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게 삶으로 051 한 그루 나무 《랩걸》 호프 자런 김희정 옮김 알마 2017.2.16. 지난해 여름에 어느 이웃이 《랩걸》이 좋으니 읽어 보라고 했다. 그분은 하루에 몇 쪽씩 아껴가면서 읽는다고 했다. 참 좋은 책인가 하고 여기다가 다른 이웃한테 《랩걸》을 사서 읽으려 한다는 이야기를 했더니, 《풀꽃나무하고 놀던 나날》이 훨씬 낫다고 하더라. 이분 얘기로는, 과학자는 나무를 과학으로 볼 뿐이라서, 나무 마음에 다가서지 않는다고 하더라. 이와 달리 《풀꽃나무하고 놀던 나날》은 나무를 오롯이 나무로 바라보고서 마음으로 다가서려고 하기에 ‘과학자 아닌 사람’이 쓴 책이 나무도 풀꽃도 제대로 풀어내어 들려준다고 하더라. 그러고 보니, 사백 쪽을 웃도는 두꺼운 책에는 ‘나무, 과학 그리고 사랑’이라고 적혔다. 아무래도 나는 이 말에 낚인 듯하다. 나무도 사랑도 아닌, 나무를 앞세워 ‘여성 과학자’라는 이름을 풀어놓은 줄거리이다. 그래, 글쓴이는 나무를 본 적이 없구나. 실험실에서만 사느라, 나무를 기웃거린 적은 있고, 나무를 뜯은 적은 있어도, 나무가 나무로 살아가는 숲을 품으면서 살아간 적은 없구나. 내가 일하는 가게 모퉁이에 전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게 삶으로 050 내 손으로 나를 《소리내는 잣나무》 블라지마르 메그레 한병석 옮김 한글샘 2007.10.20. 몸살을 앓았다. 비나리(제사) 떡을 먹은 뒤 갑자기 머리가 묵직하더니 추웠다. 끙끙 앓으며 스물한 시간을 꼬박 잤다. 다시 깨서 열 몇 시간을 또 잤다. 꿈도 꾸지 않고 잠을 이렇게 오래 잘 수 있나 싶었다. 그리 맑지 않은 몸인데 《소리내는 잣나무》를 읽었다. 두어 쪽 읽다가 잠들고, 또 일어나 몇 쪽 읽다가 잠든다. 또 읽으려고 붙잡지만 멍하다. 《소리내는 잣나무》를 읽으면 첫머리에 ‘사람이 아픈 까닭’을 짚는 대목이 나온다. 우리가 숲하고 등진 탓에 아프게 마련이고, 숲하고 등지면서 마음이 가라앉거나 얼룩지기에 자꾸 아파서 안 낫는다고 한다. 그렇지만 우리가 스스로 마음에 사랑을 심으면, 약이나 병원이 없이도 바로 나을 수 있다고 들려준다. 우리는 늘 마음 때문에 아프다고 한다. ‘난 아파’ 하는 마음을 품기에 아플 수밖에 없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그렇다. 딱히 아픈 데가 없어도 건강검진을 받는다. 건강검진을 받을 적에는 설마 아픈 데가 있을까 싶어 걱정을 한다. 나이가 든대서 아파야 할 까닭이 없지만, 나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게 삶으로 049 눈으로 마음으로 《예찬》 미셀 투르니에 김화영 옮김 현대문학북스 2000.10.20. 세 해 앞서 《예찬》을 처음 읽었고, 오늘 이 책을 새로 읽었다. 세 해 앞서 이 책을 읽고서 ‘좋다’고 남겼는데, 오늘 다시 읽고는 ‘+’를 보탠다. 《예찬》은 “눈이 왕이다. 눈이 마음보다 더 중요”하다고 들려준다. 틀림없이 눈으로 많이 보고, 눈으로 느껴서 알아가는 일이 많다. 책도 거의 눈으로 보면서 읽어낸다고 여길 수 있다. 어린 날을 돌아보면, 배가 고프던 일보다 뛰놀던 일이 떠오른다. 