 잎줄기가 보이는 나뭇잎을 책에 끼워 두었는데, 이 고운 잎도 끼우려고 종이에 싸서 가방에 넣어 집에 왔다. 두꺼운 책을 꺼내 끼우려고 꺼내니 낮에 보았던 나뭇잎이 아니다. 그 붉던 잎은 우중충한 나무빛을 띠고 노랗던 빛도 어디 가고 나무빛 금이 뚜렷하다. 가장 곱게 떨어져 숨결이 아직 붙었는데 내가 이 빛을 빼앗았다. 나뭇잎은 나무 밑에 떨어져 마른 몸으로 나무를 또 돌본다. 그 자리에 떨어져도 바람과 해를 받아 물을 깊이 들이는 틈일 텐데, 자리를 옮기니 빛을 잃었다. 단풍나뭇잎은 그 빛 그대로 있지만 아직 곱기만 한 촉촉한 잎이 그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47] 개미취 이틀 꽃구경을 했다. 햇살이 머리를 지날 무렵이라 얼굴이 익어도 꽃을 보는 일이 즐거웠다. 꽃 구경하는 김에 꽃이 지면 아쉽지 않게 멧골 아닌 개미취 꽃밭으로 간다. 꽃이 마음을 빼앗아 간다기보다, 꽃을 보면 눈빛을 거쳐 온몸에 가슴에 허파에 꽃이 가득 핀다고 느낀다. 꽃이 질 적에 보기 흉하다고 여겨 멀리하려 했는데, 문득 눈을 돌리니 꽃이 가장 아름다울 때를 놓치겠구나 싶더라. 한 잎 두 잎 꽃망울을 품고 꽃송이 하나 피워내려고 줄기를 키우고 키워, 튼튼히 길을 낸 풀줄기가 마침내 꽃망울을 터뜨리려고 온힘을 쏟아낸 꽃바다가 보고 싶다. 쑥부쟁이 닮은 바위취꽃이 비탈진 자리를 아름다이 밝힌다. 우리보다 먼저 온 줄이 길다. 나무 밑에 자리가 났다. 바로 앞에 보랏빛 꽃밭으로 들어간다. 어제 본 해바라기보다 이 꽃이 더 크다. 내 키를 훌쩍 넘어도 줄기가 꼿꼿하다. 사람이 낸 길을 따라 들어갔다. 깨금발을 디뎌도 꽃 너머 밭둑을 보아도 안 보인다. 이 좋은 꽃밭을 두고 저 건너 솔밭으로 간다. 아마 더 넓게 꽃바다가 있겠지. 해도 살짝 숨어서 우리를 보는가. 구름을 한 겹 가려놓았다. 솔밭으로 들어가니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46] 해뜨는 새벽 이레가 지나도록 절룩거린다. 발을 디디면 무릎이 기우뚱 쏠린다. 이대로 숲을 오르기엔 안 되겠고 숲은 가고 싶다. 930미터 감악산에 해돋이를 보러 간다. 차로 올라 가면 조금만 걸으면 된다. 새벽 네 시에 나섰다. 새해도 아닌데 해돋이를 보려고 차에서 자는 사람도 있다니 차가 밀리지 않게 서두른다. 새벽길이 캄캄하다. 앞차 꽁무리 불빛하고 앞을 밝히는 불빛이 어둠을 뚫는다. 안개가 자욱하다. 달릴수록 바깥이 춥다. 7도이다. 여섯 시에 닿았다. 어둑하지만 맑은 하늘이다. 구름띠 너머 발간 빛이 살짝 비치니 곧 해가 솟아오를 듯하다. 차를 세우는 동안 구름띠가 곱게 물든다. 바다인지 산인지 헷갈리는 너머는 샛노란 빛이다. 바람이 찬데 놓치지 않으려고 빨리 걸었다. 무릎이 덜컹한다. 겨우 꼭대기에 올랐는데, 이곳이 아니란다. 돌계단을 내려와 숲으로 간다. 벌써 저만치 따라갈 걸음인데 오늘은 무릎이 말썽이다. 이러다가 해뜨기를 못 보겠다 싶어 마음이 탄다. “먼저 가서 사진 찍어요.” 아무래도 오르기를 그만둘까. 섰다가 폭 쌓인 산을 뒤덮은 구름바다를 본다. 저 구름 밑에는 우리가 지나온 안개가 자욱할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45] 돌담집 소꿉동무하고 멧골을 오른다. 그제 못 간다고 했지만, 밥이나 먹자고 한다. 곁님이 문중에 ‘시사’ 지내러 가서 없으니 일꾼 밥만 바꾸어 준다. 쪽파를 한 단 까서 여섯 그릇에 담는 동안 일꾼이 이른 밥을 먹고 나온다. 