넉넉히 먹으면서 자라지 않았지만, 우리 엄마아빠 품에 있는 동안에는 하루하루 아름답게 누렸다고 느낀다. 네발로 기던 아기는 어느새 일어나서 걸음마를 뗀다. 걸음마를 뗀 아기는 비틀비틀 걷다가 신나게 달리면서 논다. 이윽고 껑충 자랐고, 짝을 만나 어른으로 크면서, 스스로 아이를 낳아 기른다. 첫째 둘째 셋째를 낳는 동안에 나한테는 아이들만 보였다. 세 아이와 함께한 나날은 아이들을 거쳐서 말없이 무언가 보여준 나날이었다고 느낀다. 나를 보며 어머니를 다시 보았고, 어머니를 다시 보면서 앞으로 살아갈 나를 새롭게 본다. 나는 바다처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금서밭] 작게 삶으로 048 마음을 알기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프리드리히 니체 정동호 옮김 책세상 2000.8.20. 얼마 앞서 수필협회에서 여는 배움마당을 다녀왔다. 그곳에서 니체를 이야기했다. 강사는 ‘세 변화에 대하여’와 ‘읽기와 쓰기에 대하여’ 두 꼭지를 읽어 보라고 하더라. 집에 와서 살피니,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2010년 4월에 장만해 두었더라. ‘세 가지 변화’를 읽어 본다. 마음(정신)이 삶이라는 사막에서 어떻게 낙타가 되고 낙타가 사자가 되며 사자가 마침내 어린이가 되는가를 짧게 들려준다. 눈에 보이지 않는 오아시스 때문에 벌어지는 일을 가만히 돌아본다. 눈에 보이지 않기로는, 말도 눈에 보이지 않는다. 말은 입으로 하고 귀로 들으니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할 텐데, 곰곰이 생각하면 말도 눈으로 본다. 눈속임이나 거짓말은 말이어도 눈에 보인다. 사랑이나 참말도 눈에 환하게 보인다. 눈으로 보거나 안 보기에 대수롭지는 않다. 눈앞에서 얌전하거나 착한 듯이 굴기에 얌전하거나 착할 수 없다. 우리 눈앞에서 안 얌전하거나 안 착하다면, 우리가 이런 모습을 못 보았더라도 안 얌전하거나 안 착한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게 삶으로 047 누가 시인일까 《아동시론》 이오덕 굴렁쇠 2006.11.10. 둘레를 살펴보니 배우는 사람이 많다. 아이들은 유치원과 학교를, 나처럼 아줌마들은 시를 배우고 글을 배우고 낭송을 하고 운동을 하고 산을 가고 저마다 좋아하는 일을 학교 다니듯이 돈을 내고서 배운다. 퇴직해서 배우는 사람은 일자리 걱정 돈 걱정 없어 부럽다. 어르신은 어르신대로 아이들 유치원 가듯 배움터를 간다. 참말로 우리는 배우러 태어났을까. 어르신 배움터에 가서 글을 뽑는 일을 돕기로 했다. 갑작스럽게 맡는다. 이른바 ‘심사위원’이란 자리인데, 이 자리에 가기 앞서 이오덕 님이 쓴 《아동시론》을 다시 펼친다. 시인이란 이름을 붙인 어른들은, 따로 시를 ‘짜려(구축)’고 들지만, 아이들은 ‘삶’에서 이미 얻은 노래를 ‘스스럼없이 적(기술)’는다고 한다. 그래서 “어린이는 모두 시인”이라고 들려준다. 그러니까 어른도 아이처럼 스스럼없이 삶을 바라보고 지켜보고 느끼는 대로 노래하듯 풀어내면 언제나 저절로 시가 나오고 글이 나온다고 들려준다. 