곧 나서면 12시 반에는 닿겠다. 마을 앞에 커다란 느티나무가 노랗게 물들었다. 길가에도 주차장에도 차가 가득찼다. ‘산을 오르는 사람이 이렇게 많나’ 걷다 보니 마을에 잔치가 있는 듯하다. 길가에 수국꽃을 꾸며놓았다. 누가 짝을 맺는구나. 동무들이 내려오려면 좀더 있어야 하니, 마을 건너편 비스듬한 산길로 갔다. 살짝 오르막인데 오늘은 걷기 힘들다. 마을을 돌고 싶은데 참고 돌담집 뒤쪽에 통나무에 앉아 기다린다. 그늘이 추워서 해받이에 앉았다가 다시 그늘에 앉았다. 멀리 낯익은 얼굴이 보인다. 동무들이 내려왔다. 돌림앓이로 못 만났으니 두 해 만에 얼굴을 본다. 주먹으로 마주치며 아는 척하고 손을 잡는다. 무척 반갑다. 나는 술도 잘 못 먹고 말도 재밌게 하지 못하는데 낀다. 시인이라고 떠받든다. 옆에 앉은 무환이가 책값을 꺼낸다. “모두 주소 정화한테 보내라.” 시원하게 말했다. 시집을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44] 짜장면 몸이 말한다. 생각이 움직인다. 어떤 말이 맞을지 모르나 둘을 몸으로 느낀다. 몸이 말할 적에는 생각이 꾸물할 틈 없이 말했다. 내가 하는 말이 아니라 내 안에서 자꾸 말하라고 떠밀리듯 했다. 내가 받아들일 틈도 없이 몸이 먼저 입밖으로 내지만, 몸은 뭔가 눈치를 챘다. 신을 신으면서 나도 모르게 “오늘은 자꾸만 짜장면이 먹고 싶지.” 하고 뱉었다. 마침 볼일을 보고 나오는데 아는 분이 “버스 타는 데까지 좀 태워 줄 수 있어요?” 하고 묻는다. 버스 타는 곳에 내리고 건널목을 건너면 지하철 타는 곳에 한 분을 내리기로 했다. 차를 타고 “오늘 짜장면이 자꾸 먹고 싶어요. 괜찮으시면 우리 먹을래요?” 했더니 좋아한다. 차를 몰고 나왔다. 넓은 이층 창가에 앉았다. 햇살이 들어 따뜻하다. 창가에 닿을 듯한 나뭇잎이 노랗고 붉게 물을 들인다. 짜장면을 먹으러 왔으니 나는 짜장면을 시켰다. 나이가 여든이 훌쩍 넘으신 분은 곱빼기를 시킨다. 종지 그릇에 두 숟가락쯤 담긴 밥이 나왔다. “밥 나올 줄 알았으면 곱빼기 시키는 게 아닌데.” 하신다. 나는 그릇을 싹 비웠다. 짜장면에 소고기가 들었대서 남기지 않고 다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43] 자리 이레를 해 달 불 물 나무 쇠 흙으로 얘기하는 언니가 있다. 나는 이 언니한테서 늘 배운다. 언니는 배움끈도 높고 무엇보다 살림새가 다르다. 내가 그다지 눈을 돌리지 않았고 앞으로 돌리고 싶은 매무새를 진작 갖추었다. 멋을 부리지는 않으나 우린 밑바탕에 깔린 삶자리가 다르다. 언니하고 그리 멀지 않는 청도에 갔다. 외진 골목으로 올라가니 집이 두 채 있다. 언덕에서 내려다보니 온통 푸르다. 하늘빛도 곱고 하얀 구름이 가만히 멈춘 들녘에는 벼가 노랗게 물들고 밭에는 사과가 발갛게 익고 감이 주렁주렁 달렸다. 복숭아나무는 잎이 가득 푸르다. 저 건너에는 무얼 태우는지 연기가 하늘에 닿는다. 잔디가 깔린 마당에서 사람들이 밥을 먹거나 차를 마신다. 이쪽 채로 들어오니 자리가 꽉 찼다. 두 사람씩 또는 여섯 사람씩 창가에 앉았다. 파스타를 시킨다. 내가 사려고 하는데, 언니가 산다. 차림판을 보고 “이렇게 비싸요?” 했더니, “아직 안 먹어 봤어?” 한다. 언니한테는 애들하고 딱 한 번 사 먹었다고 했는데, 다른 사람들과 몇 번 먹기는 했다. 가끔 토마토 스파게티를 사서 집에서 먹기도 했다. 언니가 알려주는 ‘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