우리 아들이 아직 어리던 열 살 무렵에는 참말로 시인 같았다. 문제를 풀이를 하다가 답이 뭐냐고 물으면 답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게 삶으로 046 묻고 답하기 《나는 누구인가》 라마나 마하리쉬 이호준 옮김 청하 1987.4.25 열두 해쯤 앞서 짝이랑 홍제암이란 곳에 간 적 있다. 그때 절에서 뵌 스님한테 책을 하나 알려주시면 잘 읽어 보겠노라고 여쭈었다. 스님은 머리를 깎은 뒤로는 바깥에서 나오는 책을 읽지 않아서 잘 모른다고 하셨다. 그러다가 《나는 누구인가》라는 책을 읽고서 머리를 깎았다고 하시기에 책이름을 적어 놓았다. 여섯 해쯤 앞서 드디어 《나는 누구인가》를 장만했다. 여섯 해가 걸린 셈이다. 읽다가 덮다가 했다. 읽을 만한 책을 스님한테 여쭈었으면서, 드디어 이 책을 장만했으면서, 정작 잘 읽히지 않았다. 먹고살기 바쁜 나날을 보낸다는 핑계 탓이리라. ‘나는 누구인가’ 하고 스스로 물어보면서 스스로 길을 찾을 엄두를 못 내었으니, 이 책을 펴도 하품이 나오면서 어려웠으리라. 다시 천천히 읽어 보기로 한다. 꼭 첫 줄부터 끝 줄까지 훑어야 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해 본다. 마음에 와닿는 대목을 살피면서 ‘나는 누구인가’ 하고 돌아볼 씨앗을 얻으면 되리라 생각해 본다. 마음이 어수선하면 입을 다물지만, 이때에는 이런저런 생각이 잔뜩 일어난다. 나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숲노래 우리말 얄궂은 말씨 ㄱ. 시작 그 앞 충분 준비되어 있지 -움을 겪어 시작(始作) : 어떤 일이나 행동의 처음 단계를 이루거나 그렇게 하게 함. 또는 그 단계 충분하다(充分-) : 모자람이 없이 넉넉하다 준비(準備) : 미리 마련하여 갖춤 처음 하기에 새롭습니다. 새롭게 하니 처음입니다. “새롭게 시작했지만”은 겹말입니다. “새롭게 나섰지만”이나 “처음으로 하지만”으로 손봅니다. 우리는 앞말을 받을 적에 ‘이’를 쓰는데, 이 보기글에 나오는 “그 앞에서”는 군더더기이기도 하고 옮김말씨입니다. 첫걸음에 나서되 아직 추스르지 않거나 덜되었다면, 때로는 두렵거나 떨거나 걱정할 수 있어요. 낯설기에 틀리거나 어긋날 수 있을 텐데, 처음으로 하기에 여태 알지 못 하던 길을 보고 느끼고 배우기도 합니다. ㅅㄴㄹ 무언가를 새롭게 시작했지만 그 앞에서 충분히 준비되어 있지 않다는 두려움을 겪어 본 이들에게 → 일을 새롭게 하지만 미처 추스르지 않았다고 여겨 두려운 이한테 → 새롭게 나아가지만 아직 덜되었다고 여겨 두려운 이한테 《책과 우연들》(김초엽, 열림원, 2022) 11쪽 ㄴ. 나의 세계 확장 나의 마음 세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숲노래 우리말 얄궂은 말씨 ㄱ. -에게도 삼진 아웃을 당했던 시절 삼진(三振) : [체육] 야구에서, 타자가 세 번의 스트라이크로 아웃되는 일 아웃(out) : [운동] 1. = 아웃사이드 2. 골프에서, 1라운드 18홀의 전반 9홀을 이르는 말 3. 야구에서, 경기 중에 타자나 주자가 그 자격을 잃는 일 당하다(當-) : 1. 해를 입거나 놀림을 받다 2. 어떤 때나 형편에 이르거나 처하다 3. 맞서 이겨 내다 4. 어떤 사람에게 부당하거나 원하지 않는 일을 겪거나 입다 5. 좋지 않은 일 따위를 직접 겪거나 입다 6. 일이나 책임 따위를 능히 해내거나 감당하다 7. 다른 것에 해당하거나 맞먹다 8. 사리에 마땅하거나 가능하다 시절(時節) : 1. 일정한 시기나 때 2. = 계절(季節) 3. 철에 따르는 날씨 4. 세상의 형편 그 사람도 그런 날이 있습니다. 이 사람도 저런 때가 있어요. 들판에서 공을 던지고 치는 놀이가 있는데, 이 자리에서 “삼진 아웃”이라는 말씨를 써요. 들놀이 말씨를 따올 수 있되, 들놀이를 모르는 사람도 숱하지요. 이 글월에서는 ‘쫓겨나다’나 ‘밀려나다’라 하면 됩니다. ㅅㄴㄹ 긴즈버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숲노래 우리말 얄궂은 말씨 ㄱ. 학문적 형식 논문 보호 갑옷의 역할 학문적(學問的) : 학문과 관련되었거나 학문으로서의 방법이나 체계가 서 있는 형식(形式) : 1. 사물이 외부로 나타나 보이는 모양 2. 일을 할 때의 일정한 절차나 양식 또는 한 무리의 사물을 특징짓는 데에 공통적으로 갖춘 모양 3. [철학] 다양한 요소를 총괄하는 통일 원리. 사물의 본질을 이루는 것으로 해석된다 4. [철학] 시간, 공간, 범주(範疇) 따위와 같이 사상(事象)을 성립하게 하는 선험적인 조건 5. [철학] 개개의 논증이 지니고 있는 그 논증을 타당하게 하는 논리적 구조 논문(論文) : 1. 어떤 것에 관하여 체계적으로 자기 의견이나 주장을 적은 글. 그 체계는 대개 서론, 본론, 결론의 세 단계이다 2. 어떤 문제에 대한 학술적인 연구 결과를 체계적으로 적은 글 보호(保護) : 1. 위험이나 곤란 따위가 미치지 아니하도록 잘 보살펴 돌봄 2. 잘 지켜 원래대로 보존되게 함 역할(役割) : 1. 자기가 마땅히 하여야 할 맡은 바 직책이나 임무. ‘구실’, ‘소임’, ‘할 일’로 순화 2. 역(役) 깊이 파고드는 길이란 배움길입니다.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숲노래 글손질 다듬읽기 12 《10대와 통하는 영화 이야기》 이지현 철수와영희 2023.4.5. 《10대와 통하는 영화 이야기》(이지현, 철수와영희, 2023)를 읽었습니다. 푸름이한테 책을 읽히고서 책을 이야기하는 어른은 많으나, 영화·만화를 함께 보고서 찬찬히 이야기하는 어른은 드뭅니다. 더구나 책·영화·만화를 푸름이하고 이야기를 하더라도 한 벌만 슥 훑고서 이야기하는 어른만 많습니다. 적어도 열 벌씩 되읽거나 다시보고서 이야기를 할 수 있어야, 속뜻을 짚고 삶빛을 헤아리면서 앞꿈을 그리는 실마리를 열리라 봅니다. 그런데 글님은 ‘미야자키 하야오’를 아직 얼마 안 본 듯싶습니다. 2013년 〈바람이 분다〉부터 보아야, 이이가 왜 ‘제로센 전쟁찬미’를 진작부터 곳곳에 담았고, ‘전범국가 이탈리아’를 그렇게 좋아하는가를 엿볼 수 있어요. 책도 영화도 만화도 힘·돈·이름을 거머쥔 이들이 속이거나 감추는 뒷길이 무척 많습니다. ‘광고’는 힘꾼(권력자)이 합니다. 작은사람이나 들꽃은 ‘광고’를 안 합니다. 우리가 어른으로서 푸름이하고 영화를 이야기하자면, 먼저 스스로 ‘100벌쯤 다시보기’ 할 만한 영화만 골라서 보고 말